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402)

쉽지 않네요.

탁자 위에 빈틈없이 먹을 것이 놓였다. 초밥부터 돈가스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강우의 맞은편에는 이재원과 이재중이 앉아있었다.

“강우야, 빨리 먹어. 배고프잖아.”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강우가 젓가락을 받아들자 두 사람이 기대하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의 젓가락이 탁자를 향해 전진했다.

“......”

“......”

이재원과 이재중이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이재원이 사 온 돈가스를 집어 먹었다.

“예쓰! 그럼 아직은 나지.”

“아아….”

승패의 희비가 엇갈리며 이재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재중은 아쉬운 듯 탄식을 뱉어냈다. 강우가 초밥도 집어 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두 사람 뭐 합니까?”

이재원과 이재중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대진 건설의 일로 수없이 부대끼며 지내온 결과였다.

“일단 우리도 먹자.”

이재중이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재원도 같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간단한 식사가 끝났다.

“그럼 이제 민자개발 사업 건은 이야기가 됐으니까 준비에 들어가야겠네요.”

“응, 대진 건설에서 주도적으로 용산역 민자사업 준비에 들어가면 돼.”

이재원은 강우의 제안대로 용산역 민자사업권을 따냈다. 경쟁사로 다른 대기업 건설사가 붙었지만, 대진 건설이 제시한 청사진과 조건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전에 미분양 건 전부 털어내야 하는데.”

이재중이 조금은 불안한 듯 말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랑 미팅 잡아놨어요.”

“오? 정말?”

이재중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강우는 대진 건설이 가지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와 주택들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바로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와 연계해 독립유공자와 취약계층에 주택을 공급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네, 서울시에서 독립유공자들이랑 다른 유공자들에게 임대주택 형식으로 전세를 주는 게 어떻냐는 제안에 크게 관심을 보였어요.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일반 다세대 주택도 대상에 포함해서 대상자 범위를 늘릴 수 있는 것이 주요했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정말 대단하다.”

이재중이 탄성을 뱉어냈다. 이재원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콧대를 세웠다.

“봤죠? 우리 강우가 나서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요?”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해결사 박강우인가?”

물론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에서 첫 제안에 부담을 느낀 것이 사실이었다. 비록 건설 원가와 다름없는 가격이었지만. 대진 건설이 가진 미분양 건들을 모두 인수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집행하기에는 정해진 예산이 문제였다. 하지만 강우가 또 해결책을 내놓았다.

“사단 법인에서 임대주택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어요.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의 예산에 부담을 덜어준 거죠.”

“대박이네! 대박이야.”

사단 법인 광복은 주거 개선 사업도 진행 중이었다. 그것을 뛰어넘어 임대주택을 민간 지원사업으로 선정해 운영한다면 더 많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었다.

“우리는 미분양 건 해결해서 좋고, 사단 법인은 유공자분들에게 집을 제공해서 좋고. 이게 바로 일거양득이네.”

이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일단 서울시부터 시작해서 대진 건설이 가진 전국의 미분양 주택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해요.”

“지방에는 미분양 주택의 숫자가 적어서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대진 건설의 미분양 주택을 처분한다면 그룹의 악성 채무는 모두 정리가 가능했다.

“하아~ 이제야 좀 숨을 돌리겠네. 내가 평생 생각도 해보지 않은 빚 생각에 잠 못 든 날이 얼마인 줄 아냐?”

“재중이 형, 하청업체들 미지급 공사대금부터 정리하는 거 잊지 마세요.”

강우의 당부에 이재중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누구 말이라고 내가 잊어먹겠어? 걱정하지 마.”

“하….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재원이 농담조로 중얼거렸다. 이재중이 이재원의 머리를 낚아채 헤드록을 걸며 말했다.

“야! 형 앞에서 말이 좀 그렇다?”

“아아! 그새 또 괴롭히는 겁니까?”

이재중이 움찔하며 팔을 풀었다. 이재원이 씩 웃자 이재중도 웃음을 터트렸다.

“용산역 개발사업 계획서는 제가 곧 보내드릴게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과 이재중의 눈이 기대감에 가득 찼다. 강우가 말로만 해준 설명으로도 엄청난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산역을 복합 문화단지로 거듭나게 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영화관에 쇼핑몰에 거기다가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인 이스포츠 전용 스타디움에.”

이재원이 몸을 살짝 떨었다. 여름의 끝 무렵에 개막한 스페이스 크레프트 프로리그는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대진 미디어의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리그 경기의 시청률도 대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용 스타디움까지 지어진다면 이스포츠는 흥행에 더욱 불이 붙을 게 분명했다.

“민자사업을 주관할 법인 만들고 나면 이스포츠 전용 스타디움 건설 계획도 발표하는 게 좋겠어요.”

“좋지. 지금도 프로팀 창단에 관심이 많은데 스타디움 건설 계획 발표하면 난리가 나겠어.”

이재원이 싱글벙글 웃었다. 대진 그룹의 모든 사업 계획들이 마치 톱니바퀴에 물린 듯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강우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었다.

“강우야, 쉬엄쉬엄 일해라. 너 쓰러지면 진짜 답 없다.”

강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강우의 체력을 걱정했다. 하지만 정말 강우는 멀쩡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며 성취감도 느끼고 있었다.

