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402)
  • 못 잤거든?

    털썩.

    집으로 돌아온 강우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슬쩍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었다.

    “후…. 안 씻냐?”

    “먼저 씻어요.”

    이재원이 씻을 준비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강우와 친구들은 밤새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갔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도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딸칵.

    핸드폰을 열어보니 밤새 부재중 전화가 제법 쌓여있었다. 시끄럽게 노느라 핸드폰에 신경을 못 쓴 탓이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집에서 몇 통 그리고 나머지는 이나은이었다.

    ‘너무 늦었나….’

    강우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통화버튼 누르는 것을 망설였다. 밤새 드라마 촬영이 있다고는 했지만, 지금은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강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침 일찍 하면 되겠지 싶었다.

    뚜르르. 뚜르르.

    그런데 그 순간 강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우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강우야, 집이야?-

    이나은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의 입꼬리가 대번에 올라갔다.

    “응, 방금 들어왔어. 촬영은?”

    -나 지금 끝났어. 잠깐 자고 또 촬영이야.-

    “힘들겠다. 빨리 조금이라도 자.”

    강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이렇게 목소리라도 들어야 힘이 나.-

    “그래?”

    최근 들어 이나은이 바빠져 자주 못 만나는 두 사람이었다. 강우가 곧 입대하는 상황이라 이나은은 더 아쉽고 애틋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뢰는 탄탄했다. 얼굴은 보지 못해도 이렇게 통화로라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풀었다.

    -나 오늘 촬영하는데 PD님한테 칭찬 들었어.-

    “당연하지. 우리 나은이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데.”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나은이 계속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강우와 통화를 하며 점점 생기를 더해가는 이나은이였다.

    -나 조금 있다가 촬영 끝나고 쉴 거 같아. 명절 마지막 날이라고 하루 쉰대.-

    “진짜?”

    강우 표정이 밝아졌다. 얼마 만에 휴식이란 말인가. 이나은도 잔뜩 신난 모양이었다.

    -응, 그래서 그러는데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다고 집에 놀러 오래.-

    “알겠어. 당연히 가야지. 조금 있다가 내가 연락할게.”

    -응.-

    이나은의 목소리가 설렘으로 물들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한동안 통화를 이어갔다. 어느새 씻고 돌아온 이재원은 슬쩍 자리를 잡고 누웠다. 두 사람의 통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통화하던 참이었다.

    똑똑.

    “아들 밥 먹어.”

    어머니가 아침밥을 먹으라며 문을 두들겼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환하게 밝아진 밖이 보였다.

    “나은아, 우리 날 샜다. 빨리 한숨 자.”

    -응, 있다가 봐.-

    통화가 끝났다.

    “아…. 망할 놈.”

    슬쩍 옆을 보니 이재원이 충혈된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안 잤어요?”

    “못 잤거든?”

    “쏘리요.”

    이재원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좋을 때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이 뒤를 쓱 돌아보았다.

    “뭐 해? 밥 먹으러 가야지.”

    “네.”

    강우가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강우와 이재원을 보고는 허리에 손을 ‘척’ 하고 올렸다. 어머니 옆에 있던 강용이도 어머니를 흉내 내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너희 그동안 고생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그러면 안 돼. 입대도 해야 하는데 몸 관리해야지.”

    “네….”

    강우와 이재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용이가 씩 웃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강우와 이재원이 고개를 숙인 채로 픽 웃었다.

    “어어? 엄마 형아들 웃는다!”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운 막내의 재롱에 혼낼 마음도 사라졌다.

    “강용아, 엄마 말하는데….”

    “헤헤….”

    강용이가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찡긋 윙크했다. 임무를 완수한 강용이가 당당한 걸음으로 거실로 갔다. 강우와 이재원이 거실로 지나가는 강용이의 머리를 동시에 헝클어트렸다. 강용이가 비틀거리더니 슬쩍 엄지를 들었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버지 무릎에 앉았다.

    “우리 막둥이 나중에 아빠도 도와줄 거지?”

    “헤헤….”

    강용이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강용이가 귀여운 듯 인자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네 남자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길 수가 없어.”

    “언니. 그래도 의리들은 있네요.”

    같이 주방에 있던 김세아가 식탁에 국을 놓았다. 어머니가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말했다.

    “앉아. 일단 밥 먹어야지. 아 그리고 강우 너는 오늘 나은이 부모님 뵙고 와야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나은 어머니랑 통화했지.”

    “아…. 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와 나은 어머니는 자주 왕래하며 친분을 많이 쌓은 상태였다.

    “그런데 괜찮겠어? 밤새웠지?”

    “아…. 잠은 안 잤는데요 멀쩡해요.”

    어머니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멀쩡해 보였다. 쓱 옆을 바라보니 이재원은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쿵.

    심지어 꾸벅 졸다가 식탁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보기 힘든 아들의 허술한 모습에 김세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강우가 팔꿈치로 이재원을 툭 하고 건드렸다.

    “어어?”

    이재원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이재원이 입에 묻은 침을 쓱 닦아냈다. 그리고는 민망한지 유독 큰 소리로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 * *

    딩동.

    강우가 벨을 누르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화로 양복을 잘 차려입은 상태였고, 양손에는 선물도 두둑이 들려있었다.

    덜컥.

    “강우 왔니?”

    문이 열리고 나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강우를 반겨주었다. 강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럼, 강우 덕분에 잘 지냈지. 얼른 들어와.”

    “네, 어머님.”

