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402)
  • 강우를 이겼어!

    안성에서 오래된 경양식 집에 세 커플이 둘러앉았다. 각자의 앞에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가 놓여 있었다. 수프에 찍어 먹기 좋게 노릇하게 구워진 빵도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만 표정 펴라. 밥 먹다 체하겠네.”

    연정호가 김춘배를 향해 말했다. 김춘배가 한숨을 푹 쉬었다.

    “강우야, 너 차 바꿔라. 요즘 그 뭐냐? 기우 자동차에서 미니밴 좋은 거 나왔다던데.”

    “아···. 카니발?”

    강우가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김춘배가 말하는 자동차는 한국 미니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차종이었다. 미래의 강우도 가족들을 위해 그 차를 끌고 다니고는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최준 할아버지까지 계시니 차가 좁기는 하지.’

    강우가 조만간 차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스가 부어져 있는 돈가스였다.

    “나왔다.”

    역시나 한참 먹을 청춘들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다들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나은아, 내가 잘라줄까?”

    “어? 아니 내가 할 수 있는데···.”

    “아니야. 내가 잘라주고 싶어서.”

    강우가 이나은의 돈가스를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연정호가 질세라 강우를 따라 했다. 김춘배도 막차를 탔다.

    “춘배야, 이거 먹어.”

    김혜지가 김춘배에게 돈가스를 덜어주었다. 혼자 먹기는 양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돈가스를 받은 김춘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먹을 거 줘서 화 풀리면 이것도 받아라.”

    강우가 자신의 수프를 앞으로 내밀었다. 김춘배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후추 뿌려서 싫다.”

    김춘배가 접시를 다시 강우에게 밀어냈다. 그런 김춘배의 발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씩 웃었다.

    “기분 좋아졌어?”

    “어, 많이.”

    김춘배도 씩 웃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졌다. 커플들은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 풋풋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자연스레 쏟아졌다.

    “우리 이거 먹고 어디 갈까?”

    이나은이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김혜지와 조민정도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연정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술이나···.”

    김춘배가 탁자 밑으로 연정호의 다리를 꾹 밟았다. 연정호가 아차 싶은지 입을 다물었다. 강우가 픽 웃으며 말했다.

    “우리 볼링 치러갈까?”

    강우의 말에 일제히 ‘오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즐기기에 특히 커플끼리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침 근처에 볼링장 있다.”

    안성 지리를 잘 아는 김춘배가 말했다. 그렇게 식사가 모두 끝나고 세 커플은 볼링장으로 향했다. 강우가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의 여직원이 친절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몇 명이세요?”

    “여섯 명입니다. 두 레인 빌릴게요.”

    “네, 신발 크기 알려주세요.”

    강우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앞다투어 자신의 신발 크기를 말했다. 그렇게 각자의 신발 크기대로 볼링화를 빌렸다. 문제는 강우의 발 크기였다.

    “죄송해요. 300치수가 없어서. 290으로 드릴게요.”

    “아···. 네.”

    볼링장 직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우도 이해는 했다. 먼 미래에도 강우는 늘 큰 발 때문에 고생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산 적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직원이 강우에게 290짜리 신발을 건넸다.

    “강우야, 너 발 진짜 크다.”

    이나은이 강우의 볼링화를 보며 새삼 놀랬다. 187에 덩치도 큰 강우는 발도 컸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발이 커서 좋은 점은 별로 없는 거 같아.”

    “그렇긴 하겠다.”

    강우와 이나은이 마지막으로 레인에 합류했다. 이미 준비를 마친 일행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한쪽에 앉았다. 김춘배가 자신이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3:3으로 내기 볼링 어때?”

    “편은 어떻게 먹고?”

    연정호가 물었다.

    “엎어라. 뒤집어라.”

    김춘배의 말에 여섯 명의 손이 한곳에 모여졌다. 김춘배가 크게 구호를 외치고 나자 각자의 손바닥이 위와 아래를 향했다.

    “다시!”

    한 번 더 구호가 흘러나왔다. 이나은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나 강우랑 같은 편이다.”

    “아싸! 나도 강우랑 같은 편!”

    김춘배가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그러다니 이내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그럼 나 혜지랑 다른 팀이야? 이거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진짜.”

    “괜찮아, 춘배야.”

    김혜지가 미소를 지으며 김춘배를 달랬다. 이제는 포기한 듯 김춘배가 묵묵히 볼링공을 들었다.

    “뭐 걸고 내기할 건데?”

    김춘배의 질문에 연정호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있다가 맛있는 거 사기.”

    “맛있는 거냐 마시는 거냐?”

    강우의 질문에 연정호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민정이 싱긋 웃었다.

    “우리 캠퍼스 저녁 되면 진짜 예뻐. 이따가 돗자리 깔고 거기서 맥주도 한 캔하고 치킨도 시켜 먹자.”

    “맞아. 그러자.”

    이나은과 김혜지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연정호가 씩 웃으며 좋아했다.

    “강우야, 너 볼링 많이 해봤어?”

