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402)

그래 얼마면 되겠니?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강우가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뷔욤이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강우는 호텔에 가기 전에 근처의 백화점에 들렀다. 그리고 뷔욤에게 줄 기념품을 몇 개 샀다.

부우웅.

강우가 호텔에 도착했다. 대리주차를 맡기고 강우가 호텔의 로비에 들어섰다. 호텔 총지배인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이사님!”

“지배인님.”

강우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총지배인이 할아버지와 최준의 안부를 물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잘 계신다고 말해주었다. 총지배인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사실 호텔에서 오래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두 분은 연세가 있으시니, 솔직히 걱정되기는 했습니다.”

“지배인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계시는 동안 너무 편했다고들 하시는데요.”

“그런가요? 저도 두 분을 호텔에 모실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총지배인의 얼굴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언제 한번 모시고 놀러 오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꼭 미리 연락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실 준비를 하겠습니다.”

“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 뷔페가 있으니 언제 한번 외식을 하러 오겠다고 말을 보탰다. 총지배인이 싱글벙글 웃었다.

“제 손님은 일어나셨나요?”

“아닙니다. 저녁 늦게 관광을 조금 하고 싶다고 나가서는 새벽에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주무시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지금 연락해서 깨워드릴까요?”

강우가 힐끗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비행시간은 오후였으니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간단하게 오렌지 주스나 한잔하면서 기다려볼까?’

강우가 총지배인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조금 더 자게 놔두세요. 저는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깨우라고 할까요?”

“음…. 한 시간 뒤 정도요?”

“네, 프런트에 그렇게 지시해 놓겠습니다.”

총지배인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프런트로 향했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는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시켜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문이나 좀 볼까.’

강우가 카페에 준비된 신문을 가지고 왔다.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친 강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신문을 몇 장 넘기자 서울대 축제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서울대 축제를 지역 축제로 탈바꿈시키다.-

[서울대 3대 바보라는 이야기는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서울대 축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올해의 서울대 축제는 사뭇 달랐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그동안 지역사회와 연계한 축제인 녹두문화제를 계획해 왔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참여는 미미했다. 그렇게 녹두문화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서울대에 두 명의 히어로가 나타났다. 바로 경영학과 96학번 이재원과 98학번 박강우였다. 두 사람은 서울대 축제의 판을 다시 짜기로 했다……. 중략……. 그리하여 서울대 축제는 성공적인 막을 내렸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가히 최고의 지역문화제가 될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주로 음주와 가무로 점철된 다른 대학들의 축제가 본받을 만한 축제란 이런 것이 아닐까? 또한, 기업과 대학의 바람직한 협력의 예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기사의 자세한 내용을 읽은 강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강우가 읽은 신문뿐만이 아니었다. 뉴스에서도 서울대학의 축제에 대한 소식을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축제의 컨설팅을 담당한 대진 미디어에 아직 축제를 치르지 않은 다른 대학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들었다.

‘이거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효과인데.’

대진 미디어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이재원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강우는 슬쩍 창가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이제는 뷔욤을 깨워야 할 시간이었다. 강우가 남은 오렌지 주스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프런트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은 지금 막 일어나셨습니다.”

강우를 알아본 프런트의 직원이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은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스위트 룸이 있는 층에 도착한 강우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뷔욤이 머무는 방 앞에 섰다.

딩동.

벨을 누르자 안쪽에서 누구냐고 묻는 뷔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강우입니다.”

덜컥.

문이 열리고 약간은 피곤한 듯한 뷔욤의 모습이 나타났다. 뷔욤이 강우를 들어오라고 했다. 강우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여행용 캐리어가 그대로 열려있었다. 아직 짐도 정리하지 못했나 싶은 강우가 캐리어로 다가갔다.

‘아직 애는 애야.’

강우가 주변에 널브러진 옷들을 침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비행기 시간이 조금 촉박합니다. 빨리 준비해야 해요.”

“음…. 그게 말이죠.”

강우의 말에 뷔욤이 멋쩍게 웃었다.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무슨 일인가 했다. 뷔욤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어제저녁에 요한이랑 인호가 찾아왔습니다. 관광시켜 준다고 해서 나가서 여기저기 구경을 좀 다녔습니다.”

“아…. 그랬군요.”

말도 통하지 않았을 텐데 참 기특한 임요한과 홍인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가 자신이 사 온 기념품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캐나다 돌아가면 부모님이랑 동생 드리세요. 제가 오는 길에 조금 사봤습니다.”

“저…. 캐나다 안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강우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스르륵 몸을 돌려 뷔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뷔욤이 멋쩍게 웃었다.

“요한이랑 인호 참 좋은 사람들이더군요. 게임도 잘하고요. 두 사람이 같이 팀을 해보자고 얼마나 설득하던지 조금 감동했습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은 영어 못하지 않나요?”

“그냥 가지 말라고만 하더군요.”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말보다 몇 마디 말의 울림이 클 때가 있었다. 임요한과 홍인호는 짧은 시간 뷔욤과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인의 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제 밤새워 캐나다에 있는 부모님이랑 통화했습니다.”

“아…. 그래서 늦잠을….”

한국과 퀘벡의 시차는 무려 14시간이었다. 밤낮이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온 뷔욤은 밤새 부모님과 국제전화로 상의를 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제 결정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남아서 프로게이머로 경력을 쌓고 싶습니다. 그 팀이 바로 강우 씨가 만든 팀이었으면 좋겠고요. 아직 제게 제안한 계약은 유효하겠죠?”

강우가 씩 웃었다. 불감청 고소원이라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하죠. 동양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죄송합니다.”

