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402)
  • 오래오래 우리랑 같이 살아요.

    강우 가족의 집에 활기가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주방이었다. 온갖 음식들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넓어진 주방만큼 어머니의 손도 훨씬 커졌다. 주방 가득한 음식재료들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동생, 너무 무리하지 마.”

    어머니의 옆에는 김세아가 있었다. 어머니와 김세아는 자주 만나며 엄청 친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 집에 온 것이다. 오늘은 최준이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언니, 이제 저도 요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맞아. 요즘 동생 요리가 엄청 맛있더라. 저번에 해준 잡채도 진짜 맛있었어.”

    “어머? 진짜요?”

    김세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머니와 친해진 김세아는 요리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어머니의 수제자가 되었다. 어머니와 김세아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요리를 해 먹고 차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동생 연극으로 복귀하는 건 언제야?”

    “요즘 한참 연습 중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연극을 하게 돼서.”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김세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긴 세월 가장 사랑하는 연기에서 멀어진 삶을 살았다. 그리고 다시는 복귀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김세아는 다시 연극으로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게 전부 다 강우 덕분이에요.”

    “어머? 그게 무슨 말이야. 다 훌륭한 우리 재원이 덕분이지.”

    서로서로 아들을 칭찬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진짜 재원이가 강우를 만나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아니야. 재원이는 혼자 힘으로라도 꼭 일어섰을 아이야.”

    어머니의 칭찬에 김세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가 김세아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울지마.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재원이도 있고 강우도 있고 우리도 있잖아?”

    “맞아요. 우리는 다 가족이니까요.”

    김세아가 가슴이 따듯해짐을 느끼며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참 우리 강우 요즘 연애한다며요?”

    “재원이한테 들었구나? 맞아 참한 아가씨인 거 같더라고. 아 참 그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래.”

    김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제 후배네요?”

    “그러니까. 나중에 인사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 같이 봐.”

    “아니에요. 그 아가씨 부담스럽잖아요. 나중에 한번 볼게요.”

    어머니와 김세아는 요리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순간 주방으로 강우와 이재원이 나타났다.

    “엄마.”

    둘이 동시에 서로의 엄마를 불렀다. 두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아들들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사업 이야기로 밤을 새운 두 아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둘 다 앉아. 아침 먹게.”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김세아가 재빨리 그릇에 국을 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밥을 푸고 반찬을 준비했다.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 순식간에 상 위가 가득 찼다.

    “와···. 아침부터 이걸 다 먹어요?”

    이재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반찬 몇 가지를 쓱 가져가려 했다. 이재원이 화들짝 놀랐다.

    “자···. 장난입니다!”

    어머니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접시를 내려놓았다.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방 안에서 강용이가 바람처럼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김세아에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가 강용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김세아는 강용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강용이, 잘 잤어?”

    “네!”

    강용이는 오늘 그야말로 잔뜩 신이 났다. 그동안 바빠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모자라 잔치까지 벌이니 말이다. 강우가 문득 강용이에게 미안해졌다.

    “형아 옆에 앉아.”

    “어어.”

    강용이가 강우와 이재원의 사이에 앉았다. 양쪽을 번갈아 보는 강용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강우가 강용이를 쓰다듬었다.

    “강용이 요즘 학교생활 재밌어?”

    “음···.”

    강용이가 살짝 머뭇거렸다. 강우가 움찔하며 빠르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친구들이 형이 우리 형이라니까 안 믿어서.”

    밥을 먹던 이재원이 쿨럭하고 밥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대번에 미간을 좁혔다.

    “누구야? 누가 우리 강용이 형이 강우라는데 안 믿어?”

    말을 이어가던 이재원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강우가 그렇게 유명해?”

    “어, 우리 친구들이 그러는데 되게 멋있대.”

    강용이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언제 한번 강용이네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였다.

    “일단 밥 먹어. 나중에 형이 학교로 한번 갈게.”

    “진짜지?”

    강용이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렇게 약간의 소동이 있던 아침 식사가 끝났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강용이는 깨끗이 씻고 옷도 깔끔히 입었다.

    “다들 준비됐지?”

    어머니가 아들들을 보며 물었다. 강우와 이재원 그리고 강용이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네!”

    어머니와 김세아의 손이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주방을 가득 채웠던 음식 재료들이 점점 먹음직스러운 요리로 변해갔다. 강우와 이재원은 집이 깨끗이 치워져 있는지 마지막 점검을 했다. 그리고 거실에 커다란 교자상을 여러 개 이어놓았다.

    “준비됐으면 음식 좀 날라줄래?”

    어머니의 말에 강우와 이재원이 후다닥 주방으로 갔다. 밖에서는 유명인에 의젓한 아들들이지만, 집에서는 어머니의 훌륭한 조력자였다.

    “우와~~~”

    상 위로 놓이는 음식들에 강용이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돕겠다며 음식을 날랐다. 커다란 접시를 양손에 든 강용이가 끙끙대며 걸었다.

