소설리스트

232화 (232/402)
  • 나 때문이야?

    강우와 김춘배가 목동 사거리에 나타났다.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하자 주변 시선이 대번에 쏠렸다.

    “하아…. 나 옷가게 좀.”

    강우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김춘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잔뜩 찢어진 청반바지에 모호한 색이 뒤섞인 반소매 티를 입고 있는 강우였다.

    “왜? 잘 어울리는데?”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강우가 한숨을 푹 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마 평범한 옷을 꺼내 입은 게 이 정도였다. 슬쩍 김춘배를 바라보니 정말 못 봐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동 사거리에는 스포츠 매장도 많았다. 강우가 무작정 가게 하나를 향해 돌진했다. 김춘배가 강우를 붙잡았다.

    “그냥 입어. 오늘 하루만.”

    “.....”

    왜인지 모르게 간절한 김춘배의 표정에 강우가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김춘배가 씩 웃었다.

    “네가 입으니까 더 태가 난다. 태가 나.”

    “시끄럽고 빨리 가자.”

    강우가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강우와 김춘배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목동 사거리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가자.”

    “잠깐만….”

    김춘배가 강우를 붙잡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김혜지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떨리나 보다.

    “떨리냐?”

    “하아…. 나 한두 달 만에 보는 거야.”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해.”

    강우가 김춘배의 등을 팡팡 쳐주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입구로 걸어 올라갔다. 김춘배가 곧 뒤를 따랐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자 직원들이 일제히 ‘환영합니다.’라고 소리치며 손님을 반겼다. 쓱 안을 둘러보니 가게에는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역시 반응이 좋네.’

    강우가 들른 매장은 현재 대진 그룹과 동양 무역이 합작 투자해서 런칭한 외식 브랜드였다. 다른 경쟁사들이 기존 외국기업과 합작한 것과는 달리 순수 국산 업체였다. 물론, 노하우가 없던 관계로 브랜드 런칭까지 꽤 고생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몇 분이신가요?”

    직원이 다가와 강우에게 물었다.

    “박강우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

    “잠시만요 고객님.”

    직원이 강우를 알아보고는 살짝 당황했다. 그도 그럴만했다. 일개 아르바이트생이라지만, 이 브랜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강우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석으로 향했다.

    “아직 안 왔네.”

    김춘배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여자들은 원래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강우와 김춘배가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목동지점 점장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목동지점 점장입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오늘은 정말 손님으로 온 겁니다. 다른 고객들 불편하지 않게 너무 신경 써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점장이 다시 돌아갔다. 김춘배가 강우를 보며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강우야, 진짜 대단해 보인다.”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다.

    “미안! 늦었지?”

    멀리서 박광웅이 다가왔다. 그리고 강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다 진짜!”

    “이야~ 이거 완전히 대학생이 다 됐네?”

    “나 이제 2학년이거든? 너보다 학년이 높다고.”

    강우가 픽 웃었다.

    “어차피 군대 가면 다시 바뀐다.”

    “아….”

    박광웅이 탄식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그런데 너 군대는 언제 가려고?”

    “그렇지 않아도 올해 가려고 준비 중이야.”

    박광웅은 군대에 조금 늦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더 안정시키고 가고 싶어서였다. 박광웅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리고 이제 분식집을 인수하면서 여유가 생겼고, 군대에 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아~ 까마득하다. 언제 가서 언제 전역하냐.”

    “아픈 데 찌르지 말아 주라.”

    강우의 놀림에 박광웅이 짐짓 아픈 척 가슴을 부여잡았다. 강우와 박광웅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매장에 있는 손님들도 웅성거리며 동요했다. 그리고 한껏 차려입은 이나은이 입구에 서 있었다.

    “나….”

    이나은을 소리쳐 부르려던 김춘배의 입을 강우가 틀어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이나은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나은이 환하게 웃더니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김춘배가 순간 얼어버렸다.

    “혜…. 혜지야.”

    이나은의 뒤쪽으로 김혜지가 있었다. 역시 예쁘게 차려입은 김혜지가 김춘배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춘배야, 잘 지냈어?”