    강우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나은 아버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강우를 반겼다. 무뚝뚝한 나은 아버지 성격상 이 정도면 대환영이었다.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강우가 거실로 들어갔다.

    “이거 부모님이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입니다.”

    “아유~ 또 이런 걸 보내셨어?”

    나은 어머니가 반가워하며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강우가 가져온 것 중에는 명절 음식이 담긴 바구니도 있었다.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아는 나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준비한 게 별로 없는데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나은 아버지가 미안함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잠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몇 번 찾아와 술친구를 해드리긴 했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흠흠….”

    나은 아버지도 어쩔 줄을 몰랐다. 어린 딸의 남자친구였지만, 묘한 분위기가 있는 강우였다. 그리고 내심 딸의 짝으로 점찍어 놓았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럼 나는 상 차리러 갈게요.”

    나은 어머니가 주방으로 향하자 나은 아버지가 움찔했다. 강우도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뚝뚝하기에는 마찬가지였다.

    덜컥.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열린 방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스스한 모습의 이나은이 있었다. 나은 아버지의 얼굴이 대번에 부드러워졌다. 강우도 헤벌쭉 웃었다.

    “어? 강우 왔어요? 잠깐만요!”

    이나은이 강우를 발견하고는 방으로 황급히 돌아갔다. 남자친구에게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건 당연하였다.

    “오늘 새벽 늦게 들어와서 얼마 자지도 못했어.”

    나은 아버지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이 점점 인기가 많아질수록 나은 아버지도 기뻐했다. 하지만 자식이 고생하는 모습은 늘 걱정스럽고 안쓰러웠다.

    “강우야.”

    이윽고 예쁘게 꾸민 이나은이 방에서 나왔다. 나은 아버지와 강우의 미소가 진해졌다. 이나은이 강우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은 아버지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 입대한다고 들었다. 해병대에 자원했다지?”

    “네, 아버님.”

    나은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실 강우가 군대를 회피하려면 방법이야 많다고 생각했다. 다른 재벌이나 정치인 그리고 연예인들까지 그런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우는 피하지 않고 당당히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래그래.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에 가야지. 더군다나 해병대라니 아주 좋은 선택이야.”

    “훈단에 들어가면 바로 수색대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나은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수색대라니 특수부대가 아니던가. 내심 기특했지만, 또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수색대를? 많이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제가 몸 하나는 워낙 튼튼합니다.”

    나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장한 체격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근육질인 강우였다. 그리고 이미 강우의 운동신경도 직접 보고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강우가 진짜 사나이구나.”

    “감사합니다.”

    군대 이야기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나은 아버지는 강우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나은 아버지가 슬쩍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강우를 보며 수줍어하는 딸의 모습에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둘이 2년 동안 떨어져 있을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강우와 이나은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강우밖에 없어요.”

    “저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뢰가 가득한 두 사람 표정에 나은 아버지가 속으로 감탄을 했다. 아직 어리지만 두 사람은 차분했다. 나은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말 안 해도 알겠다. 걱정할 필요도 없겠어.”

    그 순간, 나은 어머니가 상차림을 끝냈다.

    “밥들 먹어요.”

    강우와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은 아버지도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고 했던가?

    “와…. 어머니. 먹을 게 정말 많아요.”

    강우가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많이 먹어. 강우 어머님 솜씨만은 못해도 열심히 만들어 봤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시작됐다. 강우는 나은 부모님의 따듯한 관심을 받으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세배도 했다. 나은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용돈도 두둑이 주셨다.

    “그럼 또 오겠습니다.”

    강우가 현관에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우를 배웅했다.

    “그래, 입대하기 전에 또 놀러 와라.”

    “네.”

    강우 옆에는 이나은도 있었다. 한껏 예쁘게 차려입은 이나은의 모습이었다.

    “아빠, 나 강우랑 데이트하고 올게요.”

    “그래, 다녀와.”

    나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하며 알겠다고 했다. 나은 어머니는 강우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강우 조심히 가.”

    “네.”

    강우와 이나은이 현관문을 벗어났다. 이나은이 팔짱을 끼며 어깨에 기대왔다. 강우가 또 헤벌쭉 웃음을 지었다. 이나은에게서 느껴지는 향긋한 향기에 기분이 참 좋아졌다.

    “우리 어디 갈까?”

    강우가 물었다. 이나은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디 가기는 인사드리러 가야지 당연히. 그다음에 놀러 가자.”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나은은 참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 가자.”

    강우와 이나은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봄이 되었다. 추위는 전부 사라지고 살랑이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달리는 기차 안에는 강우와 이재원이 앉아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이재원은 깊게 잠들어 있었다.

    “다 와 가요.”

    강우가 꾸벅 졸고 있는 이재원을 깨웠다. 이재원이 움찔하며 쓰고 있던 모자가 땅에 툭 하고 떨어졌다. 짧게 잘린 머리가 나타나며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쏠렸다.

    “벌써?”

    이재원이 모자를 주워서 다시 썼다. 힐끗 밖을 바라보니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이윽고 기차 안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내리실 곳은 포항역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강우와 이재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좌석 위쪽에 있는 짐칸에서 가방을 꺼내 내릴 준비를 했다.

    치이이익.

    이윽고 기차가 포항역에 멈춰 섰다. 강우와 이재원이 기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 말고도 몇몇 남성들이 포항역에 내렸다.

    “후…. 왔네요.”

    “그래, 왔네.”

    두 사람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포항이라고 적힌 기차역 간판이 선명히 보였다. 두 사람은 내일 있을 입소를 위해 오늘 포항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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