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402)

  • 언제 한번 시간을 내줄 수 있겠는가?






    펑. 퍼퍼펑.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오찬장에는 강우 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있었다. 모두 오늘 오찬에 초대받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었다.






    “형아, 대통령 할아버지는 언제 와?”






    강용이는 이제 플래시 샤워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응, 이제 오시겠지.”






    슬쩍 고개를 돌리자 할아버지와 최준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두 분의 곁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있었다. 아버지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고, 어머니는 늘 그렇듯 싱긋 웃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오찬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대통령님 오십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입구를 향해 돌아갔다. 오찬장의 입구가 열리고 대통령이 들어섰다. 그 옆에는 영부인도 함께 있었다.






    펑. 퍼펑.






    대통령이 주변을 향해 손을 흔들며 오찬장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독립유공자들과 악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앞으로 이동하던 대통령이 강우 가족의 테이블에 다다랐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이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특유의 말투와 무표정이었다. 할아버지와 최준도 담담히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박재봉입니다.”


    “최준입니다.”






    대통령이 두 할아버지와 악수하였다. 그리고는 힐끗 강우를 바라보았다. 대통령과 눈을 마주친 강우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자네가 박강우 군이군.”






    대통령의 말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듣던 대로 훤칠하게 잘생겼군.”






    대통령이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주변의 시선이 많은 탓이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하더니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렇게 오찬장의 앞쪽에 도착한 대통령이 강단 앞에 섰다. 그리고는 광복절 축사를 시작했다.






    -광복절을 맞이해 오늘 여러 독립운동가분과 유족분들을···.-






    엄숙한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오찬이 시작됐다. 입구에서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한정식이었다. 강용이는 양손으로 수저를 들고는 잔뜩 흥분했다.






    “형아, 온다!”


    “배 많이 고팠지?”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에 가서 밥을 먹는다며 아침에 물 한 잔만 마신 강용이었다. 강우 가족의 상위로 상차림이 시작됐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준비한 요리는 전통 한정식입니다. 부디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빙을 하는 직원의 말에 할아버지와 최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고생이 많습니다.”






    원형의 테이블 가득 먹을 것이 올라오고 식사가 시작됐다. 강우가 먹을 것을 집어 두 분 할아버지의 접시에 놓아 드렸다.






    “이거 좀 드세요.”






    강우의 행동을 보던 강용이가 허리를 쭉 빼더니 음식을 집었다. 그리고는 강우와 똑같이 두 분 할아버지의 접시에 놓아드렸다.






    “이것도 드세요!”






    할아버지와 최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흐뭇하게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강우가 입에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는 강용이를 보며 픽 웃었다.






    “어때? 맛있어?”






    강우의 질문에 강용이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강우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솔직히. 맛이 안 느껴져.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형아.”


    “아···.”






    강우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오찬장에 있었다.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들 그리고 청와대 직원들과 여러 관계자까지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음식 맛이 느껴질 리가 없지.’






    강우가 씩 웃으며 강용이를 다독여 주었다.






    “먹기 싫으면 조금만 먹어.”


    “아니야. 오늘 음식 먹어보고 친구들한테 이야기해 주기로 했단 말이야.”






    강용이가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음식을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우가 또 실소를 흘렸다. 오찬은 계속 이어졌다.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 잘 알려진 독립유공자들이었다.






    ‘그리고 광복회에 소속된 분들이기도 하지.’






    그렇게 식사가 이어지던 때였다.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우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쏠렸다. 수행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강우 가족의 테이블에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할아버지와 최준을 향해 물었다.






    “당연하지요. 어서 앉으십시오.”






    할아버지와 최준이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 대통령이 할아버지와 최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강우의 맞은편이기도 했다.






    “오늘 이렇게 두 분을 직접 뵈니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미안하다니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할아버지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대통령이 최준을 바라보았다.






    “진작 조국에 돌아오셨어야 했는데 저희 정부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내 마지막 여생을 이렇게 조국에서 보내게 됐으니 더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아직 최준의 서훈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훈처에서 곧 좋은 소식이 갈 겁니다. 최준 님의 공적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대통령과 최준이 미소를 지었다. 대통령과 두 분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말 대단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사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작은 무역회사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중소기업일 겁니다.”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난번 기자회견과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동양 무역에 관한 관심도 폭발하고 있었다.






    “앞으로 회사가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이 이번에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어르신을 모신다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또 아들들을 이렇게 의젓하게 키웠으니 이 시대의 참어머니로 손색이 없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그나저나 강우 군.”






    대통령이 강우를 불렀다. 조심스럽게 밥을 먹던 강우가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네?”


