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402)
  • 큰일이네. 서울대가 축제까지 잘해버리면.

    거대한 함성이 서울대 캠퍼스에 울려 퍼졌다. 양쪽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는 하얀색과 노란색의 물결이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H.O.P! H.O.P!-

    무대 위에서는 다섯 명의 아이돌들이 현란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번쩍이는 무대조명과 하늘로 치솟는 폭죽도 볼만했다.

    -와아아아!-

    -꺄아아악!-

    팬들의 비명과 환호성에 축제의 분위기가 더욱더 짙어져 갔다. 단지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팬클럽의 뒤쪽으로는 더 많은 관객이 모여있었다. 축제를 즐기러 온 많은 사람이 가수들의 축하 무대를 보며 즐거워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무대가 끝나고 다섯 명의 아이돌이 무대를 내려갔다. 뒤이어 무대가 암전되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자 여러분! 이제 라이벌의 무대가 시작됩니다. 소개합니다. 여섯 개의 보석 식스키스!-

    고요하던 노란색 풍선의 무리가 일순간 비명을 질러댔다. 캠퍼스가 떠나갈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암전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여섯 명의 아이돌들이 무대를 시작했다.

    -식스키스! 식스키스!-

    마치 조금 전 H.O.P를 부르는 환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커달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가 시작되고 흥겨운 댄스와 노래가 이어졌다. 무대 근처에 특별히 설치된 천막에는 강우와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와···. 여기가 대학교 축제야 아니면 드림 콘서트야?”

    김춘배가 옆에 앉아있는 김혜지에게 말했다. 사람들의 함성 때문에 크게 소리쳐야 서로의 말이 들릴 정도였다. 김혜지가 김춘배의 귀에 대고 크게 말했다.

    “맞아. 가수 콘서트 몇 번 가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

    팬들이 일사불란하게 풍선을 흔들며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강우야.”

    김춘배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크게 소리쳤다. 김춘배의 뒤쪽에는 강우와 이나은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 옆쪽에는 신원주와 채보라 그리고 둘만의 데이트에서 합류한 연정호와 조민정이 있었다. 남재식은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

    이나은과 꽁냥꽁냥 대화를 나누고 있던 강우가 김춘배를 바라보았다. 김춘배가 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팬들 엄청 많이 왔네. 더 왔으면 큰일 날뻔했네.”

    “맞아. 그래서 우리 쪽에서 참여 인원을 제한했지.”

    강우의 말에 김춘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축제 때 부른 가수들이 요즘 제일 인기 많은 가수잖아. 그냥 놔두면 분명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릴 거로 생각했지. 그래서 회사에서 각 가수의 팬클럽에 연락해서 참여 인원을 제한했어.”

    가만히 듣고 있던 김혜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팬클럽 내부 추첨으로 진행했거든.”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김춘배가 감탄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팬클럽의 규모에 비해 딱 적당한 인원이 이번 축제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래도 대단하네. 자기 가수들 피해 주기 싫다고 저렇게 질서정연한 거 봐. 대단하지?”

    강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신원주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이거 끝나면 여자 아이돌 라이벌전이야. 그러면 저 팬클럽들 빠지고 또 다른 팬클럽들이 오기로 했지. 아마 정리까지 싹 하고 갈 거야. 팬클럽의 질서 지키기도 이번 라이벌전 승리 점수에다 포함이거든.”

    친구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가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을 이용해 질서정연한 축제를 만들어 내다니 대단했다.

    “이제 슬슬 남자 아이돌 무대 끝날 시간이 됐는데···.”

    말을 마친 신원주가 눈을 빛냈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김혜지가 김춘배를 보며 킥 하고 웃었다. 채보라도 신원주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식스키스의 무대가 끝났다.

    -서울대 축제 정말 재밌네요! 찾아와준 팬분들 감사합니다!-

    식스키스가 팬들과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무대 아래로 우르르 내려갔다.

