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402)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부우웅.

택시 한 대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이윽고 택시가 아파트 한 동에 멈춰 섰다.

“필승! 감사합니다.”

“필승! 후배, 다시 한번 전역 축하해.”

탁.

택시에서 내린 강우가 문을 닫았다. 택시가 아파트 단지를 유유히 벗어났다. 멀어져 가는 택시 트렁크 쪽에는 해병대 마크가 선명히 붙어있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택시비 굳었네.”

“진짜 신기하다. 해병대 후배라고 택시비를 안 받으시네.”

이나은도 신기한 경험이라며 말했다. 부대를 벗어난 강우와 이나은은 택시를 잡아탔다. 이나은 매니저가 데리러 온다는 것을 강우가 쉬라고 했다. 일요일인 어제 부대까지 와서 고생했기 때문이었다.

“후아….”

강우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긴 숨을 뱉어냈다. 물론 휴가를 나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느낌이 완전 달랐다. 이나은이 그런 강우에게 팔짱을 꼈다.

“빨리 가자. 어머니 기다리셔.”

“그래.”

차분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강우가 이나은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집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만난 경비아저씨도 강우를 보며 반색했다. 모자와 가슴에 달린 예비역 마크를 보고 단숨에 전역을 알아차린 것이다.

“잘 지내셨어요?”

“드디어 전역했구나? 고생했다. 고생했어.”

경비아저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인사드리러 올게요.”

“아이고~ 내가 바쁜 사람을 잡았네그려. 할아버지들이랑 부모님이 기다리시겠다. 어여 올라가.”

강우와 이나은이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강우가 집으로 걸어갔다. 두툼한 군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덜컥.

마치 기다린 듯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야!!”

강우를 보며 어머니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달려와 강우를 꼭 안아 주었다. 잠시 움찔했던 강우가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사실 휴가를 나왔을 때는 늘 미소로 반겨 주었던 어머니였다. 해병대 그곳에서도 힘들다는 수색대를 자원한 아들이었다. 행여 군 생활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한 마음을 드러내지도 못했었다.

“엄마, 왜 울어요. 오늘같이 좋은 날에.”

“아니야. 엄마는 우리 강우가 너무 대견해. 그리고 고마워 무사히 돌아와 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어머니에 강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나은은 이미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나은아, 고생했어.”

어머니가 이나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에요. 제가 가고 싶어서 갔어요.”

“그래, 착하다. 우리 나은이. 어서 들어가자 다들 기다리고 계셔.”

강우와 이나은이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많은 사람이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는 할아버지와 최준에게 가장 먼저 인사했다. 거실로 들어선 강우가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큰절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필승!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대견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고생했다.”

짤막한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강우를 보고는 탄성을 뱉어냈다.

“우리 강우가 군대를 다녀오더니 아주 더 늠름해졌구나.”

“이보게 아우, 우리 때 강우 같은 동지가 있었으면 일본 순사들이 오금을 저렸을 텐데 말이야.”

할아버지와 최준이 강우 몸을 이리저리 만졌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가만히 있었다.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2년을 보낸 강우는 더욱 건장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어려 보였던 모습은 사라지고 늠름한 사나이로 변해있었다.

“오라버니들 강우 닳아 없어지겠어요.”

주방에 있던 김말숙이 미소를 지으며 두 할아버지를 나무랐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강우에게서 떨어졌다.

“청춘이 부럽네요. 형님. 저도 젊었을 적에는 대단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재봉 자네 손에….”

최준이 뒷말은 아꼈다. 할아버지 손에 목숨을 달리한 일본 순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앉자꾸나.”

“네.”

할아버지와 최준이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와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빨리 밥 준비할게요. 나은이 너는 강우랑 있어.”

“아니에요. 저도 도울게요.”

이나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했다.

“아니야. 오늘은 강우 옆에 있어.”

“네, 그럼 있다가 설거지할게요.”

“안 그래도 돼. 나은이 너도 매일 스케줄에 바쁜데 오늘은 푹 쉬고 놀다가.”

“그동안도 매번 올 때마다 쉬다 갔는걸요.”

어머니와 이나은의 모습에 강우가 스르륵 웃었다. 강우가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이나은은 집에 찾아와 강우 가족을 살뜰히 살폈다.

어머니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김말숙은 물론이고 김세아까지 요리가 한창이었다. 아들이 제대한다고 어머니 제대로 잔치를 벌이신 모양이다. 김세아가 시원한 음료를 따라 거실로 나오며 싱긋 웃었다.

“강우야, 전역 축하해. 이제 민간인이네.”

민간인이라는 단어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를 받았다.

“네, 작은엄마. 연극 대박 났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고마워. 재원이는 회장님댁에 갔지?”

“네, 회장님한테 인사드리고 바로 온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그럼 금세 오겠네.”

이철금 회장을 언급했지만, 김세아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상처에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스스로가 강해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김세아였다. 그리고 강우는 그런 김세아가 참 평안해 보였다.

“재원이 형 군대 가 있는 동안 많이 걱정하셨죠?”

“걱정? 강우 너랑 같이 있는데 걱정은.”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강우와 이재원은 자대까지 같이 배정을 받았다. 강우 부모님도 김세아도 그리고 이철금 회장도 한결 안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딩동. 딩동.

그때, 벨이 울렸다. 강우가 쓱 현관을 바라보았다. 어린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 나가는 모습이 상상됐다. 하지만 강용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세요?”

강우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강용아!”

“형아!”

현관에는 훌쩍 커버린 강용이가 있었다. 강용이는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형아, 이제 군대 안 가?”

