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402)

막연히 생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늦은 밤. 구불구불 산을 넘어 강우의 승합차가 달리고 있었다. 강용이는 안개가 잔뜩 낀 도로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엄마, 우리 마치 이상한 나라로 가는 거 같아요.”

강용이의 말에 할아버지와 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가 강용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래서 무서워?”

강용이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형아가 운전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요.”

운전하던 강우가 씩 웃었다. 아버지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 와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최준에게도 조금만 참으시라고 말을 했다. 강우가 운전에 다시 집중했다. 미래의 기억과는 달리 강원도로 향하는 도로는 이렇게 구불구불 산길을 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승합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우웅,

목적지의 정문을 넘어가자 커다란 콘도 건물이 나타났다. 승합차는 부드럽게 달려 콘도의 주차장에 멈춰 섰다. 아버지가 조수석에 빠르게 내려 뒷문을 열었다.

드르륵.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할아버지와 최준이 승합차에서 내렸다. 어머니와 강용이도 차례대로 내렸다. 시원한 여름밤의 바람이 불어와 가족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지나갔다.

“와~ 바람 시원하다.”

강용이가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쏟아질 듯 하늘에 많았다. 강용이의 두 눈도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강용아, 그렇게 좋아?”

어머니가 다가와 강용이를 살짝 안았다. 강용이가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푹 묻었다.

“응응, 가족이 다 같이 오니까 너무 좋아.”

“엄마도.”

아버지가 어머니와 강용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강용이가 이번에는 콘도를 가리켰다.

“아빠, 저기 좀 보세요!”

아버지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콘도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컴컴한 밤이었지만, 건물의 조명을 받은 현수막의 내용은 한눈에 들어왔다.

-제1회 전국 광복 후손 모임.-

바람을 맞아 펄럭이는 현수막에 아버지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낀 듯했다. 그 기분은 금세 할아버지와 최준에게도 전해졌다. 두 할아버지는 콘도를 보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강우가 여기에 전부 초대한 거야? 한 명도 빠짐없이?”

“우리 강우가 통이 크구나. 암 그래야지.”

그때, 주차를 끝낸 강우가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콘도의 현수막을 보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오늘 있을 행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한 강우와 사단법인 광복의 직원들이었다.

“바람 많이 부네요. 빨리 들어가요.”

강우와 가족이 콘도로 향했다. 콘도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몇 명의 직원들이 강우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강우가 직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고생 많으세요.”

“아닙니다. 늦은 시간에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요. 가족들이랑 다 같이 와서 여행가는 기분으로 왔습니다.”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스르륵 웃었다. 강우의 가족 사랑은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강우가 슬쩍 콘도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서인가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와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한참 레크레이션 중입니다.”

“그래요? 다들 즐겁게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요,”

“너무들 즐거워하십니다. 그런데 감사님이 언제 오느냐고 성화들입니다. 빨리 가보셔야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강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저 먼저 갈 테니까 먼저 숙소 올라가세요.”

강우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도 빨리 짐 풀고 내려올게.”

강용이는 강우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난 형아랑 갈래.”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분 할아버지가 배정된 방으로 올라갔다. 강우가 강용이를 데리고 직원을 따라갔다. 커다란 강당으로 다가갈수록 환호 소리와 웃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감사님, 어떻게 바로 무대로 올라가시겠습니까?”

직원의 질문에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대요? 지금요?”

그러자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싸한 느낌에 등으로 식은땀이 흘렸다. 아까부터 언제 도착하냐고 계속 전화 온 인물이 있었다. 강우가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재원이 형이 뭐 꾸민 겁니까?”

“네? 꾸미다니요?”

직원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속을 작게 한숨을 쉬었다. 또 혼자서 강우를 골탕 먹일 무언가를 준비한 게 분명했다.

“어? 형아, 재원이 형이다.”

강용이가 강당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이재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재원이 형!”

강용이가 이재원을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이재원이 강용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우리 막둥이 오느라 안 힘들었어?”

“어, 우리 형아가 산길을 꼬불꼬불 막 이렇게 운전해서 편하게 왔어.”

“오구~ 그랬어?”

이재원이 강용이의 볼을 마구 비비적거렸다. 강용이도 싫지는 않은 듯 ‘헤헤~’ 웃으며 볼을 맡겼다. 강우가 이재원을 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형, 직원이 무대 이야기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을 좀 해주죠?”

“아? 그거~”

이재원이 목소리를 크게 높이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강우가 낮게 이재원을 불렀다.

“빨리 말해줘요.”

“아~ 별거 없어. 그냥 사람들이 하도 네 노래 듣고 싶다고 하길래.”

“그래서 밴드원들 불렀어요?”