    -와아아!-

    -오빠아아!-

    함성이 캠퍼스를 가득 메웠다. 이윽고 무대를 끝낸 H.O.P와 식스키스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양쪽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돌 그룹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관객 여러분 멋진 무대를 보여준 두 그룹에 커다란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 그룹이 경쟁적으로 무대 아래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자, 이번 서울대 축제는 초대 가수의 라이벌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승리한 그룹의 팬분들에게는 대진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콘서트 표를 팬클럽당 스무 장씩 드릴 예정입니다.-

    숨넘어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가 손을 들어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승부를 가리는 방법은 서울대생들의 투표로 정해지는 거 잘 알고 계시죠? 자~ 그럼 우리 두 팬클럽분들 이제 퇴장하실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두 아이돌 그룹이 각자의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제 저희 무대 끝났으니까 다들 알죠?-

    -질서정연하게 다치는 사람 없이 그리고 있던 자리도 깨끗하게!-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팬클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변까지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는 일사불란하게 무대 앞에서 물러났다.

    “대박···.”

    천막 안에 있던 친구들이 감탄을 터트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이윽고 두 팬클럽이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팬클럽들이 차지했다. 이번에는 펄이 들어간 보라색 풍선과 펄이 들어간 붉은색 풍선이 자리를 메웠다.

    “오오! 이제 한다!”

    김춘배와 남재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윽고 무대 위로 첫 번째 걸그룹이 등장했다. 요정 같은 세 명의 아이돌이었다.

    “밀키다!!”

    김춘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크게 소리쳤다. 가만히 있던 연정호도 벌떡 일어나 천막의 앞쪽으로 왔다. 조민정이 연정호의 모습을 보며 킥 웃었다. 상남자 연정호도 걸그룹 앞에서는 무장해제인가 보다.

    “강우 너는 보러 안 가?”

    이나은이 강우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순간 엉덩이를 움찔거린 강우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나? 나는 밀키 안 좋아해.”

    강우가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김춘배가 고개를 돌리더니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아니, 예전에 밀키 팬이라고 인터뷰까지 해놓고. 갑자기 변심한 거야?”

    “춘배야?”

    강우가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다. 김춘배가 아차 싶은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나은이 킥하고 웃었다.

    “괜찮아 가서 보고와. 사실 나도 H.O.P 팬이거든.”

    “흠흠···. 그럼 나는 무대가 잘 진행되는지 확인하러···.”

    강우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조민정이 강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강우가 걸그룹을 좋아할 줄이야.”

    강우가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러자 천막 안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우와 친구들은 천막의 앞쪽에서 밀키의 무대를 열심히 보았다.

    “밀키는 무슨···. 팅클이 최고지.”

    혼자 남은 신원주가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이윽고 밀키의 무대가 끝났다. 역시 남성 팬이 많은 밀키답게 괴성이 터져 나왔다.

    “밀키! 밀키!”

    김춘배와 연정호 그리고 남재식이 정신을 놓고 밀키를 연호했다. 그러자 김혜지와 조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춘배와 연정호를 자리로 끌고 왔다.

    “또 나만 혼자야.”

    친구들이 수납되어가자 남재식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천막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침묵은 곧 깨졌다. 밀키의 라이벌인 팅클의 무대가 시작됐다.

    “팅클이다!”

    신원주가 벌떡 일어나 천막의 앞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또 슬그머니 일어나 무대를 구경하러 갔다.

    “저런 줏대 없는 놈들!”

    연정호가 김춘배와 남재식을 향해 소리쳤다. 두 사람이 모른 척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와아아아!-

    -꺄아아악!-

    축제의 흥이 더해지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캠퍼스는 달아올랐다. 강우와 친구들은 먹을 것도 사다 먹고 캔맥주도 마셨다. 천막 안에서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강우야.”

    콜라 캔을 마시던 남재식이 물었다.

    “어?”

    “이 정도 초대 가수 라인업이라면 섭외비가 장난이 아니었겠는데?”

    연이어 무대에 오르는 가수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들이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맞아. 돈 많이 들었지.”

    천막 안의 시선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강우가 맥주캔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얻는 홍보 효과가 더 커. 지금 캠퍼스 곳곳에 걸린 대진 미디어 홍보 현수막도 그렇고. 축제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나누어준 안내 책자에도 대진 그룹 홍보 많이 했거든.”

    “아···. 그렇겠네.”

    천막 안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니까 다들 즐겁잖아. 서울대 축제 바보 소리도 이제 사라질 거고.”

    강우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가수들의 축하 무대가 이어졌다. 강우와 이나은은 나란히 앉아 즐겁게 무대를 즐겼다. 그러던 때였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강우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주점에 사람 많이 빠졌단다.”

    “진짜?”

    친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번 축제에서 인기가 많은 것 중 하나가 학과주점이었다.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든 것이다.

