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402)

너무 궁금해.

따스한 햇볕이 잠든 강우의 얼굴을 두들겼다. 강우가 몸을 틀며 이불을 덮어썼다. 그러자 곤히 잠든 강용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으음···. 이부울···.”

강용이가 이불을 잡아당기며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강우와 강용이에게 다가온 어머니가 이불을 걷어냈다.

“둘 다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강용이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얼굴의 한쪽에는 침 자국도 있었다.

“엄마, 강용이 학교 안 가요?”

“오늘 개교기념일이래.”

“아···.”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용이가 눈을 스르륵 뜨더니 강우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씨익 웃었다.

“형아, 일어났어?”

“어, 강용이도 잘 잤어?”

“응, 오랜만에 형이랑 자서 잘 잤어.”

요새 강용이는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간혹 어머니와 같이 자려고 시도했지만, 어머니의 단호함에 실패로 돌아갔다.

“빨리 나와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네.”

잠시 후, 깨끗이 씻고 나온 강우가 주방으로 나왔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왔냐? 빨리 앉아.”

멀끔하게 씻은 이재원이 식탁 의자에 앉아 손짓하고 있었다. 어젯밤 뜨거운 뒤풀이를 끝낸 강우와 이재원이 집으로 같이 돌아온 것이다. 이재원은 강용이의 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잘 잤어요?”

“그럼, 내 집인데.”

이재원이 씨익 웃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반대편에 앉았다.

“나도! 나도!”

어느새 씻고 나온 강용이 후다닥 달려와서는 강우와 이재원의 중간에 앉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어머니가 손에 두꺼운 천 장갑을 꼈다. 그리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를 양손으로 잡았다.

“자. 조심들 해.”

식탁의 가운데로 어머니표 된장찌개가 놓였다. 그 외에도 상위에는 푸짐한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이재원을 위해 어머니가 한껏 솜씨를 부렸나 보다.

“아버지는요?”

이재원의 질문에 어머니가 앞치마를 푸르며 말했다.

“출근하셨어. 요즘 정신없이 바쁘시거든.”

“오랜만에 아버지 얼굴 보나 했는데요.”

이재원이 아쉬워하자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그러면 있다가 저녁에 강우랑 같이 호텔로 가봐. 아버지 거기로 바로 오실걸?”

“호텔이요? 좋죠. 최준 어르신한테 인사도 드리고요.”

이재원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같이 가요. 할아버지도 거기 계시니까 겸사겸사 인사도 할 겸해서요.”

“오케이.”

할아버지는 호텔에서 계속 지내고 계셨다. 최준과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고 싶어서였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됐다. 이재원은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정신없이 먹었다.

“후아···. 역시 어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최고예요.”

“그래? 많이 먹어. 오늘 강의들은 언제야?”

이재원이 시계를 힐끗 보더니 답했다.

“밥 먹고 같이 나가면 되겠네요. 끝나는 시간도 비슷해요.”

“그래? 둘이 붙어 다니는 거 보니까 엄마가 참 기분이 좋네.”

말을 마친 어머니가 강우를 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아들, 어제 미팅 재미있었어?”

“미팅이요?”

강우가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이재원이 시치미를 뚝 떼고는 된장찌개를 먹었다.

“아~ 맛있다.”

강우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어머니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제의 일은 낱낱이 고해 바친 듯했다.

“응, 재원이가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우리 강우가 인기 만점이었다며?”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형아가 좀 멋지긴 하지. 누나들이 보는 눈은 있네.”

강용이의 말에 이재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가 강우를 보며 ‘나 잘했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자식, 역시 내 동생이야.”

“헤헤.”

분위기를 탄 어머니가 자세한 이야기를 묻기 시작했다.

“그래? 나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는 있었어?”

“네, 연락처 주고받은 사람 한 명 있어요.”

어머니의 몸이 강우 쪽으로 훅 다가왔다. 얼굴 가득 궁금하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만했다. 아들이 언급하는 첫 이성이지 않던가.

