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402)
  • 이거 완전 슈퍼스타 저리 가라네.

    찌르르. 찌르르.

    깊은 밤 콘도 방의 테라스에 강우가 서 있었다. 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에 오늘 하루의 피로함이 싹 씻겨 나가는 듯했다.

    딸칵.

    강우가 손에 들린 캔맥주를 뜯었다. 하얀 거품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강우가 캔을 입에 가져다 대고 후루룩 마셨다. 시원한 맥주와 밤바람에 자동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강용이가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아직 어리니 피곤하겠지.’

    강용이는 최대한 버틴다고 고집을 부리다 결국 강우에게 업혀 잠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으니 그럴 만했다. 강우가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반대편 건물에 있는 강당에는 아직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아마 지금쯤 다들 모여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이었다. 전문 MC가 진행하는 레크리에이션에 경품도 푸짐했으니 말이다.

    ‘이런 시간을 좀 많이 가져야 할 텐데.’

    오늘 강당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했다. 강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뚜르르. 뚜르르.

    그때,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전화를 받았다.

    -강용이는 자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네, 지금 잠들었어요.”

    -엄마가 지금 올라갈게.-

    “아니에요. 제가 있을게요. 강용이 깨면 저 찾아요.”

    강우의 말에 어머니가 작게 웃었다. 강용이는 늘 강우와 함께 잠이 들고는 했다. 잠에서 깨면 분명 어머니가 아니라 강우를 찾을 것이다.

    -그래 알겠어. 그럼 쉬어.-

    “네, 엄마. 즐겁게 시간 보내세요.”

    -응, 오늘 분위기 너무 좋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강당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강우가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강우가 테라스에서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나.”

    이재원의 목소리였다. 강우가 덜컥 문을 열었다. 이재원이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이재원의 양손에는 캔맥주와 먹을 것이 들려있었다.

    “들어와요.”

    “강용이는?”

    강우가 씩 웃으며 침대를 가리켰다. 잠든 강용이를 바라보는 이재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귀염둥이 피곤하셨나 보네.”

    “하루 종일 열심히 돌아다니긴 했죠.”

    강우와 이재원이 테라스로 나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이재원이 테라스에 놓여있는 원형 테이블에 맥주와 먹을 것을 올려놓았다.

    “이야~ 이렇게 좋은 풍경을 혼자 보고 있었어?”

    “뭐···. 가끔 혼자 있는 시간도 좋긴 하죠.”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씩 웃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강우가 맥주캔 하나를 뜯어서 이재원 앞으로 밀어주었다.

    “땡큐.”

    이재원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며 물었다.

    “오늘 청와대 간 건 어땠어?”

    “나야 뭐 그냥 따라간 거고요.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셨죠. 오랜만에 옛 지인들도 만나고요.”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 만난 건 어땠어? 가까이서 보니까 어때?”

    “그냥 텔레비전에서 보던 대로에요. 알려진 그대로죠.”

    “그랬군.”

    강우가 맥주를 후루룩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말한 대로 정부에서는 IT업계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생각인 거 같더라고요.”

    “어? 정말? 그걸 오늘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했다고?”

    이재원이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오늘은 광복절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갑자기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할 리가 없지 않은가. 강우가 씩 웃었다.

    “아뇨. 뭐 발표하거나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건 아닌데요.”

    강우가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강우의 말을 모두 들은 이재원이 탄성을 뱉어냈다. 지금 대진 그룹은 체질개선 중이었다. 강우가 강조한 문화 산업과 IT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인프라를 늘려가고 있었다.

    “진짜 정부 정책이 IT업계에 쏠린다면 우리 그룹은 말 그대로 대박인 거지.”

    “조금만 기다려 봐요.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가지게 될 테니까.”

    강우의 말에 이재원의 입꼬리를 올렸다. 강우의 말대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하나같이 대박의 조짐을 보였다.

    “멀티플렉스는 곧 1호점 개관할 예정인데. 주변 관심이 심상치 않아.”

