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어떡하니?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우가 잠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보다 오래 잤다는 느낌에 황급히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만큼 하루하루 일정이 빡빡한 강우였다.
툭.
강우의 손에 치여 핸드폰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밤새 이나은과 통화를 하다 잠들어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도 깜빡했나 보다. 강우가 힐끗 옆을 돌아보았다. 강용이는 아직 꿈나라였다.
“음냐….”
잠꼬대하는 강용이의 모습은 귀여웠다. 강우가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와 땅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땅에 떨어진 여파로 배터리가 분리되어 있었다. 강우가 배터리를 다시 끼고는 충전기에 연결했다.
띠리리.
핸드폰에서 작게 소리가 나며 다시 전원이 들어왔다. 그 순간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강용이가 깰까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방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에서 상대방의 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사님,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지금 급히 자금 집행을 해야 할 건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죠?”
강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연락이 온 사람은 사단 법인 광복에 소속된 직원이었다. 업무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독립운동가분들과 후손들의 병원 업무와 관련된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복잡한 절차 없이 강우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아 자금을 집행하고 있었다. 즉 이 담당자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김일국 할아버님이 노환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급히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강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순간, 자신을 배웅하던 김일국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이 어디입니까?”
-서울대 병원입니다.-
“알겠습니다. 오후에 들르겠습니다. 김일국 할아버지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가족분들도 놀라시지 않게 잘 부탁드립니다.”
-네, 이사님.-
통화가 끝나고 강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새 들어 이런 연락이 자주 있었다. 이제 살아있는 독립운동가분들과 후손분들의 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도 벌써 70이 넘긴 연세였으니 말이다.
“강우야, 또 무슨 일이 난 거야?”
거실에 있던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강우가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김일국 할아버님이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오늘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세요.”
“그래? 많이 안 좋은 거야?”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태어난 곳도 다르고 나이도 달랐다. 독립운동을 한 장소도 달랐고 방법도 달랐다. 혹자는 유공자 본인이었고, 또 누구는 그 아들과 딸이었다. 하지만 지난 강원도에서의 만남 이후 지속적인 친목 모임을 했고, 그 유대감은 끈끈함을 넘어선 상태였다.
“학교 끝나고 병원에 들러보려고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줘야 한다?”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최준의 방으로 향했다. 강우가 힐끗 시계를 본 후 나갈 채비를 했다.
“강우야, 아침은 먹고 가야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 중이던 어머니가 강우를 붙잡았다. 강우가 멈칫하며 주방으로 끌리듯 다가갔다. 어머니의 말은 곧 법이었다. 특히 아침을 굶고 가는 것은 절대 용납 못 하는 어머니였다.
“네.”
강우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탁 위를 확인하고는 감탄했다. 식탁의 중앙에 놓인 된장찌개는 언제나 그렇듯 구수한 향이 섞인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말이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용이가 좋아하는 미니 돈가스도 있었다. 강우가 어머니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엄마, 잘 먹을게요.”
“그래, 시간 없다고 급하게 먹지 말고.”
어머니의 말에 강우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용이가 일어났다. 식탁에 앉은 강우를 발견한 강용이가 대번에 후다닥 달려왔다. 그리고 강우의 옆에 앉았다.
“나도 밥 먹을래.”
수저를 들려던 강용이를 어머니가 제지했다.
“먼저 씻고.”
“씻고 나오면 형아 가고 없잖아.”
강용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먹고 씻어.”
“응!”
강용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강우가 미니 돈가스를 집어 강용이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많이 먹어.”
“응.”
강용이는 밥을 먹는 내내 강우를 보며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중국에 가 있었고, 강우는 항상 바빠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나 들어오고 있었다. 유독 가족을 좋아하는 강용이가 외로울 만했다. 강우는 밥을 먹는 내내 강용이를 챙겼다.
“잘 먹었습니다. 다녀올게요.”
강우가 아침을 다 먹고는 현관을 나섰다. 어머니와 강용이가 강우를 배웅나왔다.
“형아! 오늘도 파이팅!”
“그래, 우리 강용이도 학교 잘 갔다 와.”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강우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우리 아들 오늘도 정신없이 바쁘겠네. 잘 다녀와.”
“네, 엄마.”
강우가 어머니를 살짝 안아드렸다. 그리고는 조금은 멋쩍은 듯 빠르게 현관을 나섰다.
* * *
한겨울의 캠퍼스였지만, 곳곳에는 젊음이 가득했다. 캠퍼스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종종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부우웅.
주차장에 들어선 강우가 차를 주차했다. 조수석에서 가방을 집은 강우가 문을 열고 내렸다.
“박강우!”
차에서 내리는 강우를 이재원이 반겼다. 마침 주차장에 도착한 모양이다.
“왔어요?”
“강의 바로 들어가? 커피 한잔할 시간 있나?”
강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 조금 있어요.”
“오케이. 그럼 일단 경영대 건물까지 가자.”
