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174/402)
  • 강우야, 즐겨.

    부우웅.

    청와대 입구로 한 대의 고급 세단이 나타났다.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이 다가와 번호판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어디로인가 무전을 쳤다.

    스르륵.

    고급 세단이 청와대 앞에 멈춰 섰다. 주변에는 이미 여러 대의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덜컥.

    운전석 문이 열리고 익숙한 인물이 내렸다. 바로 이재원의 차를 운전하는 김 기사였다. 김 기사가 문을 열기도 전에 고급 세단 뒤쪽 양 문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내렸다. 두 사람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그림 같았다.

    “김 기사님, 근처 가서 식사도 하시고 푹 쉬고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 기사가 알겠다고 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차량에서 대기 중인 기사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김 기사를 바라보았다. 김 기사가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고는 씩 웃었다.

    “우리는 들어가 볼까?”

    “네.”

    강우와 이재원이 청와대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직원들이 다가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이재원 사장님과 박강우 이사님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직원이 손에 들고 있는 명단에 체크를 하며 말했다.

    “바로 연회장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직원이 다가와 두 사람을 연회장으로 안내했다. 이재원이 직원을 따라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는 두 번째니까 별로 안 떨리지?”

    “형 떨려요?”

    강우의 질문에 이재원이 무슨 소리냐는 듯했다.

    “내가? 어림도 없지.”

    “하여간 말은···.”

    두 사람의 대화에 앞장서던 직원이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듣던 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엄청 친밀하다고 생각하면서였다. 이윽고 두 사람이 청와대 안의 연회장에 도착했다. 안쪽에서는 은은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대통령님이 오시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우와 이재원이 살짝 인사를 하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웅성거리던 연회장의 안에는 젊은 경영인들과 재벌 2세들이 모여있었다.

    “뭐야? 이 일일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은.”

    이재원이 연회장 안을 보며 투덜거렸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어? 저 사람들 맞지?”

    “맞네. 맞아.”

    강우와 이재원의 등장에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은 연회장으로 퍼져나갔고, 곧 모든 시선이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쏟아졌다. 현재 강우와 이재원이 얼마나 주목받는 인물인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우린 저쪽에 가서 시간이나 보내자.”

    “네.”

    강우와 이재원이 연회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구석이라고 두 사람에게 쏠린 관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양복을 입은 젊은 사업가 한 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VC 소프트 김대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하였다. 남재식이 개발 중인 게임의 모든 권리를 사들일 때도 만나지는 못했던 김대진이었다.

    “사가신 게임은 잘 개발되고 있습니까?”

    김대진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강우가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아 팔았을 뿐이지, 사실 VC 소프트도 회사의 체질을 바꾸려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네,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아마 다음 달쯤 런칭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 벌써요? 대단합니다. 개발을 이어받아 완성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말이죠.”

    “개발자분들이 정말 고생하셨죠. 그리고 VC 소프트에서 통 크게 개발자분들까지 보내주신 덕분입니다.”

    김대진이 손을 황급히 저었다.

    “아닙니다. 다 대가를 치르고 데려가신 건데요.”

    말을 마친 김대진이 이재원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분이···.”

    “대진 그룹 이재원입니다.”

    이재원이 먼저 자신을 밝혔다. 순간 뿜어져 나오는 이재원의 카리스마에 김대진이 움찔했다.

    “안녕하십니까? VC 소프트 김대진 사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동생에게 게임 개발판권을 팔아주셨다니 고맙군요.”

    이재원의 말에 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김대진이 순간 부러운 눈빛이 되었다. 강우와 이재원의 스토리야 너무 잘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네, 이번에 이스포츠 프로리그를 개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부 강우에게서 나온 생각입니다. 저야 그냥 믿고 따라갔을 뿐이죠.”

    김대진이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강우가 이재원을 보며 픽 웃었다.

    “오늘 왜 이렇게 진지해요?”

    “내가? 아닌데? 원래 이런데?”

    강우에게는 예전처럼 장난스러운 이재원의 모습이었다. 김대진의 얼굴에 더욱더 부러움이 짙어졌다. 대진 그룹은 떠오르고 있는 신흥 재벌이라 볼 수 있었다. IMF의 위기를 남의 일인 것처럼 웃으며 넘겨버리더니 급속도로 그룹의 체질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교육과 문화 산업 그리고 김대진도 미래 산업이라 생각하는 온라인 사업의 강자였다.

    “아무튼, 오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서로 돕거나 협업을 할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강우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김대진에게 내밀었다. 동시에 이재원의 팔을 툭 하고 쳤다. 이재원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김대진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김대진이 강우와 이재원에게 명함을 하나씩 주었다. 명함 교환이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김대진은 더 곁에 있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이내 자리를 떠났다.

    “하···. 내가 이래서 이런 사교모임 같은 거 질색하는 거야. 저기 쟤네 표정 보이냐?”

