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402)
  • 코레아 우라!

    사방이 온통 하얗게 변한 하얼빈 시내를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진남규가 걷고 있었다. 강추위에 진남규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으으…. 두 분은 안 추우십니까?”

    “저요?”

    강우가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잔뜩 껴입은 진남규는 뒤뚱거리듯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펭귄 같아 웃음이 픽하고 나왔다. 아버지가 진남규에게 다가가 등을 팡팡 때렸다.

    “젊은 친구가 몸이 이렇게 허약해서 어디에다가 쓰나?”

    “원래 건강한 편입니다…. 추위에 좀 약해서 그렇죠.”

    진남규는 살아생전 이런 추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나 보다.

    “나 때는 말이야. 영하 이십 도가 넘는 날에 배낭 하나 메고 산에 올라가서 며칠씩 있다가 내려오고 그랬어.”

    “아…. 굳이 왜 그런 고생을….”

    진남규의 말에 강우가 빵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도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등산의 매력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지. 나중에 나랑 등산 한번 가자고.”

    “네! 사장님!”

    진남규가 씩씩하게 답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추위가 살짝 가셨나 보다. 진남규가 걷는 속도를 내 강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니 정말 안 추우세요? 옷도 얇게 입으셨는데.”

    강우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날씨였지만, 이상하게도 춥지가 않았다. 그저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섞인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저는 별로 안 추운데요?”

    “그래요? 역시 젊어서 그런가?”

    “네? 우리 몇 살 차이 안 나거든요?”

    강우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진남규가 씩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했다. 강우가 그런 진남규를 보며 픽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얼음장 같더니 인제 보니 누구랑 많이 닮은 성격이었다.

    ‘재원이 형은 잘 있으려나.’

    그때, 아버지가 강우의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자자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빨리 가서 둘러보고 밥 먹으러 가자.”

    “네! 사장님!”

    아버지와 진남규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우 일행이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일제의 총독을 저격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그리고 먼 미래에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생긴다.

    ‘외교적인 마찰 이유로 극비리에 진행되다가 한순간에 전격 개관을 했지.’

    하지만 십 년이 넘는 세월이 남아있었다. 강우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강우가 계획한 독립유적지 순례 프로그램의 시작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한번 제대로 보고 갈까?”

    아버지의 제안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규가 빠르게 역사로 뛰어 들어갔다. 강우와 아버지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역사 안으로 들어간 강우 일행은 역사적인 장소에 도착했다.

    ‘음….’

    조금 떨어진 곳에 저격 장소가 보였다. 텅 빈 역사 안이었지만, 강우는 느낄 수 있었다. 다가갈수록 강우의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한 느낌에 강우가 설렘마저 느꼈다. 그날의 일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입니다. 알기 쉽게 표시되어 있네요.”

    진남규가 안중근 의사가 섰던 자리를 가리켰다. 강우가 바로 그 자리에 섰다.

    ‘윽….’

    머리가 지끈 아파져 오며 그날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칙칙칙.

    멀리서 기차가 다가왔다. 사방으로 일장기가 휘날리며 기차를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군들도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그때, 역사의 한쪽에서 비장한 표정을 한 남성이 나타났다. 바로 안중근 의사였다.

    ‘.....’

    강우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마치 그날의 현장에 와있는 것 같았다. 강우가 숨을 죽인 채 인파 속에 몸을 묻었다.

    치이이익.

    기차가 도착하고 러시아군이 사열했다. 러시아 재무 대사가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문이 열리고 거만한 표정의 인물이 몸을 드러냈다. 강우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토 히로부미!’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스럽게 웃던 이토 히로부미가 플랫폼에 내려섰다. 그리고 러시아 의장대의 사열을 받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한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 의장대의 앞쪽으로 달려 나갔다.

    탕. 탕.

    총성이 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사방에 비명과 고성이 난무했다.

    “코레아 우라!”

    안중근 의사가 크게 소리치며 순식간에 포박을 당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우와 두 눈이 마주쳤다. 강우의 심장이 숨 멎듯 멎어버렸다. 마치 자신에게 겁먹지 말고 행하라고 하는듯한 눈빛이었다. 그렇게 안타까움 속에서 강우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아들. 아들?”

    멍한 표정의 아들을 아버지가 깨웠다. 강우가 살짝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네?”

    “어디 아파?”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이는 아들이었다. 혹시나 병이 있나 싶은 마음이었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잠깐 두통이 있었어요.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래? 요즘 너무 무리했나 보네.”

    아버지가 강우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남규는 그런 강우와 아버지를 조금은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그리고 서로의 목적이 일치해 힘을 모으는 그런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아니에요. 가끔 두통이 오잖아요.”

    “약이라도 사 먹을래?”

    아버지가 걱정스러워하자 강우가 씩 웃었다.

    “멀쩡해졌어요.”

    “그래? 다행이네.”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진남규는 하얼빈역을 한참이나 둘러보았다. 강우는 그곳을 바라보며 이른 시일 내에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얼빈 시장의 도움이 전격적으로 필요하지.’

    중앙당의 여론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위진오라는 강력한 우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강우와 일행은 하얼빈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 * *

    똑똑.

