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402)
  • 알면 다친다.

    강우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강남 한복판에 있었다.

    빠아앙! 빠아앙!

    평일 오후의 강남은 꽉 막혀 있었다. 강우는 차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번 달에 컴백한 밀키의 신곡이었는데, 강우의 취향에도 제법 맞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꽉 막힌 도로에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강우는 그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막힌다고 짜증 내 봐야. 나만 손해지.’

    그렇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운전을 하던 때였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우가 힐끗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빠르게 소리쳤다.

    “나 운전 중이다!”

    -어어…. 빨리 와.-

    강우가 전화를 끊고 운전에 집중했다. 꽉 막힌 대로를 벗어나 강남의 안쪽 길로 들어선 강우가 익숙하게 차를 몰았다. 이윽고 강우의 앞쪽으로 오 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아직 외부 도색 공사 중인 건물의 한쪽으로는 멋들어진 로고가 그려진 간판이 걸려 있었다.

    [JG SOFT]

    남재식의 영어 이니셜 J와 강우의 영어 이니셜 G를 합친 회사명이었다. 강우는 극구 반대했지만, 남재식이 반드시 강우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행운의 부적이라고 했던가?’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건물 옆의 주차장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자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강우를 알아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오셨네요?”

    “다들 추운 날씨에 고생하십니다.”

    강우가 차에서 조금 전 사놓았던 따듯한 음료를 꺼냈다. 그리고 인부 중 한 명에게 내밀었다.

    “이거 드시면 몸 좀 풀릴 겁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아이고~ 또 이런 걸…. 고마워요.”

    강우가 씩 웃으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게임 개발을 끝내자 남재식의 아버지는 강남에 가지고 있던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다. 수개월 동안 남재식이 얼마나 열심히 개발에 매달렸는지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아들의 노력과 열정에 아저씨도 굳은 믿음이 생기신 거지.’

    지이잉.

    강우가 자동문 사이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일 층 로비에는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데스크에서 근무하던 안내 도우미가 강우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해왔다.

    “박 이사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준 강우가 곧장 엘리베이터에 탔다. 슬쩍 버튼을 바라보자 층별로 안내가 되어있었다. 1층은 로비와 직원식당과 카페가 있었고, 2층에는 고객 센터가 있었다. 3층부터 5층까지는 개발팀과 업무팀의 공간이었다,

    띵.

    강우가 내린 곳은 3층 개발팀이었다. 널찍한 사무실에는 온갖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거액을 들여 사 온 서버가 있는 서버실도 있었다. 강우의 투자를 더 받은 남재식이 그대로 장비에 투자한 것이었다. 잘 꾸며진 개발실은 예전의 반지하와는 차원이 다른 쾌적함이었다.

    “재식아.”

    “어 왔어?”

    작업에 몰두하던 남재식이 앉은 채로 강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강우가 슬쩍 남재식의 옆자리에 앉았다. 남재식이 있던 자리의 주변에는 온갖 먹을 것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보아하니 또 며칠 밤을 꼬박 작업에 몰두한 듯했다.

    “좀 치우고 살라니까.”

    “아…. 미안.”

    “사무실만 좋아지면 뭐 하냐? 사람이 그대로네.”

    “쏘리쏘리.”

    강우의 잔소리에 남재식이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다. 강우가 힐끗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의 조합이 한쪽에는 게임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

    드르륵.

    쓰레기를 모두 비닐봉지에 욱여넣은 남재식이 의자에 앉은 채 바닥을 밀었다. 한쪽 끝에 도착한 남재식이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휴지통에 툭 하고 던져 넣었다.

    드르륵.

    그리고 다시 강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강우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좀 움직여라. 움직여.”

    “지금 일어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 그래.”

    남재식이 멋쩍게 웃었다.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묵직한 크기를 자랑하는 모니터에는 커다란 장검을 들고 있는 캐릭터가 서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게임의 화면이었다.

    ‘기사 클래스 캐릭터군.’

    -티니지-

    게임의 타이틀도 미래의 것과 똑같이 런칭한 상태였다. 강우가 마우스를 손에 쥐고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사냥터로 나가서 몬스터들과 전투도 해보았다.

    파각. 파각. 파각.

    몬스터를 칠 때마다 효과음이 나왔다. 2D에 기반을 둔 게임은 조작성도 그리고 그래픽도 미래의 게임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어때?”

    그것을 증명하듯 남재식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강우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일단, 캐릭터 움직임은 많이 좋아졌네. 그런데 몬스터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클릭 편의성을 조금 더 개선했으면 좋겠는데?”

    남재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태생이 2D 게임인 티니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지금 강우가 지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그건 앞으로 업데이트를 통해 최대한 고쳐 나갈게. 그래도 네가 말해준 부분은 개선된 거 맞지?”

    남재식이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눈앞의 게임이 가진 태생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의 해결방안을 아낌없이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긴 하지.’

    그런 강우의 조언을 받은 개발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지금 강우의 눈앞에 미래의 기억보다 훨씬 보완된 게임이 있었다.

    “좋네. 일단, 이 정도만 해도 사람들이 깜짝 놀라겠지.”

    강우의 말에 남재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새 강우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개발자들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정식 서비스 시작할게.”

