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402)
  • 그런데 혹시 저를 아세요?

    서울대 축제의 첫날이 끝났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예전과는 달리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은 축제라는 소문이 돌았다.

    “우와~ 사람 봐.”

    서울대 캠퍼스 입구에 도착한 김춘배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서울대가 축제 바보라고 강우가 그러지 않았던가?”

    김춘배의 옆에 있던 남재식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대 입구로 하얀색 풍선과 노란색 풍선의 물결이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서로를 견제하듯 정확히 양쪽으로 나뉘어서였다.

    “저거 전부 팬클럽이야.”

    가만히 보고 있던 조민정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조민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민정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대학 오기 전까지는 팬클럽이었어. 오빠들 많이 쫓아다녔지.”

    “맞아. 민정이가 지역구 회장도 했었다고 들었어.”

    김혜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거들었다. 김춘배가 조민정을 향해 물었다.

    “그래? 그럼 너는 어느 쪽이었는데?”

    “나?”

    조민정이 싱긋 웃더니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김춘배와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그렇지. 민정이가 상남자를 좋아하지.”

    “인정.”

    김춘배와 남재식이 연정호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재식이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도 빨리 가자, 좋은 자리 놓치겠다.”

    축제의 둘째 날인 오늘은 중요 행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특히 강우가 기획한 ‘스페이스 크레프트 대회’와 초대가수 무대인 ‘라이벌’의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 있는 행사들도 다 강우가 아이디어 낸 거라고 했지?”

    “맞아.”

    김춘배와 남재식이 탄성을 뱉어냈다.

    “하여간 강우는 예전부터 뭐가 달라도 달라.”

    “내 말이.”

    김혜지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초대가수 무대 말이야. 콘셉트가 라이벌이라고 하던데 그냥 초대가수 무대만 하는 게 아닌가 봐?”

    “응, 무대를 하는데 오늘 있을 무대를 보고 서울대생들이 투표를 한대.”

    조민정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투표? 그거를 해서 뭐 하는데?”

    “나중에 그거 집계해서 더 많은 표를 얻은 가수 팀이 이기는 거래. 그러면 투표한 서울대생들한테는 추첨으로 경품을 나누어 준다고 하더라.”

    김혜지와 조민정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흥미와 참여도를 높이는 기가 막힌 생각이었다. 김춘배가 말을 이어갔다.

    “경품도 장난 아니더라고.”

    “경품이 뭔데?”

    “오늘 참가한 가수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앨범이랑 콘서트 초대권을 오십 명한테 주고, 총 다섯 명 뽑아서 한 학기 장학금 지원.”

    김혜지와 조민정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스케일이 남다른 강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춘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빨리 가자 애들 기다려.”

    “어어···.”

    김춘배와 남재식 그리고 김혜지와 조민정이 캠퍼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캠퍼스 곳곳에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도 많았다. 가족들은 맛있는 것도 먹고 소소한 행사들에 참여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우리 학교 축제랑은 느낌이 확 다르네.”

    “그러게···. 우리는 술 먹고 죽자 분위기였는데.”

    김춘배와 김혜지 그리고 조민정이 어젯밤 있었던 중앙대 축제를 떠올리며 말했다.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던 중앙대 축제는 그야말로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축제였다. 하지만 눈앞의 모습은 그야말로 모두의 축제였다.

    “그게 원주가 그러는데 원래 서울대 축제가 녹두 문화제라고 해서 캠퍼스 주변 지역의 참가를 유도하는 콘셉트래. 그런데 참여율이 저조해서 흐지부지되고 있던 걸 강우랑 재원이 형이 살린 거지.”

    남재식의 설명에 모두가 감탄을 터트렸다. 이윽고 네 사람이 강우가 시합 중인 체육관에 도착했다. 오늘은 SLAM의 4강 경기 즉 준결승이 있는 날이었다.

    퉁. 퉁.

    네 사람이 체육관에 들어섰다. 안쪽은 그야말로 관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정호다!”

    조민정이 환하게 웃으며 코트를 가리켰다. 김춘배와 남재식의 시선이 조민정의 손끝을 향했다. 그곳에는 유니폼에 고글을 끼고 뛰고 있는 연정호가 있었다.

    “강우는? 재원이 형은?”

