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402)
  • 강우 이사님이 있으니 든든하구먼.

    태일 빌딩의 안쪽 사무실. 강우의 옆쪽으로 황규범 부장과 강종민 대리가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의 앞쪽으로는 잔뜩 긴장한 면접자들이 앉아있었다.

    “동양 무역의 박강우 이사입니다. 먼저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자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분명 자신들보다 어리거나 또래로 보이는 강우였다. 그런데 직함이 이사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1번 지원자부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강우의 말이 끝나자 1번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사회초년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1번부터 5번까지 자기소개가 끝났다. 강우가 옆을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황규범 부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1번 지원자를 지목했다.

    “네? 네! 저는 동양 무역의 사업 분야인 일본의 김치 사업과 해외 무역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확히 김치 사업과 해외 무역부서 둘 중 어느 분야에 자신의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하죠?”

    “저는 해외 무역부서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현재 해외 무역부서에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없습니다. 그럼 본인이 입사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그···. 그게···.”

    잘 나가던 1번 지원자가 순간 삐끗했다. 그러자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신입사원을 뽑고 있는걸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답해주세요. 그렇다면 만일 이 회사에 입사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1번 지원자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황규범 부장이 1번 지원자의 이력서에 무언가를 적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1번 지원자가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은 IMF의 상황으로···.”

    1번 지원자는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자본금이 있는 동양 무역이 이 기회를 잡아 다방면의 무역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을 이어갔다.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2번 지원자에게 묻겠습니다.”

    강우가 2번 지원자를 바라보았다. 2번 지원자가 살짝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어떤 경력을 쌓길 원하나요?”

    2번 지원자가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저는 신입사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맡겨진 업무에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그래서 해외 무역에 대한 경력을 점점 쌓아나가길 원합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도 동양 무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원이 되고 싶습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여기 보니까 영어가 특기라고 하던데 그 말을 영어로 다시 해줄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2번 지원자가 영어로 자신이 했던 말을 반복했다. 끝까지 듣고 있던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3번 지원자?”

    “네!”

    면접은 계속 이어졌다. 면접 첫날부터 지원자는 폭주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동양 무역의 제시한 조건이 너무 좋았다. 연봉과 복리후생까지 도저히 중소기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회사의 튼튼한 자본금도 시선을 끌었다. 지금 이 시기에는 자본금이 부족해 도산하는 기업들이 넘쳐났으니까 말이다.

    “다음은 마지막 50번 지원자.”

    강우가 50번 지원자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지원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밖에서 기다리는 내내 면접을 마치고 나온 지원자들을 지켜보았다. 하나같이 박강우 이사를 언급하며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 4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오는 질문마다 핵심을 찌르는 모습 때문이었다.

    “......”

    50번 지원자가 강우의 입을 주시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강우가 슬쩍 입을 열었다.

    “혹시 질문 있나요?”

    잔뜩 긴장하던 50번 질문자가 풍선 빠지듯 숨을 뱉어냈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정신을 수습한 50번 질문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사님의 나이가···.”

    뜻밖의 질문에 회의장 안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스무 살입니다.”

    “아···. 스무···. 네에?!”

    50번 질문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게 마지막 지원자의 면접이 끝났다.

    “으아···.”

    강종민 대리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몸을 쭈욱 폈다. 황규범 부장도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강우 이사님, 오늘 수고가 많았어.”

    “부장님도요.”

    강종민 대리가 강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강우 이사님은 정말 대단해. 사회생활을 안 해본 게 진짜 맞나? 면접자들을 아주 이리저리 요리하는데···.”

    강우가 멋쩍게 웃었다.

    “다들 고생하셨죠. 뭐.”

    오늘 온종일 총 50명의 지원자가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남은 주중에 각각 50명씩 총 200명의 지원자를 더 만나야 했다.

    ‘첫날부터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좋은 조건을 보고 온 사람들일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기에 면접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을 통해 동양 무역과 함께할 인재를 뽑아야 했기에 신경이 더욱 쓰였다.

    ‘이왕 뽑는 거 신중하게 뽑아야지.’

    처음 뽑았던 세 사람 같은 인재들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었다.

    덜컥.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김지숙 대리가 나타났다. 회의실 밖에서 면접자들의 접수와 정리를 담당한 김지숙 대리였다.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다.

    “이제 끝났죠?”

    황규범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김 대리도 고생했어.”

    황규범 부장이 이번에는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 이사님, 그럼 오늘 면접자 중에 최종면접에 올라갈 사람들을 한번 골라봅시다.”

    “네, 그러죠.”

    강우가 힐끗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우와 직원들이 다시 회의에 돌입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는 늦은 저녁이 돼서야 끝났다. 강우와 직원들은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어서들 오세요.”

    고깃집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강우와 일행을 반겼다. 이제는 단골집이 되어버린 고깃집이었다. 강우와 직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삼겹살 오 인분이랑 소주 두 병 주세요.”

    강종민 대리가 익숙한 듯 주문을 했다. 이윽고 주문한 소주가 먼저 나왔다.

    따라락.

    강종민 대리가 소주병을 힘차게 돌려 땄다. 그리고는 강우와 직원들의 잔을 채워주었다. 직원들의 시선이 강우에게 쏟아졌다.

    “이제 면접 4일 남았네요. 다들 동양 무역의 근간을 뽑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들 해주세요.”