    “어, 가자 자리 금세 찬다고 빨리 오래.”

    강우와 친구들이 우르르 천막을 나섰다. 그리고는 학과주점이 열리는 자하연 쪽으로 이동했다. 걸음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이 강우와 친구들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았다. 이윽고 주점에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우야! 왔냐?”

    사방에서 강우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왔다. 강우가 친구들을 소개했다.

    “오? 너희들이 그 유명한 강우 친구들이구나.”

    몇몇 선배들이 강우의 친구들을 반겨주었다. 강우와 친구들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먹을 것을 잔뜩 시켰다. 물론 오랜만에 뭉친 친구들과의 술 한잔도 잊지 않았다.

    “와~ 음식 엄청 잘 나오네.”

    “대박. 이게 정말 학과주점 맞아?”

    푸짐하게 나오는 음식은 그 맛도 정말 끝내줬다. 김춘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사람 많을 만하네. 가격도 싸고.”

    “그러게. 학과주점이 원래 가격이 엄청 비싼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싸?”

    남재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연정호가 씩 웃었다.

    “싸고 맛있게 만들어서 많이 팔고 좋지 뭐.”

    “맞아. 그 돈으로 기부도 하고.”

    신원주도 씩 웃었다. 그러자 김춘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큰일이네. 서울대가 축제까지 잘해버리면.”

    “내 말이.”

    남재식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의 대화를 듣던 여자친구들이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김춘배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오늘 재원이 형이 종일 안 보이네?”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향했다. 강우가 입에 오물거리던 파전을 꿀꺽 삼켰다.

    “형 오늘 바쁠걸? 신문사랑 잡지사 그리고 방송국에서 취재 엄청 왔잖아. 아마 지금쯤 인터뷰하느라 정신없을 거다.”

    “아···. 그렇구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래, 아주 죽는 줄 알았지. 나는 이렇게 바쁘게 만들어 놓고 강우 너는 팔자가 폈어. 아주.”

    학과주점의 입구로 이재원이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재원의 등장에 주점 안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재원이 걸음을 옮겨 강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여기 우동 한 그릇만!”

    “오케이!”

    주점 주방 담당인 경영학과 학생이 크게 답했다. 이재원과 동기인 학생인가 보다.

    “인터뷰는 잘했어요?”

    “어, 잘했지. 관심들이 많더라고. 이번 축제가 앞으로 대학축제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거라나 뭐라나···.”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사실 의도한 건 사실이지만, 깊게 파고들어 가면 그저 잘 놀고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잘됐죠. 뭐.”

    “그래, 잘됐지. 대진 미디어 홍보도 엄청나게 했고.”

    따라락.

    이재원이 소주의 뚜껑을 땄다. 그리고 강우의 빈 잔에 콸콸 따라주었다. 옆에 있던 김춘배가 잽싸게 병을 받아서는 이재원에게 내밀었다.

    “제가 따라드릴게요.”

    “고마워.”

    김춘배가 이재원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돌아가며 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의 잔에도 따랐다.

    “자! 이제 일도 끝났으니까. 놀아보자!”

    이재원이 잔을 들었다. 강우와 친구들의 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날씨도 좋은데 천막 좀 걷을까?”

    “좋죠.”

    강우와 신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점 천막이 양쪽으로 말아 올렸다. 그러자 캠퍼스의 야경이 나타나며 천막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뱉어냈다.

    “분위기 좋네.”

    이재원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강우의 일행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천막 안을 휘감고 지나갔다.

    “와~ 바람도 좋아.”

    이나은이 캠퍼스의 낭만에 젖어 입꼬리를 올렸다. 강우가 이나은의 옆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김춘배와 남재식은 잔뜩 흥분했다.

    “진짜 좋네. 우리 내일 또 올까?”

    “나는 찬성.”

    남재식이 대번에 좋다고 했다. 김춘배가 김혜지를 바라보았다. 김혜지가 싱긋 웃었다.

    “나도 찬성.”

    연정호가 조민정을 보며 터프하게 말했다.

    “내일도 와.”

    “으응···.”

    조민정이 또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그런 친구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내일도 와. 대신에 나는 내일 같이 못 놀 거 같아.”

    “왜? 무슨 일 있어?”

    친구들의 시선이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내일은 오전에 진짜 중요한 손님이 축제에 오기로 했거든.”

    강우가 내일 찾아오기로 한 손님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나은도 그런 강우를 보며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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