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402)
  • 이왕 놀 거면 제대로 놀아야지.

    부우웅.

    멀리 설악산의 봉우리들이 자태를 드러냈다. 달리는 관광버스의 주변으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버스 안의 분위기는 설렘이 가득했다. 평소에도 모임을 자주 가지며 만나던 강우 부모님과 친구 부모님들이었다.

    “아니 이번 여행 정말 특별한 경험인 거 같아요. 언제 이렇게 다 모여서 여행을 오겠어요?”

    “그러니까요. 강우가 이번에 진짜 좋은 아이디어를 낸 거 같아요.”

    친구 어머니들의 칭찬에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다들 시간을 맞춰주느라 힘들었잖아요. 이렇게 참석들 해줘서 정말 고맙죠.”

    “우리 다음부터는 정식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매번 이렇게 여행 다녀요. 비용도 강우네만 부담할 게 아니라 계도 하나 만들고요.”

    어머니들이 본격적으로 나서 모임을 결성했다. 한편 아버지들은 따로 모여서 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식아, 그렇게 산을 좋아한다면서?”

    원주 아버지의 물음에 아버지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럼요 형님. 제가 젊었을 적에는 암벽등반 좀 했습니다. 저 히말라야 1차 원정대 선발 시험도 봤었어요.”

    아버지의 말에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럼 우리 이번 가을에는 와이프들은 단풍 여행 가라 그러고 우리끼리 등산 모임 한번 어때?”

    “좋습니다!”

    아버지가 대번에 좋다고 했다. 그리고 옆에 앉은 마사토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마사토도 밝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다 왔습니다.”

    버스 기사가 설악산 아래의 주차장에 들어서며 마이크로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이익.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이 강우 아버지를 선두로 설악산 케이블카로 이동했다.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끼리 어머니는 어머니들끼리였다. 강우와 친구들도 뭉쳐 다녔다. 강용이도 또래를 만나 신났다. 연정호의 어린 동생들이었다.

    “자자! 다들 표 끊어 오겠습니다.”

    아버지가 매표소로 가서 케이블카 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차례로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위로 올라갔다.

    “우아아아악!”

    케이블카를 탄 강용이가 비명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그 옆쪽으로는 연정호의 어린 동생들이 바짝 붙어있었다.

    “무서워?”

    그런 동생들을 강우와 친구들이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강용이가 강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 안 무섭다.”

    하지만 표정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이윽고 케이블카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름이지만 짙은 운무가 감싼 설악산의 봉우리들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오? 장난 아닌데?”

    강우와 친구들이 난간에 기대 경치를 감상했다. 강우의 옆에서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던 이재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 사람이 가끔 이렇게 쉬어 줘야 하는 건데 말이야.”

    “설악산 처음 와봐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뭐…. 설악산도 처음이고 사실 이렇게 가족 단위 여행은 처음이야.”

    “아…. 그렇겠네요.”

    이재원의 과거를 아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무튼, 나는 너 만나서 사람답게 사는 거 같아. 귀찮을 텐데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

    “귀찮기는요. 대신 협찬 든든히 받았잖아요?”

    여행에 쓰일 차량과 식자재는 모두 이재원이 통이 크게 준비한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밖에 없어서.”

    “또 또. 배부른 소리 한다.”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볼을 긁적였다. 강우가 이재원의 옆구리를 퍽 하고 쳤다.

    “경치나 감상해요. 형도 요즘 그룹 내부 정리하느라 머리 복잡할 텐데.”

    “그래 그러자.”

    이재원이 홀가분해진 얼굴로 경치를 감상했다. 강우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확성기에 대고 설악산 봉우리들의 특징과 얽힌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역시 산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아버지다웠다.

    “형아.”

    옆에 있던 강용이가 강우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조금은 무서운듯한 강용이를 강우가 토닥여 주었다. 이윽고 관람을 마친 일행이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은 내려오는 길에 있는 계곡에서 간단한 간식시간을 가졌다.

    “물놀이하자!”

    계곡에 도착하자 강용이와 연정호의 동생들이 잔뜩 신이 났다. 예약해놓은 가게의 평상에서 일행은 간식을 먹었다. 강우와 친구들도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으! 차가워.”

    이재원이 물에 발만 담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강우와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주쳤다. 강우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고 일제히 이재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어어? 하지 마!”

    이재원이 발버둥 쳐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순식간에 공중을 난 이재원이 계곡물에 입수했다.

    “다음은 강우 먼저! 지금이 아니면 못 빠트린다!”

    김춘배가 강우를 제압하자고 선동했다. 강우가 움찔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친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강우가 꿋꿋이 버텨냈다.

    “아오! 이 괴물 같은 놈아!!!”

    친구들이 강우의 힘에 낑낑대며 아우성을 쳤다. 그러자 지켜보던 박광웅이 참전했다.

    “어어어?”

    그제야 강우도 조금 버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육체적 능력이 강한 강우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때, 강우의 발목을 이재원이 낚아챘다.

    “억….”

    강우가 미끈하며 계곡물로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친구들이 한 명씩 계곡물에 던져졌다. 강우는 강용이를 등에 태우고 수영도 했다.

    “형아, 최고다!!”

