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402)
  • 날세 못 알아보겠는가?

    북경 공항에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위진오가 있었다. 청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강우와 아버지는 오늘 오전에 북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할아버지를 마중 나온 것이다. 위진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마치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거 너무 긴장되는군.”

    위진오가 손에 난 땀을 스윽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위진오의 모습에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형님, 떨리십니까?”

    “그러게. 내 얼마 만에 이리 떨어보는지 모르겠어.”

    이윽고 출구로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특유의 중절모에 양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강우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강우를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할아버지의 뒤쪽에서 강용이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강우를 향해 후다닥 달려왔다.

    “형아!”

    “우리 강용이.”

    강용이가 강우의 다리에 와락 안겼다.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헝클어 트렸다. 위진오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부축해 위진오의 앞으로 왔다.

    “어르신, 위진오라고 합니다.”

    위진오가 허리를 공손히 숙였다.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위진오를 일으켜 세웠다.

    “박재봉이라고 하네. 초대해줘서 고맙군.”

    할아버지의 완벽한 중국어에 위진오가 짧게 감탄성을 뱉어냈다.

    “먼 길 오시느라 힘드시지는 않았습니까?”

    “먼 길이라니. 바로 옆 나라가 이곳 아니던가. 그리고 덕분에 편히 왔네.”

    위진오는 역시나 일등석을 준비해주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정식에게 소식을 듣고 정말 걱정했습니다.”

    “허···. 내 건강까지 걱정해주다니 정말 고맙군.”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이었다. 위진오의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어르신, 중국에 잘 오셨습니다.”

    “정말 오랜 세월만이군.”

    할아버지도 감회에 젖은 표정이었다. 일본과는 또 다른 이유로 찾아올 수 없었던 중국이었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산국가라 올 수 없었고. 그나마 나중에는 상황이 허락지도 않으셨으니까.’

    그때, 강용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형아, 일등석 짱 좋아. 엄청 넓고 맛있는 것도 엄청나게 줘.”

    “그랬어?”

    강용이의 상기된 표정에 강우가 픽 웃었다. 위진오가 이번에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제수씨.”

    “안녕하세요. 아주버니.”

    간단한 영어로 인사가 오갔다. 위진오가 아버지의 팔을 툭 치며 짓궂게 웃었다.

    “이거 제수씨가 어마어마한 미인이군?”

    “그렇습니까? 안사람이 좀 예쁘긴 합니다.”

    아버지의 팔불출에 위진오가 크게 웃었다. 말은 이해 못 해도 분위기를 눈치챈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어르신, 그럼 모시겠습니다.”

    위진오가 앞장서서 할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했다. 옆에 딱 붙어선 아버지와 위진오의 모습에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공항을 벗어나자 커다란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 타시죠.”

    “고맙네.”

    강우 가족이 차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위진오가 앞자리에 탔다. 운전석에는 역시 위혁오가 있었다.

    “출발하지.”

    “네, 위 서기님.”

    차량이 출발하고 곧 공항을 벗어났다. 공항을 벗어나 어느 정도 달리자 북경 시내에 들어섰다. 창밖을 보던 강용이가 깜짝 놀라 소리를 냈다.

    “와아~! 건물들 엄청 높아.”

    강용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미래의 기억 속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북경을 처음 방문했을 때 상상 이상의 모습이었다. 막연히 공산주의 국가라는 생각을 단숨에 깨버리는 사건이었다.

    ‘못사는 나라라고 단순히 생각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북경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수도다웠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빌딩의 숲은 마치 자본주의의 대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빌딩 숲을 지나치고 승합차가 북경의 고급호텔 앞에 멈춰 섰다. 승합차에서 강우 가족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위진오가 따라내렸다.

    “들어가시죠.”

    위진오가 앞장섰다. 강우와 아버지 그리고 위혁오가 가족의 캐리어를 끌고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는 잠시 높게 솟은 호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체크인을 마치고 위진오는 잠시 호텔을 떠났다.

