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402)
  • 저 가수 아닌데요?

    서울대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대진 미디어의 지원을 받은 총학생회는 이번 축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강우가 앉아있었다. 눈앞의 강단에는 반가운 인물이 강의를 진행 중이었다. 바로 신철민 교수였다.

    “박강우, 강의 끝나고 잠깐 나한테 좀 들르도록.”

    강의가 끝날 때쯤 신철민 교수가 강우를 호출했다.

    “네, 교수님.”

    강우가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강의가 끝나고 신철민 교수가 나갔다. 강우가 책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시간은 넉넉했다. 강우가 강의실을 나와 신철민 교수의 방으로 향했다.

    “오? 강우야, 이리 앉아라.”

    “네, 아버지.”

    강우가 신철민 교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신철민 교수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불렀다. 그동안 학기 초라 바빠서 통 신경을 못 쓴 거 같아서 말이야.”

    “바쁘셨잖아요. 강의 준비에 논문 준비에.”

    강우는 신원주에게 들어 신철민 교수의 근황을 잘 알고 있었다. 신철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지. 아 그리고 대회 준비는 잘 돼가?”

    “네, 밤에 틈틈이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 나도 출전해 보려고 한다. 원주랑 둘이 2:2 대회에.”

    “정말이요?”

    강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스페이스 크래프트 대회라니 그것도 교수와 학생의 신분인 두 사람이었다.

    “그래, 참가 신청도 해놓았다. 설마 교수라서 참가할 수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없어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참여 가능한걸요?”

    “그랬구나. 이거 은근히 기대되네.”

    신철민 교수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강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신철민 교수가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철민 교수가 짧게 숨을 뱉어내더니 입을 열었다.

    “원주 말이야···.”

    강우가 살짝 눈치채고는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철민 교수가 멋쩍게 웃었다.

    “요즘 보라를 만나는 거 같던데 맞니?”

    “네, 맞아요. 두 사람 잘 어울려요.”

    신철민 교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사회성이 부족해 걱정하던 아들의 연애라니 기쁠 만도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평소 이뻐하던 채보라였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래? 하하. 이거 잘 됐구나. 나는 내심 그냥 선후배 사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둘이 잘 어울려요. 서로 많이 좋아하는 거 같고요.”

    신철민 교수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는 강우도 흐뭇해졌다. 그때, 교수실의 문이 열리고 이재원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오? 재원이 왔구나.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손을 척 들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교수실을 나왔다. 여학생 몇 명이 강우와 이재원을 향해 우르르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재원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선배님.”

    “오? 우리 후배들 웬일이야?”

    “저···. 이거···.”

    여학생들이 앞다투어 쪽지를 내밀었다. 이재원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쪽지를 받았다.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더니 우르르 사라져갔다. 이재원이 강우를 보며 씩 웃었다.

    “아니, 무슨 단체로 쪽지를 주고 그런데? 따로따로 주지. 거참.”

    “진짜 뭐에요? 무슨 쪽지를 단체로 주고 가요?”

    이재원이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놈의 인기.”

    “빨리 열어나 봐요.”

    이재원이 쪽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괴상한 표정이 되었다. 강우가 힐끗 쪽지 내용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쪽지에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재원이 실소를 흘렸다.

    “아···.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자기들 좋아하는 아이돌 불러 달라고 투표한 거야?”

    “좋네요. 소중한 한 표를 이렇게 행사하고요.”

    강우의 말에 신철민 교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재원이가 한 방 먹었네.”

    * * *

    퉁. 퉁.

    체육관에 SLAM의 동아리원들이 모여있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줄지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삑-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 맨 앞줄의 동아리원이 달리기 시작했다. 호각을 분 코치가 적당한 지점에 공을 튀겨서 패스해 주었다. 달리던 동아리원이 공을 받아 레이업을 했다.

    철썩.

