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402)
  •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옛 광복군 사령부 건물 앞에 강우와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건물에 있다는 말이지?”

    아버지가 강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강우가 자신을 찾아와 이 건물을 지목했을 때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강우를 겪어온 아버지는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네, 최경 님의 마지막 목적지가 바로 광복군 사령부 건물이었어요.”

    “허···. 그랬던 건가?”

    아버지가 탄식을 뱉어냈다. 그렇게 긴 세월 이렇게나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줄 최준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강우와 아버지가 이제는 상점이 된 건물에 앉았다. 강우가 가게에서 산 음료를 마시면서였다.

    “강우야, 온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위혁오가 나타났다. 곁에는 한 명의 남성이 함께였다. 두 사람의 곁에는 공안들도 함께였다. 위혁오는 곧장 강우와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위혁오의 것으로 사놓은 음료를 내밀었다.

    “그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위혁오가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는 옆의 남성을 소개했다.

    “충칭시의 당서기님이 보내주신 분입니다. 일단 오늘은 건물의 조사를 도와주실 겁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창한 중국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항일운동에 중요한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제가 영광입니다.”

    상대방이 강우의 유창한 중국어에 놀라며 답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만.”

    남성이 공안들과 함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이 깜짝 놀라며 남성을 맞이했다. 남성과 가게 주인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강우와 아버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마음껏 둘러보셔도 됩니다.”

    남성이 강우에게 말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가게 주인분에게 전해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둘러보세요.”

    남성은 정말 호의적이었다. 위진오의 위세를 새삼 다시 느끼는 강우였다.

    “아버지, 가요.”

    “그래.”

    아버지의 얼굴에 옅은 긴장감이 떠올랐다. 강우와 아버지가 건물로 다가갔다. 낡고 허름한 건물의 모습에 두 부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여기에서 할아버지가 활동하셨던 거겠죠?”

    “맞아. 징모처에 계셨으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물품과 어지럽게 뒤섞여있었다. 아버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말 여기에 장부가 있는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만한 곳은 없었다. 그리고 세월 역시 많이 흘렀으니 말이다. 그 순간 강우가 거침없이 기억을 떠올리며 한쪽으로 향했다.

    ‘여기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주변의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다가와 묵묵히 강우를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물건을 치우던 아버지가 화들짝 놀랐다.

    “어? 이건?”

    강우가 아버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닥을 확인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바닥에 미세한 틈이 있었다. 강우가 빠르게 먼지를 치워냈다. 그리고 틈에 손을 넣어 힘차게 들어 올렸다.

    끼익.

    오래된 비밀 입구가 비명으로 토해내며 열렸다. 그와 동시에 매캐한 먼지가 위로 피어올랐다.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우야, 이게 무슨···.”

    “비밀 입구에요.”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게의 한쪽에 마침 랜턴이 놓여있었다. 강우가 랜턴을 가지고 와 비밀 입구를 비췄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허···. 이건 알고 찾지 않은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입구구나.”

    아버지가 탄성을 뱉어냈다. 바닥은 그야말로 완벽히 감추어져 있었다. 강우도 영상으로 보았던 기억이 아니었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먼저 내려갈게요.”

    강우가 계단으로 앞장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 뒤를 조심히 따랐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

    강우가 떨리는 마음으로 금고가 있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강우의 눈앞으로 하얀 백골이 금고에 손을 올린 채 있었다.

    “강우야, 저분은!”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리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강우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아버지, 돌아가신 최경 님이 분명해요. 유골을 수습할 수 있게 준비 좀 해주시겠어요?”

    “아···. 알았다.”

    아버지가 황급히 위로 올라갔다. 강우가 격정에 찬 얼굴로 백골의 유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혼자서 쓸쓸히 돌아가시다니.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았던 금고의 비밀번호가 머리에 밀려들었다. 강우가 잠시 묵념을 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쓸쓸히 죽어간 최경을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어르신의 희생으로 지킨 장부는 제가 꼭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죽음도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도 꼭 바르게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우의 시선이 백골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먼지를 털어낸 강우가 쿨럭 기침했다. 자욱이 날리던 먼지가 사라지자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락. 따라락.

    강우는 기억이 알려주는 대로 금고의 잠금장치를 돌렸다.

    딸칵.

    이윽고 금고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팔을 휘휘 저어 먼지를 떨쳐낸 강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끼익.

    강우가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는 크게 탄성을 뱉어냈다. 금고의 안쪽에 나무상자가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강우가 떨리는 손으로 나무 상자를 꺼냈다. 금고의 안에 잘 보관된 나무상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금고의 안쪽을 살핀 강우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맙소사···.”

    금고의 안에는 나무상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몇 권의 책자들이 놓여있었다. 강우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잠들어있던 임시정부의 기록들일 게 분명했다. 강우가 조심히 책을 꺼냈다.

    “강우야!”

    그때, 아버지가 돌아왔다. 위혁오를 비롯해 공안 몇 명이 함께였다. 위혁오가 백골을 보더니 매우 놀랐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듯했다.

    “아버지, 찾았어요.”

    “정말? 정말 찾았어?”

    아버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아버지에게 나무상자를 내밀었다. 나무상자를 받아든 아버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잘했다! 잘했어.”

