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402)
  • 너무 오랜만에 빛을 봤어.

    탁탁. 타탁.

    반지하의 넓은 공간에 여러 대의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컴퓨터의 앞에는 퀭한 표정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남재식도 있었다.

    덜컥.

    그때. 반지하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우…. 환기 좀 하지.”

    찝찝한 사나이들의 냄새와 옅은 담배 냄새. 온갖 쓰레기들과 배달 음식들의 잔해가 널브러진 모습. 강우의 눈 앞에 펼쳐진 곳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왔냐….”

    강우의 등장에 남재식이 말라비틀어진 목소리로 반겼다.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지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작은 창문이 있었다.

    드르륵.

    강우가 창문을 열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왔다. 그러자 몇몇 개발자들이 빛을 피해 몸을 웅크렸다. 소파에 널브러져 자고 있던 개발자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신음까지 흘렸다.

    “아우! 진짜. 다들 일어나서 몸도 좀 풀고 그래요.”

    강우가 양손 가득 들린 간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려다 흠칫했다. 테이블 역시 난개발된 도시처럼 빈틈이 없었다. 강우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사무실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우야, 그냥 놔둬. 그거 어차피 또 똑같아져.”

    남재식이 강우를 말렸다.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픽 웃었다.

    “그럼 밥은 매일 왜 먹냐? 어차피 소화돼서 나오는데.”

    “오? 그러네.”

    남재식이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 정리를 끝낸 강우가 봉지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사방에서 의자를 드르륵 끌고는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좀비처럼 손을 뻗어 간식 봉지를 마구 해체하기 시작했다.

    “개발은 잘돼 가?”

    강우가 남재식을 향해 물었다. 남재식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온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며 남재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 다들 집중해서 하고 있다. 강우, 네 덕분에 엄청난 놈이 탄생할 거 같거든.”

    “그래?”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다시 살폈다. 반지하지만 넓은 사무실이었다. 재식 아버지가 투자한 자금으로 얻은 사무실이었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재식이가 장비에 다 투자한 결과지.’

    남재식은 이곳에서 성공해 보란 듯이 큰 회사를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강우는 그런 남재식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남재식의 회사에 강우가 투자한 자금이 제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개발된 거 한번 볼래?”

    남재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축 처져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르륵.

    남재식이 한쪽에 있는 컴퓨터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실행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러자 화면 위로 아직은 초기 단계인 게임의 화면이 떠올랐다.

    “오? 벌써 이만큼이나 완성했어?”

    “어, 네가 게임의 전반적인 디렉팅을 해줘서 우리는 말 그대로 구현만 하면 됐으니까.”

    남재식의 말에 간식에 집중하던 개발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시원하게 뚫어주는 우리 강우 투자자님. 존경합니다.”

    “아예 이쪽으로 방향을 트시는 건 어떻습니까?”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보면 미래의 기억 속에서 강우는 개발자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진득하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솔깃한 제안이지만 거절하죠.”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개발자들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우가 씩 웃었다.

    “그래도. 여러분들의 고생 덕분에 많은 사람이 즐거워할 게임이 곧 세상에 태어날 겁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세요. 런칭하고 나면 고생한 만큼 두둑한 보너스도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개발자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일개 게임개발자를 치켜세워주는 투자자라니 보기 드문 일이었다. 남재식이 강우에게 게임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딸칵. 딸칵.

    강우가 마우스를 클릭하고 키보드를 누르며 게임을 해보았다. 아직 부족했지만, 강우가 원한 게임의 방향성은 제법 구현이 되어 있었다.

    “좋네. 잘 만들었어.”

    “그래 네가 꼭 9월 안에 런칭해야 한다고 해서 죽어라 철야를 했다.”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강우가 지금 보고 있는 게임은 대한민국을 주름잡았던 MMORPG였다. 강우가 IMF로 경영이 어려워진 제작사에서 개발자와 게임개발에 대한 권리를 모두 사들인 것이다. 물론 그 자금은 강우와 남재식의 자금이 동시에 들어갔다.

