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402)
  • 뭐? 엘프가 여기 왔다고?!

    딸랑.

    살짝 취한듯한 남재식이 피시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량을 대폭 늘렸지만, 아직 강우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으…. 따듯해.”

    “자리 있냐?”

    뒤를 이어 멀쩡한 강우가 들어섰다. 강우의 옆에는 역시 양 볼이 불그스레해진 이나은이 함께였다. 세 사람은 근처에서 술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자리가…. 잠깐만 저기 있네.”

    남재식이 빠르게 비어있는 자리로 향했다.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에게 피시방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괜찮겠어? 그냥 노래방 갈까?”

    술자리에서 2차를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강우는 당연히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남재식이 현장 점검차 피시방을 가자고 꼬셨다. 웬일인지 이나은도 순순히 응했다.

    “아니야. 나도 튀니지가 어떤 게임인지 궁금해. 내가 명색이 모델인데 알고는 있어야지.”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미 광고 촬영은 끝났는데라고 생각했다. 슬쩍 이나은의 얼굴을 살피니 조금 취한 듯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 과음을 했나 보다.

    “그래, 그럼 가서 앉아있어. 내가 음료 좀 사 갈게.”

    “응.”

    이나은이 남재식이 맡아놓은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세 자리 중 가운데에 앉았다. 강우는 빠르게 음료를 사고 시간표도 끊었다.

    “자 여기.”

    자리로 돌아온 강우가 이나은의 옆에 앉았다. 이나은은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기한 듯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컴퓨터가 처음은 아닌 이나은이었다. 하지만 바탕 화면에 깔린 게임 실행 아이콘이 신기하게 생긴 것이다.

    “와…. 이게 다 게임이야? 튀니지는 어디 있어?”

    “잠깐만.”

    강우가 이나은의 화면에서 튀니지 아이콘을 더블클릭해 주었다.

    위이이잉-

    컴퓨터가 비명을 지르며 돌아갔다. 그리고 곧 튀니지의 접속 화면이 떠올랐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일단 여기다가 사용할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넣고. 종족은…. 어디 보자….”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씩 웃었다. 종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엘프지.”

    “엘프? 그래~”

    이나은이 강우가 해주는 대로 가만히 따랐다. 게임이 시작됐다.

    “나은아, 마우스로 이렇게 캐릭터를 움직이고 몬스터한테 커서를….”

    “몬스터가 뭐야? 여기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

    “어어. 그거야. 커서를 가져다 대고 마우스 왼쪽을 클릭하면 돼.”

    이나은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엘프 캐릭터가 열심히 몬스터를 공격했다. 이나은이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꺅! 내가 죽였어. 강우야 봤어?”

    “어어. 잘했다. 우리 나은이.”

    이나은이 금세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평생 처음 해보는 온라인 게임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강우도 생각난 김에 캐릭터나 만들 생각이었다. 역시 우직한 강우답게 기사 캐릭터를 골랐다.

    “강우야, 이건 뭐야?”

    “잠깐만.”

    이나은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강우는 게임을 할 사이도 없이 이나은을 도왔다. 남재식은 게임을 하는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괜히 일어나 피시방을 슬쩍 돌아다니기도 했다. 피시방 구석구석을 순찰한 남재식이 싱글벙글 웃었다. 지난번 친구들과 피시방에 갔을 때와는 달랐다. 화면마다 튀니지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우야, 대박. 사람들 우리 게임 엄청 많이 한다.”

    “그래? 잘됐네.”

    강우는 이나은을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계산대에 있던 젊은 남성 한 명이 강우 일행에게 다가왔다.

    “저…. 혹시….”

    남성은 이나은을 보며 머뭇거렸다. 연신 손에 들린 포스터와 이나은을 비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나은은 게임 삼매경이었다.

    “꺅!”

    괴물에 쫓기는지 비명을 지르며 화들짝 놀랐다. 남성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우가 남성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박강우 씨죠? 안녕하세요. 저는 이 피시방 사장입니다.”

    피시방 사장은 역시나 강우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강우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 유명인의 삶이란 언제나 고달픈 것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박강….”

    “혹시 옆에 계신 분이 이번 튀니지 광고에 나오는 엘프 모델분 맞나요?”

    예상과 다른 반응에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은 여전히 게임 삼매경이었다. 그리고 피시방 사장의 말이 강우 일행의 주변에 들렸나 보다.

    “뭐? 엘프가 여기 왔다고?!”

    남성들이 화들짝 놀라며 강우 일행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주변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첫 번째 남성이 외친 엘프라는 단어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피시방에 퍼져나갔다.

    “진짜야?! 진짜 엘프가 왔어?”

    사람들의 시선이 이나은에게 집중됐다.

    “어?”

    이나은이 그제야 시선을 느끼고는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우야, 무슨 일이야?”

    “나은아, 네가 엘프인 게 탄로 나고 말았다.”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피시방 사장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맞죠?! 우와! 진짜 영광입니다. 저희 피시방에 엘프가 직접 와주실 줄 몰랐습니다.”

    피시방 사장이 극도로 흥분했다. 손에 들고 있던 포스터를 내밀며 말했다.

    “사….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사인이요?”

    이나은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포스터와 매직을 받았다. 이나은이 매직펜의 뚜껑을 열고 포스터 위에 가져다 대었다.

    “음….”