    “원주도 안 보이는데?”

    코트 위에 있는 SLAM의 선수 중 익숙한 얼굴은 연정호뿐이었다. 김혜지가 전광판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점수 차이 엄청난데?”

    “그러네. 88:52네.”

    조민정이 전광판을 보더니, 점수를 말해주었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SLAM의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벤치에는 땀에 젖어 쉬고 있는 강우가 있었다.

    “강우야!”

    김춘배의 목소리에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왔냐?”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김춘배 일행에게 쏟아졌다.

    “아···. 제 고등학교 친구들이에요.”

    강우의 말에 SLAM의 동아리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신철민 교수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너희들 왔구나.”

    신철민 교수도 아들의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우의 옆에 있던 이나은이 김혜지와 조민정을 보고 반가워했다.

    “얘들아!”

    김혜지와 조민정이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꺅꺅 웃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조민정이 이나은을 살짝 흘겨보았다.

    “너, 여기 온다고 우리 학교 축제도 빼먹고.”

    “미안.”

    이나은이 혀를 살짝 내밀었다. 김혜지가 싱긋 웃었다.

    “괜찮아 우리 학교 축제 왔어도 술만 실컷 먹었을걸. 뭐.”

    “헤헤···.”

    이나은이 미안함이 담긴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세 명의 여자들이 반가움을 나누었다. 김춘배가 강우에게 물었다.

    “원주는?”

    “학과 주점 바쁘다고 해서 도와주러 갔다.”

    “그래? 오늘 너랑 뭐 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 그때까지는 오겠지.”

    강우와 신원주는 오늘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에 팀을 이뤄서 출전하기로 했다. 각자 1:1 개인전과 3:3팀 전을 참가하기로 했다. 3:3 팀전의 멤버는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신철민 교수였다.

    “그럼 나도 샤워 좀 하고 올게. 나은아 빨리 올게.”

    “응.”

    이나은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샤워를 마친 강우가 돌아왔다.

    삑삑-

    마침 시합도 SLAM의 승리로 끝났다. 벤치로 돌아온 연정호가 조민정을 보며 반가워했다. 조민정이 연정호에게 다가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내가 할게.”

    연정호가 박력 있게 수건을 낚아채서는 땀을 닦았다. 조민정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재식이 실소를 흘렸다.

    “아까 했던 말대로네. 상남자 좋아하는 거 말이야.”

    강우와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연정호가 조민정에게 수건을 ‘척’ 하고 내밀었다.

    “샤워하고 올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으응···.”

    조민정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이윽고 샤워를 끝낸 강우와 일행이 체육관을 벗어났다.

    “그럼 우리는 둘이 데이트 좀 하고 올게. 있다가 경영대 학과 주점에서 만나자.”

    연정호가 터프하게 조민정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조민정이 강우와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있다가 봐.”

    남재식이 멀어져가는 두 연인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강우가 남재식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가자.”

    강우와 일행은 곧장 게임대회가 열릴 총장 잔디로 향했다. 이윽고 총장 잔디에 도착한 일행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남재식은 특히 화들짝 놀랐다. 총장 잔디 위에 특설 무대가 설치되어있었다. 그 무대 위에는 방음 부스가 설치되어있었다. 양쪽으로 설치된 방음 부스에는 총 4대씩의 PC가 설치되어있었다.

    “저거 방음 부스야. 저 안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는 거지. 관중들의 소음이 들리면 안 되니까.”

    “와···. 저건 누가 생각해 낸 거야?”

    남재식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강우, 네 생각이구나? 대박.”

    남재식이 큰 관심을 드러냈다. 김춘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대 위에는 ‘제1회 서울대학교배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라고 적혀있었다. 무대의 주변에는 카메라들도 여기저기 설치되어있었다. 수많은 스태프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거 방송으로 내보내는 거야?”

    “응, 이번에 대진 미디어에서 케이블 채널 하나 인수했거든. 거기로 방송 나간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입을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채널을 인수했다고?”

    강우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게 없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 그 채널은 앞으로 게임 전문 채널로 바꿀 거야.”

    “그게 사람들한테 먹힐까?”

    김춘배가 살짝 관심을 드러냈다. 강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먹히지. 내가 장담한다.”

