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7화 (207/402)
  • 항상 감사하며 살자.

    스르륵.

    한 대의 고급세단이 하얼빈 시청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잘 차려입은 강우와 아버지가 내렸다. 두 사람을 내려준 세단이 다시 떠나갔다.

    “어제 술 많이 마셨다며?”

    아버지가 물었다.

    “네, 오랜만에 분위기가 좀 나더라고요. 남규 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고요.”

    “술에 취해서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던데.”

    강우가 씩 웃었다. 어젯밤 진남규는 강우에게 술로 덤비다가 된통 당해 쓰러졌다. 인사불성인 진남규를 강우가 호텔까지 업고 왔을 정도였다. 성인 남성을 업고 제법 걸었지만, 강우는 별로 힘든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종종 업어본 경험도 있지 않던가.

    ‘예를 들면 재원이 형이라든지….’

    강우가 픽 웃으며 시청 안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시청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강우 씨이십니까?”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자는 하얼빈 시장의 비서관이었다,

    “네, 제가 박강우입니다.”

    “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우와 아버지는 안내를 받아 시장실로 향했다. 시장실 안에는 하얼빈 시장이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시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위 위원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송희민입니다.”

    위진오는 현재 중국 중앙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위진오가 자신과 같이 대우해 달라 부탁한 강우와 아버지였다.

    “박정식입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송희민이 이번에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위진오가 친자식처럼 아낀다는 화제의 인물. 중국 여러 기업에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기린아가 바로 강우였다. 더군다나 장대한 체구에 호남형의 외모까지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송희민입니다.”

    송희민이 알 수 없는 아우라에 감히 하대하지 못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박강우입니다. 양부님께서 송 시장님을 꼭 만나 인사드리라고 해서 찾아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송희민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우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다.

    “아…. 일단 앉으시죠.”

    송희민 시장이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비서관에게 최고급 차를 내오라 지시했다. 비서관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오시는 길이라 들었습니다. 상당히 추웠을 텐데 고생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송희민의 말에 강우와 아버지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언질을 준 적도 없는 자신들의 일정을 자세히 아는듯한 눈치였다. 그런 강우와 아버지의 표정에 송희민 시장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하얼빈이 치안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두 분은 저희 하얼빈시의 귀빈이십니다.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좀 붙여두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오히려 저희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송희민 시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송희민 시장의 긴장했던 얼굴에 스르륵 미소가 번져나갔다.

    “하얼빈에 오신 이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송희민 시장은 싱글벙글하였다. 강우와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위진오에게 잘 보일 생각에 말이다. 그리고 강우와 아버지의 하얼빈 방문 목적이 사업 투자 건이라 생각했으니 더더욱 싱글벙글이었다. 시장으로서 도시의 발전이 달가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네, 맞습니다. 저는 이번에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님의 기념관 건설 문제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강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송희민 시장이 굳어버렸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라니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물론, 중국에서도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러시아까지 엮인 문제였으니 말이다.

    “기…. 기념관을 말입니까? 그걸 한국 정부가 아닌 개인이 왜….”

    “꼭 정부가 나서서 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충칭에 옛 광복군사령부터도 복원해 기념관을 연 경험도 있습니다. 시장님의 협조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우의 말에 송희민이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대중화인민공화국이 눈치를 볼일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위진오는 분명 강우의 뜻이 자기 뜻이라 언질을 주었지 않았던가. 송희민 시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차기 중앙당 권력의 최심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위진오였다.

    ‘지금 확실히 줄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아.’

    송희민 시장이 결심을 내렸다. 눈을 빛내며 강우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희 하얼빈시는 두 분이 진행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네, 곽 성장님과는 양부님이 이미 이야기를 끝내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송희민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곽 성장이라면 헤이룽장성의 성장이었다. 이미 자신의 반대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송희민은 흔쾌히 협조하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이라며 속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그럼 위치는 생각해 놓으신 곳이 있으신지?”

    “아무래도 하얼빈 역사 바로 근처가 좋지 않을까요?”

    강우는 미래의 기억 속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세워진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네, 당연한 생각이십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시면 당 서기님과 협조해서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위진오라는 꽌시를 등에 업은 일 처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그럼 이렇게 오셨는데 제가 오늘 식사 대접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강우가 송희민 시장의 호의에 꾸벅 인사를 했다. 그렇게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송희민 시장은 준비된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식사하며 또 하나의 꽌시를 만들었다.

    * * *

    하얼빈에서의 식사로 일정을 마무리한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진남규는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나타났다.

    “으아~ 여보! 이거 된장찌개야?”

    집 안 가득한 구수한 냄새에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러자 주방에서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왔어요? 강우도 왔니? 어서 들어와서 씻어요. 저녁 다 준비돼가요.”

    강우와 아버지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고된 여정의 끝에 돌아온 집은 정말이지 아늑했다. 물론, 한국에 있는 집만큼은 못했지만 말이다. 강우와 아버지가 차례로 샤워를 끝냈다. 그사이 어머니 표 한상차림의 향기는 더욱 진해져 있었다.

