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402)

상어가 나오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일찍 관광버스가 속초 해수욕장 앞에 도착했다.

“바다다!”

버스에서 제일 먼저 내린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가 백사장을 밟았다. 뒤를 이어 연정우와 연혜정이 버스에서 내려 강용이에게 달려갔다.

“강용아! 같이 가!”

“오빠!”

이번 여행을 통해 특히 친해진 세 아이였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해수욕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아이들의 뒤를 연정호가 따라갔다.

“야야! 먼저 가면 안 된다고.”

뒤를 이어 버스에서 차례대로 사람들이 내렸다. 모두 물놀이를 위한 간편한 복장들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관광버스는 근처의 주차장을 찾아 떠났다. 아버지가 확성기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여러분 해수욕장에 사람이 많아서 혼잡합니다. 흩어지지 않게 모두 이 깃발을 따라와 주세요.”

아버지의 품에서 익숙한 깃발이 나왔다. 깃발을 확인한 이재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최고십니다!”

강우가 긴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깃발에는 ‘강우 투어’라고 적혀있었다. 바로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사용했던 바로 그 깃발이었다.

“와~ 저게 바로 그 강우 투어 깃발인가?”

“오~ 한눈에 확 들어오는데?”

친구들이 한 명씩 지나가며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야, 나 저 깃발 들어보고 싶어.”

이나은은 호기심을 드러내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깃발을 받아 옆에 섰다. 이쯤 되니 강우도 그냥 웃어넘기기로 했다.

쏴아아- 쏴아아-

해변으로 도착하자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햇빛은 쨍쨍했고 하늘에는 갈매기도 날아다녔다. 황금빛을 내는 백사장을 적당히 메운 사람들은 딱 놀기 좋을 정도였다.

“와아~”

“좋네요. 바다.”

백사장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친구들은 또 바삐 움직였다. 먼저 친구들은 버스에서 먹을 것을 꺼내 날랐다. 그사이 강우와 이재원은 비치파라솔과 튜브를 빌리러 갔다.

“저기부터 저기까지 다 깔아주세요.”

이윽고 백사장에 비치파라솔이 펼쳐졌다. 준비해온 돗자리를 깔고 음식이 든 아이스박스도 놓았다.

“자 다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모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우르르 탈의실로 향했다. 할아버지들은 돗자리 위에 자리 잡고 앉으셨다. 친구들이 차에서 들고 온 바둑판이 돗자리 위에 놓였다.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할아버지의 말에 최준과 하루오 그리고 기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장 위에서 대국이 시작됐다. 그사이 사람들이 하나둘씩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기 시작했다.

“다 모이셨죠? 준비 운동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나은 아버지가 앞으로 나왔다. 군인 출신인 나은 아버지가 날카로운 눈빛을 지으며 입에 호각을 물었다.

“지금부터 물놀이 전에 간단한 체조를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국민체조 아시죠?”

나은 아버지의 말에 모두가 잘 안다고 대답했다. 나은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했다.

“지금부터 제 신호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겠습니다.”

삑- 삑-

나은 아버지의 절도 있는 호각 소리와 함께 무려 3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국민체조를 시작했다. 그 장엄한 광경에 바닷가의 시선이 대번에 쏠렸다. 강우와 친구들은 터질 듯 붉어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묵묵히 체조했다.

“아빠….”

이나은은 강우의 뒤에 숨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체조에 임했다. 강용이와 연정우 연혜정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방방 뛰며 열심히 체조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체조를 하니 몸에 열기가 나며 땀이 흘렀다.

“지금부터 물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안전사고에 주의하시고요. 특히 박강용, 연정우, 연혜정 삼인방은 꼭 형이랑 오빠들한테 붙어 다니거나 부모님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도록.”

아버지의 입수 허락과 동시에 친구들이 괴성을 지르며 바다로 뛰어갔다.

“나도 같이 가자아아!”

그 뒤를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갔다. 연정우와 연혜정도 질세라 튜브를 들고는 질주했다. 바닷물에 뛰어든 친구들이 수영하며 놀기 시작했다. 어린 동생들은 튜브에 올라타 해맑게 웃었다.

“하하하! 재밌다.”

특히 강용이는 형들 사이에서 아주 신이 났다. 튜브 위에서 발장구를 치며 세상 즐거운 표정이었다.

“강우야, 우리도 들어가서 놀자.”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은이 몸에 두르고 있던 비치타월을 풀었다. 순간 주변에 있던 다른 남성들의 시선이 대번에 쏠렸다. 여기저기서 탄성을 뱉어내기도 했다. 강우가 화들짝 놀라서는 다시 비치타월을 둘러주었다.

“안 되겠다. 우린 구경이나 하자.”

“강우야?”

강우의 과잉보호에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나은 아버지가 호각을 불며 주변의 남성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남성들의 시선이 비둘기처럼 흩어졌다.

“빨리 가자.”

이나은이 다시 수건을 벗어 던지며 강우를 끌어당겼다. 뭇 남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강우가 바닷물에 입수했다. 이나은은 튜브를 타고 강우가 끌어당기며 놀았다.

“강우야, 우리 조금 더 깊은 데로 가자. 수영도 잘하지?”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움찔했다. 조금 더 깊은 먼바다를 보자 안 좋은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나…. 나은아 잠깐만….”

“응? 왜 그래?”

이나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늘 용감하고 자신만만한 강우였다. 하지만 지금 강우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 상어가 나오지 않을까?”

“으응??”

이나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나은아,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깊은 바다는 진짜 무서워해서….”

