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402)

혹시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선전 바오안 공항에 강우가 나타났다. 강우의 옆에는 역시나 위혁오가 있었다.

“자리를 이렇게 비우셔도 돼요?”

“괜찮아. 같이 여행 다니는 느낌도 나고 좋네.”

위혁오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는 정말 설렘이 엿보였다. 강우가 씩 웃었다. 마치 서울 사는 사람이 부산에 와서 좋아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행 자주 못 다니셨어요?”

“여행?”

위혁오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그렇게 심각해질 질문인가 싶었다. 위혁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당숙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다닌 거 빼고는 처음이군.”

“네에?”

강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혁오는 이제 삼십 대에 접어드는 나이였다. 지금껏 여행다운 여행 한 번 안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그럴 상황도 안 됐고, 좀 커서는 당숙님 도와드리느라 바빴지.”

“네….”

위혁오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강우는 따로 더 묻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냥 참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에 탔다. 택시는 달리고 달려 선전시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선전시도 대단하네요.”

강우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혁오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전시는 80년대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크게 발전을 하는 곳이었다. 특히 1997년 홍콩이 반환되고 나서부터는 금융과 과학 기술에 커다란 투자가 이어지고 있었다. 도시의 모습은 강우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만큼 규모가 있었다.

“그렇지? 광동성에서도 이만큼 발전한 곳은 드물지.”

“네, 정말 그렇네요.”

지나치는 풍경 속에는 고층빌딩이 지어지고 있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활기가 있었다. 특히 선전으로 몰려드는 중국의 젊은 층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택시가 호텔 앞에 멈춰 섰다.

덜컹.

트렁크에서 여행 가방을 꺼내 두 사람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체크인하고 방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위진오가 직접 잡아준 최고급 스위트룸이었다. 먼 여정을 떠나는 강우를 위해 특별히 배려해준 것이다.

“아직 시간 남았죠?”

“어디 보자. 지금이 12시니까 시간 많이 남았지.”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과의 약속은 늦은 저녁이었다. 상대방의 업무가 늦은 시간이 돼서야 끝난다고 했다.

“배고프시죠?”

“조금?”

위혁오가 배를 쓰다듬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나가서 구경도 좀 하고 맛있는 거도 먹죠.”

“좋지.”

위혁오가 환하게 웃었다. 동생 같은 강우와의 외출에 설레는 듯했다. 강우가 그런 위혁오를 보며 씩 웃었다. 맨 처음 청도에서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이미지였다.

‘참 무뚝뚝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관계가 쌓이자 참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위혁오였다. 강우와 위혁오가 호텔 로비로 나왔다. 호텔지배인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는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숙소가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지배인은 강우와 위혁오를 참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강우는 새삼 위진오의 위세를 느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없습니다. 방이 넓고 아주 좋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분 외출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지배인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이 아직은 대중교통편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차량을 준비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강우가 거절을 화려하지 위혁오가 팔을 들어 나섰다.

“고맙습니다.”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지배인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강우가 위혁오를 바라보았다. 위혁오가 부드럽게 웃었다.

“호의를 너무 거절해도 실례인 법이지. 강우 너는 너무 겸손한 게 탈이야.”

“그런가요….”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위혁오가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강우 너는 당숙님의 양자잖아. 너무 겸손하게 굴어도 당숙님의 명성에 좋지 못하지.”

“아…. 그렇긴 하겠네요.”

한국과 중국은 문화가 달랐다. 중국은 위치에 있을 때는 호탕하고 자랑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한국도 아주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강우가 위혁오를 든든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여정은 아버지와 함께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혁오 형님이 시간을 내주신 덕분에 아버지는 엄마랑 강용이랑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지.’

위혁오는 이번 강우의 중국 여정에 끝까지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강우는 그런 위혁오가 정말 고마울 뿐이었다.

“형님이랑 같이 다니니까 진짜 편하고 든든하네요. 남은 일정도 잘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으니까.”

위혁오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만만해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두 사람을 향해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청년은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강우와 위혁오의 시선이 청년에게도 돌아갔다.

“누구지?”

위혁오가 물었다. 젊은 청년이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더니 쓱 내밀었다.

“오늘 두 분의 안내를 담당한 호텔 직원 진남규라고 합니다.”

“아…. 그런가?”

호텔지배인이 차량을 준비한다고 하더니 운전기사까지 붙여 보낸 모양이었다. 강우가 위혁오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왕 받기로 한 호의니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가시죠.”

강우와 위혁오가 진남규를 따라 걸었다. 호텔 로비를 나가 입구에 나가니 고급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 탁.

강우와 위혁오가 뒷자리에 탔다. 문을 닫아준 진남규가 운전석에 앉았다.

“어디로 모시면 될까요?”

위혁오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남는 시간에 밥이나 한 끼 할까 했었다.

“너 먹고 싶은 거로 가자.”

“음….”

강우가 잠시 고민하더니 진남규를 향해 물었다.

“혹시 추천해줄 만한 곳이 있습니까?”

“음…. 사실 선전시가 관광을 하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진남규가 거침없이 답했다. 강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선전시는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그야말로 집중적인 경제 개발을 한 곳이었다. 중국 특유의 느낌은 없고 외국 어디에서나 볼법한 대도시의 모습에 가까웠다.

