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402)

이런 대접 받아본 게 처음이에요.

늦은 밤. 콘도 앞으로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콘도에서의 행사가 모두 끝나고 이제 다시 각지로 흩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관광버스가 주차된 광장에는 여러 사람이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고 있었다. 하룻밤이었지만,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다들 아쉬운가 보구나.”

강우의 옆에서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준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룻밤 만에 정들이 많이 들은 게지. 우리처럼 말이야.”

지난밤 두 분도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동년배의 유공자들과 후손들이 격식 없이 어울린 덕분이었다.

“강우 너도 사람들 좀 사귄 거야?”

할아버지의 질문에 강우도 멋쩍게 웃었다. 강우와 비슷한 나이대의 후손들도 제법 많았다. 물론 강우처럼 3대째인 사람은 적었다.

“네, 친구들 많이 만들었어요.”

“그래그래. 잘했어.”

그때, 강우와 가족들의 주변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강우 가족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고마워요. 살면서 이런 대접 받아본 게 처음이에요.”

여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강우에게 다가와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었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시고요.”

부모님 연배의 사람들도 강우에게 다가왔다. 모두 이번 모임을 통해 많은 후손을 알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강우는 부드럽게 웃으며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조심히 가세요. 어려운 일 있으면 꼭 연락해주시고요.”

“그래, 고맙다 강우야.”

부모님과 동년배의 사람들이 강우를 고맙고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강우의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눈 강우가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내년에도 꼭 이런 행사를 하는 거죠?”

강용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강우의 옷소매를 잡으며 물었다. 강우가 무릎을 꿇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에 몇 번은 할 거야.”

“정말요? 그럼 그때도 이렇게 선물 많이 주실 거예요?”

“그래, 선물 많이 줄게.”

아이가 신이 나며 강우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희 선물 이렇게 많이 주면 강우 오빠 돈 없어서 어떡해요?”

“어?”

여자아이의 말에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용이가 ‘에헴!’ 하는 소리를 낸 뒤 입을 열었다.

“우리 형아가 돈 걱정은 하지 말랬어! 걱정하지 마!”

박력 있는 강용이의 모습에 여자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강용이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우의 입꼬리가 마구 실룩였다.

“그래, 알겠어. 강용아, 그럼 메일 보낼게.”

“응, 꼭 연락해.”

강용이와 여자아이가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때, 강우의 앞쪽으로 익숙한 사람이 다가왔다. 강우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할아버지!”

“강우야.”

얼마 전 봉사를 통해 만났던 김일국이 서 있었다. 김일국이 강우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강우야, 이번 모임은 정말 즐거웠다. 덕분에 이 늙은이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

“다행이에요. 아 그리고 집은 별일 없으세요?”

김일국의 집은 특히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었다. 이번 폭우로 큰 피해를 보았을까 걱정이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지. 그래도 괜찮다. 강우 네가 새집을 지어준다고 했으니까.”

“그럼요. 제가 튼튼한 집으로 지어드릴게요.”

김일국이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김일국이 할아버지와 최준을 바라보았다.

“두 분 형님들 그럼 건강히 지내십시오.”

할아버지와 최준보다 어린 김일국은 어느새 동생이 되어 있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아직 비 피해가 복구되지 않았을 텐데 조심히 가게.”

김일국이 두 분 할아버지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을 강우는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 명 한 명의 진심이 강우의 가슴에 와닿았다. 이윽고 관광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하나둘씩 떠나갔다. 강우 가족은 마지막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다 갔구나.”

“강우야, 고생 많았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강우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하룻밤을 푹 잔 강용이는 어느새 기력을 회복하고는 넓은 광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와 엄청 넓어!”

그때였다.

“아버지!”

모두가 떠난 광장으로 이재원이 달려왔다. 뒷정리를 도맡아 하고 이제야 온 것이다. 역시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재원다웠다.

“그래, 재원아. 고생했다.”

“아니에요. 저야 뭐 그냥 같이 하룻밤 놀았죠.”

이재원의 말에 할아버지와 최준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이재원을 보며 물었다.

“직원들이랑 하룻밤 더 보내고 가는 거죠?”

“어, 이렇게 다 모이기도 힘든데 그냥 바로 워크숍까지 하고 가기로 했다.”

“잘했어요. 다들 며칠 동안 진짜 고생했는데 잘 쉬다가 가라고 해야죠.”

“그래, 걱정하지 마라. 아주 왕같이 모시려고 준비했다.”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그래, 둘이 남아서 직원들 뒤풀이 잘해주고 올라와.”

“네, 아버지.”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답했다. 할아버지와 최준도 강우와 이재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어머니도 싱긋 웃어주었다.

“나도 있고 싶은데.”

강용이는 집에 가기 싫다며 시무룩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강용이의 몸을 슬쩍 끌어당겼다. 강용이가 바둥거리며 승합차에 태워졌다.

“그럼 우리 간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탔다. 강우와 이재원이 할아버지와 최준을 차에 태워드렸다. 창문이 내려지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손을 흔들었다.