    “일단 밖으로 나가서 뒷마무리부터 해요.”

    강우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충칭의 공안들이 건물의 주변을 폐쇄했다. 그리고 유해를 잘 수습하기 위한 전문가들도 도착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중국 내에 있는 외신들과 중국 공영 CCTV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옛 광복군 사령부의 건물은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이 돼버렸다.

    * * *

    그날 저녁. 충칭의 시장실에 강우와 아버지가 있었다. 광복군 사령부의 건물에서 발견된 항일투쟁에 관한 기록은 중국 내에서도 화젯거리였다.

    달칵.

    문이 열리고 마른 체격의 남성이 들어왔다. 바로 충칭시의 시장이었다. 강우와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충칭시 시장 당위지입니다.”

    충칭시 시장 당위지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를 배려했는지 간단한 영어를 사용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중국어로 답했다.

    “한국에서 온 사업가 박정식입니다.”

    “오? 중국어를 잘하시는군요.”

    당위지가 기분이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박강우 군이군. 위 서기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네.”

    “안녕하십니까? 박강우입니다.”

    “역시 듣던 대로 중국어가 유창하네.”

    당위지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먼저 당위지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충칭시에서는 옛 광복군 사령부 건물에 관한 관심이 컸습니다. 항일 유적지가 아닙니까? 하지만 한국 정부가 무관심하니 저희도 딱히 나설 방법이 없었을 뿐입니다.”

    당위지의 말에 아버지가 얼굴을 붉혔다. 강우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위지의 말처럼 광복군 사령부 건물은 버려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니 상해와 충칭의 임시정부터도 그런 상태에서 간신히 복구했다.

    ‘임시정부는 상해에서 시작해 여러 곳으로 청사를 옮겨왔다. 하지만 전부 소실되고 남은 건 상해와 충칭뿐이니···.’

    생각을 마친 강우가 입을 열었다.

    “광복군 사령부 건물을 복구하는 데 저희가 돈을 내겠습니다. 당과 충칭시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오? 여러분이 말입니까?”

    당위지의 얼굴에 호기심이 짙어졌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충칭시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도 두 분처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앞장서서 지켜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 이후의 관리가 문제더군요.”

    강우와 아버지가 말을 잊지 못했다. 많은 사람의 기부와 후원금으로 유지되고 있는 임시정부 청사였다. 보훈처에서 나오는 예산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그리고 한국의 보훈처의 악명이야 워낙 자자하고.’

    강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위해 저희는 중국에 법인을 세웠습니다. 이번 일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는 우리 회사에서 책임지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그 예산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위지가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당위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역시 위 서기님에게 들었던 것처럼 대단한 분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충칭시에서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강우와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당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미 위 서기님이 손을 써놓으셨습니다. 광복군 사령부가 있던 땅은 동양 무역에 임대가 될 겁니다. 우리 충칭시에서도 그곳을 문화유적지로 선정하고 복구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강우와 아버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특히 강우는 크게 안도했다. 곧 철거의 위기를 맞이할 운명이었던 곳이 아니던가.

    ‘해냈다.’

    강우가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와 최준을 떠올렸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당위지는 항일투사인 할아버지와 최준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당위지에게 말했다. 당위지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씩 웃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강우와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시장실의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강우와 아버지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부님!”

    “형님!”

    열린 문 사이로 위진오가 나타났다. 얼굴 가득 피로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강우와 아버지를 보고는 금세 반가워했다.

    “강우야, 정식. 두 사람이 해냈군. 해냈어. 정말 장해!”

    위진오가 강우와 아버지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위진오에게 최준의 일은 자기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만남의 기쁨을 나눈 위진오가 당위지를 보며 인사했다.

    “이보게 당 시장 오랜만이군.”

    “위 서기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미 구면인 듯한 두 사람이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의 중국 내 인맥은 정말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정말이지 강우에게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였다.

    “자자. 이야기들을 마무리해 보지.”

    그렇게 네 명의 남자는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협의했다. 강우는 그런 대화를 들으며 배우게 된 것이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더 명확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 * *

    펄럭.

    강우 투어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강우와 동아리원들이 분주했다.

    “다들 준비됐지?”

    이재원이 크게 소리쳤다. 동아리원들이 준비됐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재원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동하자.”

    “정말 괜찮겠어요? 여행 마지막 날인데?”

    “아직 비행기 타기까지 시간 많이 남았잖아. 다들 꼭 이 일만큼은 하고 싶다고 하더라.”

    강우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동아리원들은 광복군 사령부의 건물을 깨끗이 청소하겠다고 나섰다. 마스크를 쓰고 어디서 구했는지 각종 청소 장비들을 들고 있었다.

    “가요 그럼.”

    강우가 씩 웃으며 앞장섰다. 그렇게 강우를 선두로 동아리원들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청소도구를 들고 뭉쳐서 걷는 강우와 동아리원들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이윽고 건물에 도착한 동아리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강우는 건물이 낡아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나서자 건물이 금세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좋네.’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동아리 SLAM의 첫 봉사활동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그렇게 한참이나 정리를 한 동아리원들은 건물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에 와서 찍은 단체 사진 중 가장 환하고 뿌듯한 표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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