    “자자 빨리 오세요~”

    어느새 어머니를 돕고 있던 강용이가 웨이터 흉내를 내며 말했다. 강우와 아버지가 크게 웃으며 강용이에게 달려들었다.

    “우아아아!”

    아버지가 강용이를 번쩍 들었다. 강우는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어머니가 양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된장찌개를 식탁에 날랐다.

    “그만해요. 강용이 놀라요.”

    아버지가 강용이를 내려놓았다. 어머니의 지엄한 지시에 세 남자가 정숙히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앞치마를 풀었다.

    “자~ 다들 맛있게 먹어요.”

    어머니의 말과 동시에 강우와 아버지의 수저가 식탁 위를 날아다녔다. 마치 이차대전의 공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움직임이었다.

    “크…. 역시 우리 마누라 된장찌개 솜씨는 끝내줘.”

    아버지가 엄지를 척 들었다. 강우는 벌써 밥 한 공기를 뚝딱했다.

    “엄마, 밥 더 주세요.”

    “그래.”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밥그릇을 받았다. 아들의 잘 먹는 모습에 흐뭇하고 또 행복했다. 강우와 아버지를 바라보던 강용이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질 수 없지.”

    강용이가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강우와 아버지가 없던 사이 영 입맛이 없어 하던 강용이는 없었다. 세 부자가 경쟁하듯 식탁 위를 정리해 나갔다.

    “후아~ 잘 먹었네.”

    “저도요.”

    “나도!”

    세 부자가 배를 쓱쓱 문지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후식을 준비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갔던 일은 잘됐어요?”

    “그럼, 아주 잘됐지. 우리 강우가 나섰는데 당연하지.”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대견스러워했다.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우리 아들 많이 보고 느끼고 왔어?”

    “네, 정말 많이 느끼고 왔어요.”

    강우가 지난 여정을 떠올렸다. 중국 전역을 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독립유적지를 방문하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래, 우리 아들 그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야. 항상 감사하며 살자.”

    “네, 엄마.”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도 진지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강용이는 심각한 분위기에 짐짓 분위기를 잡았다.

    “엄마, 나도.”

    “그래, 우리 막내도.”

    어머니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다.

    “난 피곤해서 일찍 잘게.”

    아버지는 피곤하신지 먼저 주무신다고 방에 들어갔다. 어머니도 정리를 끝내고는 강우와 강용이에게 말했다.

    “그럼 나도 먼저 자러 갈게 너희들은 놀다가 자.”

    “네~”

    강용이가 강우한테 매달린 채 답했다. 강우가 강용이를 번쩍 들어 비행기를 태우듯 빙글 돌았다.

    “으하하하하!”

    강용이가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어머니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방문이 슬쩍 열렸다.

    “여보.”

    아버지가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강우는 한참이나 강용이와 놀아주었다.

    “이제 우리도 자자.”

    “나 엄마한테 인사하고 올래.”

    강용이가 안방으로 후다닥 달려가려 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를 붙잡았다.

    “안 해도 돼.”

    “왜? 자기 전에 꼭 인사하고 자야 착한 아이랬는데.”

    “오늘은 안 해도 착한 아이 하자.”

    강우가 강용이를 번쩍 들쳐메고 방으로 들어갔다. 강용이가 또 깔깔 웃으며 좋아했다.

    * * *

    다음 날, 강우는 위진오의 급한 호출을 받았다. 상의할 것이 있으니 집무실로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강우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마침 일정을 끝내고 베이징에서의 일만 마무리하면 되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나오셨습니까.”

    집 밖에는 위혁오가 세단을 몰고 도착해 있었다. 아버지가 위혁오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형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위혁오도 심각한 표정이었다. 강우가 위혁오를 보며 꾸벅 인사했다.

    “형님.”

    “강우야, 당숙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네, 빨리 가요.”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위혁오가 차에 올라탔다. 고급세단이 미끄러지듯 아파트를 벗어났다. 차량은 달려 위진오의 집무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현재 위진오는 중앙당 위원회에 선출된 상태였다. 중국 전체에서도 이백 명밖에 뽑지 않는 위원의 자격이었다.

    똑똑.

    “위원님, 혁오입니다.”

    “그래, 어서 들어와.”

    위진오의 초조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와 아버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어서들 와라.”

    강우와 아버지가 위혁오의 반대편에 앉았다. 위진오가 마음이 급했는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강우야, 내가 너한테 상의할 게 있다.”

    “말씀하세요.”

    “네가 예전에 나에게 현 주석의 끈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지? 그리고 그 조언을 받아들인 내가 이 위치까지 승승장구했고.”

    위진오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 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태자당과 상하이방 양쪽에서 양부님에게 손을 내밀었군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첫 만남 때도 그리고 지금도 강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위진오의 얼굴에 확신의 빛이 서렸다.

    “그래 맞다. 이제 강우 네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수 있겠느냐?”

    강우가 눈을 빛냈다. 강우에게는 미래의 기억이 있었다. 강우와 아버지의 든든한 아군인 위진오를 중국 권력의 최정상에 올려놓는 것.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강우가 위진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양부님. 제가 양부님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최정상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좋구나. 역시 강우 네가 내 장자방이다.”

    위진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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