    “누구세요?”

    “접니다. 남규.”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생생한 얼굴을 한 진남규가 보였다.

    “아직 안 주무셨네요?”

    “네, 잠이 안 와서요.”

    강우는 낮에 하얼빈역에서 겪었던 일에 생각이 많았다.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옳다구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진남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가서 술 한잔 어떠십니까?”

    강우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긴 여정과 추위에 지친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좋죠. 잠시만요.”

    강우가 방 안에 비치된 메모지와 펜에 메모를 남겼다.

    -남규 씨랑 잠깐 나갔다 올게요.-

    메모를 끝낸 강우가 옷을 챙겨입었다.

    “가죠.”

    강우와 진남규가 해가 저문 하얼빈의 밤거리로 나왔다. 강추위에 어둠이 더해지자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추위였다. 하지만 젊은 두 사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으….”

    하지만 계속되는 추위에 진남규가 이를 덜덜 떨었다. 강우가 픽 웃었다.

    “추우면 그냥 숙소에 있지 그랬어요.”

    “아닙니다. 그룹 회장님이랑 단둘이 술 마실 기회가 흔하겠습니까? 이럴 때 강하게 저를 어필해야죠.”

    “하하….”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호텔을 벗어나 한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아름다운 양식의 성 소피아 성당이 나타났다.

    “와? 주변 건물이랑은 양식이 완전 다른데요?”

    아름다운 옛 건축물의 자태에 진남규가 감탄했다. 강우도 참 아름다운 건물이라 생각했다.

    “그러네요.”

    “자세히 구경 좀 하고 갈까요?”

    “좋죠.”

    강우와 진남규가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되어 조명으로 빛나는 성당은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성당을 구경하던 때였다.

    “이건 모스크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한쪽으로 서양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그리고 깃발을 든 가이드가 건물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확실히 하얼빈에는 중국어 잘하는 러시아인이 많네요.”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가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중국어요? 저 사람이 쓰는 말은 중국어 아닌 거 같은데요?”

    진남규가 가이드가 사용하는 언어에 집중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러시아어 같네요.”

    “네? 러시아어요?”

    강우도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주변의 대화에 집중했다. 지나가는 러시아인들의 대화 내용이 마치 한국어처럼 선명히 이해됐다. 강우가 그제 화들짝 놀랐다.

    ‘뭐야? 저 사람들 중국어 썼던 게 아니었어?’

    강우가 또 찾아온 언어능력에 멍했다. 진남규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강우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회장님, 러시아어까지 할 줄 아셨던 겁니까?”

    일어에 중국어 그리고 영어와 러시아어까지 그야말로 어학 천재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대단하십니다. 진짜.”

    “아…….”

    오랜만에 찾아온 언어능력에 강우가 멍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두 사람은 근처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끼익.

    낡은 목재 문이 열리고 후끈한 내부의 열기가 강우의 얼굴을 휘감았다. 뒤따라 들어온 진남규도 따듯한 온기에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저쪽에 자리 비었네요.”

    강우와 진남규가 비어있는 자리로 향했다. 서양식 바로 차려진 곳이었는데, 분위기가 제법 좋았다. 두 사람은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시켰다. 양주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입맛에는 별로였다.

    “분위기 좋네요.”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 또래인 진남규가 여정에 함께여서 참 즐겁기도 했다. 진남규는 첫인상과 다르게 말도 많고 넉살이 있는 성격이었다. 강우를 만나 마음의 짐을 덜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진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하얼빈까지 와서 추위에 덜덜 떨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베이징에 계시지 그랬습니까?”

    강우의 말에 진남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그랬다면 저는 그냥 회장님 밑에서 일만 하는 사람이 됐겠죠. 회장님이 가진 뜻과 진정한 목적은 몰랐겠고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깨닫는 기회가 됐습니다. 저는 정말 회장님에게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거 같습니다.”

    진남규의 묵직한 고백에 강우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마음이 편해지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저도 남규 씨랑 같이 와서 참 즐거웠습니다.”

    “이제 하얼빈 일정을 마지막으로 한국에 가시는 겁니까?”

    “베이징에서 가족들이랑 조금 쉬다가 갈 예정입니다.”

    진남규가 아쉬운 표정을 했다.

    “이번에 한국에 가시면 한동안은 뵙지 못하겠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진남규도 강우가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쉽네요. 회장님 같은 분이 군대에 가야 한다니.”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 앞에서 저도 평범한 국민입니다. 아마 좋은 경험이 될 거고요.”

    강우가 씩 웃으며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소중한 경험이었다. 물론 미래의 기억 덕택에 두 번째 가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회장님 군대 가 계신 동안 저는 여기서 제 능력을 입증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꼭 회장님의 오른팔이 되겠습니다!”

    진남규가 결의에 차 말했다. 그런 진남규를 보며 강우가 씩 웃었다.

    “제 왼팔이 들으면 조금 긴장할 수도 있겠는데요?”

    “네? 왼팔이요?”

    진남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한국에 있는 이재원을 떠올렸다. 늘 강우의 왼팔을 자처하는 이재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재원이 형도 미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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