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화 (199/402)
  • 오? 맛있는데?

    덜컥.

    문이 열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양손에는 시장에서 봐온 장거리가 가득 들려있었다.

    “여보, 바로 시작하게 식탁에 올려놔요.”

    “응, 여보.”

    아버지가 요리 재료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가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한국과는 다른 재료들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요리에 있어서 어머니는 슈퍼우먼이었다.

    “얘들은 아직 자요?”

    “잠깐만.”

    아버지가 강우와 강용이가 자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히 문을 열었다.

    “와악!”

    강용이가 양손을 번쩍 들고 문 앞에서 소리쳤다. 아버지가 멀뚱히 바라보자 강용이가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차 싶었는지 두 손을 들었다.

    “아이쿠! 깜짝이야.”

    “늦었거든요.”

    강용이가 삐진척하며 몸을 돌렸다. 아버지는 그런 강용이가 너무 귀여웠다.

    “요 녀석”

    아버지가 강용이를 잡아채려 했다. 강용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바로 아버지에게 잡혀 번쩍 들어 올려졌다.

    “으하하! 아빠 간지러워!”

    “턱수염 공격!”

    아버지가 까끌까끌한 수염으로 강용이의 배를 마구 간지럽혔다. 강용이가 숨넘어가듯 웃음을 터트리며 마구 발버둥 쳤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강용이는 어제부터 아버지한테 애교를 엄청나게 부리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내내 보고 싶다고 했었다.

    “아빠, 밖으로!”

    “밖으로~”

    아버지가 강용이를 들쳐메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강우가 방을 마저 정리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와 강용이의 웃음소리와 음식의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강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여보, 애들 깨웠으면 빨리 와서 도와줘요.”

    “알겠어. 강용아 이제 형아랑 놀아.”

    “네! 아빠.”

    강용이가 크게 대답하고는 강우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좋아?”

    “응, 나 매일매일 여기서 살고 싶다.”

    강우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또 친구들이랑 헤어져야 하는데?”

    “어?! 아…. 안 돼! 취소.”

    강용이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강우가 픽 웃으며 강용이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여보, 힘들지? 물 마실래?”

    “괜찮아요.”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옆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또 어머니에게 착 달라붙었다.

    “안 추워? 발 시리지? 이 집은 다 좋은데 난방이 약해.”

    아버지가 어머니의 발에 슬리퍼를 신겨주었다. 어머니가 귀찮은 듯 발을 움직였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아휴…. 참.”

    어머니가 아버지를 툭 밀어냈다.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와 강용이는 식탁에 앉아 그 광경을 구경 중이었다. 주방에 함께 서서 아웅다웅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역시 가족은 함께여야 한다고 다시 한번 느끼는 강우였다.

    “형아, 엄마랑 아빠랑 둘이 진짜 친한가 봐.”

    그때, 강용이가 심오한 표정을 지었다.

    “뭐? 친해?”

    “응, 우리 반에서도 진짜 친한 남자애랑 여자애들은 저러고 놀던데? 막 좋으면서 싫은 척하고.”

    “뭐?”

    강우가 빵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용이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엄마랑 아빠는 친하면 안 돼?”

    “어…. 안 될 건 없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여보, 거기 간장 좀 줘요.”

    “네! 마누라님.”

    아버지가 어머니의 지시에 맞춰 신속하게 재료를 대령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손님을 맞을 준비가 이어졌다. 오늘은 정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었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집이 바뀌어도 벨 소리 담당인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한국 집과는 다른 구조에 강용이가 급하게 멈춰서며 콩콩 뛰었다.

    “아이코!”

    강용이가 방향을 다시 잡고는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아 맞다. 중국어로. 누구세요?”

    강용이가 중국어로 물었다. 그러자 의외로 한국어가 들려왔다.

    “강용아, 이강 형이야.”

    “이강 형?!”

    강용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위이강이었다. 강용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또 신나서 비명을 질렀다.

    “향이 누나도 왔다! 어? 큰아버지! 큰엄마!”

    강용이가 신이 날 만했다. 위진오 가족이 모두 찾아온 것이다. 강우와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위진오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형님, 오셨어요?”

    “그래, 오늘은 집 안이 훈훈하고 보기 좋은데?”

    위진오가 씩 웃으며 품에 들고 있던 술을 내밀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역시 좋은 날에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형님, 저번에 말한 그 술입니까?”

    “그래, 내가 이거 정말 어렵게 구했다고.”

    “역시 형님이 최고입니다!”

    아버지의 칭찬에 위진오의 입꼬리가 귀에 걸쳤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속으로 웃었다.

    “양부님, 잘 지내셨습니까?”

    강우가 위진오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위진오가 강우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강우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위진오였다.

    “그래, 강우 나는 네가 정말 대견하다. 한국에서 아주 큰 일들을 하고 있더구나.”

    “다 할아버지들과 양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강우의 겸손함에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래그래. 고맙다.”

    위진오의 뒤편으로는 위 부인도 있었다. 위 부인이 강우를 보고는 반가워했다.

    “오랜만이야. 강우는 더 훤칠해졌네?”

    “감사합니다. 큰어머니도 더 젊어지셨어요.”

    젊어 보인다는 칭찬에 위 부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젊어 보인다는 칭찬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자자! 형님 이러지 말고 빨리 들어오시죠.”

    아버지가 위진오에게서 술을 받으며 말했다. 위진오 가족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크지 않은 아파트가 꽉 찼다. 위진오와 아버지는 대번에 식탁에 앉았다.

