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402)
  • 그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김말숙이 가게 문을 닫았다. 오늘 더 손님을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셔터가 내려가자 가게 안에 강우와 김말숙 그리고 황규직과 김판일이 남았다.

    “그래, 일단 한 잔 받아보게. 재봉 그 사람 손자면 술도 잘 마시겠지?”

    황규직이 막걸리 주전자를 내밀었다. 강우가 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황규직과 김판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황규직이 입을 열었다.

    “그래, 재봉에게 한국전쟁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네.”

    황규직이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봉이 말을 해주지 않던가?”

    “간혹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더 자세히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얼굴에 스쳐 지나간 슬픔을 강우는 잊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아픔을 먼저 물어 캐내기는 싫었다.

    “그렇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해도 돼. 재봉 그 사람 성격이 워낙 자기 이야기를 안 하지 않나. 하지만 손자한테 말해 주는 건 괜찮겠지.”

    김판일이 막걸리를 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말했다.

    “난 재봉 그 사람이 참 답답해. 왜 자신을 그렇게 감추고 사는지 말이야. 나 같으면 내가 이런 사람이오 하고 떵떵거리며 살 텐데 말이야!”

    “.....”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김판일이 말을 이어갔다.

    “재봉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이 사람아 친손자가 그걸 모르겠는가? 그리고 강우가 지금 하는 일들을 보면 모르겠는가?”

    황규직이 김판일을 나지막이 나무랐다. 김판일이 씩씩거렸다.

    “그거야 그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던 거고! 그 사람 공이 어디 그뿐이던가? 한국전쟁 때 그 사람이 했던 일은 어떻고!”

    “나도 자네랑 생각은 똑같아. 하지만 재봉 그 사람에게 한국전쟁은 일제 강점기보다 더 큰 아픔이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모든 형제를 잃었다. 큰형님도 쌍둥이 형도 그리고 두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까지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일제 강점기 때는 나라를 잃었지만…. 그때는 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말이야.”

    “그러니 자기 입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는 싫었을 거야.”

    할아버지에게 오늘 아침에 해주셨던 이야기조차 커다란 결심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슴의 응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됐기에 가능했다.

    “부탁드립니다. 알고 계신 이야기를 제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진지한 강우의 표정에 황규직과 김판일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인 듯하더니 곧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황규직이었다.

    “일단 강우 네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다오.”

    “네.”

    강우가 아침에 들었던 이야기와 미래 기억으로 알고 있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두 말했다. 황규직이 가만히 듣더니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날 광주 마을에서 총살 사건이 있고 난 뒤…. 재봉은 한동안 정처 없이 피난을 떠났지.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복수를 다짐했어. 재봉은 바로 미군을 찾아갔지.”

    “미…. 미군을요?”

    강우도 몰랐던 이야기였다. 황규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봉은 곧장 미군에 입대했지.”

    “그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미군이 찾아간다고 입대가 가능한 곳이란 말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겠지. 하지만 재봉 그 사람이 누군가? 광복군 징모처에서 복무하고 그전에는 밀정으로도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물일세. 미군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 훌륭한 정보책이라 생각했겠지.”

    “그렇겠군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는 중국과 조선을 수백 번을 오고 갔을 것이다. 한국 지리에 누구보다 밝았고, 더군다나 영어도 능통했다. 밀정으로서의 능력도 있었다.

    ‘정말 먼치킨이 따로 없네.’

    강우가 다시 한번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그래서 미군은 재봉을 정보부에 편입시켰네. 계급도 장교로 임명해 주었지. 재봉이 미군에서 어떤 임무를 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진 게 없어. 나는 그때 재봉을 통해 미군과 연락을 주고받았지.”

    “그러셨군요.”

    이제 할아버지와 황규직의 인연을 알 것 같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판일이 질세라 입을 열었다.

    “나는 재봉에게 잃어버린 막냇동생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도움을 주었었지. 그 당시 피난을 떠난 한국인들은 모두 부산에 모였었고, 나는 부산을 이 잡듯 뒤졌었어. 하지만 동생을 찾지는 못했지.”

    김판일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가득 떠올랐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당시에 헤어진 가족을 찾을 방법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내가 재봉에게 받은 도움을 생각하면….”

    김판일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가족을 모두 부산으로 안전하게 피난시켰었다. 황규직이 김판일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다시 강우를 바라보았다.

    “재봉은 미군을 도와 한국전쟁을 치렀지. 그리고 미국으로 귀화 제의도 받았었어. 하지만 응하지 않았고 조국에 남았지.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재봉은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갔지. 그리고 미군에 복역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어.”

    강우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왜 미군에서 복역한 사실을 말을 하지 않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제게 말씀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황규직과 김판일이 얼굴을 굳혔다.

    “.....”

    “.....”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강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보고 있던 김말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우라면 사장님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김말숙의 말에 황규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당시 재봉은 잃어버린 막냇동생은 물론이고 국군에 징집된 첫째 형과 실종된 쌍둥이 형도 찾았지. 나는 재봉의 부탁을 받고 그분들의 행방을 물색했네.”

    “명령은 이 사람이 내리고 행동은 내가 다 했지.”

    김판일이 말을 이어받았다.

