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402)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마주 앉은 열 명의 남녀 사이로 묘한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팅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였다. 이재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동갑이라 그런지 말도 금세 편하게 하고 있었다.

“진짜? 서울대는 그렇구나. 우리는 벌써 과 엠티도 갔다 왔어.”

“정말? 우리도 곧 간다고 하던데.”

특히 연정호는 의외로 여학생과 대화를 막힘없이 하고 있었다. 항상 생각과는 다른 의외의 모습이 있는 연정호였다.

‘대단하네. 남탕에서 공부만 하던 애가 맞나?’

반면 남재식은 여러모로 공대생다웠다. 여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하···.”

그저 어색한 웃음만 연신 흘리고 있었다.

‘아···. 재식아···.’

강우가 속으로 탄식을 뱉어냈다. 그때, 한 여학생이 강우를 향해 물었다.

“강우야, 기자회견 때 기분이 어땠어?”

“그냥 조금 떨리는 정도였어.”

“나도 나중에 유명해져서 방송국이랑 인터뷰하고 싶어.”

역시 연극영화과 학생다운 생각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열심히 하면 꼭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정말?”

“그럼, 너희 대학 연극영화과에 아무나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

“맞아.”

여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강우의 말은 참 신기했다. 듣는이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때, 다른 한 명의 여학생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독립운동하신 할아버지는 건강하셔? 최준 할아버지는? 친척은 찾았어?”

강우와 여학생의 눈이 마주쳤다. 긴 생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준 머리를 한 예쁜 여학생이었다. 순간, 어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다. 강우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 두 분 다 아주 건강하셔. 그리고 최준 할아버지의 친척들은 지금 수소문 중이긴 한데 소식은 없다.”

“그랬구나. 기사보니까 가족도 없고 중국에서 혼자 오래 지내셨다는데. 강우 네가 잘 대해드려.”

“어···. 그래야지.”

그 말을 끝으로 다른 여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강우를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빛은 뜨거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재원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얘들아, 우리 강우가 그렇게 유명해?”

이재원의 질문에 여학생들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당연하죠. 수능 만점에 서울대 수석 입학도 대단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신문에 실려서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요?”

“맞아요. 어제 뉴스에도 나왔어요.”

여학생들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목격한 강우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왜 우리 테이블에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건데?’

그때, 이재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뉴스에도 나왔다고? 난 못 봤는데···.”

“9시 뉴스에는 아직 안 나와서 그런가 봐요.”

아마 아침 뉴스에 소개되었나 보다. 이재원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침 뉴스에 나왔으면 이제 9시 뉴스도 시간문제네.”

이재원이 강우를 보더니 다시 선글라스를 건넸다.

“이거 앞으로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고맙네요.”

강우가 선글라스를 받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학생 중 한 명이 이재원에게 슬쩍 관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재원 오빠라고 했죠?”

“어? 내 이름? 맞아 이재원. 여기 있는 강우의 친형이지.”

강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재원도 여러 번 매스컴을 탔던 인물이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나만 당할 수는 없지.’

하지만 여학생의 반응은 강우의 기대를 무참히 져버렸다.

“오빠가 진짜 강우 친형이에요?”

또 다른 여학생이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강우는 성이 박이고 재원 오빠는 이 씨잖아.”

“아···. 맞다.”

두 여학생을 바라보던 이재원이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나 친형 맞아. 강우네 집에 입양됐거든.”

“어머! 어떡해···.”

여학생들이 놀랐다는 듯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이재원을 툭 쳤다.

“아니 형네 엄마가 들으면 섭섭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농담이지.”

이재원의 말에 여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유머의 완성은 얼굴이었나 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남재식이 감탄했다는 듯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희 재원이 형 진짜 누군지 몰라?”

강우의 질문에 여학생들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이재원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잘생겼어. 혹시 연예인 지망생?”

“서울대에 연극영화과 없는데?”

자기들끼리 여러 추론을 늘어놓고 난리가 났다.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이재원이 강우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너에 비하면 난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

“하아···.”

강우가 옆을 힐끗 바라보았다. 남재식은 안경 너머로 잔뜩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끼어들 틈을 못 찾는 듯했다.

‘하···. 재식아, 뭐라도 좀 해봐라.’

하지만 또 그런 순수한 면이 매력일 수도 있었다. 강우가 남재식을 향해 계속 눈치를 보냈다. 하지만 남재식은 난 이미 글렀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주문한 거 나온 거 같은데?”

김춘배의 말에 남재식이 기다렸다는 듯 일어났다. 그리고는 김춘배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왔다.

“다들 먹으면서 이야기들 해.”

미팅은 계속 이어졌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주문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젊은 청춘이 여럿 모이자 말 그대로 생기가 가득 넘쳤다. 김춘배의 동기들은 과연 연극영화과의 학생들다웠다.