    이나은이 멈칫했다. 가슴 속에서 묘한 기분이 울컥 솟아올랐다.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나 싶었다. 물론 연극을 했지만, 정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단역이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팬은 없다시피 했다.

    “정성스럽게 해드릴게요.”

    이나은의 손이 신중히 포스터 위를 날았다. 이나은의 역사적인 첫 사인이 끝났다. 강우가 감격에 젖어 손뼉을 쳤다.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에게는 유독 팔불출이 되는 강우였다.

    “가….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알아봐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진심이 담긴 이나은의 말에 피시방 사장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연예인 이나은에게 충성하리라 다짐했다. 피시방 사장이 팬심을 채우는 사이 주변 남성들이 멈칫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사인을 받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옆에 앉아있는 강우의 존재가 튼튼한 성벽이었다.

    “어…. 나은아, 다른 분들한테도 사인을 좀 해드리는 게 어떨까?”

    “좋아. 이왕이면 포스터에 해드리면 좋겠는데.”

    피시방 사장이 화들짝 놀랐다.

    “자…. 잠시만요.”

    피시방 사장이 급하게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전신대와 함께 다량의 포스터를 가지고 왔다. 피시방 안에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 게임의 개발….”

    남재식이 일어나 남성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시선은 이나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남재식이 한숨을 푹 쉬더니 일일 매니저를 자처했다.

    “피시방 안이 좁아 위험하니까 다들 순서대로 와주시면 됩니다. 자기가 앉은 피시방 좌석 순서대로 오시면 되겠네요.”

    그 말이 끝나자 1번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나은에게 다가왔다. 이나은을 힐긋 바라본 남성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그리 꾸미지 않았지만, 술기운에 조금 붉어진 양 볼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진짜 엘프랑 똑같으십니다. 오…. 오늘부터 팬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나은이 포스터에 사인해주었다. 미니 팬 사인회가 이어졌다. 피시방 사장은 서비스라며 기다리는 테이블에 음료수까지 돌렸다. 피시방 안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자! 마지막 분!”

    백여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의 사인이 끝났다. 피시방 사장은 포스터를 배포용으로 넉넉히 받아두길 잘했다며 자신을 칭찬했다. 마지막으로 이나은이 전신대에 크게 사인을 남기고 피시방 사장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요금은 무료로 하겠습니다. 마음껏 놀다 가세요.”

    “감사합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피시방 사장이 부끄러워하며 계산대로 돌아갔다.

    “와…. 나은이 인기 장난 아니네.”

    남재식이 자리에 앉으며 감탄했다. 그만큼 엘프 광고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이기에 기쁘기도 했다.

    “봐봐. 사람들 전부 튀니지 하고 있다.”

    “오? 진짜네.”

    강우와 남재식이 이나은을 향해 엄지를 들었다. 이나은이 부끄러워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아…. 게임이 재미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남재식이 분위기를 타서 설문조사라도 할 기세였다. 그때였다.

    “어어? 강우야 이거 뭐야?”

    게임을 하던 이나은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강우와 남재식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 이나은의 엘프 캐릭터가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몇몇 캐릭터들이 있었다.

    -HA! HA! HA!-

    -KILL! KILL!-

    영어 채팅을 치는 것을 보아하니 외국인 이용자들인 듯했다. 현재 튀니지는 외국의 게이머들에게도 조금씩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강우와 남재식이 분기탱천했다.

    “감히 내 여자친구를 건드려?!”

    “감히 우리 게임의 엘프 여신님을 건드려?!”

    두 사람이 빠르게 캐릭터를 만들어 이나은의 캐릭터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외국인 PK 이용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아무리 컨트롤이 좋은 강우라지만, 숫자에는 장사가 없었다. 강우와 남재식 그리고 이나은 캐릭터는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다.

    “아오! 이놈들이 진짜!”

    남재식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회사에 돌아가면 저놈들은 다 밴을 먹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런 지속적이 괴롭힘에도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우는 당황한 이나은을 달랬다.

    “나은아, 괜찮아. 게임을 하다 보면 저렇게 자기보다 약한 캐릭터를 PK 하며 사람 괴롭히는 나쁜 놈들이 있어.”

    “PK가 뭐야? 축구?”

    이나은의 질문에 강우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답을 해주었다.

    “아니 PLAYER KILL이라고 사용자가 사용자 캐릭터를 죽이는 걸 말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런 걸 왜 해? 저 사람 현실에서도 저런 사람들인가?”

    “그건 아니야.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저렇게 풀거나 원래 조금 고약한 심성 가진 사람인 거지.”

    그렇게 강우가 이나은을 달래던 순간이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피시방 사장이 잔뜩 화가 나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남재식이 빠르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저희도 갑니다!”

    주변의 손님들이 하나둘씩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나은을 구하기 위해 피시방 안의 손님들이 일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 엘프님을 지키러 오는 분들은 컵라면 하나씩 공짜입니다!”

    피시방 사장의 말이 손님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피시방 안이 거대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수십이 넘는 캐릭터들이 이나은에게 몰려들었다. 새로 만든 아이디도 다양했다.

    엘프지킴이. 엘프사랑. 엘프내꼬.

    화면을 가득 채운 엘프 돌림의 캐릭터명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모여든 손님들이 외국인 PK 이용자들을 집단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대박….”

    그 장엄한 광경에 남재식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화면을 가득 채워 렉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강우도 실소를 흘렸다.

    “강우야, 우리가 이긴 거 맞지?”

    이나은이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우리가 이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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