    “재봉의 큰형님은 수도 서울에서 징집이 된 후 곧장 최전선으로 가셨지. 나는 수소문 끝에 큰형님이 배치된 부대를 찾아냈어. 하지만 이미 전사하신 후였다.”

    “......”

    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당시 유력인사들 대부분이 가장 먼저 피난을 떠난 것은 잘 알려진 일이었다. 오히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까지 도왔던 큰할아버지는 전쟁에까지 나가 목숨을 달리 하신 것이다.

    “그래, 아주 잘못된 일이지. 하지만 재봉은 이해했네. 나라를 지키는 데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슬펐지만,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셨으니 자랑스럽다고 했어.”

    “.......”

    강우가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김판일은 설명을 계속했다.

    “문제는 쌍둥이 형이었네…. 그분은…….”

    김판일이 목이 타는지 막걸리를 벌컥 마셨다. 황규직도 침음성을 흘리며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분은…. 찾긴 찾았네. 아마 지금도 생존해 계실 수도 있겠군….”

    “살아계신다고요? 그럼 왜?”

    강우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가슴 아파하시면서 살아있는 쌍둥이 형을 왜 찾아가지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김판일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나는 결국 그분을 찾아냈지. 하지만 문제는 그분의 소속이었어. 나는…. 나는 그분이 북한군 소좌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아냈어….”

    “부…. 북한군이요?”

    강우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윽…….’

    머리가 깨질 듯 아프더니 의식이 팍 하고 사라졌다. 이윽고 강우 눈앞으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맙소사….’

    미군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할아버지와 너무나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강우는 그 사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북한군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둥이 형님이시구나.’

    두 사람은 어느 산속에서 만나고 있었다.

    “형…. 도대체 왜?”

    “재봉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조국이 해방되고 남한에 벌어진 일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는 버림받았다. 그리고 독립투사들을 핍박하고 일제에 협력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놈들은 떵떵거리고 살고 있어! 이건 잘못된 현실이야. 누군가 바꾸지 않는다면 내가 바꾸겠어.”

    “하지만, 전쟁은 해답이 아니야. 형도 알잖아.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릴지.”

    박재립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정치이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민족을 팔아먹었던 일제의 앞잡이들을 처치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겠다고 다짐했었다.

    “내 선택은 후회하지 않아. 나는 한국에 있는 친일파 놈들을 싹 쓸어버릴 거다. 그게 내가 북한에 협력하는 이유고.”

    “형….”

    할아버지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형을 설득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내가 형 기록을 삭제해줄 테니까 다시 돌아와.”

    대쪽 같은 할아버지에게 지금 제안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일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박재립은 몸을 돌려 할아버지에게서 멀어져갔다. 할아버지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재립 형, 우리 가족에게 북한군이 했던 짓을 직접 봤다면 그 선택은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야!”

    할아버지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쌍둥이 형 박재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이윽고 강우 시야가 다시 암전됐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박재립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였다. 박재립이 있는 곳은 전쟁의 흉터가 그대로 남은 마을이었다. 폐허가 돼버린 이 마을은 바로 할아버지와 쌍둥이 형님의 집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죽임을 당한 장소였다.

    “미안합니다. 이 죄는 죽어서 갚겠습니다.”

    박재립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군용 차량에 올라타 사라졌다. 군용 지프가 멀어지고 강우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강우야, 괜찮니?”

    다시 의식이 돌아오고 시야가 밝아졌다. 강우 눈앞으로 김말숙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강우가 차분히 감정을 정리했다. 할아버지가 가진 가족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꼈다. 강우가 차분해지자 김판일이 말을 이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재봉은 미군에게 협력한 보상으로 광산사업권을 얻게 됐지.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고, 한때 큰돈도 벌었었어. 하지만 이후 문제가 생기고 말았지.”

    “혹시 쌍둥이 형님 때문입니까?”

    황규직과 김판일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맞네. 쌍둥이 형인 박재립이 북한군에 소속된 것을 정부가 알게 됐고. 재봉은 잡혀가 조사를 받고 옥살이도 했네.”

    “......”

    강우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대륙붕에 무리한 투자를 하긴 했지만, 사업이 한순간에 망한 이유를 말이다. 할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회사가 급격히 무너진 것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사셨다.

    “그 이후로는 집권당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 제안도 했었고, 여러 회유를 했었어.”

    “조사를 받고 재봉의 무고함이 밝혀졌기 때문이지. 정치인들에게 재봉은 참 좋은 이야깃거리였지. 하지만 재봉은 모든 것을 거절했어. 그리고 조용히 묻혀 살기를 원했고.”

    할아버지가 강우와 함께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방황하고 힘들어하셨던 이유가 이제 밝혀졌다. 강우가 속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래, 결국 또 네놈들이었구나. 할아버지 인생을 마음대로 가지고 논 너희들….’

    강우가 차분히 심호흡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할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황규직과 김판일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도 요즘 자네가 하는 일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네. 독립 유공자들과 후손분들을 돕고 있다지? 아주 훌륭한 일들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래서 말이야. 우리도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데 말이지.”

    황규직과 김판일이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강우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명함을 받은 강우 차례로 명함을 살폈다. 그리고는 놀란 눈이 되었다.

    황규직과 김판일.

    평범해 보이는 두 노인이 이루어놓은 것들을 절대로 가볍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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