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용산에 있는 한국 최초의 E-SPORTS 스타디움. 개관식을 앞둔 오늘 스타디움의 곳곳으로 많은 취재진도 있었다. 아직 E-SPORTS에 관한 관심보다는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강우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온다!”
기자 중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강우가 나타났다. 몇몇 직원들과 함께 오는 강우의 모습에 기자들이 작게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풍겨내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박강우 씨! 이번 E-SPORTS 리그를 본인이 계획하고 주도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과연 게임이 스포츠와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강우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E-SPORTS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앞서나가는 자가 많은 것을 얻겠죠.”
강우의 자신만만한 말에 기자들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은 뒤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기자들의 사진기가 마구 빛을 뿜어내며 강우를 찍기 시작했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개관식이 한창인 스타디움의 안쪽에서 직원 한 명이 뛰어왔다. 강우가 인사를 받아주며 물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이제 팀장님이 도착하셨으니 오늘 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강우가 개관을 앞둔 스타디움을 쓱 둘러보았다. 용산전자상가의 한 층을 전부 임대해 만든 임시 스타디움이었다. 사실은 근처의 건물을 통으로 사려고 했었다. 하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다른 곳에 크게 전용 건물을 짓던가 해야 하나.’
행사장에는 여러 사람이 와있었다. 대진 그룹에서 나온 임원들은 물론이고 정부 관계자도 있었다. 역시 현 정부는 IT산업에 관심이 많았고, 게임 산업도 넓은 의미에서 그 범주에 들어가니까 말이다.
“팀장님, 저분은 정부 부처에서 나오신 분입니다.”
직원이 정부 관계자를 힐끗 바라보며 작게 언급해 주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부 관계자를 바라보았다.
‘정부 관계자라면 문화관광부에서 나온 건가?’
강우가 추진 중인 대진 그룹의 사업들은 대부분 문화관광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우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정부 관계자에게 다가갔다. 정부 관계자가 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박강우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청와대 비서실 양현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양현민 비서관이 주변을 둘러보며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런 장소는 처음 봅니다. 이곳에서 선수들이 모여서 대회를 한다니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겁니다. 오늘 경기 관전하고 가시죠.”
양현민 비서관의 말대로였다. 스타디움은 방음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여러 방송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팬들을 위한 좌석도 준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미디어 존도 있었다. 기자들과 해설자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까지 진행되는 장소였다.
“오늘도 경기가 있습니까?”
양현민 비서관이 물었다.
“네, 오늘은 제 회사 팀과 대진 그룹 팀 간의 시범 경기가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이거 좋은 구경 하게 생겼습니다.”
양현민 비서관이 크게 관심을 드러냈다.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양현민 비서관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크레프트의 인기를 방증하듯 게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일단 개관식 행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이윽고 개관식이 시작됐다. 많은 관계자의 관심과 의심의 섞인 시선 속에서 커팅식이 끝나고 한국 최초의 E-SPORTS 스타디움이 그 탄생을 알렸다. 이윽고 관중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오···. 저렇게들 많이 찾아온 겁니까?”
강우의 옆에 앉은 양현민 비서관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넓은 스타디움으로 수많은 관중이 찾아온 것이다. 연령대도 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 다양했고, 남녀 성별 비율도 비슷했다.
“앞으로 점점 더 화제가 될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이런 문화 콘텐츠나 IT 쪽의 사업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중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스타디움의 무대 뒤에서 E-SPORTS 최초의 캐스터를 맡을 인물이 나타났다. 강우가 미래의 기억으로 스카우트해온 아나운서 출신의 남성이었다.
‘저 사람이 없는 E-SPORTS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이름은 전우준으로 이제 막 방송사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한 인물이었다. 강우의 제안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따라와 주었다. 게임을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강우의 말에 크게 감동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전우준 캐스터가 스타디움의 중앙에 섰다. 아직은 어색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시 금세 중심을 잡고는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선수 입장이 시작됐다.
“꺄아악!”
여성 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타난 선수들은 바로 동양 레지스탕스의 선수들이었다. 선두에는 주장인 임요한이 있었다. 임요한이 잔뜩 찾아온 팬들을 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벌써 저렇게 인기가 있다니.’
하지만 지금의 현상에는 이유가 있었다. 강우는 대진 미디어의 케이블 방송을 통해 동양 레지스탕스와 대진 스타즈의 선수들을 홍보했다. 지금 예능에서 유행하는 시트콤 형식과는 다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선수들의 숙소와 개개인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제법 큰 관심을 얻었다.
‘그중에서 요한이랑 인호 그리고 뷔욤의 인기가 아주 최고라지.’
강우가 슬쩍 상대방 팀을 바라보았다. 이재원이 강우에게 질 수 없다며 큰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들이 보였다. 그 면면도 강우의 기억 속에 있는 유명 선수들이었다.
“지금 프로팀은 몇 개나 창단된 상태입니까?”
양현민 비서관이 강우에게 물었다.