뷔욤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차올랐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 미안하다는 말의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아…. 국제전화를 그렇게 오래요?”

체크아웃하던 강우가 허탈하게 웃었다. 밤새 국제전화를 이용한 뷔욤의 정산요금이 장난이 아니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뷔욤이 스르륵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정도 투자로 스페이스 크레프트의 초반 삼신기를 모두 모았으니 싸게 먹힌 거지 뭐.’

강우가 피식 웃으며 체크아웃을 마무리했다. 호텔을 나온 강우와 뷔욤이 순간 멈춰 섰다.

“그런데 저는 어디서 지냅니까?”

“아…. 그러네요.”

아직 숙소로 쓰일 곳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직원을 통해 용산 근처에 적당한 곳을 알아보라고 해 놓은 상태이기는 했다. 강우는 미래의 기억대로 용산에 E-SPORTS 경기장을 만들 생각이었다.

“일단 다시 들어가시죠.”

“네….”

강우와 뷔욤이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뷔욤의 숙소를 잡았다. 물론 이번에는 장기간 머물러도 부담이 없을 일반실로 구했다.

* * *

뷔욤의 일을 마무리한 강우가 강서구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오는 노래도 신났고, 강우의 기분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지이잉.

창문을 내리자 상쾌한 바람이 마구 밀려 들어왔다. 강우가 노랫소리를 더 키우고는 손으로 핸들을 툭툭 치며 박자를 맞췄다. 그렇게 막힘없이 달린 강우의 차는 곧 강서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오는 예전 동네의 모습에 강우가 차를 천천히 운전했다.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네.’

강우가 일부러 모교인 양서 고등학교 앞도 지나갔다. 주말인 모교 앞은 한산했다. 시간이 나면 학교도 한번 찾아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우가 운전하는 차는 모교를 지나 강우가 살던 오성맨션 앞에 도착했다. 약간은 어두워진 저녁이라 강우가 살던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

강우가 물끄러미 불 켜진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무언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는 참 다사다난했던 집이 아니던가. 강우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남재식의 집에 도착했다.

“강우야.”

건물의 앞에는 남재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강우가 창문 밖으로 물었다.

“주차는?”

“어, 저기다 해.”

남재식이 건물의 한쪽을 가리켰다. 강우가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그리고는 건물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총 5층짜리 건물이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큰 도로가 나와서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가자 아빠가 기다려.”

“잠깐만, 슈퍼 좀 들르자.”

“왜? 뭐 사게?”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재식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어, 주스라도 사서 들어가자.”

“됐어. 그냥 가.”

남재식이 대번에 손을 저었다. 강우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니까.”

“내가 안 괜찮아.”

강우가 근처의 슈퍼에 들렸다. 그리고 커다란 유리병에 든 선물용 오렌지 주스를 샀다. 강우의 취향을 듬뿍 담은 선물이었다. 강우와 남재식이 다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올라가자 우리 맨 위층에 살아.”

“어.”

조금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강우와 남재식이 계단을 오르자 5층으로 가는 길을 막은 철문이 보였다. 남재식이 품에서 열쇠를 꺼내 잠금을 풀었다. 철문을 지나 오층에 이르자 널찍한 현관이 나타났다.

“집 넓네.”

“오층을 우리가 다 쓰니까.”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픽 웃었다. 문득 친구들과의 아지트였던 골방이 떠올랐다.

“요즘도 골방에서 지내냐?”

“아니, 짐 다 올렸어. 요즘은 여기서 같이 지내.”

강우와 남재식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의 코로 맛있는 음식 냄새가 스며들었다.

“엄마, 강우 왔어요.”

남재식의 말에 주방에서 남재식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래,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어머니.”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재식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강우였지만, 아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굳이 아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뉴스에서도 몇 번이고 봤었다.

“자주 좀 놀러 와.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어.”

“죄송합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이거 별거 아닙니다.”

“어머? 뭐 이런 걸 사 왔어.”

재식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오~ 우리 강우 왔구나!”

안방에서 남재식의 아버지가 나왔다. 강우를 보고는 정말 반가워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지, 잘 지내셨죠?”

“그래, 나야 잘 지냈지. 정식이는 요즘 바빠 보이더구나.”

친구 아버지들 사이에서도 강우의 아버지는 막내였다. 일찍 결혼한 탓이었다.

“네, 많이 바쁘세요.”

“조만간 중국에 들어간다고 하던데?”

“네, 저 방학하면 가신다고 했습니다.”

“가기 전에 한번 뭉쳐야겠군.”

재식 아버지가 슬쩍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건수 잡았으니 남자들의 찐한 모임이 예상됐다. 재식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모임은 적극 추천이에요.”

재식 아버지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배고프지? 어서들 앉자.”

재식 아버지가 주방에 있는 식탁으로 가 앉았다. 강우와 남재식도 자리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와~ 어머니 뭐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강우가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재식 어머니가 강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평소에도 이렇게 먹어. 차린 거 없어도 많이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재식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국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됐다. 마침 배가 고팠던 강우는 정말 복스럽게도 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에 재식 어머니가 또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저…. 아버지.”

강우가 재식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강우 네가 재식이한테 게임개발업체를 시작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강우의 입에 있던 음식이 목에 걸리며 쿨럭 기침이 나왔다. 강우가 고개를 돌려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남재식이 최대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네, 지금이 적기라서요. 이 사업은 아이디어와 아이템 경쟁이거든요. 늦게 시작할수록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아직 관심을 가진 업체들이 적을 때 시작해서.”

재식 아버지가 수저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강우와 남재식이 움찔했다. 재식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 네 말이면 믿을만하지. 그래 얼마면 되겠니?”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재식의 아버지는 화끈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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