    “저녁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알겠네.”

    위진오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강우가 할아버지의 옆으로 다가갔다.

    “올라가요.”

    “그러자꾸나.”

    방은 총 두 개를 잡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방을 쓰고 할아버지와 강우 그리고 강용이가 한방이었다.

    “이얍!”

    호텔 방에 들어선 강용이가 침대로 몸을 던졌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가 캐리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창가로 다가가 탁자 앞에 앉았다.

    “많이도 변했구나.”

    고층 빌딩 숲을 보며 할아버지가 감회에 젖었다. 강우가 슬쩍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북경에 와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래, 나중에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겨갔었지. 할아비는 상해에 남아 밀정을 했지만, 간혹 중경에 갈 일도 있었단다. 그때마다 북경에 들르고는 했었지.”

    강우와 강용이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들을 때마다 놀라울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더 해주세요.”

    강용이가 할아버지의 팔에 매달리며 졸랐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알겠다. 그래도 옛날이야기는 자기 전에 들어야 재미가 있지. 오늘 밤에 할아비가 재미난 이야기 많이 해주마.”

    “진짜죠? 아싸!”

    강용이가 좋다며 펄쩍 뛰었다. 할아버지가 그런 강용이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할아버지, 저녁 약속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 쉬고 계세요.”

    “음···. 그럴까?”

    할아버지가 시계를 힐끗 보시더니 침대에 몸을 누이셨다. 강우가 할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호텔 침구 특유의 푹신함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런데 말이다. 강우 너는 알고 있는 게 없니?”

    “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만나자고 했다던 사람 말이다. 도통 누구인지를 알 수 없어서 말이야.”

    “혹시 예전에 중국에서 알던 사람은 없으세요?”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금세 입을 열었다.

    “글쎄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야 많지. 하지만 위 서기를 통해서 나를 찾을 사람이 누구일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네···.”

    강우와 할아버지가 궁금증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강용이가 할아버지의 옆에 폴짝 뛰어 누웠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하아~ 할아버지 냄새 좋아요.”

    “녀석···.”

    이윽고 할아버지와 강용이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피곤했던 탓이다.

    똑똑.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호텔 방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할아버지와 강용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우가 빠르게 일어났다.

    “누구세요?”

    혹여 할아버지와 강용이가 깰까 강우가 조용히 물었다. 밖에서도 안쪽의 상황을 눈치챘는지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야, 아빠다.”

    “네, 잠시만요. 할아버지랑 강용이 자요.”

    덜컥.

    강우가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강우를 향해 밖으로 나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강우가 문을 조심히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 많이 피곤해하셔? 점심 먹을 시간인데.”

    “주무시게 놔두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러자. 그럼 강용이만 깨워서 나와.”

    “네.”

    강우가 방으로 들어가 강용이를 조심히 흔들어 깨웠다.

    “으음···. 형아?”

    강우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주무시니까 조심해.”

    “응.”

    그때, 할아버지가 몸을 뒤척이더니 눈을 살짝 뜨셨다.

    “어디 가는 거야?”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깨버렸다.

    “아버지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해서요. 할아버지도 가시겠어요?”

    “아니다. 나는 생각이 없구나. 좀 더 잘 테니 다녀들 오거라.”

    한 번 더 권하려던 강우가 이내 멈췄다. 할아버지가 금세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어 버렸다. 결국, 강우와 강용이만 방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준비를 끝내고 나온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엄마, 할아버지는 코~ 주무신대.”

    강용이가 대번에 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강우가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그냥 우리끼리 가요. 올 때 드실만한 거 사 오면 되죠.”

    “그럴까.”

    잠시 방문을 바라보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발걸음을 돌렸다. 강우 가족이 호텔을 나섰다. 호텔 앞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국의 작은 화물용 승합차를 모는 것 같은 택시들이었다. 일명 빵차라고 불리는 택시들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타기도 전에 택시기사가 물었다. 강우가 목적지를 말했다.