“그래? 어떤 아이야? 엄마 너무 궁금해.”

강우가 이재원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나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는 않은 것이다. 강우가 다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이나은이고요. 나이는 저랑 동갑이에요. 춘배하고 같은 과 동기에요.”

“그래? 춘배랑? 그럼 연극영화과겠네?”

“네, 맞아요.”

어머니가 살짝 망설이더니 결심했다는 듯 눈을 빛냈다.

“아들,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은 생각이 달라. 여자친구 생기면 꼭 집에 데리고 와. 맛있는 밥도 같이 먹고 가족들이랑 다 같이 놀러도 가고. 알겠지?”

“네, 엄마.”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어머니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강우와 이재원이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같이 대중교통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있다가 점심시간에 모이기로 한 거 기억하지?”

“네, 기억하죠.”

동아리의 일로 오늘도 모이기로 한 SLAM의 운영진이었다.

“있다가 경영대학 건물 앞으로 다 모이기로 했으니까. 너도 강의 끝나면 기다리고 있어.”

“네.”

“그럼 간다. 있다가 보자.”

강우와 이재원이 각각의 강의실로 흩어졌다.

* * *

오전 강의가 끝났다. 강우는 경영대 건물 앞에서 나머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의 주변에는 동기들이 가득했다.

“강우야, 동아리 지원한 거 언제 결과 나와?”

“어제 9시 뉴스 나온 거 봤어?”

동기들의 쏟아지는 관심에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동기들의 질문에 친절히 다 답해주었다. 강우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동기들뿐이 아니었다.

“여~ 강우야!”

주변을 지나가는 과 선배들도 강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 우리 후배 멋지다!”

선배들이 강우를 칭찬하며 격려해 주었다. 강우가 관심의 한가운데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뉴스까지 나갔으니 조용히 살기는 끝난 건가.’

어젯밤 9시 뉴스에 최준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강우 가족의 이야기와 동양 무역의 이야기도 같이 흘러나갔다. 강우가 쓰윽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짙은 호기심과 호의가 가득했다.

‘뭐···. 이제 즐겨야지.’

강우가 어깨를 당당히 폈다. 이제는 이런 시선도 익숙해져야 했다. 강우가 문득 이나은을 떠올렸다. 기억 속 미래의 슈퍼스타였던 이나은이었다.

‘뭐 하고 있으려나.’

강우가 핸드폰을 열어 이나은의 삐삐에 호출을 남겼다. 그 순간, 이재원이 건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야.”

“형 왔어요?”

강우가 구세주가 나타난 듯 환하게 웃었다. 이재원이 나타나자 강우에게 쏠렸던 관심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재원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재원이 후배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멋들어지게 웃었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다른 사람은?”

“아직이요? 보라 선배는요?”

같이 강의를 듣는다던 채보라가 보이지 않았다.

“보라? 원주랑 같이 온다고 갔는데?”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이거 완전히 당당히 CC 선언이네요?”

“알잖아. 보라 성격. 감추고 빼고 그러는 거 질색해.”

강우와 이재원이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문제의 커플이 등장했다.

“강우야~ 재원 선배~”

나긋나긋해진 채보라의 목소리에도 봄기운이 가득했다. 슬쩍 옆을 보니 신원주는 채보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강우가 손을 들어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보기 좋네요.”

이재원도 두 손으로 카메라 앵글을 만들며 탄성을 뱉어냈다.

“크···. 그림이네. 그림이야.”

두 사람의 장난에 신원주가 민망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채보라가 신원주의 팔을 낚아채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지? 잘 어울리지?”

채보라의 당당함에 강우와 이재원이 결국 웃어버렸다. 그렇게 신생 커플에 관한 관심이 쏟아질 때쯤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멀리서 연정호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렇게 동아리 SLAM의 임원진이 모두 모였다. SLAM의 멤버들은 다 같이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뚜르르. 뚜르르.

