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7화 (227/402)
  • 언제 데려갈 건가?

    사무실에 강우와 남재식 그리고 박지혜가 있었다. 남재식은 박지혜가 사 온 김밥과 떡볶이를 열심히 먹었다.

    “잘 지냈어?”

    “네, 전역 축하드려요. 그리고 이것 좀 드세요.”

    박지혜가 나무젓가락을 툭 하고 뜯어 강우에게 내밀었다. 강우가 젓가락을 받으며 씩 웃었다.

    “재식이 먹이려고 사 온 거 아니야?”

    “아니에요. 강우 오빠 온다고 해서 많이 사 왔어요.”

    박지혜 말대로 테이블 위에는 김밥과 떡볶이가 엄청 많았다. 강우가 김밥을 집어 먹었다.

    “오? 맛있다. 집 앞 분식집 거지?”

    “네, 예전에 그곳이요. 그런데 사 온 건 아니고 가지고 온 거예요.”

    “어? 가지고 왔다고?”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단골이라지만 그냥 가지고 오는 게 이상했다. 그러자 남재식이 입 안 가득 김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분식집 인수했다.”

    “어? 분식집을?”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마침 거기 이모님이 몸이 안 좋아지셔서 장사 그만하시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인수했지.”

    “그럼 가게 운영은 누가 하고?”

    강우의 질문에 남재식이 박지혜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광웅과 박지혜의 부모님이 가게 운영을 하고 계신 것이다.

    “잘됐네. 그 가게 단골도 엄청 많잖아. 광웅이 어머님이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어, 분식집 이모님이 요리법도 다 전수해주고 갔어. 주방 이모들이랑 홀 이모들도 그대로고.”

    “잘됐네. 집에서도 가깝고.”

    강우와 남재식의 대화에 박지혜가 조금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남재식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게를 인수했으니 말이다.

    “부모님이 강우 오빠한테도 정말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 뭐…. 내가 한 게 있나….”

    “나랑 오빠 장학금도 다 강우 오빠가 준거잖아요.”

    강우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정확히는 대진 그룹에서 준거지.”

    박지혜가 싱긋 웃었다. 남재식이 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 광웅이도 지혜도 더 힘들었을 거야. 넌 충분히 감사 인사받아도 돼.”

    “그래, 알겠다. 낯뜨거우니까 그만 이야기하자.”

    강우의 말에 남재식과 박지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지혜야.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매일 이렇게 야식 챙기느라 힘들겠다. 이제 내가 자주 오니까 재식이 살찌는 건 걱정하지 마라.”

    “와~ 정말요? 저는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바람에 안 날려갈 정도만 쪘으면 좋겠어요.”

    남재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너무하네! 둘이.”

    말을 마친 남재식이 박지혜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박지혜가 고개를 끄덕했다. 남재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강우야, 우리 약혼하려고.”

    “어? 그래…. 뭐? 야…. 약혼?”

    강우가 화들짝 놀라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박지혜가 잔뜩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재식이 씩 웃었다.

    “어, 양가 부모님한테는 허락받았고, 곧 상견례도 한다. 지혜 대학 졸업하면 바로 식 올리려고.”

    강우가 잠시 멍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와…. 진짜 축하한다.”

    남재식이 환하게 웃었다. 연애라면 밑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서툰 남재식이었다. 여자 앞에 서면 말을 더듬고 머리가 하얘지기도 했다. 그런 남재식을 강우가 늘 조언해주고 도와주었었다. 남재식은 그런 강우가 너무나 고마웠다.

    “고맙다 강우야. 네가 도와준 덕분이야.”

    “맞아요. 강우 오빠 덕분이에요.”

    박지혜도 남재식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아니지. 재식이가 진짜 정성 많이 쏟았지.”

    “그건 말할 것도 없죠. 오빠 아니었으면 저 진짜 힘들었을 거예요.”