    “어···.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미래의 강우는 볼링을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오늘이 처음인 것도 맞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강우의 말을 듣고 있던 김춘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얘들아 저 말 믿지 마. 맨날 처음이라고 해놓고는 입이 떡 벌어지게 잘하는 게 강우라니까?”

    “맞다. 나도 인정.”

    연정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이라고 했지. 못한다고는 안 했다. 나랑 같은 편인 게 싫어?”

    “아니, 좋지. 오늘 내기는 우리의 승리겠군.”

    김춘배가 실실 웃으며 강우의 옆으로 왔다. 그 모습을 보며 연정호가 ‘저 흉악한 놈들’이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렇게 내기 볼링이 시작됐다. 강우와 이나은 그리고 김춘배가 한 팀이었고 연정호와 조민정 그리고 김혜지가 한팀이었다.

    “내가 먼저 할게.”

    이나은이 볼링공을 들더니 어프로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이나은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가 공을 던졌다.

    드르릉.

    볼링공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윽고 볼링공이 핀을 멋지게 날려버렸다.

    “스트라이크!”

    이나은이 폴짝 뛰며 기뻐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좋냐?”

    “어, 완전 좋아.”

    강우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김춘배가 픽하고 웃었다. 그사이 옆쪽 레인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대 팀의 첫 번째 주자인 연정호가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것이다. 김춘배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이 몸의 차례인가?”

    잔뜩 멋들어진 표정으로 공을 집은 김춘배가 어프로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옆 레인의 김혜지를 보며 씩 웃었다.

    “춘배 파이팅!”

    김혜지의 응원에 김춘배의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했다. 김춘배가 심호흡하더니 공을 던졌다.

    드르릉.

    레인 위를 힘차게 나아가던 공이 소박하게 핀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김춘배가 움찔하더니 크게 웃었다.

    “아! 이런 실수. 실수.”

    김춘배가 이마 위에 식은땀을 닦아내며 다시 공을 잡았다. 그리고는 김혜지를 슬쩍 바라보았다. 김혜지가 싱긋 웃으며 ‘괜찮아.’라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김춘배가 히죽 웃었다.

    드르릉.

    김춘배의 공이 다시 레인을 내달렸다. 하지만 역시나 소박한 결과였다. 김춘배가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

    “미안하다.”

    “아니야. 너 몸치인 거 유명하잖아.”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김춘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희들이 재밌으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옆자리에서 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주자인 김혜지가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것이다.

    “혜지 잘한다!”

    김춘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나은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넌 누구 편이냐?”

    “나? 난 혜지 편.”

    강우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자신의 차례였다.

    ‘음···. 이렇게 하는 거였지?’

    강우가 자세를 잡고는 멋진 자세로 공을 던졌다. 강우가 던진 공이 레인 위를 휘감으며 힘차게 나아갔다.

    “오오!”

    강우의 멋진 자세와 공의 궤적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강우의 공이 핀을 박살 내듯 모두 처리했다. 깔끔한 스트라이크였다.

    “강우, 최고!”

    이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우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이나은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옆 레인의 연정호가 대번에 항의를 해왔다.

    “이거 봐! 맨날 처음이라고 하는데 결과가 이렇다니까? 너 진짜 처음이야?”

    “맞아. 이건 처음 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데?”

    조민정도 연정호의 항의에 합세했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인데 처음이야.”

    강우의 말에 김춘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야! 진정들 해라. 강우 이러는 거 어디 한두 번이냐? 그리고 원래 강우 운동 잘하잖냐.”

    “하긴···. 농구 할 때도 장난 아니긴 하지.”

    연정호가 강우의 농구 실력을 떠올리고는 금세 수긍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강우의 운동신경이야 알아주는 것이었다.

    “강우가 운동을 그렇게 잘해?”

    대화를 듣던 이나은이 관심을 드러냈다. 김춘배가 기억을 떠올리며 탄성을 뱉어냈다.

    “고2 때인가? 공던지기 시험 보는데 강우가 던진 공이 학교 담장 넘어서 한참이나 날아가서 주택가 창문을 깬 적이 있지. 그때 체육 선생님의 난감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뿐이냐? 레이업 시험을 하랬더니 덩크를 해버려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었지.”

    연정호도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나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 운동 잘하는 남자가 좋던데.”

    강우가 멋쩍게 웃으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나은도 강우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두 커플의 애정행각에 나머지 커플들이 몸을 살짝 떨었다.

    “나은아, 그럼 언제 연습 시합할 때 학교로 놀러 와.”

    “좋아!”

    강우의 제안에 이나은이 대번에 좋다고 했다. 그러자 연정호가 조민정도 같이 오라고 했다.

    “그럼 이번에는 너희가 우리 학교 놀러 왔으니까 다음에는 춘배랑 혜지까지 해서 우리가 서울대 놀러 갈게.”

    조민정의 대답에 김춘배와 김혜지도 좋은 생각이라며 호응했다.

    “그럼 일단 오늘의 승부는 내야지?”

    김혜지가 싱긋 웃으며 공을 들었다. 그리고는 어프로치 위에 섰다. 김혜지가 스텝을 밟는 순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혜지 뭐야?”