    “SJ에서 오픈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입소문을 타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빨리 경쟁대열에 참여해야죠.”

    “일단 우리 쪽이랑 계약한 영화들 라인업이 좋으니까. 승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멀티플렉스가 어떤 상점과 시설을 갖추고 있냐가 중요하지만, 결국 고객을 끌어당기는 건 콘텐츠인 영화니까요.”

    “맞아.”

    강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미래의 기억으로 흥행이 보장된 영화들의 배급을 독점했으니 말이다. 강우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대진 그룹을 문화산업의 선봉으로 내세울 생각이었다.

    “아무튼, 요즘 같아서는 아무 걱정이 없다.”

    “이제 전쟁 시작이에요. 원래 포성이 울리기 전의 새벽이 고요한 법이죠.”

    짧게 회사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반대편 건물로 향했다.

    “아···. 그리고 오늘 작성한 명단을 토대로 장학금 지급은 빠르게 끝낼 생각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후손 중에 혜택을 못 받는 연령대가 많더라고.”

    “맞아요. 나라에서 주는 혜택은 삼대까지가 끝이거든요.”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독립운동을 하셨다. 본인의 나이도 젊었을 적이었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삼대째인 강우가 이제 스무 살인 것이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역사는 길었다. 일제강점기 초창기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후손 중에는 이미 혜택을 받는 삼대째가 훌쩍 넘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아무런 혜택도 못 받는다고 하니 조금 안타깝더라고.”

    “문제는요. 그분들의 윗세대분들 중에서도 혜택을 못 받은 분들이 많다는 거죠.”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초창기에 소외된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이야기였다. 그분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국가가 지정한 삼대째를 넘겨버린 것이다.

    “법을 개정할 수는 없는 건가?”

    “힘들죠. 사실 우리 아버지 젊었을 때만 해도 아버지까지 혜택을 받는 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광복회 분들이 나서서 삼대째까지 바뀐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이재원이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제 우리가 하나씩 바꿔나가면 되죠. 그러려고 세운 사단법인이잖아요?”

    이재원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 참석한 분들부터 시작해서 할 게 참 많지.”

    “네, 할 게 많죠. 우리 돈 많이 벌어야 해요.”

    사단법인 광복은 오늘 참여한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에게도 생활지원금을 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낡은 집들을 모두 새로 수리해주고 폭우로 심하게 손상된 집들은 새로 지어주기도 할 것이었다.

    “돈 걱정하지 마. 요즘 네 덕분에 우리 그룹 매출이 얼마나 올라갔는데.”

    강우가 유명해지면 혜택을 본 것은 동양 무역뿐만이 아니었다. 강우의 의형제로 알려진 이재원이 있는 대진 그룹의 이미지도 엄청나게 좋아진 상태였다. 좋아진 그룹의 이미지는 곧 매출로 이어졌다. 정수기 렌탈은 물론이고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강의도 엄청난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요즘 회장님은 볼 때마다 은퇴 이야기 한다.”

    “그래요?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 쉬고 싶으신가 보죠.”

    이재원이 씩 웃었다.

    “회장님이? 아직도 팔팔한데? 그게 아니고 너랑 나한테 그룹을 맡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겠지.”

    “형이 후계자인데 나는 또 왜 언급이 되는 건가요?”

    강우의 질문에 이재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정말 몰라서 그러냐? 대진 그룹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실세 중의 실세가 누구냐?”

    “그게 누군데요?”

    강우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이재원이 안주로 가져온 땅콩을 들어 강우의 머리에 툭 던졌다. 강우가 잽싸게 날아오는 땅콩을 받아 입에 넣었다.

    “하? 그걸 또 받아?”

    이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한바탕 티격태격한 강우와 이재원이 서로를 보며 픽 웃었다. 이재원이 다시 강당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말이야. 내가 느낀 게 참 많다. 생각해보면 나도 막연히 존경한다, 대단한 일을 한 분들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분들이 어떻게 사는지 후손들은 어떤 상황인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거든.”

