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402)

꼭 데리고 와.

종로에 강우와 이나은이 나타났다. 두 사람이 영화를 보기로 한 곳은 종로에서 유명한 서울 극장이었다. 강우가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아직 영화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나은아,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저기 앞에 이거저거 많이 파네. 같이 가보자.”

강우와 이나은이 극장의 앞쪽에 늘어선 노점으로 향했다. 삶은 옥수수부터 구운 오징어까지 다양한 간식들을 팔고 있었다.

“오징어 한 마리 주세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작은 화로 위로 오징어가 올려졌다. 이내 온몸을 비틀기 시작한 오징어가 금세 돌돌 말려 버렸다. 다 구운 오징어가 하얀색 종이봉투에 담겼다.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

강우가 계산하고는 옆쪽을 바라보았다. 삶은 옥수수가 달콤한 냄새를 뽐내고 있었다.

“옥수수도 주세요.”

“여깄어요.”

강우가 옥수수를 받아 들었다.

“음료는 내가 살게.”

이나은이 두 사람이 마실 음료를 샀다. 어느새 강우의 품에 한가득 먹을 것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극장의 앞쪽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빠질 수 없는 팝콘도 샀다. 아직은 어색한 듯 두 사람이 살짝 떨어져 있었다.

“들어가자.”

“응.”

강우와 이나은이 극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주변이 어두워졌다.

“한다.”

“응.”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흑백으로 녹화된 거대한 배가 나오고 수많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와···.”

특히 이나은은 영화에 엄청나게 몰입했다. 남녀 주연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훌쩍 흘리기도 했다. 미래의 기억이 있는 강우는 이미 여러 번이나 보았던 영화였다. 하지만 이나은과 함께여서인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강우는 그런 이나은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간식을 먹기 좋게 준비해 주었다.

“먹어봐.”

강우가 이나은의 손을 툭 하고 건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나은이 강우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고마워.”

역시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에는 옅은 설렘이 묻어있었다. 강우와 이나은이 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팝콘을 집는 손이 간혹 닿을 때마다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우는 영화를 보는지 이나은을 보는 것인지 모를 시간을 보냈다.

“강우야, 영화 너무 재미있었어.”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이나은이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미래의 배우가 꿈인 이나은이였다. 강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재미있었다니까 다행이다.”

“사실 이 영화 보고 싶었어. 그런데 혼자 보러 오기도 그렇고. 동기들이랑 오려던 참이었거든.”

“그랬구나.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같이 못 볼뻔했네.”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네가 보자고 했으면 두 번 봤을걸?”

“아···.”

강우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나은이 손가락을 황급히 거두더니 같이 얼굴을 붉혔다.

“그럼 우리 이제 뭐 하지?”

영화가 끝난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강우가 답했다.

“우리 조금 걷자.”

“응.”

강우와 이나은이 종로거리를 걸었다. 밤늦은 종로의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종로거리를 빙글빙글 걸었다.

“밥 먹으러 갈까?”

한참을 걷자 허기가 찾아왔다. 강우의 제안에 이나은이 대번에 답했다.

“응. 좋아.”

“내가 아는 빈대떡집이 있는데 거기 진짜 맛있어.”

“그래? 기대된다.”

이나은은 정말 기대되는 표정이었다. 김춘배에게 사전조사한 결과 이나은의 입맛은 완전한 한식파였다. 강우가 익숙한 골목 앞에 멈춰섰다.

“여기야.”

강우와 이나은이 피맛골로 들어섰다. 피맛골에 들어선 강우가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리고 김말숙이 운영하는 빈대떡집을 찾았다.

드르륵.

문이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구수한 빈대떡 냄새가 났다. 강우를 발견한 김말숙이 대번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누구야? 강우 왔니?”

“잘 지내셨어요?”

강우가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낡았던 시설은 전부 깨끗한 새 걸로 교체되어 있었다. 벽지도 새로 도배해 산뜻했다. 무엇보다 전보다 밝아진 김말숙의 미소가 참 좋았다.

“그래, 강우야. 가게 안 좀 한번 봐봐. 정말 너무 깨끗해졌지 뭐니.”

“마음에 드세요?”