부우웅.

승합차가 천천히 출발해 콘도를 벗어났다. 강우와 이재원은 한참이나 승합차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승합차가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이제 우리도 갈까?”

“네, 직원들 기다리겠네요.”

강우와 이재원이 콘도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밤 직원들과 함께 뜨거운 뒤풀이를 가졌다.

* * *

비가 멈추고 본격적인 수혜 복구가 시작됐다. 전국 곳곳에 사람들의 따듯한 손길이 닿았다. 사단법인 ‘광복’도 무척 바빠졌다.

“잘 내려가셨습니까? 정말이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 곧바로 지원이 나갈 겁니다.”

곳곳에 앉아있는 직원들 앞의 전화기가 불이 나고 있었다. 각지로 흩어진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빠 보였지만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가족과 통화하듯 정이 넘치는 말이 오고 갔다.

“인원을 좀 보충해야 하나?”

이사장실에 있던 이재원이 블라인드 너머를 힐끗 보며 말했다.

“보충은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점점 바빠질 테니까요.”

“그래, 직원들 바쁘게 일하면 힘들 테니까.”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깔끔하게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있는 강우의 맞은편으로 앉았다.

“이왕 뽑는 김에 좀 많이 뽑을게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너 또 뭐 계획하고 있는 게 있구나?”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그러자 이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어차피 재단은 너한테 운영을 맡긴 거니까.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앞으로는 소포 같은 거 보내시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다들 힘드신데.”

강우가 사무실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전국 곳곳에서 보내온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들 보냈는지 도착하는 시간도 비슷해 이렇게 쌓인 것이다.

“왜? 다들 정으로 보내주신 건데. 이렇게라도 응원하고 싶었나 보지.”

직원 몇 명이 오늘 도착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포장을 풀기 시작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농산물은 물론이고 소소한 선물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게요. 다 정이네요. 정.”

강우와 이재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똑똑.

그때, 직원 한 명이 이사장실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한 명의 남성이 들어왔다. 사단법인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무국장이었다. 이름은 강민준이었고 나이는 이제 사십 대 후반이 넘어가는 인물이었다.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네, 앉으세요. 사무국장님.”

강우가 자리를 권했다. 강민준 사무국장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준비해 온 서류철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본 분들의 주소지 명단입니다. 그리고 사단법인 광복에서 지급할 제1기 장학금 지원대상 명단도 있습니다.”

강우가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콘도에서 있었던 모임에 온 사람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모두 받아낸 상태였다. 그 명단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면담을 진행하고 필요한 부분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조사를 바탕으로 장학금의 용도와 액수를 정했다.

“좋네요. 이렇게 진행하면 되겠어요.”

“네, 감사님. 그런데 대상자가 조금 많습니다.”

사무국장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민준 사무국장은 비슷한 성격의 다른 사단법인에서 스카우트해온 사람이었다. 여러 경험에서 나온 걱정스러움이었다.

“음…. 사무국장님.”

강우가 강민준 사무국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감사님.”

“걱정하시는 부분이 어떤 점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 재단을 후원하시겠다는 후원자분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거 아시죠?”

강민준 사무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루에도 수천 명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럼 그분들이 주신만큼 정확하고 투명하게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어려운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을 도우라고 해주시는 후원이니까요. 우리는 받은 것의 두 배, 아니 세 배만큼 더 도와야 해요. 그러니까 앞으로 재단의 재정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

강우의 말에 강민준 사무국장의 얼굴에 감탄이 떠올랐다. 많은 재단에서 일해 보았지만, 이곳은 무언가 특별했다. 강민준 사무국장이 슬쩍 고개를 돌려 이사장실 밖을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선물을 뜯고 자기들 앞으로 온 편지를 읽으며 너무나 즐거워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어쩌면 이게 제대로 된 재단일지도 모른다.’

상념에 빠진 강민준 사무국장에게 강우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최대한 빨리 집행해주세요. 그리고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강우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강우는 최대한 많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감사님의 그 마음을 잘 이해했습니다. 앞으로 절대 어떤 잣대도 없이 사심도 없이 국민분들이 보내주신 후원 그리고 재단에 있는 재정을 투명하고 정당하게 사용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강민준 사무국장이 꾸벅 인사를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강우는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다. 그렇게 사무국장이 나가자 이재원이 씩 웃었다.

“그래, 강우야 잘했어. 사람 돕는데 이것저것 따지고 우리만의 잣대를 만드는 건 아니지.”

“맞아요. 무분별하게 나누어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이분들에게는 그러고 싶어요.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이재원 역시 강우의 마음과 같았다.

“우리 잘해보자.”

“네, 형.”

강우와 이재원이 동시에 씩 웃었다. 그때, 이재원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재식이는 잘돼 가고 있냐?”

강우가 씩 웃었다.

“어떤 거요? 게임개발이요? 청춘사업이요?”

“둘 다.”

이재원이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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