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402)

형아, 오늘 좀 힘들겠네.

딸랑.

부동산 문이 열리고 강우와 마사토가 들어섰다. 후끈한 부동산의 안쪽으로는 작은 선풍기 한 대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고 있던 부동산 중개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환한 표정으로 강우와 마사토에게 자리를 권했다.

“음료 좀 드릴까요?”

부동산 중개인이 선풍기를 강우와 마사토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오렌지 주스 주세요. 두 잔이요.”

역시 강우는 오렌지 주스를 달라고 했다. 이윽고 중개인이 오렌지 주스에 얼음까지 띄워서 강우와 마사토의 앞에 놓았다.

“집주인은요?”

“오늘 바빠서 못 온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마무리 지으면 됩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사토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꼼꼼한 스타일의 마사토가 약간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우가 잘 설명을 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사토가 한국에서 살 집의 계약이 완료됐다.

“됐습니다. 등기까지 끝나고 나면 이제 완전히 끝이네요.”

부동산 중개인의 표정은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여 있는 시기에 큰 계약을 하니 그럴만했다.

“그래도 요즘 거래가 조금 늘기는 했죠?”

강우의 질문에 부동산 중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집값이 많이 내려갔다고 하지만요 진짜 부자분들은 지금이 기회죠. 매물 나오는 대로 족족 사 가시는 사모님들도 계시고요. 여기 일본분은 진짜 잘 사신 겁니다. 지금 사면 나중에 큰 이익을 볼 거예요.”

부동산 중개인이 입술에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했다. 미래의 기억이 있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웃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부동산중개료까지 처리하고 강우와 마사토가 밖으로 나왔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강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마사토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좋군. 이제 진짜 한국 생활의 시작인가?”

“그러네요. 아주머니도 그렇고 미나도 호텔 생활 힘들 텐데 빨리 집 정리하고 한국 들어오라 해야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내일 한국에 온다.”

강우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자 마사토의 입에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루오 어르신도 같이 오시기로 했어.”

“네??”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우와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가려고 항공편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마사토가 씩 웃었다.

“하루오 어르신이 한국에 꼭 오고 싶다고 하셨다. 지난번 도쿄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그랬죠.”

강우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마사토가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어르신도 한국은 한번 와보셔야 하지 않겠니?”

“네, 맞아요.”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래서 아내랑 미나도 조금 앞당겨서 들어오라고 했지.”

“그래도 아저씨가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몸만 들어오면 되는데 그럴 거 없다. 어차피 내 짐은 이번에 다 가지고 오기도 했고.”

강우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사토와 가족은 일본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민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과 같았다. 마사토는 정들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오는 것이었다.

“아저씨, 제가 앞으로 더 잘 챙길게요. 한국에 오시면 우리 같이 즐겁게 살아요.”

“흠흠…. 그래.”

마사토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했다. 일본인인 마사토에게 이런 직설적인 표현은 낯설었을 것이다. 마사토가 이내 분위기를 전환하듯 밝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제 집에 들여놓을 것들을 좀 보러 갈까?”

“네, 그래요.”

강우와 마사토가 승합차를 타고 근처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을 채울 이것저것을 샀다. 강우는 최선을 다해 마사토와 가족을 위한 물건들을 골랐다.

* * *

김포 공항에 강우의 승합차가 나타났다. 승합차는 주차장에 멈춰 섰다. 사방이 뻥 뚫린 주차장에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드르륵.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내렸다. 아버지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날씨 참 덥네.”

“그러게요.”

강우와 아버지가 땀을 쓱 닦았다. 그때, 뒷문이 열리고 마사토와 할아버지가 내렸다. 시원한 모시옷을 입은 할아버지는 멋들어진 중절모까지 쓰고 있었다. 지팡이로 땅을 짚은 할아버지가 ‘끙~’하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괜찮다. 우리 강우가 워낙 운전을 잘해야지.”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 남았지?”

아버지가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답했다.

“네, 이제 막 착륙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자. 아버지, 같이 가세요!”

아버지가 저만치 걸어간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오랜 친우에게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보여줄 마음에 그런 것이다. 강우가 마사토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으세요?”

“좋지. 우리 가족이 다 들어오는 날인데.”

마사토도 씩 웃으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우가 멀리 보이는 김포 공항 국제선 청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언제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공항 나들이는 즐겁고 행복했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이윽고 강우가 가리킨 곳에서 하루오가 나왔다.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하루오!”

“오오! 재봉!”

하루오가 반가운 얼굴을 하며 할아버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놀라운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기무라, 자네까지 온 거야?”

“이 사람이. 그럼 나만 빼고 둘이 뭐 하려고 그랬나?”

커다란 덩치에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기무라가 하루오의 옆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크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집으로 친구를 초대한 아이처럼 기뻐했다.

“잘 왔어. 잘 왔어.”

할아버지가 기뻐하자 하루오와 기무라도 덩달아 웃음꽃이 피었다. 이윽고 마사토의 얼굴도 대번에 밝아졌다.

“료코! 미나야!”

마사토의 아내인 료코와 딸 미나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사토가 한걸음에 달려가 두 사람의 짐을 나누어 들었다.

“오는데 불편한 거 없었지?”

마사토의 질문에 료코가 싱긋 웃었다.

“그럼요. 어르신들이 비즈니스석으로 끊어주셔서 편하게 왔어요.”

료코의 말에 마사토가 하루오와 기무라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어르신들 폐를 끼쳤습니다.”

“이 사람이 폐는 무슨….”

