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402)
  • 따듯하다. 좋다.

    카라라락.

    자갈이 밟히는 소리와 함께 한적한 강가에 커다란 허머차량이 나타났다. 강가로 다가온 허머 차량이 적당한 곳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강용이가 훌쩍 뛰어내렸다.

    “우와~ 여기에요?”

    강용이가 강을 바라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그 순간 아직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강용이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으아~ 추워!”

    강용이가 다시 차로 몸을 던졌다. 차에서 내려서 짐을 정리하던 강우와 이재원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차가 튼튼하기는 하네요.”

    “그렇지? 내가 우리 여행한다고 큰맘 먹고 샀다.”

    이재원은 이번 여행을 정말 특별히 생각했다. 비싼 허머차량도 구매하고 장비도 잔뜩 구매했다. 강우가 히말라야라도 가냐고 웃을 정도였다.

    “빨리 텐트 치고 불도 때우고 해요. 해 지겠어요.”

    “오케이.”

    강우와 이재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적한 강가에 세워진 허머를 기준으로 텐트가 세워졌다. 허머를 이용해 캐노피를 세우고 그 안으로 온갖 캠핑용품들이 놓였다.

    “불을 좀 때워야겠는데?”

    “잠깐만요.”

    강우가 차 트렁크에서 장작을 꺼냈다. 오는 길에 민박집에 들러 구매한 장작이었다. 장작을 산다고 하니 민박집 주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 것은 비밀이었다.

    화르륵.

    강우가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아버지는 야영에도 능숙한 분이었다. 강우는 아버지와 함께 캠핑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배워둔 지식이 오늘 빛을 발했다.

    “강용아, 이제 나와봐.”

    “응.”

    강용이가 차에서 내렸다. 모닥불을 보더니 쪼르르 달려와 작은 의자에 앉았다. 강용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캠핑용 의자였다. 아직 미래와 비교해 캠핑이 대중화되지 않은 지금이었다. 이재원이 강용이를 위해 외국에서 공수한 물건이었다.

    “와~ 따듯해.”

    강용이가 모닥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심지어는 신발을 벗고 발도 쭉 뻗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 없고 한적하니 좋네.”

    이재원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원래 야영장으로 허가가 난 이곳은 아직 겨울이라 사람이 없었다. 마치 세 사람이 전세를 낸 듯 말이다.

    “난 낚싯대 설치할게요.”

    “오케이. 그럼 나는 짐부터 정리한다.”

    강우가 낚싯대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강용아! 해 지기 전에 낚시부터 하자.”

    강우가 큰소리로 강용이를 불렀다. 강용이가 의자를 들고 후다닥 달려왔다. 얼굴 가득 신남이 가득했다. 강우가 강용이 전용으로 산 작은 낚싯대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낚싯대를 들었다.

    “자 봐봐.”

    강우가 낚싯대를 휙 하고 휘둘렀다. 미끼가 달린 낚싯바늘이 허공을 날았다.

    휘리리릭. 풍덩.

    멋지게 날아간 루어가 강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강우가 강용이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강용이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형아처럼 멀리 던진다!”

    강용이가 강우 흉내를 내며 낚싯대를 크게 휘둘렀다. 멀찍이 날아간 루어가 강물에 풍덩 빠졌다.

    “오~ 우리 동생 잘하는데?”

    “헤헤….”

    강용이가 콧등을 훔치며 잘난 척을 했다.

    “뭐야? 벌써 시작했어?”

    짐 정리를 끝낸 이재원이 다가와서는 낚싯대를 들었다. 이재원의 낚싯대가 힘차게 휘둘러졌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강용이가 강가에 나란히 앉았다. 강용이를 중심으로 왼쪽에 강우가 오른쪽에는 이재원이었다. 강용이가 양쪽을 번갈아 보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아~ 좋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형아와 그에 못지않은 이재원까지 강용이는 정말 행복했다.

    “......”

    “......”

    “......”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침묵이 흘렀다. 세 사람은 멍하니 강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강용이는 감상에 젖어 강을 바라보았다.

    “어어어?”

    그때, 강용이가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낚싯대가 움찔거리자 낚싯대를 확 잡아당겼다.

    “강용아, 당겨!”

    “감아!”

    강우와 이재원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강용이가 이를 악물고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잘한다! 잘한다!”

    강우와 이재원의 응원 덕분일까? 강용이가 결국 승리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딸려왔다.

    “강용아, 잡았다.”

    “형아!”

    강용이가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강우가 낚싯줄을 잡아채 잡힌 물고기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쏘가리가 잡혔다. 작긴 작았지만, 그래도 쏘가리였다.

    “강용이가 쏘가리를 잡았네?”

    “헤헤….”

    한바탕 난리가 지나갔다. 강우와 강용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거 너무 작아. 치어니까 놓아주자.”

    이재원이 쏘가리를 보며 말했다. 강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얘도 나처럼 어린애야?”

    “어, 어린애.”

    “그럼 놓아줄래.”

    강용이가 강우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낚싯바늘에서 쏘가리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강물을 향해 놓아 주었다.

    풍덩.

    쏘가리가 물에 들어가며 작은 파편이 일어났다. 강용이가 손을 마구 흔들었다.

    “잘 가! 너도 형아 꼭 찾아가.”

    세 사람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낚시를 즐기며 한적하고 고요한 시간이 한동안 흘러갔다. 이윽고 산에 둘러싸인 곳이라 그런지 금세 해가 지고 어둑해졌다. 주변이 어둑해지자 조금은 더 쌀쌀해졌다.

    “춥지? 잠깐만.”

    강우가 허머로 가서 두꺼운 담요를 꺼내왔다. 그리고 강용이의 몸에 둘러주었다. 강용이의 작은 체구가 담요에 둘둘 말렸다.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 강우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따듯하다. 좋다.”