    림을 통과한 공이 그물을 가르며 땅에 떨어졌다. 이윽고 차례를 기다리던 동아리원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아리원들을 훈련하는 사람은 전직 프로 농구 선수였다. 지금은 코치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 다음!”

    다음 차례로 강우가 나섰다. 삑- 소리와 함께 강우가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선수를 뺨치는 속도에 코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공을 던지는 것을 깜빡했다.

    “코치님 위로 주세요.”

    강우가 달리며 손을 들었다. 코치가 화들짝 놀라며 공을 위로 뿌렸다. 강우가 훌쩍 점프했다.

    “우와~~”

    체육관에 있던 동아리원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마치 하늘을 날 듯 공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림에 내리꽂았다.

    텅!

    림이 흔들리는 강렬한 소리가 체육관에 퍼져나갔다. 체육관의 양쪽 측면에 모여있던 다른 동아리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우와!!”

    “역시 강우다!”

    공을 던져준 코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황급히 불렀다.

    “박강우 학생.”

    “네?”

    코치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혹시 선출입니까?”

    “네? 아닙니다.”

    강우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코치가 감탄을 터트렸다. 코치를 하던 내내 강우는 그야말로 선수급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드리블과 패스 그리고 슛까지 그야말로 수준급의 실력이었다.

    “볼 때마다 진짜 놀랍네요. 강우 학생은 공부가 아니라 운동선수를 해야 했습니다.”

    “워낙 농구를 좋아해서요.”

    “이번 대회에 SLAM이 참가하면 화제가 많이 되겠습니다.”

    코치가 슬쩍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강우보다 한 뼘은 더 큰 학생이 있었다. 유니폼 사이로 보이는 팔뚝과 다리 근육이 장난이 아닌 학생이었다.

    “이지용 학생.”

    코치가 그 학생을 불렀다. 순박한 얼굴에 짧게 자른 곱슬머리였다. 이지용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네, 코치님.”

    약간은 어눌한 듯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지용이었다. 코치가 이지용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정말 선출이 아니라는 거죠?”

    “선출? 그게 무슨 말이죠?”

    이지용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유창한 영어로 입을 열었다.

    “너 미국에서 선수 생활한 적 있냐고 묻는 거야.”

    “나? 노노.”

    이지용이 고개를 마구 흔들며 손가락 하나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농구는 안 했다. 그래도 미식축구는 했었다.”

    “아···. 그랬구나.”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용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탱크 같은 몸을 가진 이지용이었다. 이지용은 강우와 동갑인 98학번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장 과정을 미국에서 보낸 학생이었다. 서울대에는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을 한 경우였다.

    “미식축구는 조금 했다고 하네요.”

    “하···. 어쩐지 몸이 일반인 몸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코치가 SLAM의 선수구성을 보더니 살짝 몸을 떨었다. 강우와 이지용이라는 원투펀치만으로도 충분히 강팀이었다. 그런데 다른 구성원들도 실력이 빠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여러 선출 코치들의 강습을 받으며 탄탄한 팀으로 변모했다.

    “이거···. 축제 체육대회로 끝내기에는 좀 아쉬운 팀인데요.”

    “그렇죠? 그래서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볼 생각입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원래 3ON3라는 농구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우가 총학생회에 건의해 대회를 정식 게임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농구대회에도 커다란 상금과 상품을 걸었다. 그러자 서울대 내부에서도 느슨했던 참가 의지가 마구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참가팀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지. 학과별로도 참가하고 기존에 있던 동아리들도 대거 참가하고.’

    그뿐이 아니었다. 강우의 아이디어로 지역의 아마추어나 고등학교팀도 참가를 가능하게 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농구대회에 참가한 팀의 수가 수십을 훌쩍 넘겨 예선전까지 치러야 할 정도까지 되었다고 했다. 일부 스포츠 전문 기자들이 서울대에 취재까지 오기도 했다.

    ‘뭐···. 아직은 농구가 엄청 인기이기는 하지.’