    “강용아, 조심해.”

    강우가 그런 강용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윽고 집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더니 거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말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다들 마무리하자. 지금 다 오셨대.”

    강우 가족의 집에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강우와 이재원이 마중을 위해 아파트의 일 층으로 내려왔다.

    “짐이 많을까?”

    “호텔에 계시면서 이것저것 사놓은 게 많아요.”

    “우리가 가볼 걸 그랬나?”

    “아니에요, 아버지가 혼자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이재원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우리 어머니 대단하셔.”

    “그렇죠? 나도 정말 놀랐어요.”

    강우와 이재원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탄했다. 최준이 한국에 온 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할아버지도 계속해서 호텔에서 최준과 머물렀다. 아무리 스위트룸이라지만 호텔은 호텔이었다. 연로한 두 분의 호텔 생활이 걱정됐다. 결국,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상의 끝에 두 분을 집으로 모셔오기로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모시는 것도 대단한데 최준 어르신까지 모시겠다고 하시다니.”

    “우리 엄마가 진짜 착해요.”

    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을 동시에 한 집에서 모시겠다니. 어지간한 여자는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강우는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셔 우리 어머니. 그런데 최준 어르신이 반대 엄청 하셨다고 했지?”

    “네, 펄펄 뛰셨죠. 우리 엄마한테 피해 주기 싫다고요. 그런데 엄마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했어요.”

    “진짜? 대박이네.”

    이재원이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가 흐뭇하게 웃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극구 반대하는 최준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최준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했지. 그리고 나와 강용이에게 좋은 교육이 될 거라고도 하셨어.’

    어머니의 진심에 최준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어머니에게 할아버지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랐다. 그렇게 최준은 오랜 호텔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가족의 품으로 오게 되었다.

    “어? 강우야, 오신다.”

    이재원의 목소리에 강우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멀리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강우 가족의 승용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승용차는 강우의 앞쪽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덜컥 뒷문이 열렸다. 강우가 빠르게 다가가 최준을 부축했다. 이재원은 할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덜컹.

    트렁크가 열리고 아버지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강우야, 네가 할아버지들 모시고 올라가 있어. 재원이랑 내가 짐 가지고 올라갈게.”

    “네.”

    강우와 최준 그리고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강우가 힐끗 최준을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묘한 긴장감이 떠올라있었다. 강우가 최준을 향해 말했다.

    “쓰실 방은 깨끗이 정리해 놨어요. 그리고 강용이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 강용이가?”

    강용이를 언급하자 최준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옅어졌다. 이윽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강용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할아버지!!”

    강용이가 할아버지의 품에 푹 안겼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코~ 우리 강용이 잘 지냈어?”

    “네!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강용이가 이번에는 최준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할아버지, 집에 잘 오셨어요. 이제 매일 강용이랑 놀아주세요.”

    “허허···.”

    강용이의 말에 최준의 남아있던 불편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살짝 눈시울을 붉히며 강용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우리 강용이 할아비가 많이 놀아줄게.”

    “진짜죠? 약속이에요?”

    강용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최준의 주름졌지만, 강인한 손가락이 강용이의 작은 손가락과 꽉 메여졌다.

    “오래오래 우리랑 같이 살아요.”

    강용이의 마지막 말에 주변의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최준을 반겼다.

    “시장하시죠? 한국에 오셨을 때 꼭 음식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다.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구나.”

    이윽고 아버지와 이재원이 짐을 가지고 올라왔다. 양손 가득 짐들이 들려있었다. 호텔 생활을 하며 쌓이고 쌓인 짐들이었다.

    “아버지, 이거 강용이 방에 가져다 놓으면 되죠?”

    “어, 맞아.”

    아버지와 이재원이 짐을 강용이의 방에 놓았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방을 양보하려 했지만, 최준이 거절했다. 이윽고 짐을 모두 정리하고 아버지와 이재원이 나왔다.

    “어르신, 저희 어머니입니다.”

    이재원이 김세아를 최준에게 소개했다. 최준이 부드럽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아주 훌륭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김세아가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최준이 알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널찍한 거실이 금세 가득 찼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어머니의 말에 최준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이렇게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렸는데 먹을 게 없다니.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 어멈이 정말 수고했구나. 그리고 세아도.”

    할아버지가 김세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맞아요. 아버님. 세아가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어머니의 말에 김세아가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준이 거실을 쓱 둘러보았다.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싼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긴 세월 홀로 외로이 지냈던 시간이 눈 녹듯이 잊혀갔다.

    “좋구나. 아주 행복해.”

    돈이 많았어도 공허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높여주었어도 외롭고 부질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존재였다.

    “다들 맛있게 먹자꾸나.”

    최준의 말을 시작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어머니와 김세아가 만든 음식은 그야말로 맛이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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