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402)

놀 땐 좀 놀자!

서울대학교 교내가 다른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축제 준비가 끝난 서울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골탈태였다. 교내 곳곳에 걸린 현수막들은 축제의 기간과 여러 행사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이나은이 캠퍼스를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이미 서울대에 강우를 만나러 몇 번 왔던 이나은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캠퍼스는 정말 달라보였다.

“어때? 신경 엄청 썼는데.”

“진짜 예쁘게 잘 꾸몄다. 예전에 왔을 때랑은 완전히 달라.”

이나은의 말대로였다. 산속에 있는 서울대학의 특징을 살려 곳곳이 꾸며진 것이 참 보기가 좋았다. 모두 서울대 학생회와 동연의 구성원들이 합심해 만들어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든든한 후원사 대진 그룹이 있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우리 빨리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나은이 강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강우가 입꼬리를 주체 못 하며 이나은의 손에 끌려갔다. 학교 안은 더 잘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 축제를 위한 부스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껏 동연에서 준비하던 부스가 아닌 대진 그룹의 후원으로 받은 깔끔하고 훌륭한 부스들이었다.

“경영대 주점은 어디야?”

이나은이 강우가 기획한 주점에 관심을 드러냈다. 강우가 이나은을 이끌고 경영대 주점이 차려진 자하연으로 향했다. 자하연의 앞쪽으로 있는 잔디에는 여러 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학과별로 지원을 받아 연 주점들이었다.

“어디 보자 우리 주점은···. 아 저기다.”

강우가 한쪽을 가리켰다. 자하연에 세워진 여러 개의 주점 사이에서 유독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강우가 슬쩍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저기다. 그런데 우리 학과 사람들 많은 거 같은데?”

“정말? 나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 궁금해. 빨리 가보자.”

이나은이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상대방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은 게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강우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그래, 가보자.”

강우와 이나은이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주변의 학우들이 강우를 알아보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옆에 있는 이나은의 존재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학교 내에서 강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강우에게 고백한 여학생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소문은 사실이었다. 다만 강우가 정중히 여자친구의 존재를 밝히며 거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강우는 절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저 왔습니다.”

강우가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섰다. 천막 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여기 술 좀 가져다줘!”

“파전 하나 추가!”

한쪽에서는 분주히 안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우가 슬쩍 주방을 바라보았다. 경영학과에서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로 뽑힌 인원들이었다. 제법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접시에 담겨 나가는 파전은 그 모양새도 볼만했다.

“맛있겠다. 강우야 우리도 저거 먹자.”

“그럴까?”

강우가 슬쩍 안쪽의 자리를 확인했다. 화제의 경영학과 주점답게 안쪽은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수익금을 모두 기부하기로 한 것이 화제였다. 경영학과의 이런 결정을 시작으로 몇몇 다른 학과에서도 기부하겠다고 동참을 했다.

“어? 강우야!”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 채보라가 열심히 서빙하고 있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오늘 오후에 있을 농구 본선을 준비해야 할 채보라였다.

“누나? 여기서 뭐 해요?”

채보라가 강우에게 답은 미뤄둔 채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잔뜩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어머? 나은이 왔구나?”

“언니 안녕하세요.”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채보라에게 인사했다. 채보라가 서빙을 하려던 테이블에 소주를 탁 내려놓더니 다가왔다.

“강우랑 같이 놀러 왔어?”

“네.”

이나은과 채보라는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이나은이 학교로 놀러 오기도 했고, 밖에서 커플끼리 만나 놀기도 자주 했었다. 강우가 채보라를 보며 말했다.

“누나. 누나?”

“응, 다 들려 한 번만 불려줄래?”

채보라의 말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채보라가 말을 이어갔다.

“너무 바빠서 나까지 불려 왔어. 지금 난리도 아니야.”

“아···. 그렇게 바빠요?”

강우의 말에 채보라가 안쪽을 보라는 듯 손짓했다. 그때, 주점의 문이 열리고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나은을 보고 움찔했다.

“어?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강우가 막 들어선 무리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 강우구나?”