“진짜? 우리 강우가 무서워하는 것도 있다고?”

이나은의 얼굴에 호기심이 짙어졌다. 완벽하기만 했던 남자친구의 허점이 오히려 반가웠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말이지…….”

강우가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 내가 여덟 살 때인가? 늦은 밤에 아버지랑 괴물 상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강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가 화장실 간 사이에 그 상어가 바다에서 나타나 보트를 박살 내고 사람들을 잡아먹는 걸 혼자 봤어. 그다음부터 상어 트라우마가 생겼지.”

“아…….”

강우의 진지한 표정에 이나은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강용이가 잠수를 한 채 두 손을 머리로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강우의 몸에 쿵 하고 부딪혔다.

“어흥~ 상어다.”

강우가 어이가 없어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강용이가 씩 웃었다.

“안 무서웠어?”

“무서웠겠냐?”

강우가 강용이를 허공으로 번쩍 들었다. 강용이가 살려달라며 아등바등했다. 강우가 힘껏 강용이를 집어 던졌다.

“우어어어!”

강용이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닷물에 박혔다. 그 모습에 주변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나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구 웃었다.

“하여간 강용이 못 말려.”

강용이가 날아가는 게 재밌어 보였나 보다.

“형, 나도 해달라요.”

“오빠, 나도요!”

연정우와 연혜정이 다가와 강우에게 졸랐다. 강우가 씩 웃더니 연정우와 연혜정을 동시에 번쩍 들었다.

“자! 간다!”

그리고는 힘껏 바다를 향해 집어 던졌다. 연정우와 연혜정이 공중을 가르며 마구 깔깔거렸다.

“우어어어!”

“꺄아아악!”

바닷물에 풍덩 빠진 두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즐겁다며 마구 웃었다. 강용이가 물살을 가르며 다가와 눈을 빛냈다.

“또 해줘. 또 해줘.”

강우가 씩 웃으며 다시 강용이를 집어 던졌다. 강용이가 허공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즐거워했다. 연정우와 연혜정도 질세라 줄을 섰다.

“얘들아, 강우 힘들어 그만해.”

연정호가 동생을 말렸다. 강우가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들을 열심히 집어던졌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주변에서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강우를 향해 몰려들었다.

“.......”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은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강우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가온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모두 강우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알겠어.”

강우가 차례로 아이들을 집어 던졌다. 아이들이 해맑아하며 바다로 입수했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강우를 향해 엄지를 척 하고 내밀었다.

“뭐야? 완전 워터파크네.”

“강우 저놈은 힘들지도 않나?”

물놀이를 하던 친구들이 지치지 않는 강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하나둘씩 강우를 향해서 모였다.

“우리도 놀아줄게.”

“그래, 애들이랑 놀아주자.”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친구들이 주변의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이나은과 박지혜 그리고 미나도 함께였다. 푸른 동해 위에 강우표 물놀이장이 개장했다. 강우와 친구들은 한참이나 물놀이를 즐겼다.

“으아……. 힘들다.”

“애들 체력이 장난이 아니라더니.”

잠시 후, 백사장에 강우와 친구들이 대자로 뻗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건장한 20대 장정들이 뻗어버렸다.

“이거 먹고 놀아.”

어머니와 김세아가 수박을 잘라 쟁반에 담아왔다. 강우와 친구들이 벌떡 일어나 쟁반을 받았다.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친구들이 수박을 하나씩 집었다. 아이스박스에 있던 수박은 시원함 그 자체였다. 친구들이 바닷가를 바라보며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이게 휴가지.”

“인정.”

바닷가로 불어오는 따가운듯한 바람에는 소금기가 묻어있었다.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와 햇볕 그리고 분위기에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스르륵 녹아내렸다.

“부모님들도 진짜 즐거워 보이고.”

강우가 멀리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부모님들을 보며 말했다. 부모님들도 일상을 내려놓고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야~ 난 우리 부모님이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박광웅이 팔을 들어 콧등을 훔쳤다. 연정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우리 엄마도.”

다른 친구들도 두 사람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늘 일상에 치여있는 부모님의 모습들만이 익숙했었다. 어릴 때는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크게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아직 어린 강우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지금 어른스러워진 상태였다.

“야, 우리 부모님들 단체로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그러자.”

“좋은 생각이네.”

강우와 친구들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들고 있는 수박을 서로에게 건배하듯 부딪혔다. 해수욕장은 뜨거웠고, 강우와 친구들의 의지도 불타올랐다.

“가자 해지기 전에 아주 뽕을 뽑자고.”

친구들이 바다를 향해 다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우가 픽 웃었다. 그리고는 괴성을 지르며 바다로 뛰어갔다.

부아아앙.

그때, 멀리서 굉음을 뿜어내며 모터보트가 지나갔다. 그 뒤로는 바나나 모양의 보트가 달려 있었다. 미친듯한 속도로 달리는 바나나보트 위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때?”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일제히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야, 우리 저거 타러 가자.”

“어? 어….”

강우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바나나보트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보트를 타면 먼바다로 나가야 하니 그게 문제였다.

“뭐야? 박강우, 너 지금 졸인 거야?”

이재원이 약점을 발견하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 아니거든요?”

“뭐야? 맞네. 얘들아, 잡아. 오늘 박강우 바나나보트 태우고 만다.”

친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강우가 비명을 지르며 물 밖으로 도망쳤다. 잠시 후.

부아아앙-

“으아!”

애처로운 강우의 비명이 바닷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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