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8/402)
  • 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모두가 나가고 강우와 위진오가 단둘이 남았다. 위진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꼭 한 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네, 맞습니다. 양부님은 현 주석의 라인이시지 않습니까?”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했다. 중국의 현 주석은 상하이방의 핵심 인물이었다.

    “맞다.”

    “그리고 양부님의 선친께서는 항일투사이시자 홍군의 지휘관이셨고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자신의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혁명의 시작을 함께한 구성원이나 다름없었다. 중국 초대 주석과도 친분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만 정치 욕심이 없는 선친께서 정계에 직접 진출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진오가 중앙당에 오자마자 승승장구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굳이 두 곳 중 한 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어.”

    “네, 두 군데 모두 양부님을 도와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우의 말대로였다. 현재 중국은 3개의 파벌로 나누어져 있었다. 세력의 숫자가 가장 많은 공청단은 공산당에 가입하기 전 청년들이 가입해 교육을 받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차기 주석으로 떠오르고 있는 호금도라는 인물이 속해있었다.

    ‘이미 올해 초에 있었던 전국 인민 대표 회의에서 국가 부주석에 올랐다. 이 사람이 실질적인 양부님의 걸림돌이 되겠지….’

    다음은 정통의 엘리트 집단인 태자당이었다. 이곳은 항일투사들과 공산혁명의 원로들이 속해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후손이 대대손손 권력을 이어받으며 세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이유로 양부님이 현 주석의 라인이라지만 매력적인 영입대상으로 느끼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현 주석의 파벌인 상하이방이었다. 이곳은 현 주석의 후광을 입어 세를 불리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파벌에 비해 역사도 짧고 세력 역시 약한 곳이었다. 즉 현 주석이 물러나고 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이유로 상하이방의 미래는 불안하다고 볼 수 있었다.

    “맞다. 차기 주석으로 공청단의 지지를 받는 호금도 부주석이 유력한 상황이지. 현 주석께서 상하이방 출신이고 차기 주석으로 유력한 인물이 공청단이니 태자당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인 거고.”

    “맞습니다. 그런 이유로 양부님의 두 곳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몇 명의 인물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강우가 탁자 위에 준비된 종이에 몇 명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위진오를 향해 쓱 내밀었다. 예민한 이야기였으니 혹 누가 들을까 싶어 메모한 것이었다.

    “음…. 이 사람들을?”

    위진오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적어준 명단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람이 한 명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인물이 한 명 적혀있었다.

    “네, 이 두 사람만 못 크게 견제하신다면 충분히 정상의 자리에 오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위진오가 몇 번이고 메모지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일단 빠르게 정치국 위원 그다음으로 상무위원에 오르시는 걸 목표로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강우, 네 말처럼 두 파벌의 지원을 받는다면 그 정도는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위진오가 씩 웃었다. 강우가 그런 위진오를 보며 마주 웃었다. 위진오는 정직하고 성품이 곧은 사람이었다. 부정부패도 싫어했고, 무엇보다 항일투사인 선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 강우 가족 덕분에 좋았고, 무엇보다 독립투사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양부님이 주석이 된다면 나에게도 그리고 한국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강우가 위진오를 보며 살짝 몸을 떨었다. 어쩌면 역사의 틀을 바꾸는 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힘들게 일정을 마치고 이제 조금 쉬려고 했을 텐데 내가 또 강우 너를 부려먹었구나.”

    “아…. 아닙니다. 양부님 일이 제 일입니다.”

    위진오가 흐뭇하게 웃었다. 강우를 만난 것이 정말 자신에게는 천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고맙다. 오늘 우리 집으로 오거라. 애들이 강우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네, 양부님.”

    위진오와 대화를 마친 강우가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와 위혁오가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와 아버지는 준비된 세단을 타고 회사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래, 강우야 형님이랑 이야기는 잘 끝났고?”

    “네, 양부님이 마음을 굳게 먹으신 거 같아요.”

    아버지 역시 위진오가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권력이라는 게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위험한 법인데…. 형님이 괜찮으실지 모르겠구나.”

    “양부님이 능력도 있으시고 배경도 있으시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면 되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받은 도움이 적지 않으니까 열심히 도와드려야지.”

    “네.”

    아버지가 화제를 바꾸며 입을 열었다.

    “이제 중국 돌아다니는 일정은 마무리했고, 남은 일들은 아빠가 처리할 테니까 이제 좀 쉬다 가는 게 어때?”

    “아니에요. 저 한국 가고 나면 아버지가 또 한동안 바쁘실 텐데요. 제가 최대한 많이 도와드리고 갈게요.”

    “그래, 든든하다. 우리 아들.”

    아버지가 강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일단 포털사이트 개발팀부터 미팅하고요. 다음에는 투자관리팀 미팅하고요. 선전지사 문제로도 미팅해야겠어요.”

    “그래, 알겠다.”

    강우와 아버지가 회장실 밖을 바라보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북경 시내의 모습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마구 솟아났다.

    * * *

    부우웅.

    김포 공항으로 한 대의 세단이 들어섰다. 세단 안에는 이재원이 콧노래를 부르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사장님,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런 이재원에게 오랜 조력자인 김 기사가 물었다. 창밖을 보던 이재원이 스르륵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그렇게 신나 보입니까?”

    “네, 최근 들어서 제일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이재원이 입꼬리를 스르륵 올렸다. 그럴 만도 했다. 오늘은 강우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흐흐. 드디어 해방인가.’