선배들이 강우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강우와 이나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은근슬쩍 자랑하듯 말했다.

“제 여자친구예요. 이름은 이나은이에요.”

“안녕하세요. 강우 여자친구 이나은입니다.”

선배들이 강우를 보며 ‘오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라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자리에들 가서 앉아요.”

채보라가 막 들어온 경영학과 학생들을 자리로 가라며 손짓했다. 학생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강우를 알아본 경영학과 학생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해왔다.

“강우야, 안녕?”

“덕분에 이번 축제 대박인 거 같다.”

강우가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나은이 그런 강우가 신기한 듯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인사를 모두 끝낸 강우가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배고프지?”

“아직 괜찮아.”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채보라를 향해 말했다.

“우리 자리 없어요?”

“관계자는 착석금지야. 지금 우리 주점 미어터져. 이러다가 대기표까지 끊어줘야 할 판이야.”

채보라의 말대로였다. 계속해서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번 서울대 축제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진 미디어에서 대대적으로 서울대생들과 지역사회에 홍보한 덕분이었다.

“그럼 우린 체육관에 가 있을게요.”

“그래, 애들 거기에 다 모여있을 거야.”

“네, 그럼 누나 수고해요.”

채보라가 알았다며 싱긋 웃었다. 이나은도 채보라를 향해 인사했다.

“언니, 있다가 봐요.”

“그래, 나은아.”

강우와 이나은이 주점을 나왔다. 채보라의 말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축제 첫날부터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었다. 곳곳에는 대진 미디어에서 지원 나온 직원들도 보였다.

“진짜네. 대진 미디어 직원분들도 있어.”

“응, 이번 축제 때 이것저것 진행 도와주실 분들이야.”

주로 대진 미디어에서 진행하는 굵직한 메인 행사를 돕기 위한 인력이었다. 대진 미디어가 후원한 가수들의 축하 무대와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 그리고 일정별로 벌어지는 각종 체육대회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농구 본선 있다고 했지?”

“응, 8강.”

지난 며칠 동안 농구대회의 예선도 치러졌다. 수십 개의 팀이 참가한 농구대회의 예선이 치열했다. 강우의 SLAM은 역시 간단히 예선을 돌파해 8개 팀이 겨루는 본선에 올라온 상태였다.

“나 살짝 떨려. 기대도 되고.”

“걱정하지 마. 우리가 우승할 거니까.”

이나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강우가 이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이나은은 잘 알고 있었다. 강우가 자신 있다고 했을 때는 정말 성과를 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체육관으로 가자.”

“그래.”

강우와 이나은이 캠퍼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캠퍼스는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곳곳에 설치된 조명들이 빛을 발하며 축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어두워지니까 더 예쁘다.”

“맞아. 캠퍼스 꾸미느라 학생회에서 엄청나게 고생들 했지.”

한쪽에서는 학생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널찍한 총장 잔디 위쪽에 지어진 특설무대가 보였다. 그곳에는 오늘의 초대가수가 공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은 물론 가수의 팬들도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잠깐 구경하고 갈까?”

“응.”

강우와 이나은이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이 펼쳐지는 곳에는 한 가수가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발라드 가수였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팬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와~ 나 저 형님 노래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그래?”

강우가 노래방에서도 애창하는 노래들의 주인인 가수였다. 강우와 이나은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감상했다.

“아 맞다. 강우 너는 언제 공연해?”

이나은의 말에 강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밴드 공연은 내일이고 저기서 하는 공연은 축제 끝나는 마지막 날에 해.”

“그래? 나 축제 내내 와야겠다.”

“정말? 그럼 너희 학교 축제는?”

강우가 대번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우리 학교 축제야 내년도 있고, 내후년도 있고. 올해는 강우 네가 하는 게 많으니까 단 하나도 놓치기 싫은데?”

“하하···.”

강우가 멋쩍게 웃으면서도 좋았다. 그렇게 초대가수가 노래를 끝냈다.