    “어때? 모태주라는 건데 특별 생산분을 구해왔지.”

    “크…. 형님 오늘 좋은 경험 합니다.”

    아버지와 위진오가 그새 장단이 맞아서는 즐거워했다. 강우도 힐끗 술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위 부인은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에요.”

    “네, 언니.”

    이번에는 위단향이 통역으로 나섰다. 어머니와 위 부인의 말을 술술 통역해 주었다. 안 본 사이 한국어 실력이 엄청 늘어난 쌍둥이 남매였다.

    “강우 형, 잘 지냈죠?”

    위이강은 강우 옆에 다가와 앉았다. 강우가 위이강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잘 지냈지. 너랑 향이 한국어 실력 엄청나게 늘었다?”

    “열심히 공부했죠. 우리 한국 갈 거예요.”

    위이강과 위단향도 한국에 유학을 오겠다며 준비 중이었다. 반대할 줄 알았던 위진오는 뜻밖에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시켜주고 싶은 게 위진오의 마음이었다. 위진오도 자식들이라면 애지중지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형이 만든 그 프로리그요. 정말 보고 싶은데 한국 가면 꼭 경기장 데려가 주세요.”

    “프로리그 본 적 있어?”

    강우가 어찌 알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한국에만 방송이 나가고 있는 프로리그 경기였다. 위진오가 씩 웃었다.

    “형이 하는 일인데 다 관심 있게 지켜봤죠.”

    “그랬냐?”

    위이강의 질문 폭탄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물어봤다. 위이강과 위단향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 강우는 한국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매개체였다.

    “자자! 다들 밥 먹어요.”

    어머니가 상차림을 끝냈다. 위 부인도 가족을 향해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 거실에 있던 강우가 위이강과 강용이에게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강우가 식탁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감탄성을 터트렸다.

    “와? 어머니 이거 그냥 한국에서 해주신 밥상 같은데요?”

    “그래? 다행이네. 재료가 조금 달라서 걱정했는데.”

    어머니가 다행이라며 웃었다. 식탁에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한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제수씨, 정말 푸짐합니다.”

    위단향이 빠르게 통역을 해주었다.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미소 지었다.

    “아주버니, 많이 준비 못 했어요.”

    위진오가 한식에 크게 관심을 드러냈다. 아버지가 항상 자랑하던 어머니의 손맛도 너무 궁금했다. 강우 가족과 위진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인원이 많아 좁게 붙어 앉았지만, 서로의 온기가 느껴져 더 좋았다.

    “제수씨, 잘 먹겠습니다.”

    즐거운 식사가 시작됐다. 위진오 가족은 중국 음식과 다른 한식을 보며 크게 관심을 드러냈다. 위진오는 뭐부터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형님, 이게 갈비찜이라는 건데요. 한번 드셔보시죠.”

    아버지가 위진오에게 갈비찜을 권했다. 아버지의 중국어 실력은 정말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위진오가 아버지가 권한 갈비를 먹어보았다.

    “오? 맛있는데?”

    “그렇죠? 자 술도 한 잔 받으시죠.”

    아버지와 위진오의 술잔이 오고 갔다. 강우도 위진오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두 가족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정을 쌓아갔다.

    “그래, 강우야. 이번에 네가 투자한 기업 목록들은 나도 확인했다.”

    식사가 길어지자 식탁에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위진오만이 남았다. 어머니와 위부인 그리고 동생들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네.”

    강우가 아버지에게 전한 투자목록에는 중국의 여러 유망한 기업들이 있었다. 투자목록을 받아 본 위진오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강우가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제가 부탁드린 대로 지분은 확보하셨죠?”

    “그래, 경영권 방어선만 제외한 지분은 모두 인수했다.”

    강우는 중국 법인의 자본으로 많은 곳에 투자했다. 그중에는 미래에 중국 시장을 장악하는 여러 기업도 있었다. 투자가 어렵지는 않았다. 급격한 시장경제화를 시작하며 이제야 시작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미래에는 어마어마한 기업들이 되지만….’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강우가 중국에서 벌일 일들을 위한 캐쉬카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된다면 강우는 자신의 염원이자 최준의 뜻을 수월히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강우야, 다른 곳은 전부 이해가 되는데 말이야. 이 B2B 쇼핑사이트에는 꼭 투자를 해야 하는 거니?”

    위진오가 잘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투자라 하면 보통 강우가 알려준 다른 회사들처럼 제조업이나 투자회사 혹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보통이었다.

    “네, 중국의 인구가 엄청나잖아요. 중국도 점점 개방되고 있으니 인터넷 인프라가 중요시되는 시대가 올 거고요. 그러기 위해서 투자한 곳이에요.”

    “그래? 직원도 얼마 없고. 작은 회사이던데? 아직 쇼핑사이트를 시작한 상태도 아니고.”

    위진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온라인이라는 사업개념은 윗세대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강우가 창업자를 직접 만나러 간다고까지 하니 더 궁금해했다.

    “일단 만나보고 결정할 건데요. 여기는 앞으로 꼭 큰 회사가 될 거예요.”

    강우의 말에 위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진오 역시 강우의 말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 강우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믿어주세요.”

    강우가 위진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한 무한 신뢰를 보내는 위진오였다.

    ‘양부님도 권력의 핵심층까지 갈 수 있게 최대한 도와드려야 한다.’

    그렇게 돼야만 했다. 중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을 모두 하나로 모아 제 위치로 돌려놓으려면 말이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굳게 다짐했다.

    ‘이번 중국행은 정말 바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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