“그럼 그럼. 얼마나 마음에 드는데. 정말 고맙다 강우야.”

강우가 좋아하는 김말숙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강우가 김말숙의 가게를 전부 새 단장해 준 것이다.

“이제 편하게 장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시설이 깨끗해져서 단골들도 너무 좋아해.”

그때, 김말숙이 강우의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강우가 아차 하며 이나은을 소개했다.

“아···. 여기는 제 친구 이나은이에요.”

“안녕하세요? 이나은입니다.”

이나은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김말숙이 이나은을 보며 탄성을 뱉어냈다.

“어머···. 젊은 아가씨가 참 예쁘고 인사성도 밝네요. 나는 김말숙이라고 해요. 강우 할아버지의 지인이에요.”

“말 편하게 해주세요.”

이나은의 말에 김말숙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래요. 천천히.”

강우가 이나은과 함께 한쪽 자리에 마주 앉았다.

“저희 빈대떡 주세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김말숙이 신이 나서는 빈대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슬쩍 앞쪽을 바라보니 이나은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참 착한 사람인 거 같아.”

“그런가···.”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강우와 이나은은 공통점이 많았다. 대화는 끊길 줄을 몰랐고, 웃음도 계속 터져 나왔다. 특히 이나은은 오늘 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영화에 출연하는 게 꿈이야.”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안성까지 가기가 멀어서 통학하기 안 힘들어?”

“힘들긴 하지만, 아버지가 절대 자취는 안된다고 해서. 그래도 매일매일 연기 실습하고 배우는 게 재미있어.”

“대단하다.”

“연기로 성공하려면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강우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이니 한국을 주름잡는 여배우가 된 건가?’

이윽고 빈대떡이 나왔다. 김말숙이 강우를 위해 특별히 신경 썼는지 크기도 컸다.

“강우야, 맛있게 먹어. 나은이도.”

강우와 이나은이 젓가락을 들며 잘 먹겠다고 답했다. 이나은은 정말이지 빈대떡을 잘 먹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우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은이, 참 복스럽게도 먹는다.”

“감사합니다.”

이나은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김말숙이 강우를 보며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가씨가 요새도 있었네. 우리 강우 좋겠네?”

김말숙의 말에 이나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가 헛기침하며 빈대떡을 집어 먹었다. 이윽고 음식을 모두 먹은 두 사람이 가게를 벗어났다.

“또 찾아뵐게요.”

“그래, 자주 와.”

가게를 나오자 시간은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집에 데려다줄까?”

“응···.”

이나은이 수줍게 답했다. 강우가 씩 웃으며 이나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자.”

“어? 어어···.”

이나은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이나은의 집은 반포동이었다. 학교는 서로 멀었지만, 그나마 집이 가까워 다행이었다. 강우와 이나은은 버스를 타고 반포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도 마주 잡은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강우에게도 완연한 봄날이 오고 있었다.

* * *

그날 밤, 이나은을 집에 데려다준 강우가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강우는 일부러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정류장에 내려 걸었다.

“어, 이제 다 와 가.”

-그래? 힘들었지? 다음부터는 안 바래다줘도 돼.-

이나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가 씩 웃었다.

“아니야, 요즘 운동량도 부족했는데 잘됐지.”

-그래도···.-

이나은이 걱정을 계속해주자 강우가 바보처럼 실실 웃었다.

“이제 다 왔다. 아파트 단지 입구야.”

-그래?-

그때, 강우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슬쩍 화면을 확인하자 배터리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핸드폰의 열기가 긴 통화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 배터리 없다. 들어가서 충전하고 전화할게.”

-알겠어. 기다릴게. 조심히 들어가.-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또 실실거리며 웃은 강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덜컥.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는 어머니와 강용이가 있었다.

“아들 왔어?”

강용이가 강우를 향해 달려오더니 씩 웃었다.

“형아~ 잘 놀다 왔어?”

“어, 강용이 잘 있었나?”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밥은 먹고 왔어?”

“네, 피맛골 빈대떡집 다녀왔어요.”

어머니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 가게 수리는 잘 끝났어? 마음에 드셨으려나?”

“네, 아주 깔끔해졌더라고요.”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아들 정말 착하다. 일부러 거기까지 다녀오고.”