강우가 단번에 눈치를 챘다. 이재원이 입고 있는 옷의 스타일은 축제 때 밴드가 입었던 것이었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하여간 눈치도 빨라요. 맞아, 밴드원들 와있어. 지금 무대 준비 중이니까 너도 빨리 옷부터 갈아입어라.”

“하···. 오자마자 밴드 공연이라니···.”

강우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직원이 슬쩍 다가오더니 강우에게 말했다.

“감사님, 의상은 저쪽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강우가 직원을 따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청와대 방문을 위해 입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댄디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이사장님도 그렇고 감사님도 참 훤칠하십니다.”

직원의 말에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옷을 갈아입은 강우가 이재원에게 합류했다. 강용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야~ 우리 형들 진짜 짱 멋있네.”

강용이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강당의 입구를 슬쩍 바라보았다.

“가죠.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봐요.”

“역시 화끈해.”

강우가 직원에게 강용이를 부탁했다.

“조금 있으면 제 가족이 내려올 겁니다. 그동안만 같이 있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형아 갔다 올게.”

“오케이! 렛츠 더 로큰롤!”

강용이가 어디서 봤는지 로커의 손 모양을 흉내 냈다. 그 모습에 강우와 이재원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혀를 삐죽 내밀더니 직원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용이가 들어서자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 뭐지?”

강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툭 쳤다.

“몰랐어? 강용이도 인기인이야.”

“그래요?”

몰랐던 동생의 인기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강우와 이재원이 강당의 안으로 들어섰다. 무대 위에서는 밴드 ‘이재원과 얼굴들’의 멤버들이 악기를 세팅하고 있었다. 강우가 손을 들어 밴드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선배님들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시고 고맙습니다.”

강우를 위해 먼 길을 찾아와준 밴드원들이었다. 강우가 고마움을 느꼈다. 밴드원들이 강우를 보며 반가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밴드 보컬이자 경영학과의 보물 박강우의 일인데 당연히 와야지.”

밴드 선배들이 강우를 반겼다. 강우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강당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강우를 알아본 유공자분들과 후손들이었다.

“강우야, 인사부터 해.”

이재원의 말에 강우가 마이크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강당 안을 가득 메웠다. 그 폭발적인 반응에 강우가 조금 얼떨떨할 정도였다.

“종일 너 기다렸어. 다들.”

이재원이 다가와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가 사람들을 쭉 살펴보고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미래의 기억 속 강우가 가끔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기회를 만들어보았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했었지···.’

그리고 미래가 아닌 지금 강우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강우가 조금 잠겨오는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부터 청와대 행사에 참여하느라 늦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달음에 달려오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워낙 구불구불해서요.-

강우의 말에 강당 안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음···. 어렸을 적부터 저는 막연히 생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강당 안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대단하고 훌륭한 다른 독립유공자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그리고 나처럼 그런 훌륭한 조상을 둔 후손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 말이죠.-

강당 안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의 말에 너무나 큰 공감을 받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왔을 겁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서로를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그 누구보다 진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또 우리는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서로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강우의 말에 몇몇 유공자분들이 고개를 떨궜다. 이미 작고한 유공자의 후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강우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제가 조금 바꿔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강우의 말에 강당 안으로 작은 열기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유공자분들이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고, 후손들은 옆 사람과 손을 잡으며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차근차근 하나씩 여러분과 함께 바꿔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첫 시작이 되겠죠.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강우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커다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 강우를 보는 이재원의 표정은 흐뭇함 그 자체였다. 밴드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강우를 향해 기립박수를 쳤다.

“우리 형아 최고다!!!”

무대 아래서 강용이가 크게 소리쳤다. 박수 소리에 묻힐 만도 했지만, 강우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히 들렸다. 강우가 강용이를 향해 엄지를 ‘척’ 하고 들었다. 강용이도 강우에게 엄지를 들어주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강당에 도착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분 할아버지가 강우를 감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부족하지만 다들 궁금하셨다던 제 노래 실력을 조금 보여드릴까 합니다.-

강우의 말에 ‘오오!’ 하는 감탄이 가득 차올랐다. 소문으로만 듣던 강우의 노래 솜씨를 직접 듣게 됐으니 말이다.

탁. 탁. 탁.

드럼 소리가 리드하고 기타가 울음을 토해냈다. 전주가 끝나고 강우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이어지자 강당 안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강우의 음악에 따라 좌우로 흔들었다.

“여보, 우리 아들 참 대단해요. 그렇죠?”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당 안의 사람들이 강우로 인해 모두 하나가 되어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말이야. 언제 저렇게 크게 성장했는지 모르겠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되는 밤이 깊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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