    이재원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활주로로 내려앉는 비행기가 보였다. 슬쩍 시계를 확인한 이재원이 김 기사를 향해 말했다.

    “조금 서둘러야겠어요.”

    “네, 사장님.”

    국제선 출국장 앞에 도착한 이재원이 세단에서 내렸다. 주변의 시선이 이재원을 향해 쏠렸다. 보기 드문 고급 세단에서 내린 데다가 외모 또한 출중했으니 말이다.

    “어? 이재원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재원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김 기사님 주차장에서 대기해주세요.”

    “네, 사장님.”

    세단이 떠나가고 이재원이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윽고 출국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재원이 대번에 강우가 도착했음을 알았다.

    “강우야!”

    멀리 건장한 체격의 훈남 강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였다. 그 뒤로는 어머니와 강용이가 나오고 있었다.

    “어? 재원이 형?”

    강우가 이재원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중을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잘 갔다 왔냐? 중국 사람 다 된 거 아냐?”

    이재원의 실없는 농담에 강우가 한국에 도착했음을 느꼈다.

    “누가 보면 한 몇 년 있다가 온줄 알겠어요.”

    “나는 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이재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재원은 그야말로 업무의 풍랑 속에 위태로운 돛단배 같았다. 그리고 강우가 얼마나 초인적인 업무량을 커버했는지 알게도 되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요.”

    강우가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 말했다. 이재원이 어머니와 강용이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재원아, 마중 나와서 고맙다.”

    이재원이 칭찬받은 아기 새처럼 입을 헤~ 벌렸다. 그리고 강용이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강용이 형 안 보고 싶었나?!”

    “보고 싶었지!”

    강용이가 이재원에게 폭 안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재원이 강용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가시죠. 집으로 모셔다드릴게요.”

    강우 가족이 이재원과 함께 공항 밖으로 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점점 관심을 크게 보이기 전에 빠르게 이동했다. 강용이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네네. 지금 나왔습니다.”

    이재원이 김 기사를 호출했다.

    스르륵.

    이윽고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단이 다가와 멈춰 섰다. 김 기사가 트렁크를 열고는 차에서 내렸다. 강우 가족은 여행 가방을 트렁크에 실었다. 김 기사가 반가운 표정으로 강우 가족을 반겼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김 기사님도 별일 없으셨죠? 아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강우가 준비한 선물을 꺼내 김 기사에게 내밀었다. 김 기사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일개 운전기사인 자신까지 챙길 정도로 강우는 사람을 참 잘 챙겼다.

    “제 선물까지 사 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이사님.”

    “별거 아니에요.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이사님.”

    강우 일행이 세단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김 기사가 차량을 출발시켰다. 김포 공항을 벗어난 차량은 올림픽 대로로 올라섰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이자 또 한국에 왔구나 싶었다.

    “우와! 따듯하네.”

    강용이가 살짝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제 1월의 마지막인 한국은 평년보다 따듯한 날씨였다. 강우가 하얼빈의 강추위를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겨울 공기를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나라도 내 나라가 최고야.’

    강우가 공기에서 느껴지는 한국 향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부우웅.

    평일 오전이라 덜 막히는 도로를 달려 세단이 강남 압구정에 도착했다. 곧장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세단이 집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강우 가족이 내렸다.

    텅.

    강우와 이재원이 트렁크에서 여행 가방까지 꺼냈다. 이재원이 김 기사를 향해 말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여기서 저녁까지 먹고 갈 거예요.”

    “네, 사장님.”

    김 기사가 세단을 출발시켰다. 강우가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집이다!”

    강용이가 집을 보고는 또 신이 났다. 중국에서 돌아오는 내내 조금 우울했던 강용이었다. 중국에 아버지를 두고 왔다며 말이다. 어머니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집을 바라보았다. 벌써 아버지가 그리운 눈치였다.

    ‘빨리 아버지를 한국에 돌아오게 해야겠는데….’

    강우가 진남규를 떠올렸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능력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강우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독립투사의 후손이기도 하고….’

    하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문제였다. 일단 선전지사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 말이다.

    “할아버지!!!”

    그때, 강용이가 아파트를 향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상념에서 벗어난 강우의 시야에 할아버지와 최준이 보였다. 강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보는 두 분 할아버지는 강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빨리 올라가요.”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할아버지와 최준이 보였다. 강우와 가족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으셨나 보다.

    “할아버지!”

    강용이가 대번에 튀어 나가 할아버지한테 매달렸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이쿠~ 인석아, 할아비 뼈 부러져.”

    “헤헤….”

    강우는 최준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목적은 다 이루고 왔느냐?”

    강우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네, 전부 이루고 왔습니다.”

    “그래, 우리 강우가 장하다.”

    최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자자 들어가자꾸나.”

    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강우와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수한 빈대떡 냄새가 흘러나왔다. 강우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이 냄새는 분명 김말숙의 솜씨가 분명했다.

    “다녀왔습니다!”

    강우가 씩씩하게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주방에서 김말숙과 김세아가 나왔다.

    “강우야, 잘 갔다 왔니?”

    “네, 할머니.”

    김말숙이 싱긋 웃었다. 이재원은 그새 김세아에게 다가갔다.

    “엄마도 와 있었어요?”

    “그럼, 우리 아들이 여기로 올 게 분명하니까 나도 와있었지.”

    “역시 우리 엄마네.”

    집 안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가족은 많은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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