    김춘배가 왈칵 눈시울을 붉혔다. 평소 장난기 많고 활발한 김춘배였지만, 감수성은 예전부터 남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의 얼굴에 감정이 복받쳤나 보다.

    “일단 앉아.”

    이나은이 김혜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강우 옆이 아니라 김혜지와 함께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박광웅이 나섰다.

    “재식이는 지금 오는 중이라니까. 우리가 먼저 시켜놓을까?”

    “좋지. 그러자.”

    김춘배가 기다렸다는 듯 메뉴판을 열었다. 그리고 김혜지를 향해 놓아주었다. 항상 김혜지를 챙겨주던 버릇 그대로였다. 김혜지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강우가 사줄 거야.”

    김춘배의 장난기 섞인 말에 김혜지가 킥하고 웃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변에서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역시 춘배는 매너가 참 좋아.”

    “그럼 그럼. 매너 빼면 시체지.”

    이나은과 강우가 열심히 김춘배를 칭찬했다. 박광웅이 그런 친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강우는 군대를 갔다 왔지만, 여전히 따듯했다. 김혜지도 그런 친구들의 마음을 느낀 것일까? 조금씩 예전처럼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이윽고 강우와 친구들이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부터 샐러드 그리고 파스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역시나 먹성이 대단한 강우를 위해 잔뜩 시켰다. 더군다나 오늘은 박광웅도 있었다.

    “강우야, 전역 축하한다.”

    친구들이 음료 잔을 들어 강우의 전역을 축하했다.

    “고맙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식사가 시작됐다. 김춘배는 김혜지를 열심히 챙겼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김춘배는 항상 김혜지를 잘 챙겼었다.

    “혜지야, 이거 먹어봐. 맛있다.”

    “고마워.”

    김혜지가 싱긋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김춘배는 여전히 자상했다.

    “이것도. 고기만 먹으면 안 된대.”

    “으응….”

    강우와 다른 친구들도 그런 김춘배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극히 정성이면 통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딸랑.

    이윽고 가게 문이 열리고 남재식과 박지혜가 나타났다. 박광웅이 손을 들어 마구 흔들었다. 세상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재식아! 지혜야!”

    남재식과 박지혜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남재식의 손에는 케이크도 들려있었다.

    “오~ 웬 케이크?”

    “파티에 케이크가 빠지면 쓰나.”

    남재식과 박지혜가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강우와 이나은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김춘배와 김혜지를 보며 조심스러워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을 벌써 알고 있었다.

    “춘배, 오랜만이다.”

    “어, 잘 지냈지?”

    박지혜는 김혜지에게 살뜰하게 말을 건넸다.

    “혜지 언니, 잘 지내셨죠?”

    “응, 그래 지혜야.”

    두 사람은 이름이 앞뒤로 비슷했기에 평소 친하게 지냈었다. 물론, 박지혜는 이나은은 물론이고 조민정도 친언니처럼 좋아하고 잘 따랐다.

    “두 사람 배고프지? 더 시키자.”

    이나은이 직원을 부르려 했다. 남재식과 박지혜가 동시에 이나은을 말렸다.

    “여기 있는 거 같이 먹으면 돼. 이거 먹고 2차 가야지.”

    “맞아요. 언니.”

    이나은이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차는 당연히 술?”

    “콜.”

    남재식과 박지혜가 좋다고 말했다. 강우와 박광웅도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강우와 친구들이 밖으로 나왔다. 술집은 일부러 멀리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자연스럽게 김춘배와 김혜지가 뒤로 처졌다.

    “그런데 춘배,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어?”

    김혜지가 김춘배를 보며 속상해했다. 김춘배가 얼굴을 쓱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냥…. 요즘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어.”

    “나 때문이야?”

    김혜지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김춘배도 제자리에 멈췄다. 두 연인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니, 너 때문일 리가 없잖아.”