“저녁은 약속이 있어서요. 맛있는 음식점 한 곳만 추천해주시면 충분합니다.”

“음…. 그럼 제가 자주 가는 음식점은 어떠십니까?”

진남규의 말에 강우와 위혁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남규가 말을 이어갔다.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곳입니다. 맛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부탁드릴게요.”

강우가 진남규의 제안을 단번에 수락했다. 강우는 여행을 나가면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 게 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차량은 선전 시내를 벗어나 외곽 진 곳으로 향했다. 그제야 조금은 중국의 분위기가 나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참을 더 가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 여기는 항만 쪽입니까?”

“네, 맞습니다.”

진남규가 운전하며 답했다.

“잘됐네요. 저희 저녁 약속도 이쪽에서 만나기로 했었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스르륵.

이윽고 차량이 허름한 음식점 앞에 멈춰 섰다. 옛 가옥을 개조해 만든 가게에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위혁오가 내렸다.

“음…. 냄새 좋은데요?”

“맛있는 냄새네.”

활짝 개방된 가게의 입구에서 익숙한듯한 냄새가 풍겼다. 이윽고 주차를 마친 진남규가 다가왔다.

“들어가시죠. 엄마!”

가게로 들어서며 엄마를 외치는 진남규였다. 강우와 위혁오가 서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우리 영업 당한 거예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진남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어머니 가게라서 모시고 온 건 아닙니다. 여기 진짜 맛집이에요. 그리고 어차피 아실 거 같아서 미리 엄마라고 부른 거고요.”

강우와 위혁오가 픽하고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이렇게 영업 당하는 것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진남규의 당당함에 오히려 호기심마저 들었다.

‘예의는 바른데 뭐랄까….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리 크지 않은 가게 안에는 정말 손님이 많았다. 모두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중국 음식점 특유의 왁자지껄함이 없이 조용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이 보였다.

“두 분 안쪽으로 앉으세요.”

진남규가 강우와 위혁오를 안내했다. 가게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나이가 든 여성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진남규가 멋쩍은 표정으로 여성을 소개했다. 하지만 강우와 위혁오는 소개를 하기도 전에 단번에 여성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진남규와 여성은 그야말로 붕어빵이었다.

“어서 오세요.”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진남규 씨 소개로 맛있는 밥 먹으러 왔습니다.”

“아이고~ 귀한 분들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진남규 어머니가 민망한 듯 말했다. 강우의 모습은 딱 봐도 귀티가 흘렀다. 더군다나 위혁오는 마치 경호원같이 강우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강우와 위혁오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판을 보니 새우죽을 파는 집이었다.

‘어?’

다만 메뉴판의 맨 아래쪽에 특이한 메뉴가 있었다.

‘고추 돼지찜?’

진남규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위혁오는 대번에 새우죽을 주문했다. 강우는 메뉴 하단에 있는 고추 돼지찜을 시켰다.

“저는 이거 주세요.”

“어? 정말이십니까?”

진남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이 메뉴는 이곳을 자주 찾는 특정 손님들을 위한 메뉴였다. 그런데 강우가 먹겠다고 하니 의아했다.

“네, 이거 김치찌개 같은 맛입니까?”

“김치찌개를 아십니까?”

진남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당연히 알죠. 한국에서는 이거 자주 먹었습니다.”

순간, 가게 안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쏠렸다. 위혁오가 움찔하며 강우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한국분이셨습니까?”

진남규의 입에서 익숙한 언어가 흘러나왔다. 억양이 달랐지만, 한글이 분명했다.

“어? 한국어를 하시네요?”

“아…. 제가 사실…. 조선사람입니다.”

강우가 탄성을 뱉어냈다. 진남규는 조선족이었다. 강우의 시선이 진남규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그럼 제가 한국식으로 잘 만들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위혁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분들 조선족분들이에요.”

“아….”

진남규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 전보다 살짝 가라앉은 말투였다. 진남규가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가게 일에 익숙한듯했다.

“음식 나왔습니다.”

이윽고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위혁오의 것은 말 그대로 새우죽이었다.

‘이건 완전 김치찌개잖아?’

강우가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놀랬다. 한국에서 먹던 김치찌개가 그대로 만들어져 나왔다. 강우가 슬쩍 고개를 들어 진남규를 바라보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진남규가 다시 중국어를 사용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고 진남규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바쁘게 일하는 진남규 어머니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그늘이 졌다.

‘뭐지…. 이 느낌은….’

순간, 강우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강우가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오…. 맛있다.”

위혁오도 감탄을 하며 새우죽을 먹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다. 강우와 위혁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님, 잘 먹었습니다.”

강우가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진남규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우리 아들이 원래 착해요. 그런데 한국이랑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강우의 궁금증이 커졌다. 하지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다 드셨으면 다음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진남규가 대화를 막듯 말을 걸어왔다. 강우가 진남규를 잠시 보더니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진남규가 세단이 주차된 곳으로 향했다.

“저…. 총각.”

그때, 가게에서 진남규 어머니가 나와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몸을 돌렸다. 진남규 어머니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온 사업가인가요? 혹시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강우가 눈을 빛내며 진남규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떤 사연인지 참 궁금하고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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