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9/402)
  •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부우웅.

    강우의 승용차는 반포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린 강우가 여의도에 있는 광복회관에 도착했다. 강우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로인가 전화를 걸었다.

    -권태복입니다.-

    “저 박강우입니다. 지금 회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강우가 통화하는 상대방은 광복회장 권태복이었다.

    -오~? 일찍 왔군?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게 우리 점심이나 같이하지.-

    “네.”

    강우가 차에서 내려 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회관의 입구에는 광복회의 발자취가 적혀있었다. 곳곳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역시 전통이 오래된 광복회에는 독립운동사의 여러 기록이 남아있었다. 강우는 잠시 이곳저곳을 살피며 권태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렸나?”

    이윽고 권태복 회장이 로비에 나타났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나?”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흐른 상태였다. 강우를 만난 권태복 회장의 얼굴은 밝았다.

    “우리 뜨끈한 국물을 먹으러 가는 게 어떤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허허. 아닐세 내가 초대했는데 내가 사야지.”

    권태복 회장이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강우와 권태복 회장은 근처의 닭칼국숫집으로 갔다.

    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주인 아주머니가 권태복을 반겼다.

    “아이고~ 회장님 오셨어요?”

    “날씨가 추우니 여기 생각이 나서 말이야. 따듯한 칼국수 두 그릇 주게.”

    “네, 앉으세요.”

    강우와 권태복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의도에 있는 백화점의 지하에 있는 작고 허름한 가게는 옛날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권태복 회장이 씩 웃었다.

    “왜? 어디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도 갈 줄 알았나 보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곳을 좋아합니다.”

    “그런가?”

    권태복 회장의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강우가 누구던가 이미 매출로는 중견기업에 가까운 동양 무역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또한, 대진 그룹 오너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비록 강우가 힘든 상황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네, 제 회사 사무실이 있는 명동에도 기가 막힌 칼국숫집이 있는데 거기 엄청 단골이죠.”

    “그랬군.”

    이윽고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닭칼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일단 먹지.”

    “잘 먹겠습니다.”

    후루룩. 후루룩.

    ‘와?’

    첫맛을 보는 순간, 강우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러자 권태복이 입꼬리를 올렸다.

    “맛이 괜찮지? 사실 여기는 여름에 와야 제대로야. 이 집 콩국수가 끝내주거든.”

    “아….”

    순간, 강우의 머릿속으로 미래 기억의 단편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주변을 쓱 둘러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여기가 거기구나. 미래에 엄청 유명해지는 맛집인 곳.’

    순간,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맨 처음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는 가족과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만 떠오르고는 했다. 하지만 능력이 발현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의 기억은 점점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또렷해지고 있었다.

    ‘미래에 이 집을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이렇게 선명한 기억이라니.’

    그리고 또 다른 능력도 강화된 상태였다. 바로 장례식장에서 나창식의 일대기를 떠올린 일이었다. 그동안은 할아버지나 최준 그리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과거나 미래가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람은 이름과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의 살아온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 강우는 나창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나창식은 바로 일본의 앞잡이인 밀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상태였다. 강우는 그 사실을 알고 권태복 회장의 만나자는 말에 응한 것이다.

    ‘광복회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

    강우가 눈앞에 있는 권태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가 지끈하며 권태복의 일대기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기억을 모두 읽은 강우가 스르륵 입꼬리를 올렸다. 권태복 회장은 정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현재가 어떤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윽고 식사가 끝났다. 그러자 권태복 회장이 물을 한 잔 마셔 입을 헹궜다.

    “역시 매일 먹어도 좋군.”

    “매일 오시는 집이신가 봅니다.”

    권태복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면을 워낙 좋아해서 말이야.”

    “그러셨군요. 저도 면을 참 좋아합니다.”

    작은 공통점에도 두 사람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어 가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지.”

    “네.”

    두 사람은 근처의 조용한 다방으로 갔다. 권태복은 쌍화차를 시켰고, 강우는 냉커피를 시켰다.

    “그래, 그동안은 그렇게 불러도 오지 않더니 이번에는 단숨에 와주어서 내가 너무 기쁘군.”

    “죄송합니다. 고의로 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강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독립투사 권태복이었다. 본의 아니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됐다. 할아버지가 늘 예의범절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지 않았던가,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내가 할 말이 참 많아.”

    “말씀하시죠. 경청하겠습니다.”

    권태복 회장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강우 자네가 우리 광복회와 함께했으면 좋겠네.”

    “그 말씀은 제가 광복회의 회원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제가 이끄는 재단 광복을 넘기라는 말씀이십니까?”