    “당연하죠. 다들 자기 일이 바쁘니까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볼을 긁적였다. 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까. 우리 제대로 한번 바꿔보자. 형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그 말 무르기 없습니다?”

    “당연하지.”

    강우와 이재원의 맥주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우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 강우의 머리 위로 강용이가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고 있었다.

    “형아, 아침 해가 밝았다! 일어나야지.”

    강용이의 말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살짝 부여잡았다. 지난밤 이재원과 한 잔 두 잔 먹던 술이 조금 과했나 보다.

    “형은?”

    강우의 질문에 강용이가 옆 침대를 가리켰다. 이재원이 대자로 뻗어 잠들어 있었다. 강용이가 강우의 몸을 끙끙 끌어당겼다.

    “빨리, 엄마가 씻고 내려오래.”

    “알겠어.”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재원을 흔들어 깨웠다.

    “형! 일어나요.”

    “으으···.”

    이재원이 침음성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러자 강용이가 이재원의 몸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이재원이 ‘컥!’ 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강용이가 강우를 보며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말없이 웃으며 엄지를 들어주었다.

    띵.

    준비를 모두 마친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이재원이 로비로 내려왔다. 직원 몇 명이 강우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감사님, 아침 식사 준비됐습니다. 빨리 이동하시죠.”

    “아···. 네.”

    오늘은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오늘 저녁에 모든 행사가 종료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이재원이 직원의 안내로 식당에 들어섰다. 오늘의 아침은 특별히 준비한 최고급 뷔페였다. 식사하던 사람들이 세 사람을 알아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강우야!”

    한쪽에서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위치를 알렸다. 강우가 아버지가 있는 테이블로 빠르게 걸어갔다.

    “잘 잤니?”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의 옆자리를 보니 어머니는 음식을 가지러 간 듯했다. 아버지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푹 잤다. 역시 산이 최고지.”

    “네.”

    강우가 슬쩍 웃었다. 아버지는 산을 참 좋아했다. 일이 바쁜 요즘은 통 등산을 못 하고 계셨지만 말이다. 이렇게라도 산에 오니 좋은가 보다.

    “오신 김에 산에도 다녀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밥을 먹고 엄마랑 잠깐 갔다 오기로 했어.”

    아버지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그때, 음식을 가지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우리 아들들 왔어?”

    어머니의 접시에는 좋아하는 해산물이 가득했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들은요?”

    “응, 저기 별실에서 따로 모여 계셔.”

    식당의 한쪽에는 별실이 있었다. 그곳에 연세가 있는 분들끼리 따로 자리를 잡은 듯했다. 아무래도 뷔페식이면 왔다 갔다 힘들 테니 말이다.

    “배고프다. 우리도 가자.”

    강우와 강용이가 뷔페를 향해 다가갔다. 정말 신경을 썼는지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강용이는 또 신이 났다.

    “형아! 나 오늘 진짜 많이 먹는다?”

    “그래, 많이 먹어.”

    강용이가 까치발을 들더니 음식을 집으려 끙끙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강용이의 접시에 음식을 놓아주었다. 그때였다.

    “강우 학생, 이거 맛있어요.”

    중년의 여성이 강우에게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질세라 사방에서 강우와 강용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추천하며 먹어보라고 난리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힐끗 고개를 돌리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테이블에 음료가 가득 쌓여가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드세요.”

    “이거도요.”

    어린 학생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음료를 가져다주고는 꾸벅 인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강우와 강용이가 음식을 푸는 내내 사람들의 따듯한 관심을 받았다.

    “와···. 박강우, 박강용. 이거 완전 슈퍼스타 저리 가라네.”

    이재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강용이가 씩 웃으며 허리를 쭉 폈다. 이재원이 귀엽다며 양 볼을 꼬집었다. 그렇게 강우가 수많은 관심 속에 음식을 담고 자리로 돌아왔다. 주변의 시선이 온통 강우 가족을 향해 있었다. 그 따듯하고 정 넘치는 시선과 표정에 강우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식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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