    “아니, 나 때문이 맞아. 내가 우유부단해서 그런 거야. 너한테 확실히 결정을 내려줬어야 했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강우와 친구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강우가 이나은을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남재식과 박지혜도 강우 뒤쪽으로 숨었다.

    “왜? 뭔데?”

    박광웅이 눈치 없이 나서려 했다.

    “오빠….”

    박지혜가 나지막이 박광웅을 불렀다. 박광웅이 움찔하더니 멈춰 섰다.

    “아…. 미안.”

    강우와 친구들이 숨을 죽이고 두 연인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사실 분위기가 조금 더 무르익기를 바랬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진솔한 대화가 나올 거 같았다. 왜 그런 내용을 담은 노래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현실은 전쟁이었다.

    “그럼 결정을 해주던가!!”

    김춘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3년을 사귀며 처음 보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김혜지가 화들짝 놀랐다.

    “우리 아빠가 너 반대한다고 네가 어떻게 했어? 그냥 겁먹어서 뭐라고 말도 못 하고 그냥 도망쳤잖아!”

    “도…. 도망이라고? 내가? 그러는 너는 내가 요즘 얼마나 힘들지 생각은 해봤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나은이 안절부절못했다. 이런 그림을 바란 게 절대 아니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힘을 합쳐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화해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강우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

    ‘둘 문제가 아니라 주변 문제니까. 결국, 두 사람이 극복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야. 이건 둘이 화해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니지.’

    강우가 이나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안심하라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나은아, 그냥 지켜보자.”

    “어? 으응.”

    이나은이 불안한 눈동자로 김혜지를 바라보았다. 남재식과 박지혜는 익숙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평소에도 제법 티격태격하는 모양이다.

    “그러는 난? 아빠는 너 만나지 말라고 그러고. 나는 네가 매일 생각나고. 그런데 너는 너 하고 싶은 그것만 한다고 했잖아. 그러고. 너 그거 알아? 아빠가 더 실망한 건 네가 그렇게 맥없이 물러나서야. 사내자식이 그렇게 패기가 없어서 어디에다가 쓸래?!”

    “......”

    김혜지의 일침에 김춘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군대? 내가 바로 갔다 온다. 배우? 지켜봐라. 내가 저기 있는 나은이보다 훨씬 유명해져서 너희 아버지한테 떳떳해질 거야.”

    “.....”

    김춘배가 선언하듯 소리쳤다. 그런 김춘배의 모습이 김혜지가 눈시울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그래서 우리 헤어질 거야?”

    “아니, 안 헤어져. 못 해어져!”

    김춘배가 김혜지의 손을 박력 있게 잡았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

    김혜지가 당황하며 물었다. 김춘배가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아버지 만나러 간다! 내가 오늘 가서 담판 지을 거라고!”

    “어??”

    김춘배와 김혜지가 멀어져갔다. 김혜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나은과 김혜지가 먼 거리를 두고 시선이 닿았다. 이나은이 크게 소리쳤다.

    “혜지야! 힘내!”

    그 목소리에 김혜지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김춘배와 김혜지가 사라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가자. 우리는 놀던 거 마저 놀아야지.”

    강우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나은이 두 연인이 사라진 곳을 보며 잘 해결되기를 바랐다. 남재식과 박지혜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우리 싸우지 말자.”

    “응.”

    마치 거울을 보듯 자신들의 모습이었나 싶었나 보다. 박광웅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강우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우야, 두 사람 저렇게 보내도 진짜 되는 거야? 네가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놔둬. 원래 사랑은 둘만의 전쟁이야. 둘이 극복하라고 해.”

    박광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밥을 잘 먹다가 돌연 감정이 폭발하다니. 모태솔로인 박광웅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강우야, 연애가 원래 저런 거냐?”

    강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씩 웃었다.

    “누구한테는 천국이고 또 누구한테는 전쟁이지. 그리고 고비 없는 사랑은 언젠가 시험에 들기 마련이고. 두 사람한테는 지금이 그 고비고 시련인 거야. 우리는 그냥 응원해주자.”

    강우의 말에 박광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를 완벽하게 못 하겠지만, 강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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