    이재원이 낮게 말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강우의 시선이 이재원의 손끝을 향했다. 그곳에는 한눈에 봐도 알 것 같은 부류가 있었다. 여유로움과 거만함이 조금씩 섞인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일단의 무리였다.

    “아니, 오늘 초청한 사람들이 전부 젊은 사업가들 아니었나?”

    “그럴걸요?”

    강우와 이재원이 초대받은 오늘 청와대의 행사는 미래 산업을 주도할 청년 사업가들의 모임이었다. 대통령과 식사를 하고 간담회를 하며 미래 산업과 대한민국의 경제에 대해 논할 자리였다.

    “하긴···. 쟤네도 청년 사업가이긴 하니까. 나도 그렇고.”

    “형, 저 사람들이랑 형이랑 비교하면 제가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아···. 미안.”

    이재원이 씩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를 느낀 것일까? 뭉쳐있던 재벌 2세들의 시선이 잠시 이재원을 향해 머물렀다. 하지만 잠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 무리 중에서 한 명이 강우와 이재원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두 사람에게 다가온 사람은 젊은 남성은 이재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우가 힐끗 남성을 살폈다. 강우와 이재원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재원이 건조한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남성이 씩 웃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SJ 미디어 송경식입니다. 그룹에서 전략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강우와 이재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눈앞의 남성 송경식은 SJ 그룹 회장의 직계 아들이었다. 바로 이재원처럼 후계자라고 볼 수 있었다.

    “대진 그룹 이재원 사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 악수하였다. 마주 잡은 손에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대진 그룹과 SJ 그룹은 현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두 곳 모두 사업 영역이 겹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후계자인 송경식을 미디어 사업부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요즘 대진 그룹의 기세가 아주 무섭습니다. 저희는 기획단계에도 미치지 않은 사업들을 그렇게 빨리 치고 나가실 줄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회사에 제갈량 뺨치는 인재가 있어서 말이죠.”

    이재원의 말에 송경식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꽂혔다. 대진 그룹의 위기를 넘기게 하고 체질 개선의 선봉장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강우라는 것은 기업들 사이에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었다.

    “이제 스무 살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인재를 얻으셨군요.”

    송경식의 말에 이재원이 슬쩍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인재를 얻은 게 아닙니다. 저희가 역사에 남을 인재의 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죠.”

    “.....”

    이재원의 말에 송경식이 호기심이 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듣던 대로 두 분은 제 주변인들과는 정말 다른 분들이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두 분의 생각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저기 있는 사람들은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송경식이 한쪽에 몰려있는 재벌 2세들 쪽을 슬쩍 가리켰다. 사실 대진 그룹의 행보는 재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말이 나오고 있었다.

    ‘구조조정이 없는 회사 그룹 본사는 물론이고 계열사에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 협력사에도 정규직 고용을 권유하는 회사. 그야말로 자신들과는 대립점에 서 있는 회사겠지.’

    강우가 서늘한 눈빛으로 송경식을 바라보았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재벌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태들은 말해보아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강우와 이재원은 그런 관행과 악습에 맞서 싸우려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님 입장하십니다.”

    그때, 장내로 대통령의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송경식이 강우와 이재원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음···. 조금 느낌이 싸하네.”

    이재원이 멀어져 가는 송경식을 보며 말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만만치 않은 사람인 거 같아요. 앞으로 좀 고삐를 당겨야겠네요.”

    “그래, 강우야. 부탁한다.”

    이재원의 말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형은 뭐 하려고 나한테 다 떠넘길 뉘앙스죠?”

    “나야 네가 시키는 거 열심히 해야지. 우리 제갈량 님.”

    “하여간···.”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웃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웅성거리던 연회장이 일시에 침묵했다. 정권의 초반을 보내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IMF도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에 지지율도 높은 편이었다. 오늘 있을 간담회에서 나올 대통령의 말이 향후 몇 년간의 경제 발전 방향이 달려있음을 모두가 알았다.

    “다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대통령이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연회장에 준비된 원형 테이블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부터 대통령님과 여러 청년 사업가분들을 모시고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대통령님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허락받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뭐···. 뭐야?”

    사람들이 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자 대부분이 강우와 이재원이 나란히 앉은 곳으로 몰린 탓이었다.

    “후···. 오늘 조금 피곤하겠는데?”

    “형, 즐겨요.”

    이재원의 귓속말에 강우가 조용히 답했다. 이재원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대화를 나눌 주제인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연회장의 사람들은 집중한 채 대통령의 입을 주시했다. 그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사업 방향성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경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급격하게 방향성이 바뀌는 경향이 강하니까 말이야.’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동양 무역의 박강우 이사 혹시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의 첫 지목부터가 강우였다. 강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재원이 픽 웃으며 말했다.

    “강우야,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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