    “듣자 하니 전국에 있는 독립유공자분들과 유족분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게 자네라고 하더군?”






    강우가 폭우로 곤란한 독립유공자들과 후손들을 위해 콘도를 통째로 빌린 일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제가 감사로 있는 사단법인 광복에서 한 일입니다.”






    광복이라는 사단법인의 이름이 언급되자 주변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광복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1965년 세워진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독립유공자들과 후손이 세운 단체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단법인 광복의 출현은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였다.






    “정부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챙겨주어서 고맙군.”






    대통령이 강우를 보며 칭찬했다. 강우가 담담히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강우의 대답에 주변에서 작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오늘 초대받은 광복회 관계자들의 눈빛에는 짙은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닌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강우가 속으로 ‘자신을 조사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강우에게 돌발 질문을 던졌다.






    “미래의 일꾼에게 내 질문을 하나 하지.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라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변의 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광복절 오찬회장에서 뜻밖의 기삿거리가 터져 나오게 생긴 것이다. 강우가 잠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세상은 첨단기술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중에서 인프라가 부족한 우리나라가 투자할만한 분야는 바로 IT업계라고 생각합니다.”


    “오??”






    대통령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IMF를 극복하고 자신의 추진하려는 경제발전의 청사진과 똑같은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열려던 대통령이 꾹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광복절 행사 날이었다.






    “아주 훌륭한 견식을 가진 학생이로군요. 대한민국의 장래가 아주 밝습니다.”






    대통령이 강우를 칭찬하며 말을 마무리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기자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드르륵.






    “제가 너무 오래 있으면 식사에 방해가 될 거 같군요. 그럼.”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우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강우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강우에게서 시선을 거둔 대통령이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휴···. 살겠다.”






    옆에 있던 강용이가 긴 숨을 뱉어냈다. 대통령이 테이블에 온 순간부터 얼음처럼 있던 강용이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강용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저 먹자.”


    “응, 형아.”






    오찬은 금세 끝났다. 오찬이 끝나고 강우와 가족은 광복절 행사에도 참여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강우 가족이 다시 승합차로 돌아왔다.






    드르륵.






    차 문이 열리고 강용이와 어머니가 먼저 승합차에 올라탔다. 강우와 아버지가 두 분 할아버지가 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고맙다.”






    두 분 할아버지가 차에 올라탔다. 아버지가 조수석에 탔고, 강우는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강우가 운전석 문을 열고 타려는 순간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문을 잡은 채 시선을 돌렸다, 몇 명의 지긋한 노신사들이 승합차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우가 노신사들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저분들은 광복회 분들인데···.’






    특히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현 광복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분이었다. 젊어서부터 주변의 학우들과 독립운동을 하는 작은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던 분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우가 공손히 물었다. 눈앞의 인물들은 할아버지와 같은 독립투사들이었다. 존경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최준 님과 박재봉 님을 만나러 왔네.”






    광복회장의 말에 강우가 슬쩍 차 안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최준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두 분 할아버지가 차를 돌아 광복회장 앞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광복회장 권태복이라고 합니다.”






    광복회장이 두 분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박재봉입니다.”


    “나는 최준입니다.”






    권태복 회장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두 분을 직접 뵈니 참 기쁩니다.”






    그리고는 정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두 분 모두 광복회에 가입을 권유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권태복 회장의 말에 할아버지와 최준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최준이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그야말로 이심전심이었다.






    “과분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허어···.”






    권태복 회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저와 최준 형님은 사단법인 광복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광복회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아···. 그렇군요.”






    권태복 회장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음 목표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자네 나하고 할 이야기가 참 많을 거 같군. 언제 한번 시간을 내줄 수 있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강우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정중히 내밀었다. 권태복 회장이 명함을 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세.”






    그 말을 끝으로 광복회 인원들이 돌아갔다. 강우가 할아버지와 최준을 바라보았다.






    “정말 광복회에 가입 안 하셔도 괜찮으세요?”


    광복회에는 할아버지와 최준의 옛 동료들은 물론이고 지인들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우리는 너에게 모든 걸 맡긴 지 오래다.”


    “그럼 그럼.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위한 단체가 하나만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할아버지와 최준이 다시 승합차에 탔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무엇보다 든든한 천군만마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와 최준이었다.






    탁.






    강우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럼 다음 목적지로 출발할게요.”






    강용이가 신이 나서 ‘오케이!’를 외쳤다. 강우 가족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승합차를 출발시켰다. 다음 목적지는 강우가 오늘 초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위해 빌린 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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