그렇게 캠퍼스를 걷던 중 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왠지 모를 설렘을 느끼며 강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 나야 나은이.-

강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안녕? 어제 잘 들어갔어?”

-응, 너는?-

“나는 어제 친구들이랑 뒤풀이하느라 좀 늦게까지 놀았어.”

-아~ 그랬구나?-

강우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어젯밤을 떠올렸다.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씩 떠오르며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응, 밤새 신나게 놀았지.”

-다음에는 우리도 불러줘. 우리도 감자탕에 소주 좋아해.-

“그래, 알겠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직 이런 통화가 어색한 두 사람이었다. 그때, 얼굴이 따가움을 느낀 강우가 슬쩍 주변을 바라보았다.

“화이팅.”

채보라와 신원주가 씨익 웃으며 작게 말했다. 연정호는 연신 ‘직진’이라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강우가 손을 휘휘 저어 시선을 치우라는 시늉을 했다.

“싫은데?”

이재원이 나지막이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역시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강우가 포기하고는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그···. 시간 되면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영화? 좋아.-

수화기 너머 이나은의 목소리에 옅은 설렘이 묻어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재원이 손뼉을 치며 ‘잘한다. 내 동생.’이라고 말했다.

“그럼, 금요일에 강의 끝나고 보자.”

-응, 알겠어.-

“내가 학교 앞으로 갈게.”

-정말?-

이나은의 목소리 톤이 한 단계 올라갔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응, 연락할게.”

-그래, 연락해.-

강우가 귀에서 핸드폰을 땠다. 멀어지는 핸드폰 너머로 여자들의 꺅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새로운 직진남은? 멋진데?”

연정호가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직진하라며.”

강우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강우와 SLAM의 멤버들이 캠퍼스의 한적한 곳에 둘러앉았다.

“자 그럼 SLAM의 1차 임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강우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하는 회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더 산뜻하고 즐거웠다. 아마 주변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덕분인가 보다.

“일단 오늘은 동아리 연합회에 가입하는 건과 동아리방 신청 건을 의논하려고 합니다.”

채보라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건, 내가 할게. 내가 동연에 아는 사람이 좀 있어.”

“좋아요. 그러면 그건 보라 선배가 맡아주는 거로.”

채보라가 싱긋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이번에 지원한 사람들 숫자가 많아. 가입 조건도 충분하고 동아리방도 배정받을 수 있을 거야.”

“좋네요.”

이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오늘은 지원자 중에 합격자를 뽑아야겠네. 몇 명이나 뽑는 게 좋을까?”

모두의 시선이 강우를 향해 쏟아졌다. 강우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다 뽑고 싶지만. 아직 우리가 체계도 안 잡혀있고요. 이제 막 생기는 동아리니까요. 일단 1기 멤버로는 스무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고학년 선배들로 열 명 그리고 새내기 중에 열 명이요.”

강우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적당한 인원수에 인원 구성이었다. 이재원이 강우의 말에 동의했다.

“딱 좋네.”

“좋아요. 1기 합격자 뽑는 건 나랑 정호가 맡을게요. 재원이 형은 앞으로 체육관 대관 일정을 알아봐 주세요.”

“좋아. 그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모여서 연습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러는 거로 할게.”

동아리 창설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강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차 목표는 5월에 있는 축제 때 동아리 이름으로 농구대회에 참가하는 거예요. 목표는 당연히 우승입니다.”

강우의 자신감 넘치는 선언에 멤버들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전에 멤버들이 뽑히면 동아리 엠티도 떠나고요.”

엠티라는 말에 멤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 멤버들을 보며 강우가 씨익 웃었다.

“다른 동아리처럼 놀러 가는 목적도 있지만, 조금 특별한 엠티를 생각 중이니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특별한 일? 어떤 일?”

채보라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국내에 있는 독립유공자분들의 후손 중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갈 거예요.”

강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아리 SLAM의 첫 발걸음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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