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402)
  • 사실 제가 로열로더입니다.

    쾅! 콰앙!

    특설 무대에 설치된 거대 스크린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력을 태운 수송선이 서로의 허점을 비수처럼 찔렀다.

    ‘역시 장난 아니네···.’

    방음 부스 안에 있는 강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임요한과의 대결은 정말 재미가 있었다. 아직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어설픈 면이 많았지만, 미래의 황제라 불릴만한 날카로움이 보였다.

    -지금 상대방의 수송선이 박강우 참가자의 본진을 노리고 날아가고 있습니다. 수송선에는 자신의 병력을 태울 수···.-

    방음 부스 밖에서는 해설자가 게임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그 배려는 효과가 있었다.

    “뭐야? 재밌네?”

    “와···.”

    가수들의 무대를 기다리기 위해 자리한 팬클럽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에 간혹 비치는 강우와 임요한의 얼굴도 그런 반응에 한몫했다.

    “뭐야? 일반인이야?”

    “둘 다 잘생겼는데?”

    무관심하던 관객들이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 게임을 좋아해 구경을 왔던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더 폭발적이었다.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커다란 스크린에 집중했다.

    “대박! 둘 다 컨트롤 장난 아니네.”

    “누구야? 저 사람들?”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기였다. 강우의 수송선에서 탱크가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적의 일꾼을 죽였다. 그에 대처하는 임요한의 컨트롤도 정교했다.

    ‘역시···.’

    강우가 임요한을 상대하며 감탄했다. 지금껏 만나본 상대방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아직은 전성기의 포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벌어지던 게임은 결국 강우의 승리로 끝났다.

    -박강우 참가자가 승리했습니다!-

    강우의 승리가 확정되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방음 부스를 벗어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반대편 방음 부스 안에는 임요한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덜컥.

    강우가 방음 부스를 열었다. 임요한이 고개를 돌려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온라인 아이디가 로열로더 아닙니까?”

    “글쎄요?”

    강우가 애매한 대답을 하며 씩 웃었다. 하지만 임요한은 알 것 같았다. 온라인상에서 만날 때마다 전패를 기록했던 상대방인 로열로더의 플레이 스타일과 너무나 똑같았다.

    “음······.”

    임요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강우를 뜯어보았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요.”

    “네? 어떤 이야기를요?”

    “다음 경기가 있으니까 일단 밖에 나가서 대화 나누시죠.”

    “네? 아···. 네.”

    임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와 임요한이 방음 부스 밖으로 나와 참가자 대기 천막 옆에 나란히 섰다. 강우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들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아···. 네.”

    임요한이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명함에는 대진 그룹 전략지원팀 팀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있었다. 임요한이 강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기업 전략지원팀에서 저한테 왜 명함을 주시죠?”

    임요한이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강우는 너무 어려 보였다. 대기업 팀장이라고 하기에는 말이다.

    “지금 PC방 후원을 받으면서 게임하고 계시죠?”

    “네, 맞아요.”

    강우가 눈을 빛내며 임요한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게이머들이라고 해야 PC방 대회나 이런 소규모 대회에 나와 상금을 타는 게 전부였다.

    ‘1년 후인 99년에 첫 프로게이머 대회가 열리지 하지만 우리가 그보다 앞서 대회를 개최한다.’

    뭐든지 선점을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강우는 미래의 문화사업 중 한 분야를 선점할 생각이었다. 강우가 임요한을 보며 말했다.

    “대진 미디어에서 프로리그를 만들 생각입니다.”

    “프···. 프로리그요? 게임으로요?”

    임요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게임으로요.”

    “.....”

    임요한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품에서 한 장의 명함을 더 꺼냈다. 임요한이 명함을 받아들더니 중얼거렸다.

    “동양 무역? 이사?”

    임요한이 강우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동양 무역에서는 임요한 씨에게 정식으로 프로게이머 계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물론 대우는 충분히 잘해드리겠습니다.”

    “네에?! 계약이요?”

    임요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시기에 프로게이머라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네, 회사 차원에서 프로게임단을 창단할 생각입니다. 임요한 씨뿐만이 아니라 몇몇 분들과 계약을 하고요.”

    “음···. 왜 저한테 그런 제안을···.”

    강우가 씩 웃었다. 눈앞의 남자가 아니면 누가 프로게이머의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요한 씨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보여서 말이죠.”

    “아···. 하지만 저는 지금 1회전 탈락을 했는데요?”

    임요한이 작게 탄식을 뱉어냈다. 눈앞의 일반인에게도 져버린 자신에게 프로게이머 제안이 웬 말이란 말인가. 자신감 없어 보이는 임요한의 표정에 강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로열로더입니다.”

    “그렇죠?! 역시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플레이 방식이 로열로더랑 똑같았어요.”

    임요한의 얼굴이 크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강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하겠습니다. 그 계약.”

    “네?”

    갑자기 적극적인 임요한의 모습에 강우가 움찔했다. 그러자 임요한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매일 저랑 연습게임을 해주셔야 합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과연 알려진 대로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임요한이었다.

    “좋습니다. 대신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많이는 못 해 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임요한이 싱글벙글 웃었다. 강우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강우도 임요한의 팬이었다. 그런 인물을 눈앞에서 보니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 강우가 슬쩍 말을 꺼냈다.

    “저···. 80년생이시죠?”

    “네? 네···.”

    강우가 감춰두었던 자신의 작은 바람을 슬그머니 꺼내 들었다.