    박지혜가 남재식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남재식은 또 좋다며 헤벌쭉 웃었다. 남재식은 박지혜를 정말 오랫동안 물심양면으로 외조했다. 박지혜는 남재식 덕분에 안정적으로 공부해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박지혜 부모님은 물론이고 박광웅조차 남재식에게 고마워했다. 남재식은 박지혜를 정말 사랑했다. 박지혜도 남재식의 정성에 점점 사랑이 깊어져 갔다.

    “앞으로는 더 잘할 거라고.”

    남재식이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만만해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그럼 나는 간다.”

    “어디가? 있다가 술 한잔하고 가.”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여자친구 있거든?”

    * * *

    스르륵.

    커다란 밴이 무역센터 앞에 멈춰 섰다. 뒷문이 드르륵 열리고 활짝 웃는 이나은이 보였다.

    “강우야, 너무 늦었지?”

    “아니, 나도 볼일 보고 오느라 방금 나왔어. 그런데 저거 보여?”

    강우가 뒤쪽을 가리켰다. 무역센터 전광판에서 튀니지 CF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조금 부끄럽네.”

    “광고 진짜 잘 찍혔네. 역시 나은이야.”

    “고마워.”

    강우가 뒷자리에 올라탔다. 앞 좌석에 있던 로드매니저와 매니저가 동시에 인사를 해왔다.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네, 두 분 고생이 많으십니다.”

    강우가 품에서 건강음료를 꺼내 내밀었다. 매니저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음료를 받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밴이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는 이나은 집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이나은이 강우에게 기대왔다.

    “아~ 오늘 하루 피로가 다 날아간다.”

    “나도.”

    두 사람의 모습에 매니저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앞을 보고 있으니 강우와 이나은이 알 수는 없었다.

    “재식이랑 지혜랑 약혼한대.”

    “정말???”

    이나은이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강우가 잠시 멍했다.

    “어어…. 조만간 약혼하고 지혜 의대 졸업하고 나면 결혼식 한다더라고.”

    “와~ 잘됐다.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뭔가 허약해 보이지만 정이 넘치는 남재식 그리고 항상 강단 있고 행동력 있는 박지혜. 누가 봐도 잘 어울리고 잘 맞는 커플이었다.

    “잘돼서 다행이지. 재식이가 처음에 지혜 때문에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데.”

    “맞아.”

    하지만 결과가 해피엔딩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강우가 생각난 김에 친구 커플들 근황을 물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휴가를 나오면 회사 일에 집중했던 강우였다. 친구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커플들의 최근 근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춘배랑 혜지는 잘 지내지?”

    “응? 으응….”

    이나은이 말끝을 흐렸다. 강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왜?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어?”

    “하아…. 그게 춘배 군대 때문에 그래.”

    “군대?”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나은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혜지 아버지가 군인이시잖아.”

    “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혜지 아버지가 춘배 군대 안 갔다 오면 만나지 말라고 했다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춘배가 군대 안 간다고 한 적은 없잖아.”

    “그러니까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내가 볼 때는 춘배가 연예인 생활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 같아.”

    “음….”

    강우가 팔짱을 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김춘배는 열심히 연기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연기력으로는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춘배가 요즘 고민이 많은가 봐. 혜지도 힘들어하고.”

    “그렇구나….”

    2년이란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모습도 손에 들린 핸드폰도 그리고 강우의 주변 사람들도 말이다.

    “강우 네가 춘배 한번 만나봐. 너 부담될까 봐 말은 못 하고 끙끙대는 거 같아.”

    “알겠어. 고마워 나은아.”

    “아니야. 내 친구 일이기도 하니깐.”

    이나은도 강우를 오래 만나며 주변 사람을 챙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정호랑 민정이는?”

    “그 두 사람은 걱정할 게 없어.”

    이나은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강우도 고개를 끄덕했다. 강우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연정호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연정호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뒷바라지는 모두 조민정의 몫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절까지 찾아가서 뒷바라지 얼마나 했는데. 솔직히 나도 민정이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어.”