    물론 몇 년 뒤면 한국에 엄청난 축구 열풍이 불어 닥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지역사회의 참가가 활발해 지면서 서울대가 추구하던 녹두문화제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이번 축제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었다.

    “일단 이번 대회부터 잘 치르면 좋겠네요.”

    코치가 말을 잠시 멈추고 다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SLAM의 주전 라인업을 보며 감탄을 했다.

    “뭐···. 우승은 변수가 없는 한 SLAM이 하겠지만요.”

    “다 코치님들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다들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죠.”

    코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팀원들을 쓱 바라보았다. 동아리원 중 농구를 원래부터 잘하던 것은 강우와 이지용 정도였다. 이지용은 그냥 운동신경이 좋았다. 신체 능력이 좋아진 강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강우는 농구를 참 좋아했었다. 엄청난 운동신경에 미래의 경험까지 합쳐지니 코치가 선수 출신이라고 착각할만했다.

    ‘솔직히 우리 둘만 있어도 웬만한 아마추어팀은 그냥 이기겠는데 말이야.’

    퉁. 퉁.

    한쪽에서 공을 튀기며 연습을 하는 신원주가 보였다. 신원주도 고등학교 때부터 종종 강우와 농구를 즐기고는 했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는 상태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니 실력이 일취월장이었다.

    ‘진짜 놀라운 건 재원이 형인데···.’

    강우가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낮은 자세로 공을 튀기며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재원은 키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을 가졌다. 운동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고도 했다. 하지만 근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알자 개인 시간까지 투자하며 훈련을 했다. 그리고 결국 주전 선수 자리를 차지했다.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형이지.’

    강우가 흡족하게 웃었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농구도 열심히 하고.’

    미래의 기억 속에서는 마음껏 즐기지 못한 취미생활이었다. 생업에 치여 일주일에 한 번 운동하기도 힘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러 가지 일로 매우 바빴지만, 생업에 치여 못할 일은 없었다.

    ‘잘 만들어서 대회도 나가고 외국에 농구 여행도 가고 싶다.’

    아버지의 말처럼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대학 생활을 끝내고 나면 정말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바쁜 강우였다.

    “자자! 마지막으로 마무리 운동하고 오늘 훈련 끝내겠습니다.”

    코치가 손뼉을 치며 동아리원들을 불러 보았다. 훈련이 끝나면 제대로 된 마무리 운동은 필수였다. 그래야만 몸이 상하거나 시합 중에 다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었다.

    삑- 삑-

    코치가 부는 호각 소리에 맞춰 동아리원들이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한쪽에서는 다른 동아리원들이 모여 열심히 대자보와 현수막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축제에 쓰일 것들이었는데 SLAM의 동아리원들이 자원해서 맡기로 한 일이었다.

    “강우야!”

    그때, 체육관으로 김석현이 찾아왔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김석현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강우가 몸을 풀다 말고 김석현을 바라보았다.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김석현이 강우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숨을 정리한 김석현이 강우를 보며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강우가 종이를 받아들고는 실소를 흘렸다.

    “아니 제 이름이 왜 여기에 있죠?”

    “보는 대로야. 서울대 학우들 투표에서 네가 1등을 차지했다고.”

    강우가 종이를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서울대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강우는 섭외 가수 투표를 진행했었다. 서울대생들이 투표한 가수들 등수를 가려 섭외해 주기로 한 기획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당당히 강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왜요? 저 가수 아닌데요?”

    강우의 질문에 김석현이 몰랐냐는 듯 물었다.

    “몰랐어? 너 새터에서 장기자랑 한 게 엄청 화제였잖아. 그거 서울대에 쫙 퍼졌어.”

    “하하···.”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종이와 김석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김석현이 씩 웃으며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이 기회에 우리 밴드에 들어오는 게 어때?”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부터 강우를 노리고 있다던 밴드 동아리의 선배가 바로 김석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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