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402)
  • 팬입니다.

    특설무대의 앞쪽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강우 가족은 이재원의 안내를 받아 무대 바로 앞쪽으로 자리했다.

    “우와~ 저기서 게임을 해요?”

    강용이는 연신 신기한지 방음 부스를 가리켰다. 이재원은 그런 강용이가 귀여운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 안에 들어가면 밖에 소리도 안 들리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거든.”

    “아~ 그렇구나.”

    이윽고 스페이스 크래프트 1:1 부분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강우의 상대는 금발에 갈색 눈을 가진 외국인 게이머였다.

    -결승전 경기 시작~~~ 합니다!!!-

    사회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결승이 시작됐다. 부스 안에 있는 강우가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은 유럽 서버를 평정한 고수 중의 고수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요한이나 인호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나지. 이미 외국 대회 몇 개를 우승한 경력도 있고.’

    그런 상대방의 이름은 뷔욤이라는 게이머였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엄청난 인기와 실력을 갖췄던 인물이었다. 강우는 뷔욤에게 똑같이 영입 제안을 했었다. 뷔욤은 결승이 끝난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겼다.

    ‘일단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면 조금 세게 이길 필요가 있겠네.’

    강우가 씩 웃었다. 상대방 뷔욤의 종족은 사이버 토스라는 종족이었다. 사실 이때쯤의 뷔욤은 모든 종족을 다 잘 다루기는 했었다. 강우의 종족은 인간 종족인 휴먼이었다. 강우는 이번 경기에서 아직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빌드를 꺼내 들 생각이었다.

    ‘메카닉에 한번 당해보라고.’

    강우는 먼저 대담하게 앞마당을 먹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곧장 세 번째 멀티까지 가져갔다. 강우의 엄청난 배짱에 해설자들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와! 박강우 선수 멀티를 무려 두 개나 먹었습니다. 이러면 뷔욤 선수의 초반 러쉬를 막을 수 있나요?-

    해설자의 말대로 뷔욤이 뽑은 병력이 강우의 앞마당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여기서 강우의 신들린 컨트롤이 빛을 발했다. 앞마당에 벙커를 짓고 일꾼을 이용해 적의 병력을 기적처럼 막아냈다.

    -대…. 대단합니다! 적의 병력을 앞마당에서 막아냈습니다!-

    위기를 느낀 뷔욤의 병력이 계속해서 강우의 앞마당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버티고 버틴 강우의 본진에서 공성 탱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잉- 지잉-

    공성 탱크가 포격모드를 취하자 뷔욤의 병력이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교묘히 배치된 공성 탱크에 뷔욤은 속수무책이었다.

    ‘좋아 이제 물량을 쏟아낼 차례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자 강우의 자원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강우는 폭발적으로 팩토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카닉의 뼈대를 이루는 런쳐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공성 탱크도 쏟아져 나왔다.

    -어…. 엄청난 물량입니다! 박강우 선수 그동안 모았던 자원을 한꺼번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맵을 가득 메울듯한 강우의 병력이 뷔욤의 본진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화면에 비친 뷔욤의 표정은 당황 그 자체였다. 강우의 믿기지 않는 물량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쾅! 쾅!

    강우는 뷔욤의 본진을 그야말로 초토화했다. 뷔욤이 어떻게든 저항을 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경기가 끝났다.

    “......”

    뷔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압도적인 실력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동안 많은 대회에 나간 자신이었다. 하지만 결코 오늘 같은 강자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이게 아시아 서버 1위의 실력인가….’

    강우가 자신을 로열로더라고 밝혔을 때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별다른 큰 대회도 없는 아시아 서버의 랭커였으니 말이다. 맨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우승은 따놓은 거로 생각했다. 상금 규모가 제법 컸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왔었다. 문득 우승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뷔욤이 입술을 깨물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꼭 이긴다.’

    뷔욤이 눈을 빛냈다. 이윽고 3전 2선승제인 결승의 2세트가 시작됐다.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뷔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상대방인 강우가 랜덤 종족을 고른 것이다.

    ‘......’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됐다. 뷔욤은 역시 자신 있는 사이버 토스 종족을 골랐다. 이윽고 인 게임 화면이 떠올랐다. 상대방의 종족을 모르는 뷔욤이 빠르게 정찰을 보냈다.

    ‘됐어.’

    정찰에 성공한 뷔욤이 씩 웃었다. 강우의 종족은 뷔욤과 같은 사이버 토스였다. 그리고 뷔욤은 같은 종족전에 자신이 있었다. 뷔욤이 자신을 얕본 강우를 혼내주리라 다짐했다.

    “어어?”

    하지만 그런 뷔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초반 유닛 싸움에서 강우의 미친듯한 컨트롤이 이어졌다. 병력을 절묘하게 컨트롤하는 강우의 실력에 뷔욤의 부대가 크게 손해를 입었다.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듯한 압박이 이어졌다.

    “아아….”

    뷔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앞마당을 먹었지만, 그마저도 강우가 양보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정찰기를 이용해 전 맵을 확인한 뷔욤이 절망에 휩싸였다. 맵의 전부가 온통 강우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졌다….”

    결국, 뷔욤이 항복 선언을 했다. 경기가 끝나고 뷔욤이 머리를 쥐어 쌌다.

    -경기가 끝났습니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박강우 선수입니다!!-

    사회자의 우승 선언과 함께 강우의 얼굴이 스크린에 단독으로 떠올랐다. 경기를 지켜보던 강우 가족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우와!! 우리 형아는 진짜 못 하는 게 없어!”

