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오라고 하겠습니다.
JG 소프트의 건물의 휴게실에 강우와 남재식이 있었다. 평소라면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이곳이 오늘따라 분주했다. 휴게실의 한쪽에서 잘 차려입은 남재식은 열심히 메이크업까지 받는 중이었다. 남재식은 영 불편한지 메이크업을 받으며 움찔거렸다.
“아우…. 난 영 불편한데.”
옆에서 남재식을 지켜보던 강우가 픽 웃었다.
“참아라. 인터뷰 잘하려면.”
강우의 말에 남재식이 다시 메이크업에 집중했다. 이윽고 준비를 끝낸 남재식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널찍한 회의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있을 인터뷰를 제의한 게임잡지사의 기자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게임 챔프에서 나온 김진규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JG 소프트 대표 남재식입니다.”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먼저 튀니지의 성공적인 정식서비스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재식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튀니지는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접속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정액제 이용자 숫자가 이만 명을 돌파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국내 MMORPG 역사상 유례없는 수치인데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그동안 고생해준 개발자분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나간 CF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봐도 엘프 그 자체였거든요.”
남재식의 말에 게임 챔프 관계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게임 챔프 관계자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저희도 그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게임들은 주로 게임 잡지를 통해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이번에 텔레비전 광고는 업계에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정말 대단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생각은 우리 회사 이사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저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죠.”
김진규 기자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JG 소프트.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게임을 런칭하고 커다란 성공을 거둔 회사였다. 특히 IT산업에 힘을 쏟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최근 주목받는 벤처기업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회사에는 자본과 함께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 법이었다.
“혹시 그 이사님도 오늘 인터뷰에 함께할 수 있을까요?”
김진규 기자의 말에 남재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히려 조금은 불편한 이 자리에 강우가 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네! 당연하죠. 지금 당장 오라고 하겠습니다.”
“네? 아…. 그게 지금은 단독….”
말을 마칠 사이도 없이 남재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회의실 밖에서는 강우가 자리에 앉아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우야, 너도 들어와라.”
“나? 나는 왜?”
강우가 미간을 좁혔다. 아침부터 인터뷰 혼자 하기 싫다고 하더니 기어코 자신을 끌어들이나 보다.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강우가 등장하자 김진규 기자의 얼굴이 멍해졌다.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바…. 박강우 이사님?”
김진규 기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속으로는 연신 대박이라는 환호성을 질렀다. 강우가 남재식의 옆으로 앉았다. 남재식의 콧대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강우가 옆에 있으니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
“기자님?”
강우가 멍한 표정의 김진규를 불렀다. 김진규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아…. 그런가요?”
김진규 기자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오늘 있을 인터뷰는 대박이 확실했다. 잠시 소란이 끝나고 김진규 기지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 내용을 빠르게 수정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인터뷰 내용이 변경됐으니까요.”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김진규 기자가 강우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듣던 대로 여유와 배려가 넘치는 남자였다.
“먼저 대표님 인터뷰를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당연하죠.”
남재식이 목을 가다듬으며 인터뷰 준비를 했다. 김진규 기자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대표님은 아직 학생이신 걸로도 유명한데요. 이렇게 일찍 게임개발에 뛰어든 게기가 궁금합니다.”
“음…. 그것도 역시 제 친구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겠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참 좋아했습니다. 시작은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하러 가다가 문방구 앞의 오락기와 만난 것부터인데요.”
남재식의 말에 회의실 안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재식의 말은 이 시대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첫 경험이었다. 분위기가 풀리자 남재식의 긴장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날 게임에 빠져서 심부름값 전부 날리고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난 기억이 나네요. 그다음부터 오락실을 밥 먹듯이 들락날락했습니다. 어머니한테 뒷덜미 잡혀서 끌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재식이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콘솔 게임의 세계를 알게 됐죠. 아직도 세뱃돈 열심히 모아서 샀던 첫 콘솔기기가 집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남 대표 집에 가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게임에 관련된 컬렉션들이 장난 아니거든요.”
강우의 말에 김진규 기자가 눈을 빛냈다. 김진규 기자 역시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잡지에 같이 실을 수 있게 사진 촬영 협조 가능할까요?”
사심이 담긴 김진규 기자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남재식은 거절하지 않았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하죠. 제 아이들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인터뷰가 이어졌다.
