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402)
  • 어때? 네 생각은?

    강우와 동아리원들이 호텔로 돌아왔다. 짧은 재정비 시간을 가진 강우와 동아리원들이 다시 로비에 모였다. 예정대로 자유 관광 시간이 된 것이다.

    “자 지금부터 자유 관광할 건데요. 다들 가고 싶은 곳에 맞춰서 조를 짜는 거로 할게요.”

    강우의 말에 동아리원들이 눈을 빛냈다.

    “지금부터 각자 조를 짜주세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동아리원들이 강우의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유 관광이니까. 조를 짜서 움직이라니까요?”

    강우의 말에 동아리원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우리는 강우 너랑 다니는 게 자유 관광이라고 생각해.”

    동아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아기 새 같았다. 강우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강우의 말에 동아리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럼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갈 거니까 불만 없기에요?”

    또 알았다는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강우가 픽하고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강우와 동아리원들이 시내 관광에 나섰다.

    “강우야, 이거 들어라.”

    이재원이 다가오더니 강우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급조한 티가 역력한 작은 깃발이었다. 손에 쥐기 딱 좋은 크기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강우 투어.-

    깃발에 급하게 휘갈긴 글씨에 강우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재원이 씩 웃었다.

    “잘 갔다 와라.”

    “네. 덕분에 잘 갔다 오겠네요.”

    이재원은 자유 관광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위혁오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아마 사업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들 우리 강우 괴롭히지 말고 말 잘 듣고 알았지?”

    이재원의 마지막 확인사살에 강우가 폭 한숨을 쉬었다. 이재원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연정호가 옆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깃발을 이리저리 살폈다.

    “재원이 형이 악필이었네. 못하는 거 하나 추가.”

    “후···.”

    강우가 울컥 솟아나는 짜증을 억누르며 고개를 휙 돌렸다. 동아리원들이 단체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일제히 최대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깃발과 동아리원들을 차례대로 보더니 말했다.

    “갑시다. 가.”

    강우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해는 강우도 초행이었다. 결국, 믿을 것은 쌍둥이 남매뿐이었다.

    “안내 좀 부탁한다.”

    강우가 중국어로 이야기했다. 쌍둥이 남매가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자신들이 활약할 차례였다. 위이강과 위단향이 강우의 양쪽으로 섰다.

    “깃발은 내가 들게요.”

    위이강이 강우의 손에서 깃발을 가져갔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당당히 깃발을 든 위이강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깃발에 쓰여 있는 글자를 아직은 모르나 보다. 강우와 일행이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이 위치한 곳은 푸둥신구였다.

    “일단 상해의 명물부터 보러 가요.”

    위이강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작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이윽고 강우 투어는 동방명주라는 커다란 구조물에 도착했다.

    “우와~ 진짜 크네.”

    동아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다. 주변을 지나는 중국인들이 동아리원들을 보며 감탄했다. 지금의 중국인들에 비해 세련되어 보이는 게 한국인이었다.

    “강우야, 이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동아리원들이 곳곳에 적힌 문구들을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는 막힘없이 글귀들을 해석해 주었다. 간혹 말을 걸어오는 중국인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왔습니까?”

    “네, 맞습니다.”

    강우의 유창한 중국어에 말을 걸어온 중국인도 놀랐다. 동아리원들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강우 진짜 중국어 잘하네.”

    “새삼스럽게 뭘? 강우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한다며.”

    “하···. 진짜 다른 종족인가?”

    동아리원들의 말에 강우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게 강우와 동아리원들은 푸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역시 동아리원들 사이에 가장 화제는 중국의 발전상이었다. 막연히 공산국가라는 이미지와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어디서 왔습니까?”

    그때, 동아리원들에게 중국의 공안들이 다가왔다. 중국의 공안들은 날로 그 힘이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치안이 좋았지만, 또 이렇게 불쑥 트집을 잡아 오는 예도 있었다.

    “강우야.”

    동아리원들이 긴장하며 강우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강우가 공안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공안이 슬쩍 한쪽을 가리켰다. 이재원이 추억을 남기고자 동행한 대진 미디어의 촬영팀이 문제였나 보다.

    “저희는 허가를 받고 촬영하는 겁니다.”

    “어디 허가를 맡았다는 말입니까?”

    공안이 깐깐하게 굴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만하지.”

    한쪽에서 평상복을 입은 누군가가 쓱 다가왔다. 그리고 공안을 제지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공안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 당에서 허가를 맡은 분들이니까. 방해하지 말라고.”

    공안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남성이 강우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 도련님들과 아가씨의 주변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

    강우가 짧은 탄성을 뱉어냈다. 아마 위진오가 강우와 쌍둥이 남매 그리고 일행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손을 썼나 보다.