-여러분 서울대 축제 처음 오는 데 분위기 정말 좋군요!-

마이크를 타고 초대가수의 감상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초대가수가 슬쩍 한곳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자 불을 밝힌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서울대라 그런지 축제 기간에도 공부하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초대가수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초대가수가 도서관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거기 공붓벌레들! 놀 땐 좀 놀자!-

큰 성량을 자랑하는 가창력 가수답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다시 폭소를 터트렸다. 초대가수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제가 사고 친 거 같으니까 보답으로 앙코르곡 하나 부르겠습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노래가 이어졌다. 강우가 탄성을 뱉어냈다.

“크···.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곡인데.”

“그래? 나도 이 노래 좋아.”

강우와 이나은은 한참을 노래 감상에 빠져있었다. 초대가수는 흥이 났는지 몇 곡이고 앙코르를 해주었다. 이 초대가수는 흥이 돋으면 계속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때, 강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뚜르르. 뚜르르.

노래에 빠져있던 강우가 아차 싶어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여보세요?”

-강우야, 너 어디야? 이제 시합 시작이라고.-

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나은과 함께 보내는 낭만적인 순간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강우가 이나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은아, 시합 시작한대. 빨리 가자.”

“어머? 진짜? 어떡해.”

이나은의 강우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체육관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이윽고 두 사람이 체육관에 도착했다. 강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삑-

이미 시합이 시작됐는지 양 팀의 공격과 수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강우가 슬쩍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SLAM 8:15 TIGER-

강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없다 해도 이지용이라는 괴물이 있는 SLAM이었다. 강우가 잠시 상대 팀의 플레이를 바라보았다. TIGER라는 팀은 관악 지역의 사회인 팀이었다. 그중에서 몇 명의 몸놀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저건 분명 선출인 거 같은데.’

이번 대회는 아마추어 대회였다. 농구선수 출신이 참가는 가능하지만 한 팀당 쿼터를 두어 한 명만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강우의 눈에 들어온 선출인 것 같은 선수는 총 3명이었다.

“강우야!”

강우를 발견한 동아리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강우가 이나은과 함께 벤치로 다가갔다. 동아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나은을 향해 쏟아졌다.

“아···. 내 여자친구 이나은이야.”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강우의 여자친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나은의 압도적인 미모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나은이에요.”

목소리마저 예쁜 이나은이었다. 동아리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신철민 교수가 나타났다.

“강우 왔구나!”

“교수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아리 SLAM의 감독을 맡아준 신철민 교수였다. 평소 농구에도 관심이 많은 신철민 교수였다. 물론 하는 것보다는 농구 지식이 많은 경우였다.

“빨리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저쪽 실력이 장난이 아니야.”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광판을 바라보니 그새 점수 차가 더 벌어져 있었다. 강우가 동아리원들이 챙겨온 자신의 농구가방을 챙겼다.

“나은아,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금세 갈아입고 올게.”

“응.”

강우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의 강우는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강우가 돌아왔다.

“바로 나가서 뛸 수 있지?”

“네.”

신철민 교수가 선수 교체 사인을 냈다. 대회를 위해 초빙한 정식 심판들이 사인을 받고는 기다리라는 손짓을 취했다.

삑삑-

이윽고 공이 사이드라인을 벗어났다. 그리고 강우의 교체 허락이 떨어졌다. 강우 대신 뛰고 있던 동아리원이 강우를 보고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다가와 강우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강우야, 부탁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이겨.”

강우가 코트를 밟았다. 등 번호 23번이 새겨진 유니폼은 강우가 가장 좋아하는 농구선수의 번호와 같은 것이었다.

“강우다!”

“강우야!”

코트 위에서 혈전을 벌이느라 강우가 온 줄도 몰랐던 동아리원들이었다. 강우가 미안하다고 말하며 동아리원들 사이에 섰다. 잔뜩 땀에 젖어있던 이재원이 강우에게 다가왔다.

“강우야, 이제 너만 믿는다.”

강우가 양팔을 쭉쭉 뻗으며 씩 웃었다.

“나만 믿어요. 이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