    ‘VC 소프트에서 다행히 게임의 가치를 크게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강우가 제시한 조간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VC 소프트 입장에서는 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법 큰 액수를 들였지만, 강우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다듬어지고 있는 게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었다.

    ‘게임도 게임이지만 대진 미디어의 대대적인 홍보도 함께 들어갈 테니까. 그 성공은 더 앞당겨질 거야.’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씩 웃었다.

    “잘했어.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꼭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원래도 성공한 게임이었다. 거기에 강우의 기억을 토대로 게임의 단점을 없애고 다른 게임의 장점을 추가한 상태였다.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나보다 카이네트에서 넘어온 개발자분들이 고생이 많았지.”

    “개발자분들 잘 챙겨드려. 저분들이 있어서 게임이 생명을 얻는 거니까.”

    강우의 말에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안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캐릭터를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지켜보자고. 미래의 기억처럼 우리에게 엄청난 돈을 안겨주는지….’

    * * *

    반지하 건물에서 강우와 남재식이 나왔다. 빛을 온몸으로 받은 남재식이 잔뜩 움츠러들며 침음성을 흘렸다.

    “으윽….”

    비틀거리는 남재식을 강우가 부축했다.

    “뭐야? 너 왜 그래?”

    “너무 오랜만에 빛을 봤어.”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무슨 뱀파이어냐? 빛 보면 가루 돼?”

    “어…. 그런 거 같아.”

    남재식이 자신의 상의를 슬쩍 걷었다. 앙상한 갈비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야? 그새 또 이만큼이나 빠졌어? 너 밥 안 챙겨 먹었어? 영양제는?”

    “챙겨 먹었어. 그런데도 쭉쭉 빠져.”

    남재식이 세상 잃은 표정을 지었다. 남재식이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강우의 눈물겨운 첩보 작전으로 알아낸 박지혜의 이상형 리스트 때문이었다.

    “너 지혜가 마른 남자 싫어한다고 했어. 안 했어?”

    강우의 다그침에 남재식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혜의 이상형은 친오빠인 박광웅처럼 건장한 체격의 남자라고 했다.

    “헬스는? 계속 갔어?”

    “그건….”

    남재식이 말을 얼버무렸다. 강우가 폭 한숨을 쉬었다. 개발 일정이 바빴으니 운동을 하러 못 간 것은 이해가 갔다. 강우가 남재식을 잡아끌었다.

    “가자. 일단 줄어든 살부터 보충하게.”

    “어어….”

    강우와 남재식이 근처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딸랑.

    강우와 남재식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우가 삼겹살을 잔뜩 시켰다. 그리고는 남재식을 보며 말했다.

    “오늘 음식이 죽든지 네가 죽든지 끝장을 보자고.”

    “그래 먹자.”

    남재식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주문한 삼겹살이 나왔다. 강우가 슬쩍 소주도 시켰다.

    “이모 소주 한 병 주세요.”

    “잔은 두 개 줄까요?”

    서빙 이모의 말에 남재식이 빠르게 답했다.

    “네! 두 개요,”

    “어?”

    강우가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남재식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동안 틈틈이 주량 늘리려고 노력 좀 했다.”

    “오? 진짜?”

    남재식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혜의 이상형 두 번째 파트는 바로 술을 어느 정도 마시는 남자였다. 남자가 술이 약한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강우가 남재식의 눈물겨운 순애보에 감탄을 뱉어냈다.

    “대단하다. 남자다. 우리 재식이.”

    “흠흠…. 나도 한다면 하는 남자라고.”

    치이익.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갔다. 강우가 남재식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강우의 얼굴에 약간의 불안감이 떠올랐다. 강우가 슬쩍 핸드폰을 꺼내 올려놓았다. 언제든지 119를 부를 만반의 준비였다.