“네, 쉬엄쉬엄할게요.”

“보약이라도 한 채 해 먹여야지, 안 되겠네.”

이재중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이재원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좋네요. 형.”

“그 말은 죽어라 일만 시키겠다는 거 같은데요?”

강우의 농담에 이재원과 이재중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강우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두 사람 정말 한가한가 봐요?”

강우는 웃으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움찔했다.

“아…. 아니야! 엄청 바빠. 형, 가죠.”

“그래, 나도 처리할 게 엄청 많아.”

이재원과 이재중이 바람처럼 본부장실을 떠났다. 문을 나갔던 이재원이 다시 힐끔 머리를 내밀었다.

“강우야, 내일 학교에서 보자.”

“네.”

이재원이 씩 웃으며 사라졌다. 혼자 남은 강우가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덜컥.

늦은 밤. 강우가 집에 돌아왔다. 곧장 샤워하고 나온 강우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을 켰다. 채널을 몇 번 돌리자 대진 미디어의 케이블 채널이 나왔다.

-임요한 선수의 수송선이 적의 본진에 나타났습니다!-

-아아! 막을 수가 없어요! 큰일입니다!-

마침 프로리그 재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우가 멀뚱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한참 바라보았다. 프로리그 무패의 강팀. 화제의 중심에는 동양 레지스탕스가 있었다.

‘미래의 기억대로 요한이의 실력은 물론이고 스타성도 대박이었지.’

강우를 통해 미래에 사용된 빌드를 흡수한 임요한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강우가 아는 미래의 기억보다 빨리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스페이스 크래프트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었다.

‘다들 연습은 잘하고 있으려나?’

강우는 바빠지면서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미래의 기억을 통해 명장이라고 불릴 감독을 스카우트해 왔다.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선수들과 만날 시간이 애매해졌다. 선수들은 주로 밤에 연습하고 낮에는 취침하고는 했다.

“강우, 왔어?”

그때,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밥은?”

강우가 배를 쓰다듬었다. 이재원과 이재중이 사 온 음식의 양이 많았던 탓이다.

“먹었어요.”

“그래? 요새 매일 밖에서 사 먹어서 걱정이야.”

“괜찮아요. 좋은 거 먹었어요.”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참. 아빠 전화 왔었어. 집에 오면 연락 달라고 하더라.”

“그래요?”

강우가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띠띠. 띠띠.

강우가 능숙하게 번호를 눌러 국제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더니 덜컥 통화가 연결됐다.

-강우니?-

익숙한 듯 전화를 건 상대방을 알아보는 아버지였다. 강우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네, 저예요. 주무셨어요?”

-아니, 아빠 일하고 있었어.-

중국에 있는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일하고 계셨나 보다. 강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밤늦었는데 쉬시지 그러세요.”

-괜찮아. 하나도 안 피곤해. 걱정하지 마라.-

아버지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중국 법인에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직원을 보충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투자 때문에 바쁘신 거죠?”

-음…. 생각보다 투자할 회사의 경영자들이 보수적이야. 투자를 받는 것에 민감하더라고. 그래도 진오 형님 덕분에 잘 마무리되고 있다.-

역시 중국에서 위진오의 존재는 치트키 그 자체였다. 중앙 공산당에서 실력자로 부상하고 있는 위진오의 존재만으로도 상대방의 호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네, 다행이네요. 그리고 아버지 독립운동가분들 찾는 일은 잘돼 가고 있어요?”

강우가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중국에 남아있는 항일투사들과 후손들을 찾는 일이었다. 한국과는 사정이 달라 힘든 일이었지만 꼭 해내야만 했다.

-일단 각 시의 서기분들을 통해 수소문 중이야. 잘 알려진 분들이야 이미 연락을 했는데…. 다른 분들은 자료도 남아있지 않고, 연락처는 더더욱 알 수도 없고 그래.-

“쉽지 않네요. 그래도 시간을 가지고 꼭 한 분 한 분 찾아내요.”

-그래, 걱정하지 마라. 일하는 거만큼이나 신경 쓰고 있으니까.-

“네, 아버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시간 나면 양부님한테 전화 한 통 드려라. 할 말이 있다고 하시더라.-

아버지가 전화를 달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래요? 알겠어요. 내일 전화해 볼게요.”

-그래, 국제요금 많이 나오겠다. 또 통화하자.-

“네, 주무세요.”

강우와 아버지의 통화가 끝났다. 강우가 잠시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중국에 간 지도 벌써 몇 개월째였다. 상해와 중경 그리고 북경에서의 일을 모두 마친 아버지는 지금 길림성에 있었다. 중국 공산당에 임대받은 넓은 토지에 고추 농사를 시도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버지라면 해내실 거야.’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는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집에 들르시기는 했지만, 대부분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는 편이었다. 강우가 생각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형아…….”

인기척을 느낀 강용이가 몸을 뒤척이며 강우를 반겼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강용이의 옆에 누웠다. 이윽고 강용이가 쎄근쎄근 잠이 들었다.

“음냐…. 아빠.”

강용이가 아빠를 부르며 잠꼬대를 했다. 강우가 그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가 벽면에 걸려있는 달력을 힐끗 바라보았다.

‘기말고사 치르고 방학하면 중국에 한번 가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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