    “맞아.”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연정호는 오랜 산속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정호가 너 군대 갈 때 배웅도 못 하고 만나주지도 못했다고 엄청 미안해한대.”

    “뭐…. 남자끼리 배웅은 무슨….”

    강우가 생각난 김에 연정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강우가 신원주를 떠올렸다. 강우와 비슷한 시기에 육군에 입대한 신원주였다. 보직은 운전병이었고, 강우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전역이었다.

    ‘보라 누나야 고무신 거꾸로 신을 사람도 아니고 그런 정신도 없을 것이고.’

    학교를 졸업한 채보라는 현재 대기업에 입사해 회사 생활 중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엄청난 취업난이라는 터널에 갇혀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회사 생활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 왔습니다.”

    이윽고 이나은 집 앞에 밴이 도착했다.

    “오늘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매니저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늦었으니까 강우는 이거 타고 집에까지 갈래?”

    “아니, 바래다주고 갈게.”

    이나은이 내심 기대했는지 스르륵 미소 지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밴에서 내렸다.

    부우웅.

    벤 차량이 떠나고 강우와 이나은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파트 입구로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나은이 왔구나.”

    멀리 어둠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와 이나은이 깜짝 놀라며 손을 풀고 슬쩍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강우야.”

    “피…. 필승! 병장 박강우 전역했습니다.”

    강우가 자신도 모르게 잔뜩 힘을 주며 경례했다. 이나은이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추…. 충성! 그래 잘 다녀왔구나.”

    어둠 속에 있던 인물. 나은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경례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육군 출신 나은 아버지와 해병대 출신 강우의 묘한 분위기였다.

    “흠흠…. 그렇지 않아도 전역했다고 해서 한번 부르려고 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인사드리러 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강우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나은 아버지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너 바쁜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우리 나은이 집에 데려다주러 온 거야?”

    “네, 촬영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저도 태워 왔습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보다 못한 이나은이 나섰다.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그냥 보낼게요.”

    “응? 잠깐만 시간이….”

    나은 아버지가 과장된 동작으로 손목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금색 휘황찬란한 손목시계가 차여져 있었다.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나은 아버지 손목에 있는 것은 이나은이 선물한 고급 시계였다.

    “아….”

    강우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직 12시도 안 됐구먼. 시간 괜찮으면 나랑 편의점 가서 맥주 한잔하는 게 어때?”

    “네, 좋습니다.”

    이나은이 아버지를 향해 눈으로 신호를 보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하지만 나은 아버지는 애써 모른 척 강우를 끌어당겼다.

    “나은이 너는 들어가서 자. 아빠는 강우랑 맥주 한 캔 하고 올게.”

    “네.”

    이나은도 결국 알겠다고 답했다. 강우가 이나은을 돌아보며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살짝 손을 흔들었다. 이나은이 입 모양으로 ‘사랑해’라고 말한 뒤 집을 향해 황급히 들어갔다. 강우가 잠시 헤벌쭉하게 웃었다. 나은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딸랑.

    이윽고 편의점에 도착한 강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서 나왔다. 나은 아버지가 주신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이쪽에 앉지.”

    “네.”

    강우와 나은 아버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강우가 맥주캔 하나를 딸칵 따서 나은 아버지 앞에 놓아드렸다.

    “고맙다. 자 건배.”

    “네, 아버님.”

    강우와 나은 아버지가 캔을 가볍게 ‘퉁’ 하고 부딪혔다. 강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맥주를 마셨다. 나은 아버지는 목이 탔는지 한 캔을 다 마셨다.

    “크…. 시원하구먼.”

    그 말과 동시에 시원한 여름 밤공기가 강우와 나은 아버지 얼굴을 휘감고 지나갔다. 이윽고 부드럽게 웃던 나은 아버지가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말했다.

    “우리 나은이 언제 데려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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