    강우의 말이 끝나자 술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각자의 입안으로 들어간 소주가 목을 타고 쓰게 넘어갔다.

    “크······.”

    황규범 부장이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강우 이사님.”

    “그냥 밖에서는 편하게 예전처럼 불러주세요.”

    강우의 말에 황규범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강우야, 신입사원들을 총 20명이나 뽑는다고 했지? 경력직은 5명이나 뽑고.”

    “네, 맞아요.”

    황규범 부장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무언가 집중해서 말할 때 곧잘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까 강우 이사가 했던 말이 걸려서 그러는데. 당장 우리 회사 말이야.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 건수는 김치 사업하나 뿐인데 너무 많은 인원을 뽑는 건 아닐까 싶어서.”

    황규범 부장의 걱정은 당연했다. 회사의 자본이 많다고는 하지만 수익이 없는 상황이었다.

    “네, 지금은 그렇죠. 그런데 김치 사업은 금세 궤도에 오를 거에요. 일단 그동안 표본으로 만든 김치들의 반응도 좋았고요. 김치 시장은 전망이 좋으니까요. 거기다가 우리는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게 일본에 김치 공장을 직접 지었잖아요. 차별화가 가능하죠.”

    김지숙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산 재료로 일본에서 직접 만든 김치.”

    “네, 맞아요. 일본 사람들이 김치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위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김치라면 일단 입맛에 맞는지 접근하기가 쉬울 겁니다.”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일단 김치맛을 보고 나면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거고요. 이 사업은 성공할 겁니다. 그리고 김치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요. 제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들이 제법 많거든요. 그때 가서 쫓기듯 사람을 뽑는 거보다는 지금부터 튼실히 회사 구조를 짜놓고 싶어요.”

    강우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강종민 대리와 김지숙 대리가 짧게 탄성을 뱉어냈다. 강우의 자신감은 현실이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래, 강우 이사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지. 일단 남은 기간 열심히 새 직원들 뽑아보자고.”

    황규범 부장의 말에 나머지 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여러분과 같이 능력 있고 인품도 훌륭한 직원들로 잔뜩 뽑았으면 좋겠네요.”

    강우의 말에 직원들이 씨익 웃었다. 특히 황규범 부장은 강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사님이 없어도 우리 강우 이사님이 있으니 든든하구먼.”

    * * *

    늦은 밤, 강우가 집으로 돌아왔다.

    덜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은 고요했다. 강우가 조심히 구두를 벗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우 왔니?”

    거실에서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가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강우가 슬쩍 웃었다.

    “안 주무셨어요?”

    “아들 기다렸지.”

    어머니가 다가와 강우의 웃옷을 벗겨주었다. 그리고는 싱긋 웃었다.

    “엄마가 우리 아들 퇴근하는 거도 보고 진짜 세월이 빠르다.”

    “그러게요. 저도 언제 이렇게 컸나 몰라요.”

    강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연락 없으셨어요?”

    “아까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어. 당분간 중국에 있느라 힘들지 않으려나 몰라.”

    어머니가 살짝 걱정하는 표정이 됐다. 아버지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안정시킬 때까지 중국에 있기로 했다. 그 기간은 짧게는 한 달 이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강우는 회사에 이사라는 직함을 달았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은 내가 회사를 이끌어가야지.’

    강우는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 할아버지의 방문이 열렸다.

    “강우 왔구나.”

    “네, 할아버지 안 주무셨어요?”

    할아버지가 강우에게 손짓했다.

    “그래, 잠깐 들어와 보거라.”

    “네.”

    강우가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성맨션보다 훨씬 넓어진 방이었다. 한쪽에는 텔레비전이 놓여있었고 가구들도 할아버지의 취향에 맞게 고풍스러웠다.

    “오늘 낮에 아범한테서 연락이 왔다.”

    “네, 엄마한테 들었어요.”

    할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기 시작했다.

    “최준 형님께서 조만간 한국에 온다고 하시더구나.”

    “정말요?”

    강우가 대번에 밝아진 표정이 되었다.

    “그래, 합작법인 일은 대리인단에 맡기고 오신다고 하더라.”

    “잘됐네요.”

    할아버지의 얼굴에 짙은 회한이 서렸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우야, 이 할아비가 너에게 부탁이 있다.”

    “말씀하세요.”

    “최준 형님의 한국에 남아있는 혈연들을 찾아줄 수 있겠느냐?”

    “한국에 친인척이 남아계신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먼 친척이지만 남아있을 거라고 하더구나. 중국으로 가신 후에도 연락하고 있었지만···. 한국 전쟁 때 연락이 끊겼다고 하시더구나.”

    할아버지가 긴 숨을 뱉어냈다. 최준의 안타까운 사연에 강우도 가슴이 아파져 왔다.

    “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럴까?”

    할아버지가 자신 없는 듯 말했다. 하지만 강우는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생각이었다.

    “네, 북한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그리고 살아만 있다면 제가 반드시 찾아낼게요.”

    “그래, 고맙구나.”

    할아버지가 강우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중국에 있으니 지금 이 일을 할 사람은 강우뿐이었다.

    “최준 어르신이 저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셨는데요.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그리고 한국에 오시면 꼭 좋은 추억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래그래. 착하다. 우리 장손.”

    할아버지가 강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할아버지의 손길은 참 따듯했다. 강우가 힐끗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설렘마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우의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반드시 찾아드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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