    이윽고 한쪽에서 신원주가 뛰어왔다. 옆에는 채보라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학과 주점의 일손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었다.

    “왔냐?”

    신원주가 김춘배와 남재식을 반겼다. 김춘배가 채보라를 힐끗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누나, 우리 왔어요.”

    “그래, 잘 왔어. 오늘 실컷 놀다가.”

    채보라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의 서울대 축제는 누굴 초대하기도 민망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도는 완전히 달랐다.

    “네, 오늘 행사들 준비된 거 보니까 집에 가기는 틀린 거 같아요.”

    김춘배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강우를 알아본 스태프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저···. 팀장님.”

    “네?”

    강우가 다가온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스태프가 손에 들린 차트를 강우에게 내밀었다.

    “지시하신 이번 대회 참가자 목록을 가져왔습니다.”

    “아. 그래요?”

    강우가 눈을 빛내며 차트를 받았다. 그리고는 한 장씩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 상금 규모라면 참가를 했을 텐데 말이지.’

    강우가 참가자 명단을 빠르게 훑어내렸다. 그리고 미래의 기억으로 알고 있는 몇몇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찾았다.’

    명단에서 몇 명의 이름을 발견했다. 모두 미래에 스페이스 크래프트로 이름을 날렸던 1세대 게이머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E-SPORTS 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람의 이름도 있었다.

    “여기 이분들은 대회가 끝나면 꼭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강우가 몇 명의 이름에 체크를 한 뒤 차트를 돌려주었다. 스태프가 차트를 받으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꼭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냥 집에 가려고 할 가능성이 커요. 아니면 지금 먼저 연락처라도 받아 놓으세요.”

    강우가 재차 당부했다. 스태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팀장님.”

    스태프가 돌아가자 강우가 짧게 숨을 뱉어냈다. 강우가 준비 중인 문화 사업 콘텐츠 중 일부를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인재들이었다. 강우가 생각을 멈추고 일행을 바라보았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왜? 파리 들어가 입 다물어.”

    김춘배와 남재식이 입을 틀어막았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나는 이제 대회 준비하러 가야 하니까. 너네는···.”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총장 잔디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각양각색의 풍선들을 들고 있는 인파는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가 끝나면 이어질 가수들의 무대를 기다리는 인파였다.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강우가 한쪽에 있는 천막을 발견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이 사용하는 천막이었다. 가장 앞줄에 있어 무대를 보기에도 편한 곳이었다.

    “따라와.”

    강우가 일행을 이끌고 천막에 도착했다. 안쪽으로 들어간 강우가 스태프들에게 자리를 조금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스태프들이 대번에 알겠다며 자리를 내주었다.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은아, 나 또 다녀올게.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

    “응. 알겠어.”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남재식을 보며 말했다.

    “원주야 재식아, 가자.”

    “어.”

    신원주도 남재식도 오늘 대회에 참가했다.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남재식이 천막을 벗어나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선수 대기실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참가자들의 분위기가 천막 안에 가득했다. 강우와 두 친구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윽고 스태프 한 명이 들어와 첫 번째 경기를 치를 선수를 호명했다.

    “먼저 1:1 참가자 부분부터 진행합니다. 박강우 참가자?”

    “네.”

    강우가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태프가 강우와 상대할 참가자의 이름을 불렀다.

    “임요한 참가자.”

    “네.”

    강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잘생긴 한 명의 청소년이 있었다. 아직은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강우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익숙한 인물이었다.

    ‘아니···. 첫 상대부터 당신이라고?’

    강우가 눈을 빛냈다.

    ‘아니 오히려 잘됐네. 뭐든지 첫 단추를 잘 껴야 하는 법이니까.’

    강우가 힐끗 천막 밖을 바라보았다. 잔디에 모여있는 수많은 인파는 각자의 가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웅성거리며 지금 치러질 게임대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번 경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야 해. 그러기 위한 상대방으로는 이 사람이 최고지.’

    강우가 임요한에게 다가갔다. 스페이스 크래프트란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꾼 최고의 전략가이자 컨트롤러였다.

    “첫 경기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요.”

    강우가 악수를 나누며 씩 웃었다. 강우의 팬심이 가득 담긴 눈동자에 임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혹시 저를 아세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알죠.”

    “네?”

    임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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