    강용이가 스르륵 웃었다.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른은 직접 합시다. 좀.”

    “쳇….”

    이재원이 투덜거리며 일어나 담요를 가져왔다. 세 남자가 다시 강가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강 위로 물길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형아, 밤에도 물고기 잡혀?”

    강용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밤에도 물고기 잡혀.”

    “물고기들 잠은 안 자?”

    “어?”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졸리면 자겠지.”

    “아~”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꼬르륵.

    “악….”

    강용이가 부끄러운 듯 배를 부여잡았다.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배고파?”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해줄게.”

    허머로 다가간 강우가 저녁을 만들기 위해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먼저 접이식 테이블을 꺼냈다. 그리고 모닥불의 옆쪽에 설치했다. 그다음은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같이할까?”

    “아니요. 형은 강용이랑 놀아주고 있어요.”

    사실 이재원은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강우 혼자 하는 게 편했다.

    “그래, 그럼.”

    강우가 허머차량으로 다가가 요리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먼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번쩍 들어 날랐다. 슬쩍 열어보니 얼음이 잔뜩 들어있었고, 메인 요리인 바비큐용 고기가 들어있었다.

    “고기 좋네.”

    선명한 붉은빛을 뽐내는 육질에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장을 봐온 고기였다. 강우도 강용이도 그리고 이재원도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강우가 아이스박스를 닫았다. 일단 다른 요리 먼저 하고 마지막으로 바비큐를 할 생각이었다.

    딸칵. 딸칵.

    강우가 접이식 테이블을 폈다. 그 위에 재료를 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찌갯거리가 코펠에 숭숭 들어갔다. 코펠에 생수를 벌컥벌컥 부은 강우가 버너에 불을 붙였다.

    퍼펑.

    버너에서 불이 올라왔다. 강우가 코펠을 버너 위에 올렸다. 다음은 밥을 할 차례였다. 역시나 코펠에 쌀을 담아 생수로 씻고 버너 하나를 더 켜서 올렸다. 순식간에 밥과 찌개가 끝났다. 힐끗 강가를 바라보니 강용이와 이재원이 나란히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림 좋다.’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밥과 찌개가 끓어가는 사이 강우가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싸준 밑반찬들이었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밑반찬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졌다. 접이식 간이 식탁 위가 금세 풍성해졌다.

    보글보글.

    찌개가 먼저 끓기 시작했다. 강우가 뚜껑을 열어 간을 보았다. 그리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완벽하네.”

    마치 어머니가 끓여준 찌개처럼 간도 맛도 완벽했다. 강우가 찌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쪽에는 밥을 하는 코펠 뚜껑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강우가 커다란 돌을 하나 들어 뚜껑 위에 올려주었다. 들썩거리던 뚜껑이 금세 잠잠해졌다. 그다음은 임시 화덕을 만들 차례였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바위를 양쪽에 하나씩 번쩍 들었다. 강용이 몸통만 한 바위였다.

    “저저…. 힘센 거 봐라.”

    이재원이 강우를 가리키며 기겁을 했다. 바위를 가지고 온 강우가 모닥불 주변을 ‘ㄷ’ 형태로 감쌌다. 추운 겨울바람에 일렁이던 모닥불이 금세 평온을 찾았다.

    “오? 바람 부는 방향을 막은 거야? 제법인데?”

    “아버지한테 배웠죠.”

    강우의 솜씨에 이재원이 감탄했다. 강우가 화덕을 만들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아버지가 알려준 방법은 완벽했다.

    “고기만 구우면 돼요!”

    강용이와 이재원이 배가 고팠는지 부르자마자 빠르게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와~ 우리 형아 짱!”

    “대박.”

    한 상 가득한 테이블을 보고 강용이와 이재원이 감탄을 터트렸다. 강우가 씩 웃으며 임시 화덕에 그릴을 올렸다.

    “자 고기 굽기 시작합니다.”

    강용이와 이재원이 눈을 반짝이며 그릴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고기를 그릴 위에 올렸다.

    치이이익!

    달궈졌던 그릴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강용이도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고기! 고기!”

    이재원이 픽하고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강우는 능숙하게 고기를 구웠다. 그 화려한 손놀림에 불길이 화르륵 끓어올랐다.

    “오오!”

    강용이가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오늘 일어난 모든 것들이 강용이에게는 축제였다. 순식간에 구워진 고기가 테이블에 놓였다. 강용이와 이재원이 꿀꺽 침을 삼키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먹이를 바라는 아기 새 같았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먼저 먹고 있어요.”

    허락이 떨어지자 나무젓가락이 허공을 날기 시작했다. 강용이는 고기를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이재원은 된장찌개를 후루룩 마셨다.

    “아뜨뜨….”

    “형, 입천장 다 까지겠다.”

    이재원이 물을 벌컥 마시더니 강우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된장찌개 맛있다.”

    “내가 한 요리 하죠?”

    세 남자의 폭풍 식사가 시작됐다. 점점 어두워지자 강우가 캐노피 이곳저곳에 랜턴을 걸었다. 조명이 설치되자 운치가 더해졌다.

    “분위기 끝내주네.”

    이재원이 밥을 먹다 강을 바라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어느새 뜬 달이 강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춥지는 않았다.

    “잘 먹었습니다!”

    강용이가 밥을 다 먹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강가로 후다닥 달려갔다. 강우와 이재원이 그 모습에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잘 먹었다. 설거지는 모아놔. 내일 수돗가 가서 내가 할게.”

    “네.”

    이재원이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는 강용이를 향해 달려갔다. 강용이와 이재원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낚싯줄을 툭툭 잡아당기며 낚시를 즐겼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강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유유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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