    “진짜 준다.”

    “어.”

    소주가 따라지고 강우가 잔을 내밀었다. 남재식이 강우의 소주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크으….”

    “크….”

    두 사람이 동시에 미간을 좁혔다. 강우가 남재식의 앞에 익은 고기를 놓아주었다.

    “무리한 일정 맞추느라고 진짜 고생했어.”

    강우가 속에 담긴 말을 꺼냈다. 남재식이 슬쩍 강우를 바라보았다.

    “고맙기는 다 나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그리고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지.”

    “조금만 더 고생해라. 게임 발매하고 나면 꼭 성공할 거야.”

    “강우, 네 말이니까 꼭 그렇게 되겠지.”

    강우와 남재식이 삼겹살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남재식은 예전과는 달리 음식을 곧잘 먹었다. 꾸역꾸역 고기를 먹으며 소주까지 곁들였다.

    “소주에 삼겹살이 이렇게 죽이는 조합인 줄은 정말 몰랐다.”

    “그치? 죽여주지?”

    강우와 남재식은 한참이나 고기를 먹고 잔을 기울였다.

    “자금 부족하지는 않냐?”

    “아니, 충분해 그리고 모자라면 아버지한테 말하면 되지.”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식 아버지는 호언장담한 대로 정말 화끈하게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급하면 언제든지 말해.”

    “크…. 역시 우리 투자자님 통이 크셔.”

    남재식의 말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물었다.

    “행사는 잘하고 왔어?”

    “어, 아주 끝내줬지.”

    남재식이 고기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기획한 일이니 어련할까 싶었다.

    “다음에는 우리도 꼭 불러줘.”

    “그래? 와서 장기자랑 해야 하는데?”

    남재식이 흠칫하더니 결심한 눈빛을 지었다.

    “하면 되지 나도 어엿한 사단법인 광복의 후원자인데.”

    “네네~ 우리 후원자님.”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남재식을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사단법인에 후원했다. 각자가 가진 만큼 크고 작은 액수였다. 하지만 강우는 친구들의 마음에 감동했다. 자신과 뜻을 함께하겠다며 나선 친구들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였다.

    “밥 한 공기 더 먹을래?”

    강우의 기습질문에 남재식이 움찔했다. 강우가 대답을 듣지도 않고는 밥을 주문했다. 남재식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꾸역꾸역 밥을 다 먹었다.

    “정말 이러면 살찌지?”

    “아마도?”

    * * *

    부우웅.

    다음 날, 오후. 강우의 차 안에 남재식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어제저녁에 무려 소주 한 병을 마셔버린 남재식이었다. 자신만만해했던 것처럼 주량을 엄청나게 늘렸다. 이윽고 강우의 차량이 남재식의 집 앞에 도착했다.

    “재식아, 집에 다 왔다.”

    “응? 벌써?”

    남재식이 눈을 부스스 뜨며 뒤로 젖힌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어, 빨리 가서 어머니한테 세탁할 거 드리고 갈아입을 옷들 가지고 와.”

    “어어.”

    남재식이 차에서 내려 집으로 사라졌다. 강우가 기어를 P에 놓고 사이드까지 올렸다. 창문을 내리자 늦은 저녁의 바람이 스며들어왔다. 멀리 하늘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강우가 의자를 뒤로 당겼다.

    ‘느려터진 재식이니까 한참 걸리겠지.’

    그렇게 차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나은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강우가 100일 선물로 핸드폰을 선물해 가능했다. 통화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참 재밌었다.

    ‘아….’

    그 순간, 강우가 잊고 있었던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터넷 시대가 오며 젊은 연령대와 학생들을 강타했던 채팅 프로그램과 홈페이지 서비스였다.

    ‘게임개발도 개발이지만, 이것도 좋은 아이템이지.’

    강우가 남재식이 오면 빨리 이 정보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어?”

    남재식의 건물 앞으로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강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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