“눈으로 확인해야죠. 그리고 마침 종로에 갈 일도 있었고요.”

“종로에?”

어머니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잠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뭐···. 굳이 숨길 이유는 없지.’

강우는 가족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설사 개인적인 연애사라고 해도 말이다. 강우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나은이랑 영화 보고 왔어요.”

“정말??”

어머니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강우가 늘 공부만 하고 사업에 할아버지를 돕는 일까지 나이답지 않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네, 영화 보고 같이 가서 빈대떡도 먹고 왔어요.”

“빈대떡? 아들~”

어머니가 강우를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여자친구 후보와 함께 빈대떡집을 갔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아니에요. 나은이도 빈대떡 좋아했어요. 맛있다고 두 장이나 먹었는데요?”

“그랬어? 나은이가 참 착한가 보네. 다음에는 조금 더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가. 알겠지. 아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래의 기억이 있었음에도 연애라는 것은 참 어려웠다.

“아 참···. 이거요.”

강우가 가방의 지퍼를 찍 열었다. 향긋한 기름 냄새가 가방에서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강우가 가방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냈다.

“이게 뭐야 아들?”

“빈대떡이요. 말숙 할머니가 싸주셨어요.”

강용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비닐봉지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강우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채갔다.

“와! 빈대떡! 엄마, 빨리 먹어요!”

비닐봉지에서 은박지에 쌓인 빈대떡이 자태를 드러냈다.

“잠깐만, 엄마가 준비해올게.”

어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빈대떡을 다시 데웠다. 빈대떡을 접시에 옮겨 담은 어머니가 찍어 먹을 간장소스도 만들었다. 양파를 송송 썰어 넣고 식초에 설탕까지 살짝 첨가하자 완벽한 소스가 탄생했다.

“먹자. 강우도 좀 먹어.”

어머니가 거실의 탁자 위에 빈대떡을 올려놓았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저 많이 먹었어요. 엄마랑 강용이 먹어요.”

“와~ 맛있겠다.”

강용이가 젓가락을 들더니 빈대떡을 크게 뜯었다. 그리고는 간장을 찍으려다 잠시 머뭇머뭇했다.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었다.

“찍어 먹어. 의사 선생님이 이제 괜찮다고 했어.”

“응!”

강용이가 빈대떡을 간장에 찍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강우와 어머니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을 느낀 강용이가 슬쩍 웃었다.

“헤헤···. 엄마도 먹어.”

“응, 엄마 배불러. 강용이 많이 먹어.”

어머니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가 집을 둘러보았다. 할아버지는 계속 호텔에서 지내셨고, 아버지도 회사 일과 최준의 일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이 좀 휑하네···.’

슬쩍 어머니를 바라보자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아들, 나은이가 괜찮다면 다음에 꼭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렵겠지?”

강우가 이나은을 떠올렸다. 딱히 거절할 거 같지는 않았다.

“한번 말해볼게요. 아마 좋다고 할거예요.”

“정말? 엄마 너무 기대돼.”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강용이가 입안 가득 빈대떡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나도, 형수님 궁금해. 꼭 데리고 와.”

“뭐?? 형수님?”

강용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티브이에서 보니까 형아 여자친구면 그렇게 부르던데.”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이윽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빈대떡을 모두 먹었다.

“이건 제가 치울게요.”

“그래 줄래? 고마워 아들.”

강우가 접시와 수저를 챙겨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깔끔히 설거지했다. 이윽고 방으로 돌아온 강우가 핸드폰을 집었다. 집에 오자마자 충전을 꽂아 놓아 충전이 끝나 있었다. 강우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나은의 호출기에 호출을 남겼다.

뚜르르. 뚜르르.

기다렸다는 듯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우가 환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 강우야.-

이나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강우가 고개를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잠깐만 강우야. 누가 좀 바꿔 달라고 해서.-

“어??”

수화기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나은과 비슷한 듯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박강우 군?-

“네!”

강우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당황한듯한 강우의 목소리에 상대방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은이 엄마예요. 꼭 통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내가 강우 군 팬이거든요.-

갑작스러운 상대방의 고백에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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