    연정호의 동생들도 줄을 서서 강우의 등에 올라탔다. 찌는듯한 더위를 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펜션단지를 떠났던 관광버스가 돌아왔다. 버스에서 하나둘씩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이구~”

    먼저 할아버지와 최준 그리고 하루오와 기무라가 내렸다. 종일 이어진 여행으로 고단한 몸이었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재봉, 오늘 아주 좋은 구경을 했어.”

    “맞아. 한국 경치가 끝내주더군.”

    하루오와 기무라가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 평생에 자네들이랑 한국 여행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다 강우 덕분이지.”

    하루오가 마침 버스에서 내리는 강우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일상의 하루하루가 매우 바쁜 강우였다. 며칠 안 되는 휴가를 이렇게 많은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 그럼 이렇게 나서서 일을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지. 정말 강우는 그릇이 달라.”

    “허허….”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손자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재원이 강우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강우가 참 인복이 많은 거 같아.”

    그렇게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리고 가족별로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아버지는 확성기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자자! 여러분 빨리들 정비하고 마당으로 모이세요. 이어서 가족 오락관 시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다른 부모님들의 눈이 빛을 발했다. 여행 내내 아버지가 오늘 밤 있을 가족 오락관의 상품에 대해 홍보한 탓이었다. 이재원이 강우에게 다가와 작게 말했다.

    “아버지 완전 신이 나셨네. 직업을 잘못 찾으신 게 아닐까?”

    “나도 우리 아버지한테 저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강우와 이재원이 아버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잔뜩 상기된 아버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얘들아, 나 좀 도와줘라.”

    아버지가 강우와 친구들을 소집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모였다.

    “따라와 봐.”

    아버지가 관광버스의 짐칸으로 갔다.

    “이것 좀 설치하자.”

    짐칸에서 가족 오락관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우와 친구들이 멍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멋쩍게 웃었다.

    “이왕 놀 거면 제대로 놀아야지.”

    이윽고 펜션단지의 중앙에 작은 특설무대가 만들어졌다. 어설펐지만, 조명도 준비하고 풍선도 달고 하니 제법 태가 났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특별 MC를 자처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자자! 여러분 다 모이셨습니까? 강우야, 인원 점검해줘.”

    아버지의 말에 강우가 슬쩍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계수기로 인원 점검을 했다. 단체 여행에 참여한 모든 가족이 참가한 상태였다. 다만 연로한 어르신들은 숙소에 남았다. 아마도 바둑 삼매경일 것이었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다 모이니 정말 즐겁죠?”

    아버지의 확성기에서 잔뜩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품에서 준비된 수첩을 꺼냈다.

    “자 첫 번째 게임은 팀을 나눠서 하는 게임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강우와 친구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잔뜩 흥이 나서 즐거워했다. 강우가 그런 부모님들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 오늘 하루는 부모님들 하고 싶은 데로 다 맞춰드리자.’

    강우가 친구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강우의 눈빛을 읽은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은 강우와 이재원을 중심으로 나누어졌다.

    “하아….”

    강우는 원치 않았지만, 부모님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팀장이 되었다. 강우가 팀장이 되니 당연히 반대팀은 이재원이 팀장이 되는 분위기였다.

    “박강우, 오늘 드디어 너를 적으로 만나는구나.”

    이재원의 실없는 농담에 강우가 한숨을 쉬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이겨주죠.”

    “어림도 없지.”

    이게 뭐라고 강우와 이재원이 승부욕을 불태웠다.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리며 게임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준비한 게임은 부모님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시간 장수하는 아침 예능을 그대로 본떠온 게임들이었으니 말이다.

    “설악산!”

    “뭐? 서남수?”

    정확히 전달 안 되는 단어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한 명씩 전달이 이어질 때마다 달라지는 단어에 그야말로 대폭소 잔치였다

    “이번 게임의 승리는 강우팀!”

    헤드셋을 끼고 단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임에서는 강우네 팀이 이겼다. 그다음은 폭탄 풍선전달 게임이었다. 강우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의문이었다.

    “시작!”

    강우의 손에 시한폭탄이 올려졌다. 강우가 빠르게 주어진 미션을 수행했다. 시한폭탄이 옆으로 또 옆으로 이어졌다. 잘 전달되던 시한폭탄이 마사토의 손에 이르렀다.

    “하…. 한글 못 읽습니다.”

    마사토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모습이 웃겨 또 폭소가 터져 나왔다.

    퍼어엉!

    “으어억!”

    결국, 마사토의 손에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강우가 아쉬움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사토는 강우의 팀이었다.

    “자 다음 게임은….”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이 모여 게임을 즐기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바둑을 두던 할아버지들도 나와 즐겁게 구경을 할 정도였다.

    “오늘의 우승은 강우 팀입니다!”

    아버지가 강우팀의 승리를 선언했다. 강우가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승 상품으로는 백화점 상품권이 팀원들에게 주어졌다.

    “자~ 여러분 즐거우셨나요?”

    아버지의 말에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강우 친구들도 어느새 잔뜩 몰입해 게임을 즐겼다.

    “다들 더운 날씨에 고생들 했습니다. 이제 씻고 저녁 먹읍시다!”

    아버지의 말에 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와 친구들이 먼저 벌떡 일어나 커다란 야외 바비큐장으로 향했다. 여름 여행의 백미인 야외 바비큐 파티를 빼먹을 수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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