    “나는 79년생인데. 우리 형, 동생 안 할래요?”

    “네? 저보다 한 살밖에 안 많다고요?”

    임요한이 경악하며 명함과 강우를 번갈아 보았다. 스무 살에 가질만한 직함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노안입니까?”

    “아···. 그건 아니고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임요한이 결심을 내렸다.

    “좋습니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말 편하게 하세요.”

    강우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럴까? 하하! 이거 기분 좋네. 동생 한 명 생기고.”

    “형, 평소에 진짜 존경하고 있었어요. 게임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임요한이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모두 게임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강우는 성심껏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프로게이머 계약 조건도 설명해주었다.

    “진짜 그렇게나 많이 준다고요?”

    “그럼, 프로인데 연봉제로 그 정도는 줘야지.”

    임요한이 크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그런 임요한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자신의 가치가 앞으로 얼마나 거대해질지 모르는 임요한이었다.

    “좋아요. 저 형네 회사랑 계약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네, 그런데 팀 이름은 뭐예요?”

    임요한이 강우가 창단한다던 프로게임 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동양 레지스탕스.”

    “와···. 뭔가 느낌 있는데요?”

    그때,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강우가 씩 웃으며 임요한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그리고 내일 회사로 한번 찾아와. 계약도 해야 하니까.”

    “네, 형. 알겠어요.”

    임요한이 강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즐거웠다.”

    “저도요. 진짜 형은 대단해요. 제가 여기로 들어오면 어쩌나 싶으면 1초도 안 돼서 찌르는데.”

    임요한이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며 물었다.

    “형은 프로게이머 하실 생각 없어요?”

    “나?”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양할게. 나는 다른 할 게 많아서.”

    “하긴 형은 서울대생이니 공부도 해야 하고, 회사 일도 많기는 하겠더라고요.”

    “그렇지. 맞아.”

    임요한이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미래의 기억 속 수많은 여성 팬을 만들었던 바로 그 미소였다.

    “형, 그럼 내일 연락드릴게요.”

    “그래, 꼭 연락해라.”

    임요한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려 강우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런 임요한에게 몇몇 여성들이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는 것이 보였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강우야!”

    그때, 천막이 있던 곳에서 이나은이 다가왔다. 강우가 몸을 돌려 미소를 지었다. 이나은이 강우에게 다가오더니 잔뜩 신이 난 목소리를 냈다.

    “게임 보는 게 진짜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어. 사람들 반응도 엄청 좋던데?”

    “그래? 다행이네.”

    강우가 힐끗 무대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오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의 첫 경기의 성공 때문일까? 관객들의 반응은 이전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저 사람의 플레이 자체가 공격적이라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수밖에 없지.’

    강우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영입리스트에 올려둔 또 다른 참가자가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이윽고 스크린에 비친 상대방의 얼굴에 강우가 짧게 탄식을 뱉어냈다.

    “아···. 재식아, 하필이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적의 공격에 남재식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강우가 안타까워할 사이도 없이 경기가 끝나버렸다.

    “나은아 우리 무대 뒤로 가자.”

    “응.”

    강우와 이나은이 경기가 끝난 무대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경기를 끝낸 참가자를 만났다. 임요한보다 더 어려 보이는 참가자였다.

    “안녕하세요. 홍인호 학생.”

    “어? 저를 아세요?”

    홍인호가 매우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우가 씩 웃었다.

    “그럼 잘 알죠.”

    “네?”

    멍한 표정의 홍인호에게 강우는 임요한과 같은 제안을 했다.

    “정말이요? 와~”

    강우의 설명을 모두 들은 홍인호가 멍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형이 진짜 로열로더라는 거죠?”

    “어, 맞아.”

    홍인호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미래의 기억 속에도 승부욕이 강하기로 유명한 홍인호였다.

    “그럼 저 그 팀 갈래요. 가서 형 이길 때까지 연습합니다.”

    “그래, 그럼 내일 회사로 찾아와 알겠지?”

    홍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때, 축 처진 어깨의 남재식이 다가왔다.

    “후···. 강우야.”

    “재식아, 수고했다.”

    남재식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게임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남재식이었다. 일방적인 패배에 가슴이 쓰린가 보다.

    “1회전 탈락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괜찮아. 질 만한 사람한테 졌으니까.”

    “그런가?”

    강우가 남재식을 다독였다.

    “그럼, 나중에 네가 누구를 상대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그래, 알겠어.”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남재식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애들이랑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세 갈 테니까.”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재식의 말에 강우가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무대 위로 금발을 가진 다음 참가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있지. 아주 중요한 사람을 스카우트해야 하거든.”

    남재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알겠어. 그럼 먼저 간다.”

    남재식이 친구들이 기다리는 천막으로 돌아갔다. 이나은이 강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저 사람이 마지막이야?”

    “응, 나머지 사람들은 회사 직원들이 접촉할 거야. 내가 직접 만나는 사람은 저 사람이 끝.”

    강우가 잔뜩 집중한 채 다음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이나은이 강우를 물끄러미 보더니 싱긋 웃었다.

    “강우 너는 뭐에 집중할 때가 제일 멋있는 거 알아?”

    “아···.”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것도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꿈 중 하나거든.”

    “그래?”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게임 팀의 구단주. 미래의 기억 속 강우의 로망 중 하나였다.

    “응, 그리고 꼭 선점해야 하는 사업이기도 하고.”

    강우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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