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402)
  • 우리는 강우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시간은 할아버지의 설렘만큼 빠르게 흘렀다. 주말이 오자 강우의 집이 부산스러워졌다. 오늘은 중국에서 최준이 오는 날이었다.

    “여보! 준비 끝났어?”

    양복이 아닌 일상복을 잘 차려입은 아버지가 거실에서 소리쳤다. 이윽고 안방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우와~ 우리 여보, 오늘 엄청 예쁘네.”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버지의 입꼬리가 귀에 걸친 게 당연했다. 이윽고 강우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강우와 강용이가 나왔다.

    “준비 끝났어?”

    어머니가 다가와 강용이의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응, 엄마.”

    강용이가 밝게 웃었다. 어머니가 이번에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강우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어머니가 강우의 옷매무새도 만져주었다.

    “우리 아들 정말 멋있네.”

    “엄마도 오늘 예뻐요.”

    강우의 말에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했다.

    “그래, 강우 너도 나중에 꼭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

    “네.”

    강우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난 네 사람이 할아버지의 방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할아버지의 방문이 열렸다. 멋진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노신사 그 자체였다. 한 손에는 할아버지의 중절모가 들려 있었다.

    “다들 준비 끝났으면 나가자꾸나.”

    강우 가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주차장에는 커다란 승합차가 서 있었다. 법인 이름으로 구매한 승합차였다.

    드르륵.

    뒷문이 열리고 어머니와 강용이가 먼저 올라탔다. 그리고 강우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부축해 차로 모셨다. 강우와 아버지는 앞자리에 앉았다. 강우가 운전석 아버지는 역시 조수석이었다.

    “출발할게요.”

    강우의 말과 함께 승합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물었다.

    “얼마나 걸릴 거 같아?”

    “막히면 한 시간 정도요?”

    “막히겠지?”

    “네, 토요일이니까요.”

    강우의 말대로였다. 올림픽대로에 올라서자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 뒤 강우 가족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더 시간이 걸렸다.

    “안 늦었지?”

    아버지가 시간을 보며 조급해했다. 아버지는 항상 약속 시각이나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약속된 시간은 지켜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신념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네, 아직 충분해요.”

    강우 가족이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김포공항의 입국장에 들어갔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강우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강우가 힐끗 할아버지를 살폈다. 얼굴 가득 설렘이 가득했다.

    “할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세 나오실 거예요.”

    “얼마나 남은 거야?”

    할아버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가 앞쪽의 커다란 비행 현황판을 보더니 말했다.

    “아버지, 착륙은 했습니다. 이제 비행기에서 내리시고 입국 절차만 하면 됩니다.”

    “그래, 알겠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하지만 강우 가족 중 그 누구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에 처음 오는 최준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어?!”

    얼마 후, 아버지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의자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와 나머지 가족들의 시선도 일제히 아버지의 손끝을 향했다.

    “형님!”

    열린 입국장의 문 사이로 최준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에 야윈 몸이었지만, 당당한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생활 한복을 입은 최준은 정말 고고해 보였다.

    “아우!”

    최준이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할아버지와 최준이 부둥켜안았다. 강우와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강용이도 슬픈 감정을 느끼고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할아버지와 최준의 뜨거운 해후에 주변의 시선도 몰리기 시작했다.

    “형님, 드디어 오셨군요.”

    “그래, 왔네. 해방된 조국에 내가 왔네.”

    최준은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보였다. 연신 주변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니 놀라울 것이다. 최준은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 단 한 번도 한국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이 되며 국적을 상실한 것이다.

    ‘그나마 수교가 된 게 얼마 전이니까.’

    길고 긴 냉전의 시대가 지나고 양국의 수교가 되었음에도 최준은 한국에 오지 않았다. 이미 세월도 오래 흘렀을뿐더러 굳이 한국을 찾을 이유도 없었다.

    “강우야, 그런데 어르신이 맨몸이신 거 같은데?”

    “어? 그러네요.”

    아버지의 말처럼 최준은 정말 홀가분한 몸이었다. 강우가 슬쩍 할아버지와 최준에게로 다가갔다. 최준이 강우를 보고는 반갑게 웃었다.

    “강우야. 잘 지냈느냐?”

    “네, 어르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비행은 안 불편하셨어요?”

    “안 불편했어. 아주 편하게 왔다.”

    강우가 최준의 손을 힐끗 보며 물었다.

    “그런데, 짐은 안 찾아오신 건가요?”

    강우의 말에 최준이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다. 애초에 맨몸으로 왔어.”

    “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최준을 보았다. 이번 최준의 한국행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국적회복은 물론 유공자 서훈까지 진행할 생각이었다. 최준도 내심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중국에서 쓰던 물건들은 가지고 올 줄 알았다.