하루오가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손을 저었다. 친우와 가족들의 해후를 지켜보던 강우가 슬쩍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우를 발견한 하루오와 기무라가 동시에 강우의 손을 하나씩 나눠 잡았다.

“강우야, 잘 지냈지?”

“우리 강우가 아주 유명하던데?”

두 어르신의 격한 반응에 강우가 움찔했다. 그러자 하루오가 기무라를 나무랐다.

“이봐 기무라, 자네가 너무 억세게 팔을 잡으니 강우가 힘들어하지 않은가?”

“뭐야? 이봐 하루오 자네가 너무 부담스럽게 친근한 척을 하니 그런 거겠지.”

하루오와 기무라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다툼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나섰다.

“예끼! 이 사람들 내 손자한테 장난칠 거야?”

할아버지의 말에 하루오와 기무라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할아버지도 마주 웃으며 강우의 등을 쓰다듬었다.

“우리 금쪽같은 손자한테 한 번만 더 그래 봐. 일본으로 바로 돌려보낼 테야.”

“허…. 이 사람이 섭섭하게. 장난도 못 치나?”

하루오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기무라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자네 손자가 우리를 너무 늦게 초대해서 조금 서운해서 그랬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쿄에서 두 사람이 한국으로 초대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 사실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한동안 정신이 없었네요.”

강우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하루오와 기무라가 농담이라며 강우를 일으켜 세웠다.

“강우 상.”

하루오와 기무라와의 인사가 끝나자 미나가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미나를 보며 씩 웃었다.

“미나야, 오랜만이야.”

“네, 잘 지내셨나요? 그런데 강용이는 어디 있어요?”

대뜸 강용이를 찾는 미나였다. 일본에 갔을 때도 유독 강용이를 귀여워하던 미나였다. 아마 동생이 없는 외동딸이라 그런 듯했다.

“강용이는 집에 있어. 있다가 우리 집 가서 만나면 돼.”

“오늘 바로 강용 상의 집에 가나요?”

미나가 놀라운 듯 말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응, 가서 저녁 먹기로 했어. 어르신들도 전부 다.”

“와~ 좋아요.”

미니가 활짝 웃으며 좋다고 했다. 강우가 이번에는 료코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마워요. 강우 군.”

료코의 말에 강우가 재빨리 말했다.

“그냥 편하게 말해 주세요.”

“그럴까? 알겠어.”

료코가 대번에 알겠다고 했다.

“자자 이러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자.”

공항에서 대화가 끊어질 기미가 안 보이자 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교통정리를 했다. 그렇게 모두가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 * *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강우가 먼저 나타났다.

“엄마! 다들 오셨어요.”

주방 쪽이 부산스러워지더니 먼저 나타난 것은 강용이었다. 후다닥 달려 나온 강용이의 콧등에는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에 강우의 웃음이 터졌다.

“강용아, 너 코에 그게 뭐야?”

“어? 코에?”

강용이가 손으로 코를 쓱 닦았다. 그러자 얼굴에 밀가루가 더 묻으며 난리가 났다.

“에…. 에취!”

코에 밀가루가 들어갔는지 강용이가 재채기를 했다. 그러자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오며 강용이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니까 엄마가 한다니까.”

“내가 도울래요.”

강용이가 단호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러자 주방에서 김세아가 나왔다.

“언니, 우리 강용이가 참 효자예요.”

강우가 김세아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작은엄마, 안녕하세요.”

“그래, 강우 운전하느라 고생했어.”

김세아가 웃으며 강우를 반겼다. 김세아의 뒤를 이어서 이나은도 나타났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은아?”

“강우 왔어? 나 오늘 선배님이랑 연습 끝나고 같이 왔어.”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려고 세 명의 여자가 뭉친 것이다. 강우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형아, 미나 누나도 왔지?”

강용이가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어, 올라오고 있을 거야.”

강우가 신발을 벗고 들어와 거실에 교자상을 깔기 시작했다. 오늘 집에 오는 인원이 많아서 식탁에서 밥을 먹기는 무리였다.

딸칵. 딸칵.

강우가 교자상을 들고나오면 강용이가 잽싸게 상다리를 폈다. 그리고 나면 강우가 적당한 위치에 교자상을 놓았다. 호흡이 척척 맞는 형제의 활약이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 강용이가 또 바빠졌다.

“누구세요!!!”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미나 누나!”

며칠 동안 맹연습한 일본어로 강용이가 마구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 온 걸 축하한다느니 앞으로 잘 지내자느니 쉬지도 않고 말했다. 그런 강용이가 미나는 귀여워 죽겠나 보다.

“우리 강용이 보고 싶어서 누나가 이민 왔지.”

“진짜?”

강용이가 콧잔등을 훔치며 좋아했다. 그 사이 상에는 바쁘게 음식이 올라갔다. 김세아가 그릇 세팅을 하면 어머니가 음식을 담았다. 그리고 강우와 이나은이 음식을 날랐다.

“저도 도울게요.”

그 모습을 보던 미나가 돕겠다며 나섰다. 그러자 강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오늘은 손님이니까 가만히 있어.”

“그래도….”

곤란해하는 미나의 모습에 강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여기는 내 여자친구야. 이름은 이나은.”

강우가 이나은에게 말했다.

“나은아, 여기는 마사토 아저씨 딸 미나야.”

이나은과 미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닿았다. 말이 안 통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싱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용이가 강우에게 슬쩍 다가왔다.

“형아, 오늘 좀 힘들겠네.”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