    강우의 직설적인 반문에 권태복 회장이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강우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권태복 회장을 존경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광복회에는 세월이 흐르며 쌓이기 시작한 문제점들이 존재했다.

    “흠흠…. 그리 대놓고 물으니 나도 끌지 않고 말함세. 이보게 지금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독립운동자 숫자와 후손들의 수가 얼마인지 알고 있나?”

    “생존하고 계신 유공자분들은 수백 명. 후손들은 수천 명에 불과하죠.”

    권태복 회장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 걸세.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가 이렇게 흩어져 있으면 되겠는가?”

    “저희는 흩어져 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 연락하고 만날 방법을 몰랐던 거뿐이죠. 저는 그 기회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지역마다 지부를 만들고 회원들의 일상을 살피려 하고 있네. 다만 인력과 여러 문제로 전국에 지부를 세우지 못했을 뿐이야.”

    권태복 회장의 말이 바로 지금 광복회의 문제점 중 하나였다. 물론 광복회가 진행하고 있는 많은 자선사업이 있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사업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기의 순수했던 목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또한,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와 후손들 그중에서도 유공자 본인을 기준으로 3대까지만을 회원으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즉 세월이 흘러 3대를 벗어난 증손주들과 그 일가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사단 법인 광복은 유공자분들과 후손분들을 회원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은 가족입니다. 회장님은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게 된 겁니까? 가족이 세월이 흘러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그들은 가족이 아닙니까?”

    강우의 말에 권태복 회장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장님, 쌍화차 나왔습니다.”

    그때, 다방 마담이 쌍화차를 권태복 회장의 앞에 놓아주었다. 굳어 있던 권태복 회장이 움찔하며 정신을 차렸다.

    “이건 총각 마실 냉커피.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탔어.”

    다방 마담이 강우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강우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하며 커피를 받았다.

    “으음…. 하지만 자네의 말은 너무 이상적이야. 모든 단체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당장 우리도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네.”

    “알고 있습니다. 회원 수의 절대적인 부족. 자금의 부족으로 생긴 정부 기관과의 사업 연계 등등으로 힘든 점이 많으시죠. 하지만 광복회의 진정한 문제는 또 있지 않습니까?”

    강우의 반문에 권태복 회장이 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는 속으로 감탄하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강우를 만나면 부드럽게 설득을 해 광복회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벌써 몇 번이나 말문이 막혔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권태복 회장의 말에 강우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강우가 꺼내려는 말의 파급력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광복회에 산적한 문제 중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강우가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광복회의 내부 알력 싸움. 그리고 친일파들에 대한 문제 그리고 독립유공자들 이외에 일제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대한 무관심.”

    “으음….”

    권태복 회장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광복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사실이었다.

    “독립투사분들이 어째서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아니면 명예를 위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분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같은 민족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지금의 광복회는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말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걸 개인이나 단체가 어찌 감당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우리 광복회도 그런 이상을 가진 적이 왜 없었을까,”

    권태복 회장이 목이 타는지 쌍화차를 후루룩 마셨다. 가슴 깊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강우가 그런 권태복 회장을 향해 말했다.

    “제가 할 겁니다. 제가 나서서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의 앞길을 열어줄 겁니다. 그리고 찾아낼 겁니다. 내부의 배신자들과 우리를 핍박하던 그들을.”

    강우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 눈빛과 마주한 권태복 회장이 헛숨을 들이켰다. 마치 오래전 일제의 심장에 총을 겨누고 의사를 일으키던 동지들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하아…. 우리가 자네를 품기에는 턱도 없는 그릇이었군.”

    “아닙니다. 광복회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립운동가들과 후손들을 위한 단체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 법이니까요.”

    권태복 회장의 입이 달싹거렸다. 사단 법인 광복이라고 다를 것 같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강우가 그동안 보여준 행적과 지금 눈앞의 모습에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권태복 회장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부럽군. 자네의 그 패기가 그리고 자신감이.”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바꾸어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회장님은 그러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우의 말은 진심이었다. 비록 광복회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현 회장인 권태복은 그중에서는 다른 인물이었다. 다만 이미 달리고 있는 광복회라는 기차의 선로를 바꾸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음…. 알겠네. 나도 자네의 말을 깊이 생각해 보겠네.”

    “네.”

    강우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 무엇이든 변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조금씩 하나씩 바꾸어 나가면 돼.’

    손님이 없어 한적한 다방에 강우와 권태복 회장이 한동안 마주 앉아있었다. 다방 안을 가득 채운 오래된 가요 소리 사이로 간혹 권태복 회장의 침음성이 들려올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