    “형님, 설마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어렵게 조국에 돌아왔는데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 그냥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그러네. 몸도 마음도.”

    최준의 말에 강우와 할아버지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뱉어냈다. 최준은 중국에서의 남은 미련을 모두 끊어버리고 온 것이었다. 최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왜? 생각보다 귀찮은 짐 덩어리가 온 것 같으이?”

    강우와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런 큰일 날 말을···.”

    강우와 할아버지의 반응에 최준이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다.

    “내 농을 좀 쳤네. 뭘 그리들 놀라는가.”

    강우와 할아버지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강용이가 곁으로 왔다.

    “어르신.”

    “그래, 정식아.”

    아버지와 최준은 중국에서 많이 만난 탓에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최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 돌아오신 거 축하드려요.”

    “고맙네.”

    마지막으로 강용이가 앞으로 나섰다.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든 채였다.

    “할아버지, 또 뵈어서 참 좋아요.”

    “허허허.”

    강용이가 내민 꽃다발에 최준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준이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들.”

    누군가가 강우 가족을 향해 다가왔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목에는 사진기를 걸고 있었다. 순간 강우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기자?’

    강우의 예상대로였다. 남성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 할아버지와 최준에게 내밀었다.

    “한민족 신문의 김광일 기자입니다. 잠시 두 분을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겠습니까?”

    최준이 김광일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김광일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 무슨 인터뷰를 하겠다는 게요?”

    “독립운동가이신 두 분의 인연과 최준 님께서 한국으로 돌아오신 사연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최준을 바라보았다. 최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이 땅에 남아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구려. 하지만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구려.”

    “아···. 그러십니까?”

    김광일 기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최준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강우야, 기자분에게 내가 묵을 호텔의 위치를 알려드리거라. 거기서 인터뷰를 하도록 하자.”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김광일 기자가 화색이 되었다. 강우가 김광일 기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이끌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박강우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김광일 기자입니다.”

    김광일 기자가 강우에게도 명함을 주었다. 강우가 품에서 회사의 명함을 꺼내 건넸다. 명함을 확인한 김광일 기자의 얼굴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혹시 필기 가능한 것 좀.”

    강우의 말에 김광일 기자가 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강우를 향해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최준 어르신은 강남에 있는 이 호텔에 머무실 예정입니다. 오실 때 연락은 제 핸드폰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강우가 호텔의 위치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김광일 기자가 메모를 받아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최준을 바라보았다. 강우가 김광일 기자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오늘 최준 어르신이 입국하시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준 어르신은 이 나라 독립운동의 자금줄을 담당하시던 큰 인물이십니다. 이런 분이 다시 조국에 돌아왔는데 이렇게 조용하다니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강우가 김광일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울분을 토하던 김광일 기자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오래전부터 중국에 남아있는 독립운동가들과 후손들에 관해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중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최준 어르신과 한국에서 나타난 후계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한 중국 대사관과 중국 쪽의 인맥을 이용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강우가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광일 기자가 눈을 빛냈다.

    “박 이사님, 이건 신호탄입니다. 최준 어르신이 비록 지금은 관심을 못 받고 계시지만, 한국에 돌아온 사실이 알려진다면 작지 않은 파장이 일어날 겁니다. 그만큼 대단한 분이시기 때문이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광일 기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강우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간절한 표정이 되었다.

    “제가 장담합니다. 앞으로 언론들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눈앞의 남성은 믿을 수 있어 보였다. 할아버지와 최준을 바라보는 존경 가득한 눈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연락해 주세요. 꼭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광일 기자가 할아버지와 최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연신 꾸벅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강우는 그런 할아버지와 최준을 보며 속으로 탄성을 뱉어냈다. 새삼 두 분의 대단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손자이고 후계자이란 것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더 잘해야 해. 잘하자 박강우.’

    그렇게 한바탕 작은 소동이 지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온 강우 가족과 최준이 승합차에 탔다. 그리고 공항을 벗어났다.

    “허···. 그것참···.”

    공항을 벗어나 시내에 접어든 최준이 탄성을 뱉어냈다. 달라진 조국의 풍경에 새삼 놀란 것이다. 그 놀라움은 올림픽 대로에 오르자 더해졌다.

    “대단하군. 예전에는 전부 움막집이고 다리라고는 한강철교 하나였는데 말이지.”

    한강 위에 지어진 수많은 다리에 최준이 놀라워했다. 시내 곳곳으로 보이는 고층빌딩에도 연신 감탄했다.

    “대단해. 대단해. 역시 우리 민족은 대단해.”