‘뭐라고 할까. 한 명 한 명이 톡톡 튀는 개성들이 강하네. 활발하고.’

그런 여학생들 사이에 유독 숫기가 없어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바로 김춘배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김혜지였다.

“혜지야, 이것 좀 먹어.”

“으응···.”

김춘배는 연신 김혜지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말을 걸고 있었다. 김혜지도 싫지는 않은 듯 얼굴을 붉혔다. 다른 여학생들도 이미 김춘배의 마음을 아는지 끼어들지 않았다.

잠시 후.

“자자 여러분 잠시만요!”

김춘배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대화를 나누던 청춘남녀가 김춘배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럼 지금부터 짝을 정하는 순서가 있겠습니다.”

김춘배가 미리 모아놓았던 남자들의 소지품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여학생들의 눈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다 지갑이고 하나만 빗이네.”

“얘들아, 알지?”

여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눈치를 보냈다. 오직 김혜지만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소지품 고르는 순서는 생일 순서대로 하자.”

“좋아!”

이윽고 순식간에 소지품을 고르는 순서가 정해졌다. 운명인지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인지 김혜지는 마지막 순서였다.

“흠흠···. 그럼 시작.”

김춘배의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순간 강우는 눈치챌 수 있었다.

‘나를 판 대가가 바로 이거였군.’

실소가 나왔다. 강우를 만나게 해주며 김혜지를 자연스럽게 미팅에 참여시킨다. 그리고 누가 봐도 김춘배의 것이 분명한 빗을 이용해 김혜지와 짝을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사전에 조율된 계획이 분명했다.

‘완벽하군. 춘배가 이런 치밀한 면이 있었던가?’

하지만 젊은 청춘남녀 간에 때가 묻지 않은 계획이었다. 강우와 김춘배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김춘배가 민망한 듯 씨익 웃었다.

‘힘내라. 형제여.’

강우가 속으로 친구의 봄바람을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책상 밑으로 슬쩍 엄지를 들어주었다. 김춘배가 마주 엄지를 들며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이거.”

첫 번째 순서인 여학생이 지갑을 집었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묘한 기대감과 설렘이 엿보였다.

“그거 내 거야.”

첫 번째 여학생의 짝은 연정호였다. 여학생의 얼굴에 수줍음이 떠올랐다. 반면 연정호는 생각보다 터프했다.

“잘됐다. 나는 내 파트너가 너였으면 했거든.”

“응? 으응.”

연정호의 돌직구에 여학생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그런 연정호를 향해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

“법대생이라 그런지 표현방식도 칼 같네.”

여학생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두 번째 순서인 여학생이 지갑을 집었다.

“어? 그거 내 거다.”

이번에는 이재원의 지갑이었다. 여학생의 얼굴에 작은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아마 강우를 파트너로 원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여학생의 모습에도 이재원은 말없이 웃었다. 강우가 이재원을 힐끗 본 뒤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재원이 형이 누구인지 알면 까무러칠 텐데 말이지.’

하지만 이재원은 별로 밝히고 싶은 내색이 아닌 거 같았다.

“자 다음.”

김춘배가 세 번째 여학생을 지목했다. 여학생의 눈빛이 강우에게 꽂혔다. 이제 남은 것은 실질적으로 강우와 남재식뿐이었다. 여학생이 남은 두 개의 지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난···. 이거!”

여학생이 지갑을 잡는 순간 남재식의 호흡이 빨라졌다. 여학생이 지갑이 주인을 눈치채고는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너구나? 재식이?”

“어? 어어···.”

남재식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했다. 그런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학생이 싱긋 웃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갑은 하나였다.

“그럼 나는 당연히 강우네?”

그다음 차례의 여학생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지갑을 들었다. 김춘배가 화들짝 놀라더니 김혜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김혜지는 여전히 모르는듯한 표정이었다.

“후···.”

김춘배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강우가 자신의 파트너가 된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다른 여학생들에 비해 특히나 할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던 여학생이었다.

“오늘 하루 재밌게 보내보자. 나은아.”

“응···.”

강우의 파트너가 된 여학생의 이름은 이나은이었다. 다른 여학생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이나은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주인공인 강우의 파트너였으니 당연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소지품은 김춘배의 빗이었다.

“남은 건 이거네···.”

김혜지가 빗을 집으며 터질 듯 얼굴을 붉혔다. 김춘배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하하!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그렇지 혜지야?”

“으응···.”

강우 친구들과 다른 여학생들 모두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파트너가 모두 정해졌다.

“자자 그럼 이제부터는 각자 알아서들 노는 거로!”

잔뜩 신이 난 김춘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김혜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가자, 근처에 봐둔 카페가 있어.”

“그래.”

김춘배와 김혜지가 자리를 먼저 떠났다. 그다음은 연정호였다.

“가자.”

“어? 어어.”