“지금 대기업을 후원사로 하는 게임단이 두 개가 더 창단됐습니다. 그리고 다른 게임단들도 프로리그에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대기업들까지 팀 창단을 한 상태라니요.”
강우가 주변에 가득 찬 관중들을 쓱 보며 말했다.
“보시는 것처럼 젊은 층과 중장년층 그리고 남녀의 구분 없이 인기를 끌게 될 거니까요. 이만큼 홍보 효과를 노리기 좋은 사업도 없죠.”
“대단합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계신다니요.”
강우가 씩 웃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팀들이 늘어나다 보면 중간에서 중재하거나 선수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도 존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다운 물음이었다.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준비 중입니다.”
강우의 답에 양현민 비서관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협회라는 게 이권이 개입하다 보면 잡음이 생기는 법인데···.”
“그래서 저는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진심으로 일할 수 있는 분들을 모아 협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우의 단호한 답에 양현민 비서관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강우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했다. 역시 듣던 대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포스를 뿜어내는 강우라고 생각했다.
“역시 소문대로 일 처리가 꼼꼼하고 대단하십니다.”
“네, 이왕 시작할 거면 제대로 나서는 스타일이라서요.”
그 말을 끝으로 강우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한국e스포츠협회라는 단체가 내년쯤 생겨난다. 하지만 잡음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강우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정말 공정하고 선수들을 위한 단체 그리고 E-SPORTS의 미래를 위한 단체로 만들어야지.’
강우가 초대 협회장으로 정해놓은 인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선수소개가 끝나고 후원하는 기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끝났다. 스타디움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갔다.
-지금부터 스페이스 크레프트 시범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전우준 캐스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와!-
-우오오오!-
관중들의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국 E-SPORTS 역사의 시작이 될, 스페이스 크레프트 시범 경기가 시작됐다.
“저는 그럼 선수 대기실에 좀 가보겠습니다.”
경기 시작과 함께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경기는 안 보십니까?”
“제가 팀의 감독이라서요. 대기실 가서 선수들이랑 같이 보겠습니다.”
양현민 비서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가지고 있는 직함이 한두 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구단주에 감독의 역할까지 하다니 정말 강우의 몸이 열 개라도 되나 싶었다.
“그럼, 경기 끝나고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꼭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우가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 * *
덜컥.
선수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강우가 나타났다. 환한 표정의 강우를 선수들이 반겨줬다.
“감독님!”
“다들 긴장한 표정들은 아니네?”
강우가 질문에 선수들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이래 봬도 예능프로그램까지 찍었지 않습니까? 긴장은커녕 너무 기대 중입니다.”
“그래, 좋네. 그런 자신감으로 오늘 이기는 거다?”
선수들이 당연히 이기겠다며 크게 답했다. 강우가 슬쩍 웃으며 선수들의 옆으로 앉았다. 첫 경기는 팀의 주장인 임요한이 출격했다. 역사적인 프로리그의 첫 경기를 임요한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강우의 선택이었다. 상대 선수는 지금보다는 나중에 유명세를 치르는 사이버 토스 종족을 다루는 선수였다.
‘재원이 형도 좋은 선수를 영입하긴 했지.’
모두 강우의 언질을 받아서였다.
“시작했다!”
선수들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대기실에 설치된 중계용 모니터를 가리켰다. 경기가 시작되자 임요한 특유의 빌드가 시작됐다. 빠르게 병력을 뽑아 적진을 압박하는 전술이었다. 임요한의 신기에 가까운 유닛 컨트롤이 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우와!!!”
선수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일꾼까지 동원한 임요한의 병력이 적진에 침투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벙커를 짓고 적을 압박했다. 생각보다 빠른 공격 타이밍과 현란한 컨트롤에 상대 선수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이겼어!”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강우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적인 첫 경기의 승리자로 임요한의 이름이 영원히 남겨지게 될 순간이었다.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결과는 동양 레지스탕스의 승리였다.
“자 다들 인사하러 나가자.”
강우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갔다. 상대 팀 선수들도 모두 나온 상태였다. 선수들은 팬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강우는 프로리그의 성공을 확신했다.
“다들 수고했어. 오늘 첫 경기 했으니까 회식하자.”
대기실로 돌아온 강우가 선수들에게 말했다. 회식이라는 단어에 선수들이 크게 환호했다. 다만 미성년자가 많았기에 회식은 고기 파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똑똑.
그때, 대기실의 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강우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덜컥.
문이 열리고 양현민 비서관이 얼굴을 나타냈다. 강우가 문으로 다가갔다.
“대기실까지 직접 오셨네요.”
“네, 잠시···.”
양현민 비서관이 안쪽을 슬쩍 보다니 밖에서 이야기하자는 듯 말했다. 강우가 양현민 비서관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양현민 비서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께서 박강우 팀장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강우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공식적인 만남입니까? 아니면···.”
“공식적인 만남입니다. 팀장님 말고도 다른 몇몇 청년 사업가분들이랑 같이입니다.”
강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날짜가 잡히면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