강우와 이재원이 경영대 건물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먼저 종이컵이 덜컥 나오고 따듯한 커피가 쏟아져 내렸다.
지이잉.
강우가 입구에 손을 넣어 종이컵을 꺼냈다. 그리고 이재원에게 내밀었다. 이재원이 커피를 후루룩 마시더니 탄성을 뱉어냈다.
“역시 추운 아침엔 자판기 커피 한 잔이 최고야.”
이재원이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나은이 계약은 잘 마무리했다. 이제 대진 엔터에서 확실하게 밀어줄게.”
“그래요? 나은이가 실력도 있고 스타성도 있으니까 잘될 거예요.”
이재원이 힐끗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냐?”
“네? 뭐가 괜찮아요?”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나은이야 못 뜨는 게 이상할 거고. 유명해지면 이제 서로 더 바빠질 텐데. 그리고 알잖냐. 여자 연예인이 남자친구 있다고 하면….”
이재원이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조금 심했나 싶었는지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강우는 담담했다.
“뭐…. 그런 거에 흔들릴 사이는 아니니까요.”
“오…. 자신감.”
이재원이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예전에는 그냥 내 여자친구로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생각해보니까 나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왜 나은이만 그러면 안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은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줄 거예요. 그리고 이왕 도와주는 거 제대로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보여주려고요.”
“와~ 박강우~”
이재원이 정말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막 특혜 주거나 그러지는 마세요. 알겠죠?”
“그럼 당연하지. 누구 부탁인데 내가 꼼수를 부리겠어?”
이재원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강우는 알고 있었다. 특혜가 없더라도 이나은은 슈퍼스타가 될 것이다. 미래의 기억이 말해주었고, 이나은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왔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일단 재식이네 게임 광고부터 오디션을 볼게.”
“네, 어차피 나은이가 뽑히겠지만요.”
강우의 자신감에 이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이건 또 무슨 팔불출이냐?”
“자기는 맨날 미나 자랑만 하면서.”
강우의 반격에 이재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강우가 입을 열었다.
“형, 오늘 나 본사 못 들어갈 거 같아요.”
강우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꺼내며 말했다. 이재원이 종이컵을 입에 가져다 댄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무슨 일 있어?”
“유공자 후손 한 분이 오늘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이재원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누구셔? 많이 안 좋으셔?”
“김일국 할아버지세요. 연세가 많으셔서 노환이시래요.”
“아이고….”
이재원이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이재원 역시 근래 들어 간혹 생기는 지금과 같은 일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네 일정까지 다 소화할 테니까.”
“네, 부탁할게요.”
이재원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에게 유공자 한 분 한 분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시간 되면 들를게. 기운 내, 잘될 거야.”
“네.”
강우와 이재원은 각자의 강의실로 흩어졌다. 강의를 듣는 내내 강우의 심경은 복잡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분들이 살아계실 때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강우야.”
강의를 끝나고 나오는 강우를 몇몇 학생들이 불렀다. SLAM의 동아리원 중 몇 명이었다.
“어, 안녕.”
“어제 우리 자원봉사 다녀왔어.”
“아…. 이야기 들었어. 난 참석 못 해서 미안하다.”
강우의 말에 동아리원들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야. 너 몸이 열 개도 아니고 어떻게 자원봉사까지 일일이 다 참여해. 어제는 우리끼리 조 짜서 유공자분들 집에 다 다녀왔어.”
“다들 잘 지내고 계시더라. 강우 너한테 잘 지낸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동아리원들의 말에 강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다들.”
“아니야, 우리도 너무 보람차고 즐거웠어. 그런데 오늘도 강의 끝나고 바로 가는 거야?”
동아리원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진 강우는 통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음 모임에는 꼭 참석할게.”
“그래, 동아리원들이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언제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동아리원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강우가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서울대 병원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 서울대 병원의 정문으로 강우가 나타났다. 걱정스러운 마음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병원에 들어선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평일 오후임에도 서울대 병원에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사님!”
그때, 한쪽에서 아침에 통화했던 직원이 나타났다. 강우가 대번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장 총무님, 할아버님은요? 수술은요?”
“아…. 지금 수술 중이십니다.”
강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가족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사님을 많이 찾으세요.”
“어딥니까?”
강우가 장 총무를 따라나섰다. 한참을 걸어가자 병원의 수술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김일국의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김일국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나이대는 모두 부모님의 연령대였다. 모두 지난 강원도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강우야!”
김일국의 아들과 딸이 강우를 알아보고는 단숨에 달려왔다. 그리고 강우의 팔을 붙잡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우리 아버지 어떡하니?”
“강우야….”
강우가 울컥하는 심경을 억눌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달랬다.
“일단 수술 경과 지켜봐요. 그리고 제가 왔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우의 말에 김일국의 아들과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조금 진정시켰다. 강우를 만나고 안정을 찾는 두 사람을 보며 장 총무가 속으로 탄성을 뱉어냈다.
‘역시 이사님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져.’
강우 만능설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