    조국을 떠나 타국에 있다고는 하나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해방된 이후에 한국전쟁이 있어 온 국토가 잿더미가 됐던 것 말이다.

    “형님, 대단한 민족이 맞습니다. 지금 IMF도 국민이 힘을 모아 버텨내고 있으니까요.”

    “맞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위기에 강했지.”

    두 독립투사의 대화에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듣는 강우도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최준은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저기는 63빌딩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입니다.”

    “오? 겉이 모두 금색으로 칠해졌군. 햇빛을 받으니 반짝이는 게 예쁘군.”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와 강용이도 대화에 참여했다.

    “어르신, 저 옆에는 수산시장이에요. 수산물 좋아하시면 제가 언제 한번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게요.”

    “맞아요. 할아버지, 우리 엄마 음식 진짜 잘해요.”

    최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최준에게 강우 가족은 마치 친가족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좋지. 좋아. 음식솜씨 좋다는 건 정식이 하도 이야기를 해서 알고 있지. 기대해도 되겠지?”

    “네, 어르신.”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싱긋 웃었다. 강우가 힐끗 룸미러로 뒤를 보았다. 화기애애하고 따듯한 분위기가 앞쪽까지 전해져 왔다.

    ‘좋네.’

    슬쩍 옆을 바라보자 아버지도 강우를 보고 있었다. 두 부자가 동시에 스르륵 웃었다. 이윽고 승합차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도 참 크고 좋구나.”

    최준이 호텔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강우가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곧장 차로 돌아왔다.

    “시장하시죠? 점심 먹으러 가요.”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최준의 눈이 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최준을 보며 흐뭇해했다.

    “형님, 한국에서 첫 끼는 뭐를 드시고 싶으세요?”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구나.”

    최준이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세월 중국 음식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최준의 근본은 한국인이었다. 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근처에 돼지갈빗집 있습니다. 거기로 모실까요?”

    아버지의 말에 최준이 반색을 했다.

    “좋지.”

    목적지가 정해졌다. 강우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강우 가족과 최준은 근처의 돼지갈빗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최준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먹성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은 백화점으로 갔다. 최준이 빈손으로 왔으니 사야 할 것이 많았다.

    * * *

    덜컥.

    호텔 방문이 열리고 최준이 들어섰다. 그 뒤를 강우와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강용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오기로 했다.

    “하아···. 첫날부터 이리 좋다니. 역시 얼마를 살았던지 내 나라가 좋은 거야.”

    최준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거짓말처럼 물 한 잔 마셨을 뿐인데도 내 몸이 반응하는군.”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맞습니다. 형님. 신토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돌아오셨으니 이곳에서 저와 오래오래 사시죠.”

    “자네 가족이 나를 이렇게 반겨주니 정말 고맙네.”

    할아버지가 최준의 주름진 손을 붙잡았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이 우리 가족에게 평생을 일군 모든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저희가 대접이 소홀할까 걱정입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좋은 방도 있고, 또 맛있는 것도 먹고. 자네 아들 부부와 또 손자들이랑 쇼핑도 하지 않았는가? 내 잠시나마 가족의 정을 진하게 느꼈어.”

    최준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회한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표정에 강우가 울컥했다.

    “할아버지, 저희가 가족이 되어 드릴게요. 이제 저희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강우의 말에 최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고맙다.”

    할아버지도 흐뭇하게 웃으며 좋아하셨다. 강우는 이 순간이 참 좋았다.

    ‘가족이 늘어난 기분이야.’

    뚜르르. 뚜르르.

    그 순간이었다. 강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김광일 기자입니다. 지금 로비입니다.-

    강우의 예상대로 김광일 기자의 연락이었다.

    “네, 오셨군요. 지금 저희도 호텔입니다. 금세 내려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강우가 할아버지와 최준을 모시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펑. 퍼펑.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최준 어르신, 한국일보입니다. 한국에 돌아오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오셨으니 중국에는 안 돌아가시는 겁니까?”

    호텔 로비를 채운 기자들이 질문을 마구 쏟아냈다. 강우가 빠르게 할아버지와 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 잠시만요! 이게 무슨···.”

    그때였다. 강우의 시선 한쪽으로 김광일 기자가 들어왔다. 강우가 눈빛으로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광일 기자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의 일은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모지를 받아서 읽은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강우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오히려 잘 됐어. 이 기회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현실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알릴 수 있겠어.’

    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최준을 바라보았다.

    “인터뷰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할아버지와 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강우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살짝 긴장한 강우와는 다르게 너무나 태연한 표정이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가 고개를 돌려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너무 위험하니 호텔 내부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죠.”

    강우의 제안에 기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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