“응, 군대는 한 번만 가면 되는 거야.”

“나도 알아. 선생님이 말해줬어. 오늘 형아 군대 갔다가 집에 온다고 당번인데 특별히 집에도 일찍 보내주셨어.”

“그랬어?”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미래의 기억 속 강용이는 강우가 군대에 있는 동안 참 힘들게 지냈었다. 항상 의지하고 따르던 형이 군대를 가버린 사이 너무 커버렸었다. 그리고 급격히 현실적으로 변한 동생이 강우는 늘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강용이는 달랐다.

‘여전히 구김 없고 밝구나.’

2년 전보다는 커버려 이제는 번쩍 안기도 힘들었지만 말이다. 강우가 강용이를 꼭 안아 주었다. 이제는 강우 가슴팍까지는 오는 강용이었다.

“이제 형 제대했으니까 우리 여행도 다니고 같이 게임도 하고 그러자.”

“좋아. 그런데 형아 긴장해. 나 스페이스 크래프트 엄청나게 잘해졌다.”

“정말?”

강용이가 씩 웃었다. 그 미소에서 소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어. 나, 형아 이기려고 요한이 형한테 엄청나게 배웠다고.”

“그래도 형한테는 힘들걸?”

두 형제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얘들아~ 들어와서 이야기해. 현관에서 뭐 하니~”

보다 못한 어머니가 두 형제를 불러들였다. 강우와 강용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예의 바른 강용이었다. 강우와 강용이가 거실에 앉았다.

“학교생활은 어때?”

“잘 다니고 있어. 그런데 학원을 좀 많이 다니기는 해. 오늘은 형아, 온다고 다 땡땡이쳤어.”

어머니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오늘은 땡땡이가 아니고 안 보낸 거지.”

“아…. 오늘은 안 간 거래.”

여전히 귀여운 강용이었다.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아, 기다려봐.”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2년 동안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강우 방에서 자던 강용이는 남아있던 방으로 독립을 한 상태였다.

“형아, 선물.”

강용이가 방에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왔다. 제법 커다란 상자 크기에 강우가 놀란 눈을 했다.

“이게 뭐야?”

“그동안 용돈에서 떡볶이 사 먹고 떡꼬치 사 먹고 닭꼬치 사 먹고 아이스크림 사 먹고 남은 거 모아서 선물 샀어.”

강우가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멋진 모자가 들어있었다.

“형아 머리가 짧으니까 당분간은 모자 쓰고 다녀. 내가 선생님께 물어봐서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라고.”

“고맙다.”

강우가 습관처럼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용이가 움찔했지만, 이내 머리를 쓱 내밀었다.

“그리고 내 머리도 형아니까 쓰다듬게 해주는 거다.”

“아…. 그래?”

강용이 말에 거실이 웃음바다가 돼버렸다. 몸만큼 마음도 자란 강용이었다. 가족들은 강우가 돌아오자 집이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간단한 간식들 좀 드세요.”

어머니와 김세아가 간식거리를 가지고 나왔다. 저녁을 먹기로 한 강우 가족이었다. 점심을 먹기는 애매했다.

“자자 먹자.”

강우와 가족들은 간식을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 저녁 시간이 되었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강용이가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이나은도 싱긋 웃었다.

“강용이는 계속 안 변했으면 좋겠어.”

“나도.”

문이 열리고 등장한 것은 이재원과 미나 그리고 료코였다.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이재원도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저희 왔습니다!”

이재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세아가 대번에 나와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아들! 전역 날 얼굴 보기 너무 힘들다?”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김세아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료코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2년 사이 한국어에 능통해진 료코였다. 미나는 거의 한국인 수준이었다.

“어머님, 재원이 오빠가 엄마까지 모시고 오느라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미나야.”

김세아가 싱긋 웃었다. 평소 미나를 딸처럼 예뻐하는 김세아였다.

“필승! 저도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이재원이 할아버지와 최준에게 경례했다. 그리고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이재원을 보며 또 감탄했다.

“형님, 저 두 명이면 어디 가도 무섭지가 않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재원은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자~ 아드님들 전역 날 미안하지만, 상 차리는 것 좀 도와줘.”

어머니가 이재원과 강우에게 부탁했다. 강우와 이재원이 대번에 일어났다. 막 전역한 두 사람에게 남는 건 힘뿐이었다. 장정 두 명이 힘을 쓰자 순식간에 거실이 풍성해졌다. 교자상 위에 온갖 음식이 놓였다.

“우와~ 어머니 누구 장원급제라도 했어요?”

“그럼 우리 두 아들이 장원급제했지.”

이재원의 농담을 어머니가 받아쳤다. 이재원이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상이 모두 차려지자 초인종이 또 울렸다.

딩동. 딩동.

“아빠다!”

강용이가 볼 것도 없다는 듯 달려 나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장남 왔지? 강우야!”

아버지가 다급히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강우를 보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장남!”

환하게 웃는 아버지 얼굴에 강우도 웃음이 피었다.

“필승! 군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그래, 잘했다.”

아버지도 감격했는지 눈시울을 약간 붉히셨다. 강우가 아버지도 안아드렸다. 미래의 강우라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알고 있었다.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버지도 걱정으로 밤을 새웠을 것이다.

“흠흠…. 나도 왔는데.”

아버지의 뒤에는 멋쩍은 표정을 한 마사토도 있었다. 이재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경례를 했다. 그리고 살포시 마사토를 안아 주었다. 거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다. 가족의 품.’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군대라는 의무를 성실히 마친 강우의 인생 2막이 이제 막을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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