    “자금성 갑니다.”

    택시기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요금을 말했다. 이 시기의 중국 택시는 미터요금보다는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흥정하는 게 다반사였다. 다행히 요금은 합리적이었다.

    “타요.”

    강우 가족이 택시의 앞뒤로 나뉘어 탔다. 강우는 앞자리였다. 택시가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이윽고 강우 가족이 천안문에 내렸다.

    “와~ 엄청 넓다.”

    천안문 광장은 정말 넓었다. 곳곳으로 배치된 공안들의 번뜩이는 눈빛도 신기했다. 강우 가족은 곧바로 자금성으로 향했다.

    “제가 표 끊어 올게요.”

    강우가 자금성 입장을 위한 매표소로 향했다. 나머지 가족은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을 곳을 찾는다고 했다. 강우가 표를 구매하고 가족에게 돌아왔다. 자금성의 입구 근처에 매점이 있었다.

    “가락국수 같은 거 파는데 이거 먹고 갈까?”

    “가락국수 좋아요!”

    강용이가 좋다며 웃었다. 강우가 슬쩍 가게를 바라보았다. 한국의 매점 같은 가게였는데 옆쪽으로 플라스틱 식탁과 의자를 놓고 국수를 팔고 있었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솥에서는 육수가 끓고 있었다. 그 육수를 그릇에 국수와 함께 담아주고 있었다.

    “사람들 많네요. 맛집인가 봐요.”

    어머니가 내심 기대감을 드러냈다. 자리도 만석이었으니 맛집이 분명해 보였다. 강우 가족은 국수 4그릇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자금성의 입구로 다가갔다.

    “......”

    “.....”

    입구부터 웅장한 성문의 규모에 강우와 강용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자.”

    아버지가 입구를 지나쳐 앞장섰다. 어머니와 강우 그리고 강용이가 뒤를 따라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자금성을 구경하는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커다란 궁의 크기만큼 볼 것도 많았다. 자금성을 모두 구경한 강우 가족은 곧장 호텔로 돌아왔다.

    * * *

    그날 저녁. 위진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강우 가족은 승합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오늘의 약속장소는 북경 오리로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어르신이 드시기에 딱 좋은 음식입니다.”

    기름기를 쫙 빼고 요리한 북경 오리라며 위진오가 선택한 메뉴였다. 그리고 북경에 오면 먹어봐야 하는 진미 중의 하나였다. 이윽고 승합차가 음식점에 도착했다.

    탁. 타탁.

    문이 열리고 강우 가족이 모두 내렸다. 위진오가 할아버지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르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위진오는 정말이지 공손했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위진오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며 안으로 들어섰다. 위진오가 황급히 따라 들어갔다. 강우 가족은 예약된 특실로 안내되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안쪽의 모습이 나타났다. 약속 시각이 아직 남아서인지 상대방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어르신, 이제 곧 오실 겁니다. 일단 앉으세요.”

    위진오가 할아버지가 앉을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하며 자리에 앉았다. 위진오가 할아버지의 옆으로 앉았다. 아버지도 옆에 앉았다.

    “나는 형아 옆에 앉을래.”

    아버지의 옆에는 어머니가 앉았고, 강우와 강용이가 나란히 앉았다. 위진오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음식을 시켰다. 아버지에게서 할아버지의 몸 상태를 들은 위진오가 술은 시키지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가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

    “.....”

    잠시 흐르던 침묵을 할아버지가 깼다.

    “위 서기,”

    “네, 어르신.”

    “오늘 나를 보자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없는가?”

    위진오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슬쩍 웃으며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상대분이 꼭 비밀로 해달라고···.”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방문이 열렸다. 위진오가 대번에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백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설마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다···. 당신은···.”

    백발의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보며 격동에 찬 표정을 지었다.

    “재봉, 날세 못 알아보겠는가?”

    그 말을 끝으로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그리고 눈앞으로 하나의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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