    조민정이 깜짝 놀라며 김혜지를 가리켰다. 그사이 김혜지의 공이 화려한 스핀을 자랑하며 레인 위를 내달렸다. 핀이 흩어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김혜지가 수줍게 웃었다.

    “우와! 스트라이크! 혜지 뭐야?”

    김춘배가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강우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김혜지의 실력은 마치 텔레비전 속 프로들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볼링 프로시거든. 어릴 때부터 계속한 게 볼링이라서···.”

    김혜지의 고백에 양 팀의 희비가 갈렸다. 그 와중에 김춘배는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그렇게 게임이 이어지고 결국 승부가 갈렸다.

    “아싸! 이겼다! 강우를 이겼어!”

    연정호가 승리에 기뻐 날뛰었다. 강우가 폭 한숨을 쉬었다.

    “후······.”

    “네가 이해해라. 정호가 너 한번 이겨보는 게 소원이었나 보지.”

    김춘배가 강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강우가 김춘배를 향해 말했다.

    “이 패배의 원흉아.”

    “하하···.”

    내기 볼링은 그야말로 강우와 김혜지의 격돌이었다. 두 사람은 연신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박빙의 대결에 주변의 시선이 쏠릴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의 승부는 김춘배에게서 갈렸다.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대표 몸치로 불리는 김춘배다운 성적이었다.

    “그럼 오늘 저녁은 강우네 팀이 사는 거로!”

    연정호가 신이 나서 말했다. 강우가 말없이 계산대로 다가가 게임비를 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말한 대로 캠퍼스 가서 먹는 거지?”

    “응, 조금 있으면 노을이 지고 진짜 예쁘겠다.”

    이나은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강우와 일행은 근처의 치킨집에 들러 양념치킨과 프라이드치킨을 포장했다. 편의점에 들러 이런저런 먹을 것과 맥주도 잔뜩 샀다.

    “그럼 이번에는 우리끼리 간다.”

    역시나 김춘배는 차를 못 탔다. 하지만 이번에는 곁에 김혜지가 있었다. 김춘배가 싱글벙글 손을 흔들었다.

    “먼저들 가. 캠퍼스에서 보자.”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잠시 후, 강우와 세 커플은 캠퍼스의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포장해 온 치킨과 먹을 것들을 세팅하자 돗자리 위가 금세 풍성해졌다.

    딸칵. 딸칵.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주는 듯했다. 강우는 운전해야 하니 콜라로 대신했다.

    “마시자! 건배!”

    다섯 개의 맥주캔과 한 개의 콜라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이나은이 닭 다리를 집어서는 강우에게 내밀었다.

    “강우야, 이거 먹어.”

    “아니야. 너 먹어.”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아니야. 나 닭 다리 안 좋아해.”

    그 순간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치킨을 먹을 때는 항상 닭 다리는 안 먹는다고 했다. 아들들에게 양보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안 드셨다.

    “왜? 나 얼굴에 뭐 묻었어?”

    강우의 시선에 이나은이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야! 그냥 예뻐서···.”

    강우가 닭 다리를 받아 들었다. 김춘배와 연정호 그리고 조민정이 닭살 돋는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벼댔다.

    “혜지야, 너도 예뻐!”

    김춘배가 질세라 말했다. 김혜지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러자 조민정이 연정호를 향해 얼굴을 쓱 들이댔다.

    “정호야?”

    “흠흠···. 예쁘네···.”

    상남자 연정호가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조민정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세 커플의 즐거운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화장실 갔다 올게.”

    이윽고 세 명의 여학생이 화장실로 향했다. 연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들은 왜 항상 화장실을 같이 가는 걸까?”

    강우와 김춘배도 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들에게는 풀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그렇게 세 남자가 남았다. 멀리 하늘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우와 두 친구가 돗자리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았다.

    “좋네.”

    이마를 휘감는 저녁 봄바람에 강우가 탄성을 뱉어냈다. 김춘배와 연정호도 두 눈을 감고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때, 김춘배가 슬쩍 입을 열었다.

    “강우야.”

    강우가 힐끗 옆을 보며 답했다.

    “왜?”

    “너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뚱딴지같은 소리에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연정호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는 네가 유명해지는 거 좋은데. 또 가끔 무섭기도 해. 우리한테서 너무 멀어지는 거 아닐까 해서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럴 놈이냐?”

    강우가 미간을 좁히며 화를 내듯 말했다.

    “아니. 너 그럴 놈 아니라는 거 잘 알지. 그런데 그냥 우리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맞아. 우리는 이제 겨우 학생인데 말이야. 너는 너무 높게 훨훨 날아가는 거 같고.”

    강우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별걱정들을 다한다. 나한테 너네는 친구 이상이야. 쓸데없는 생각들 하지 마라. 나는 언제나 그냥 박강우니까.”

    강우의 말에 김춘배와 연정호가 환하게 웃었다. 강우도 친구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너네는 꼭 대단한 사람들이 될 거야. 내 친구들이니까.”

    강우의 말에 두 친구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강우의 말은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그때였다.

    뚜르르. 뚜르르.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딸칵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빼고 재밌냐?-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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