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402)
  • 그래도 집이 제일 좋네.

    타다닥. 타다닥.

    펜션 단지의 중앙공터에 커다란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에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닥불 앞에는 강우와 이재원이 앉아있었다.

    딸칵.

    이재원이 캔맥주를 뜯어 강우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오늘 알았다. 너 외계인 아닌 거.”

    이재원이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바나나보트를 타고 바다에 빠진 강우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런 강우를 박광웅이 간신히 구했다. 그런 강우의 모습에 이재원도 친구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가 바다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고요. 상어를 무서워하는 거지.”

    “야. 우리나라 바다에 상어가 어딨냐? 있어도 1년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인데.”

    “형, 상어 나오는 영화 안 봤죠?”

    “어.”

    강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한번 보고 말을 해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은 하네. 뭔데 박강우를 이렇게 덜덜 떨게 했는지.”

    “하아….”

    강우가 긴 숨을 뱉어냈다. 그때, 숙소에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다 같이 모여 진행했던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부모님들을 숙소로 모셔드리고 오는 것이었다.

    “왔냐? 다들 잘 들어가셨어?”

    “어, 오늘은 왠지 자리를 피해드려야 할 거 같은 분위기라.”

    김춘배의 농담에 친구들이 빵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연정호도 어린 동생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도 힘든데 셋은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시답지 않은 농담들을 끝내고 친구들이 강우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강용이는 쪼르르 달려와 강우와 이재원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강우와 이재원이 강용이를 동시에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야.”

    이윽고 이나은과 미나 그리고 박지혜도 합류했다. 이나은과 미나 그리고 박지혜가 나타나자 강용이와 연정우 연혜정이 쪼르르 그쪽으로 갔다.

    “누나! 우리랑 놀아요.”

    “우리 가서 불꽃놀이 또 해요.”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그래, 우리 가자. 강우야, 우리 갔다 올게.”

    “어, 저기 보면 폭죽 많이 있어. 상자째 가져가 놀아.”

    강원도에 있는 불꽃놀이를 전부 사주겠다던 이재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룻밤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의 폭죽이 한쪽에 쌓여있었다.

    “조심해. 터진다.”

    김춘배의 쓸데없는 농담에 친구들의 주먹과 발이 무차별적으로 날아들었다.

    “아아! 얼굴은 안 돼!”

    “뭐래? 네가 얼굴로 먹고사는 배우야?”

    친구들이 더욱 분노해 김춘배를 두들겼다. 그 모습에 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강우가 김춘배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진짜 괜찮냐? 한참 촬영 중일 텐데.”

    “괜찮아. 어차피 내 촬영분 얼마 안 돼서. 월요일까지 스케줄 없다.”

    “그럼 다행이고.”

    이재원이 궁금한 듯 물었다.

    “촬영은 할 만해?”

    “네, 형. 덕분에 아주 편하게 하고 있어요. 제가 스태프들에게 들었는데요 이런 촬영 환경은 여태껏 일하면서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다들 조금이라도 편하다면 다행이지.”

    강우와 이재원이 영화사와 계약을 맺으며 제안한 조건이 있었다. 바로 한국 영화의 극악한 촬영 환경 개선이었다. 특히 강우는 넉넉한 촬영 일정을 제시하고 스태프들의 임금 개선 그리고 환경 개선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

    “환경이 좋아져야 이쪽에 종사하려는 사람도 늘어날 거야. 한국 영화가 그동안 투자자들의 빠른 투자금 회수와 영화관 부족 문제로 빠르게 촬영을 했던 거니까. 그런 건 솔직히 사라져야지.”

    “그래, 강우 말이 맞지.”

    강우의 말에 이재원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배가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크…. 역시 내 친구 박강우답다.”

    “좋은 영화 기대하마.”

    강우의 응원에 김춘배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다들 영화가 잘될지 걱정들이기는 하더라고. 내용도 조금 민감하고 기존에 한국 영화에 없던 장르이기도 하고.”

    강우가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 그 영화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영화계가 달라질 거니까. 너는 분량이 적지만 어떻게든 대중들에게 너를 각인시킬지 생각 잘하고.”

    “알겠어. 걱정하지 마.”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캔맥주를 벌컥 마시며 눈앞의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강우야, 고맙다. 덕분에 좋은 추억도 만들고 머리도 식혔어.”

    박광웅이 강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강우가 박광웅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그래, 나도 같이 와서 즐거웠다.”

    연정호도 강우를 향해 말했다.

    “동생들이 너무 즐거웠나 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나도 서울 돌아가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래, 동생들 너무 좋아하더라. 다음에 또 한번 같이 놀러 가자. 강용이도 정우랑 혜정이 너무 좋아해.”

    “셋이 아주 좋아 죽더라.”

    강우가 고개를 끄덕인 후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남재식은 박지혜가 있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강우 픽하고 웃었다.

    ‘저러는 놈도 대단하고 그걸 전혀 눈치 못 채는 놈도 대단하네.’

    강우가 모닥불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싹 풀리는 듯했다.

    타다닥. 타다닥.

    한동안 장작 타는 소리와 맥주 마시는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숙소로 들어갔던 부모님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다시 나왔다.

    “다들 안 자고 있었구나? 우리도 좀 껴도 되지?”

    “당연하죠.”

    강우가 부모님들을 반기며 말했다. 그렇게 모닥불 주변이 금세 북적해졌다. 부모님들과 강우 그리고 친구들의 여행 마지막 날 밤이 저물어갔다.

    * * *

    치이익.

    강우의 아파트 단지에 관광버스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강우 가족이 내렸다. 강우가 버스 기사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조심히 운전해 돌아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버스 기사가 손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문이 닫히고 관광버스가 단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후아…. 진짜 끝났네.”