    “그럼 즐겁게 지내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남성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동아리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야? 누구야?”

    “공안이 그냥 가던데?”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그러자 위이강이 어설픈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 경호원.”

    짧지만 강렬한 말에 동아리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단향이 씩 웃으며 강우의 옆에 착 붙었다.

    “우리 집 큰 오빠.”

    “후···.”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아리원들의 시선이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뭐야? 강우에게 출생의 비밀이?”

    “뭐지?”

    강우가 들불처럼 번져나가려는 의혹을 단숨에 진압했다.

    “이번 여정에 도움을 준 위진오라는 분의 아들딸이에요. 그리고 제가 그 집 양자고요.”

    동아리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가 어떤 인물인지 이번 엠티에 참가한 사람인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강우의 엄청난 인맥과 배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 강우 너는···.”

    동아리원들이 대단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정말 자신들과 또래가 맞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강우 투어는 계속됐다. 푸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갔다. 강우가 동아리원들을 상태를 살폈다. 모두 지치고 배가 고파 보였다.

    “이제 뭐 좀 먹을까요?”

    우렁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움찔할 정도였다. 강우가 쌍둥이 남매에게 물었다.

    “스무 명 넘게 들어갈 만한 곳 있을까? 참고로 엄청들 먹는다.”

    “음···.”

    남매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어리니 이런 부분까지 알 턱이 없었다. 그때, 인파 속에서 또 전의 남성이 나타났다.

    “예약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남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섰다. 강우와 일행이 그 뒤를 따라갔다. 강우 일행이 도착한 곳은 옛날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당이었다.

    “여기를 통째로 빌려놨습니다.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드시면 됩니다.”

    “네?”

    강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진오 서기님이 강우 님을 위해 다 준비해놓으신 겁니다. 오늘은 마음껏 즐기라고 하셨습니다.”

    “아···. 대부님이 준비해 주셨군요?”

    “네, 그럼 저는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남성이 사라졌다. 강우가 몸을 돌리자 궁금해 죽겠다는 동아리원들이 보였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위 대부님이 여기를 통째로 빌려주셨데요. 오늘은 그냥 마음껏 먹고 즐기면 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

    “......”

    동아리원들이 서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강우 투어는 엄청나고 완벽했다.

    “들어가죠.”

    식당 안에 들어가자 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곳곳의 식탁 위로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우와!!”

    동아리원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흩어져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우도 위이강, 위단향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다들 맛있게 드세요.”

    강우의 말을 시작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식당 안이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간단한 음주도 함께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금세 분위기에 적응한 위이강과 위단향이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두 사람은 동아리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너희 나중에 한국에 유학 와라.”

    “그래, 서울대 와. 우리가 잘해 줄게.”

    위이강과 위단향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는 한국과 대학 생활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어설픈 한국어였지만, 꽤 소통할 수 있었다.

    “한국 대학은 어때요?”

    “공부 힘들어요?”

    온갖 궁금증을 다양한 사람에게 묻고 다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식당의 중앙에서 강우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좋네.’

    뜻깊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사람들이 함께하니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와중에 누군가가 강우의 옆에 다가왔다. 강우가 고개를 돌리니 또 그 남성이었다.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

    강우가 남성을 따라 식당의 이 층으로 향했다.

    “방 안에서 기다리고들 계십니다.”

    “네.”

    강우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 아버지? 재원이 형?”

    방 안에는 이재원과 위혁오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강우를 반가워하며 손짓했다.

    “강우야 이리에 와서 앉아.”

    “네.”

    강우가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재원의 옆자리였다. 강우가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어로 말했다.

    “호텔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여기서 모인다고 하더라고. 혁오 형님이.”

    강우가 이재원과 위혁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위혁오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새 붙임성 좋은 이재원과 형, 동생을 하기로 했나 보다.

    “아···. 그런데 왜 따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거든.”

    이재원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담담히 있던 위혁오가 입을 열었다.

    “대진 그룹의 중국 투자 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투자요?”

    강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확히는 상해에 투자를 제안받았어.”

    “그랬군요.”

    강우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중국은 개발 열풍이었다. 대진 그룹이 한국에서 승승장구 중인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재원이 있었고, 이재원은 강우의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어때? 네 생각은?”

    이재원이 한국어로 물었다. 강우가 이재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중국 투자는 위험성이 커요. 하지만 그건 든든한 배경이 없을 때 이야기죠. 다만 형네 회사가 아직 한국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니까요.”

    “아직은 한국에 집중할 때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사업방식이죠. 무엇이든 가장 위험할 때가 기회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상해에 투자는 절대 실패할 일 없을 거예요.”

    미래의 기억이 있는 강우는 장담할 수 있었다. 이재원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강우 너만 믿고 간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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