    남재식과 개발자들은 지난 9월 오픈 베타서비스를 실시했다. 게임 내의 문제점들을 수정하기 위한 오픈 베타 서비스였다. 또한, 전국 곳곳의 PC방에 설치 CD를 배포하고 원하는 개인의 집에도 무료로 보내주었다.

    ‘미래의 게임에 비하면 용량이 턱없이 적지만, 아직 인터넷이 많이 보급된 상황은 아니니까.’

    하지만 정부에서 IT 인프라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으니 게임이 안정되는 내년에는 상황이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직 몇 안 되는 온라인 게임들의 중흥기가 시작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저번에 말한 건 어느 정도 개발되고 있어?”

    강우의 말이 끝나자 개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듯 도망갔다. 홀로 남은 남재식이 강우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며 말했다.

    “개발 중이야. 시간이 좀 필요해.”

    “알겠어.”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티니지를 시대를 풍미한 게임으로 만들어준 콘텐츠를 개발하라 했다. 바로 공성전이었다. 티니지는 이 콘텐츠를 시작으로 온라인 게임의 강자로 우뚝 섰다.

    ‘이 콘텐츠 업데이트 이후에 벌어진 사회적인 문제가 걱정이기는 하지만….’

    티니지는 온라인 게임의 어두운 면도 극명히 드러나게 해준 게임이었다. 무분별한 PK와 게임 내의 괴롭힘 그리고 게임 내 아이템이나 돈을 현금으로 사고파는 일명 현질의 문제였다.

    ‘음…. 그런 부분이 티니지의 흥행에 얼마나 영향이 있었을까?’

    다만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이었기에 조금은 지켜보기로 했다. 만약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선제적으로 나서 통제를 할 생각이었다. 강우가 남재식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고생했다. 오늘 업데이트만 끝내고 다들 회식 어떠세요?”

    강우의 제안에 사무실에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된 개발의 끝에 찾아온 정말 오랜만의 단체 회식이었으니까 말이다. 강우와 남재식이 건물을 나란히 벗어났다. 개발자들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고객 센터 인원들이랑 GM들은 계속 충원해야 해. 오픈 베타 시작하고 나면 정신없어질 거야.”

    “채용공고는 해놨어. 그런데 사람들이 GM에 대해 생소해서 그런지 잘 지원을 안 하네.”

    “그럴 거야. 생소한 직업이니까. 구인 공고란에 업무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봐.”

    “응, 알겠어.”

    강우와 남재식이 나란히 걸었다. 음식점에 도착할 때쯤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광웅이 이제 곧 수능이네.”

    “어, 요즘 긴장된다고 매일 전화 온다.”

    “시험 잘 보겠지?”

    남재식이 어깨를 으쓱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시험 보기 전에 애들이랑 한번 만나야겠네.”

    “좋지. 내가 시간 잡아볼게.”

    * * *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목동 사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랐다. 그때, 한쪽에서 강우와 신원주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두꺼운 오리털 점퍼로 무장한 상태였다.

    “아니 꼭 수능 때쯤 되면 날씨가 이런다니까?”

    “올해 수능 날도 엄청 춥다던데.”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 약속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의 시선이 약속한 듯, 한 곳으로 향했다.

    “아직은 없네.”

    “조금 이르긴 하지.”

    바로 박광웅이 군고구마를 팔던 장소였다. 박광웅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군고구마 드럼통은 제법 명물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강우와 신원주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몸을 동동 굴렀다.

    “야야!”

    잠시 후, 한쪽이 시끄러워지더니 김춘배가 나타났다. 모자에 안경까지 쓰고 있는 모습에 강우와 신원주가 실소를 흘렸다.

    “쟤 영화 개봉 아직 멀었지 않냐?”

    “내 말이. 저놈 나중에 조금 뜨고 나면 볼만하겠다.”

    두 사람이 킥킥대며 웃는 사이 김춘배가 도착했다. 한겨울임에도 멋들어진 옷을 입은 김춘배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안 춥냐? 너 그러다 영화 개봉 전에 얼어 죽어.”

    “스타는 추워도 견뎌야 해. 너희 영화제나 시상식 봤지? 춥다고 껴입고 오는 스타들 봤어? 지금부터 연습해 놓는 거야.”

    김춘배의 말에 강우와 신원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 사람은 또다시 기다림을 시작했다. 온몸을 강타하는 이른 추위에 김춘배가 슬쩍 강우와 신원주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온다.”

    김춘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쪽에서 남재식이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남재식은 바람이 불 때마다 비틀거리며 멈춰서고는 했다.

    “저거 콘셉트지?”

    김춘배의 물음에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쟤한테는 생존의 문제야.”

    “인정.”

    남재식이 친구들에게 다가와 손을 슬쩍 들었다.

    “안녕?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날밤을 까고 온 남재식이라고 해.”

    강우와 친구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남재식의 눈가에 핀 다크서클은 흡사 검은색을 칠해 놓은 듯했다.

    “피곤하면 그냥 집에 가서 쉬어라.”

    신원주가 걱정 반 담담한 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재식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꼭 참석해야 해.”

    남재식의 굳은 의지에 친구들이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미안! 조금 늦었다.”

    곰 같은 덩치의 박광웅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오고 있었다. 남재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졸음이 달아났다. 그리고는 박광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광웅아!”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놈이 왜 이래?’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바라보며 해답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알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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