“역시 게임을 좋아하셔서 업계에 뛰어들게 되셨군요.”
“네, 사실 제가 게임잡지사에 투고한 공략이랑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진규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이십니까?”
아무리 떠올려도 남재식이라는 이름의 투고자는 없었다. 남재식이 멋쩍게 웃으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아…. 게임 챔프가 아니라…. 다른 쪽.”
“아….”
서로가 잠시 민망한 상황이 왔다. 남재식이 게임 공략을 투고했던 잡지사는 게임 챔프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다른 잡지사였다.
“아무튼, 막연히 게임을 좋아하던 학생이었던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게 바로 제 친구 강우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김진규 기자가 강우를 보며 감탄했다. 박강우라는 존재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였다. 현재 게임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바로 스페이스 크레프트 프로리그였다. 주로 취미로만 여겨지던 게임을 상업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바로 그 프로리그를 눈앞의 강우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박 이사님이 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개발에 참여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한 건 거의 없습니다. 다 개발자분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니까요.”
강우의 겸손함에 김진규 기자가 또 감탄했다.
‘아직 한창 어린 나이인데 저런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많은 인터뷰를 해봤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겸손함이었다.
“한 게 없다는 거 전부 거짓말입니다. 강우가 프로그래머가 아니었을 뿐이지 사실 게임개발을 총괄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광고 아이디어도 모두 강우의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놈…. 아니 친구죠.”
남재식이 황급히 놈이 아닌 친구라 했다. 그 모습에 김진규가 슬쩍 웃었다. 두 사람이 정말 친한가보다 싶었다.
“역시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이거 재계에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박 이사님이 계시니 JG 소프트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김진규 기자가 남재식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재식이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튀니지는 앞으로 여러 가지 패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콘텐츠와 수준 높은 게임성으로 이용자 여러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 개발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JG 소프트에서는 튀니지에 이어 다른 게임도 개발 중입니다. 곧 여러분을 곁을 찾아뵐 게임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진규의 눈이 반짝였다. JG 소프트의 또 다른 게임이라니 기대가 되고 궁금했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남재식이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니 비밀이라 생각했다.
“대표님,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희가 잘 정리해서 잡지에 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처음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남재식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김진규 기자가 이번에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인터뷰인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여기는 제 회사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제법 투자를 많이 했거든요.”
강우의 가벼운 농담에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진규 기자가 급하게 정리한 인터뷰 질문 리스트를 점검했다. 그리고는 몇 개의 질문에 줄을 쫙쫙 그었다. 정말 물어볼 것이 많은 화제의 남자였지만, 게임 챔프는 게임 잡지였다. 불필요한 사생활이나 다른 궁금증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튀니지에 관한 질문은 이미 충분히 한 거 같습니다. 다른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저희 잡지의 색깔에 맞는 질문을 딱 한 가지만 드리고자 합니다.”
“네, 배려 감사합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항상 수도 없는 인터뷰 요청을 받는 강우였다. 인터뷰할 때면 항상 묻는 똑같은 질문에 지쳐 있을 만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인터넷의 발달로 점점 온라인 게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시방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항간에서는 이런 점들이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 이사님은 앞으로 게임 업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떠오르는 대한민국의 젊은 신성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강우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 튀니지만 하더라도 미래에 여러 부작용을 탄생시켰었다.
‘몇몇 PK 이용자들의 의도적인 다른 이용자 괴롭힘과 과도한 현질 그리고 게임 내 분쟁으로 인한 폭력 사건.’
또한, 일명 튀니지 폐인이라는 사람들을 양성하기도 했었다. 물론 커다란 사회적 문제는 아니었지만, 강우는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은 지양하고 싶었다. 강우가 김진규 기자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게임은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유해할 수도 또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이 온라인상에서 인연을 맺고 교류를 나누는 곳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가 이용자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고 게임으로 생기는 많은 폐해를 모른척한다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JG 소프트는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게임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겠습니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김진규 기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회의실 안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 보자고 내가 바꾸는 미래에서도 튀니지의 인기가 어디까지 가는지 말이야.’
미래와는 다른 길을 간다면 튀니지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자신 있었다. 강우의 머릿속에는 미래의 기억으로 인해 알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