터프한 목소리와 동작으로 파트너를 이끌고 사라졌다.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연정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강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나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도 나갈래?”

“응.”

강우가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이재원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나도 알아서 잘 모실 테니까 너도 잘 모시고 와라.”

“네, 연락해요.”

강우가 슬쩍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가 더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힘내라.’

그저 속으로 건투를 빌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강우와 이나은이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흘러있었다.

“배 안 고프지?”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물었다. 이나은이 싱긋 웃었다.

“응, 치킨이랑 비스킷을 좀 먹었더니 괜찮아.”

“그럼, 우리도 근처에 카페 가서···.”

말을 이으려던 강우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면 미래의 기억이 있는 강우였다. 미래의 기억 속 강우는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혼까지 했었지 않았던가? 원래 지금 나이에 가질법한 연애의 미숙함은 없었다.

‘카페는 좀 너무 뻔하고···.’

강우가 힐끗 이나은의 발을 확인했다. 165가 넘어 보이는 이나은은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 평소에 구두는 잘 안 신어. 내가 키가 큰 편이라···.”

강우의 시선을 느낀 이나은이 한쪽 발을 슬쩍 들어 내밀었다.

“왜? 딱 좋은데. 165 정도지?”

“응. 그거보다 약간 커.”

강우가 슬쩍 이나은의 옆으로 다가가 키를 맞춰보았다. 187에 육박하는 강우와 165가 넘는 이나은은 정말 그림같이 어울렸다.

“봐봐. 딱 어울리지?”

“어?”

갑작스러운 강우의 말에 이나은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답답하게 카페에 가는 거보다 우리 좀 걸을래?”

“그래? 나도 좋아 기름진 거 먹었더니 좀 더부룩했거든.”

강우와 이나은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신촌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이대역 쪽이었다.

“그런데 너 우리 할아버지 일에 관심이 많더라?”

강우의 질문에 이나은이 짐짓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당연하지. 우리 아버지도 유공자시거든.”

“아···. 그래?”

강우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나은이 약간은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응, 대단한 건 아니고 베트남 참전용사셔···.”

“그래? 대단하신 분이네. 유공자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 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인데.”

이나은이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가?”

“그럼.”

강우가 이나은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을 걸어 이대 입구 역에 도착했다. 골목길의 안쪽으로 온갖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저기 구경하러 갈래?”

“어? 진짜?”

이나은이 정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남자들이라 하면 쇼핑에는 쥐약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강우는 미래의 기억으로 단련된 남자였다.

“어, 나도 쇼핑 좋아해.”

“그래, 구경하러 가자.”

강우와 이나은은 골목골목을 누볐다. 온갖 예쁜 옷들을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도 사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여기 좀 앉을래?”

강우와 이나은이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이나은이 의자에 앉자 강우도 맞은편에 앉았다.

“발 안 아파?”

“응, 운동화라 괜찮아.”

이나은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심 발이 아프던 차였다. 강우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휴식을 제안했다.

“강우 너는 참 자상하구나.”

“아···. 그런가?”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참 자상했다. 강우도 그걸 보고 자랐으니 자상함이 몸에 뱄나 보다. 강우가 이나은을 힐끗 바라보았다. 3월의 봄바람이 불었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추워 보이는 이나은이었다.

“잠깐 기다려봐.”

“어디 가게?”

강우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이나은이 대번에 따라나섰다. 편의점 안에 들어온 강우가 따듯한 캔커피를 꺼냈다. 그리고는 계산대로 다가갔다.

“이거 계산해 주세요.”

강우가 계산하려 하자 이나은이 깜짝 놀라며 지갑을 꺼냈다.

“아니야. 오늘 네가 다 샀잖아. 이건 내가 살게.”

그 순간 황급히 돈을 꺼내던 이나은의 지갑의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강우가 빠르게 허리를 숙여 지갑을 집었다. 지갑의 내용물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응?’

거기에는 이나은의 신분증도 있었다. 신분증을 힐끗 바라본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향?’

분명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은 이미향이었다. 사진을 보니 눈앞의 이나은과 똑같이 생겼다. 강우가 지갑의 내용물을 정리하고는 이나은에게 내밀었다.

“아···. 여기.”

“응···.”

이나은이 황급히 지갑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윽···.’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그리고는 눈앞으로 하나의 장면이 펼쳐졌다.

번쩍. 번쩍.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주변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여성의 이름은 이나은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주름잡은 여배우였다.

‘맙소사···.’

강우가 머리를 흔들었다. 지끈지끈 고통이 조금씩 옅어졌다. 강우가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의 여배우와 눈앞에 있는 이나은의 얼굴이 겹쳐 올랐다. 두 인물의 외모는 완벽히 일치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강우의 시선에 이나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우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 아니 예뻐서.”

이나은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강우의 말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부러움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원이에요. 계산해 주세요.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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