    강우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긴 숨을 뱉어냈다. 집에 도착해 내린 다른 가족들도 지금 강우와 같은 반응이었다. 2박 3일은 짧았지만, 모두를 끈끈하게 엮어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들어가자꾸나.”

    할아버지와 최준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특히 최준은 여행의 여운이 깊게 남은 듯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가족의 정을 진하게 느낀 것이다.

    “다들 잘 들어갔겠지?”

    “그럼요. 집에 들어가고 다들 전화도 왔어요.”

    강우의 말에 최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집에 왔구나.”

    할아버지와 최준이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다.

    덜컥.

    문이 열리고 강우 가족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집이 좋구먼. 그렇죠. 형님?”

    “맞아 집이 최고지.”

    어머니가 주방으로 가서 시원한 물을 가지고 와 두 분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물 드세요.”

    “고맙다.”

    강우는 거실의 한쪽으로 걸어가 에어컨을 틀었다. 후덥지근했던 집이 조금씩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강용이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짐 정리는 저랑 아버지가 할게요.”

    아버지와 강우는 여행 가방에서 짐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금세 정리가 끝났다.

    “강용아, 저녁 먹게 조금만 하고 나와.”

    “응!”

    강용이가 욕실에서 크게 답했다.

    “어멈아, 피곤할 텐데 대충 먹자꾸나.”

    “아니에요. 아버님, 강우랑 애들이 다 해서 하나도 안 피곤해요. 빨리 맛있는 밥 해드릴게요.”

    정적에 쌓여있던 집안에 금세 활기가 가득 찼다. 이윽고 가족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먹자꾸나.”

    식사가 시작되고 여행에서 있던 이야기가 오고 갔다. 출발할 때의 설렘도 여행지에서의 즐거움도 어느덧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갔다.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며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집 안을 쓱 둘러보았다.

    ‘난 그래도 집이 제일 좋네.’

    * * *

    다음 날 아침. 강우와 아버지가 사무실로 출근했다. 북적이던 사무실의 시선이 대번에 강우와 아버지에게 쏠렸다.

    “사장님!”

    “이사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을 반겼다. 황규범 부장이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반가워했다.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잘 다녀왔지. 회사에는 별일 없었지?”

    “금요일 하루 비우셨는데 아무 일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황규범 부장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황규범 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한성 푸드시스템을 비롯해 세 군데의 가공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두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오? 그래?”

    아버지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좋아. 회의실로 다들 모이라고 해.”

    “네, 사장님.”

    이윽고 회의실에 강우와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앞쪽으로는 황규범 부장을 비롯해 대리급 이상의 직원들이 모여있었다.

    “모두 열심히 일해줘서 회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이제 여름휴가 시즌도 끝났으니까 본격적으로 달려보자고.”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우렁찬 소리로 대답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활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이번 여름휴가에 지급된 보너스 덕분일 것이다.

    ‘웬만한 대기업 저리 가라 할 만큼 넉넉히 줬으니까 다들 좋아할 만하지.’

    강우는 회사 복지만큼은 대기업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이번 연도 안으로 라인 확장은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김 생산에 들어가도록 하자고.”

    “네, 사장님.”

    묵묵히 듣고 있던 강우가 김 사업 담당 파트장인 강종민 과장을 바라보았다.

    “생산할 김의 두께는 정했나요?

    강우의 질문에 강종민 과장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이사님, 그런데 가공업체에서 김 두께에 대해서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정말 한국에 유통되는 김처럼 얇게 만들어도 되냐고 말입니다.”

    “상관없어요. 예정대로 진행해주세요.”

    강종민 과장이 알겠다고 하며 말을 마쳤다. 지금 나온 이야기처럼 한국과 일본의 김을 생산하는 스타일은 달랐다. 일본의 김이 한국의 김보다 더 두꺼웠다. 처음에는 동양 무역도 일본에 수출할 김을 일본 스타일에 맞추어 생산하려 했다. 하지만 강우가 한국식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나중에는 일본 사람들도 점점 얇은 김에 익숙해져 간다.’

    생산 설비는 처음에 어떻게 세팅이 되느냐가 중요했다. 나중에 라인을 바꾸려면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니 말이다.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처음부터 한국식 얇은 김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강우 이사님 말이면 무조건 밀고 나가는 게 맞죠.”

    강종민 과장의 말에 회의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회의실의 끝 쪽에 앉아있는 대리 한 명이 슬쩍 손을 들었다.

    “저…. 이사님, 동양 레지스탕스에 광고 협찬 제의 들어온 업체 리스트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광고 협찬 제의가 많이 들어왔나요?”

    “네, 한 스무 곳 정도 됩니다. 그중에는 제법 큰 기업들도 있습니다.”

    “음….”

    이제 곧 프로리그가 개막한다. 지난번 시범경기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사방에서 광고 협찬 제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광고 들어온 업체들에는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저희는 광고 협찬은 안 받습니다.”

    강우의 선언에 말을 꺼낸 대리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업체들이 제시한 광고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우가 그런 대리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저희 동양 레지스탕스는 딱 몇 군데를 후원하는 의미에서 유니폼에 광고를 박아 넣을 겁니다.”

    강우의 말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미 강우에게 들어 알고 있는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다. 모두의 궁금증이 담긴 표정에 강우의 입이 열렸다.

    “일단 사단 법인 광복에서 협찬을 받을 겁니다. 매달 그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그분의 얼굴을 유니폼에 새겨 넣을 생각입니다. 그다음은 제가 생각한 게 있긴 합니다. 이건 아직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정식으로 협의가 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회의실 안이 탄성으로 가득 찼다. 역시 강우다운 생각이고 발상이었다. 황규범 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강우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만 보세요. 제 얼굴 뚫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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