    강용이는 잔뜩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끝난 거야?”

    “강우가 이겼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분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와 뷔욤은 스텝들의 안내를 받아 무대의 중앙으로 왔다.

    -오늘 대회의 우승과 준우승 상금의 시상은 이번 대회를 후원해주신 대진 그룹의 이재원 사장님이 해주시겠습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대생치고 이재원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대 아래에서 강우 가족의 옆에 있던 이재원이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재원 사장님은 현재 서울대를 다니는 학생이기도 하시죠? 여러분에게 참 반가운 얼굴일 거로 생각합니다.-

    사방에서 사회자의 말에 동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재원! 이재원!-

    이재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먼저 준우승자의 시상이 시작됐다.

    -준우승자에게는 상금 이백만 원과 부상으로 최신형 PC를 드립니다.-

    이재원이 뷔욤에게 시상을 했다. 이윽고 강우의 차례였다. 강우와 이재원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우리 너무 다 해 먹는 거 아니냐?”

    이재원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옆에 있던 시상 도우미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뭐….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하…. 진짜 넌 외계인이 분명해.”

    이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상을 했다. 사회자가 박수를 유도하며 크게 소리쳤다.

    -우승자에게는 상금 오백만 원과 부상으로 최신형 PC와 최신형 TV를 선물로 드립니다.-

    무대 아래 있던 어머니와 강용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각각 TV와 PC를 받는다는 말에 기대감에 차올랐다.

    -자. 먼저 준우승자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가 뷔욤에게 마이크를 주려다가 움찔했다. 뷔욤이 외국인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저…. 제가 통역하겠습니다. 질문을 알려주세요.”

    강우의 제안에 사회자가 구세주를 만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질문을 시작했다.

    -먼저 한국에 오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강우가 뷔욤에게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질문을 들은 뷔욤이 답했다. 강우가 뷔욤의 말을 한국어로 통역했다.

    -한국은 처음이지만, 참 따듯한 나라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정이 많고 다들 친절하다고 합니다.-

    강우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뷔욤의 굳었던 얼굴이 스르르 풀렸다.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아쉽게 준우승을 했습니다. 그 소감도 부탁드립니다.-

    강우가 뷔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뷔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우를 물끄러미 보았다. 하지만 이내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뷔욤의 말을 들은 강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 이런 실력자가 있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우승한 박강우 선수의 실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뷔욤의 승부욕 넘치는 말에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이 순간 경기를 지켜본 관객들의 마음에 묘한 기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저 게임으로만 생각했던 대회였다. 하지만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듯한 긴장감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경기를 또 보고 싶다.’

    관객들의 마음속에 공통으로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강우가 이번 대회를 통해 의도한 것이 이것이었다.

    -자 그럼 우승자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통역이 필요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회자의 넉살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마이크를 다잡았다.

    -먼저 이런 대회를 개최하게 허락해 주신 서울대학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모교이지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캠퍼스가 떠나갈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앞에 모여있던 서울대생들이 강우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박강우! 박강우!-

    캠퍼스가 울릴 정도의 함성에 강우가 씩 웃었다. 이윽고 함성이 잦아들고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이런 대회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학우 여러분! 남은 축제를 즐겁게 보냈으면 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노는 것도 잘하는 서울대 파이팅!-

    강우의 말에 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가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역시 애교심이 넘쳐나는 수상소감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경기 재미있으셨습니까?-

    사회자가 마이크를 앞으로 내밀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대진 미디어에서 프로게임대회를 주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상이 끝났다. 강우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뷔욤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뷔욤!”

    계단을 내려가던 뷔욤이 몸을 돌렸다. 강우가 씩 웃으며 뷔욤을 바라보았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저도요.”

    뷔욤이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강우가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 귀국하십니까?”

    “아…. 오늘 저녁입니다.”

    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자 뷔욤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지난번에 제안하신 거라면 조금 더 생각을….”

    “그럼 오늘 저랑 축제를 좀 즐겨보시는 게 어떠세요? 한국 처음이시라면서요.”

    강우의 말에 뷔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뷔욤을 잡아끌었다.

    “자자. 오늘 아니면 이렇게 재미있는 경험하기도 힘듭니다. 오늘은 저랑 같이 다니시죠.”

    “하지만 비행기 시간이….”

    강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건 우리 회사 측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 하루만 저에게 맡겨주시죠.”

    “아…. 네….”

    뷔욤이 강우의 손에 이끌려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강우가 뷔욤을 향해 물었다.

    “오늘 마침 우리 가족도 함께 와있어서요. 같이 축제 즐기시는 거 어떠세요?”

    “가족이요?”

    뷔욤이 살짝 당황했다. 초면에 강우의 가족까지 만나게 생겼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강우의 표정에는 어떤 의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강우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뭐…. 그러죠.”

    뷔욤의 허락이 떨어졌다. 강우가 신이 나서 가족에게 다가갔다. 무대 아래 있던 강우 가족이 강우를 반겼다.

    “형아!!!”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와 강우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다가와 강우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아들 잘했어.”

    강우가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버지와 최준도 다가와 강우를 대견히 바라보았다. 그런 강우 가족의 모습에 뷔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강우가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아…. 여기는 뷔욤이에요. 방금 저랑 결승했던 선수요. 국적은 캐나다고요. 나이는 저보다 세 살 어린 17살이에요.”

    강우가 영어로 뷔욤을 소개했다. 그러자 뷔욤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어떻게 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십니까?”

    강우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리고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패….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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