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402)
  •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다음 날, 강우와 친구들은 새벽같이 민박집을 나섰다. 아주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서였다.

    “시간 없어. 빨리 움직이자.”

    강우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여행의 시작은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강우와 친구들은 송정 해안가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강우와 친구들이 민박집을 우르르 벗어났다. 그리고는 큰길가로 나왔다. 강우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늦겠다. 뛰어!”

    친구들이 비명을 토해내더니 강우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해수욕장에 도착한 강우가 멈춰 섰다.

    “헉헉···. 강우야!”

    뒤쪽에서 신원주가 다음으로 도착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강우가 가슴을 펴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남았던 졸음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아니, 어젯밤부터 왜 이렇게 달리는 건데?”

    신원주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그냥, 힘이 남아돌아서?”

    “하···. 부럽네.”

    강우와 신원주가 일렁이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둑한 수평선 너머로 조금씩 붉은 기운이 잉태되고 있었다.

    “애들은 안 오나? 잘못하면 늦겠는데?”

    강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윽고 김춘배와 남재식이 도착했다. 여유 만만 걸어온 두 사람의 손에는 따듯한 음료가 있었다.

    “춥네. 하나씩 마셔.”

    친구들이 따듯한 캔 음료를 홀짝이며 일출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온다!”

    강우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가리켰다. 수평선 너머로 점점 태양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에 강우도 친구들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원 빌어라.”

    신원주의 말에 친구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강우는 가족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을 빌었다.

    “일출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남재식이 감격에 차오른 표정이 되었다. 신원주도 김춘배도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해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주변이 점점 밝아졌다. 강우가 친구들의 상태를 살폈다. 새벽 추위에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옅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밤새 폭죽놀이를 하며 맥주를 마신 탓이었다.

    “피곤한데 숙소 가서 좀 쉬다 나올까?”

    강우의 제안에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쉬고 싶었던 모양이다. 강우와 친구들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곧장 잠이 들었다.

    “학생들!”

    방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부스스한 얼굴로 주변을 보니 친구들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덜컥.

    강우가 벌컥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퇴실할 시간이여.”

    “아···. 네.”

    힐끗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강우가 방으로 돌아가 친구들을 깨웠다.

    “일어들 나라. 벌써 점심시간이야.”

    강우의 말에 친구들이 벌떡 일어났다. 다들 푹 잤는지 개운한 얼굴들이었다. 강우가 세면도구를 챙겨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 쪼그려 앉은 강우가 세수하고 양치를 했다. 친구들도 차례로 씻었다.

    “안녕히 계세요.”

    짐을 모두 챙긴 강우와 친구들이 민박집을 나섰다. 주인아주머니는 가는 길에 먹으라며 간단한 음식을 챙겨주었다. 역시 인심 좋은 아주머니였다. 민박집에서 한참을 걸어 나온 강우와 친구들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제 해운대로 가는 건가?”

    강우가 김춘배에게 물었다. 김춘배가 기대감에 차올라 씨익 웃었다.

    “어, 해운대.”

    강우가 김춘배의 손에 들린 텐트 가방을 힐끗 바라보았다. 여행 내내 저걸 들고 다닌다고 참 고생도 많았던 김춘배였다.

    “진짜 오늘 밤은 해변에서 잘 거야?”

    “텐트 치고 밤새워 놀고, 낭만적이지 않냐?”

    오늘의 계획은 해운대에서의 화려한 밤이었다. 여름이 아니었지만, 해운대는 수많은 청춘으로 가득할 것이다. 특히 김춘배는 오늘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밤이 되면 헌팅도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헌팅? 무슨 바닷가에서···. 그리고 이 겨울에?”

    신원주가 못 미더운 듯했다. 김춘배가 무슨 소리냐는 듯 손가락 하나를 까닥까닥 저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있다가 보면 알겠지.”

    김춘배가 신원주와 남재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잔뜩 멋들어진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잘 봐라. 오늘 이 형님의 작업기술을 대방출할 테니.”

    “그걸 어디다 쓰는데?”

    신원주가 실소를 흘렸다. 그러자 김춘배가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어허~ 이 불쌍한 중생들아. 이제 대학을 가면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아지는지 아느냐? 선배에 동기에 또 나중에는 후배들에.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신원주와 남재식이 실소를 흘렸다. 강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친구 중 누군가가 원한다면 하기로 한 것이 이번 여행이었다. 그때, 버스가 정류장에 다가왔다.

    “어? 어어어?!”

    그 순간이었다. 김춘배가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더니 창백해졌다. 강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김춘배에게 물었다.

    “왜 그래?”

    신원주와 남재식도 불길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춘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돈 들은 가방이 없어졌어.”

    김춘배의 말이 끝나자 강우와 친구들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탈 거가? 안 탈 거가?”

    버스 기사가 강우와 친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반응이 없자 곧 버스를 출발시켰다. 강우가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

    “일다 민박집부터 가자.”

    강우가 몸을 돌려 민박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원주와 남재식도 미친 듯이 따라왔다. 김춘배는 반쯤 울 듯이 달렸다.

    끼이익.

    이윽고 강우가 민박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는 묵었던 방을 향해 다가갔다. 방안에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 혹시 허리에 매는 가방 못 보셨어요?”

    “허리에 매는 가방? 나가 지금 정리 중인데 못 봤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강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윽고 도착한 친구들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찾았어?”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김춘배가 얼굴을 감싸 쥐며 털썩 주저앉았다. 신원주가 김춘배를 달래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매고 있던 게 언제야? 기억나는 거 있어?”

    “잠깐만···. 그러니까···.”

    김춘배가 기억을 짜내더니 입을 열었다.

    “생각났어. 어젯밤에 해변에서 화장실 갔을 때.”

    “설마?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고?”

    신원주가 경악했다. 김춘배가 고개를 푹 떨궜다.

    “미안해.”

    강우가 김춘배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원주랑 재식이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춘배 너는 나 따라와.”

    “어어···.”

    강우와 김춘배가 민박집을 벗어났다. 그리고 송정해변으로 달려갔다. 곧장 공중화장실로 달려간 두 사람이 안쪽을 마구 뒤졌다.

    “찾았다.”

    김춘배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강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정말?!”

    하지만 김춘배는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강우가 김춘배의 손에 들린 작은 가방을 확인했다. 열린 자크 사이로 보이는 안쪽은 텅 비어있었다.

    “강우야, 미안해. 네 말대로 은행에 넣어 놓을 걸 그랬나 봐.”

    “이미 벌어진 일이야. 그리고 어차피 카드 잃어버렸어도 똑같은 상황이었을 텐데 뭐···.”

    강우의 위로에도 김춘배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강우가 김춘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일단 가자. 애들하고 어떻게 할지 상의해 보게.”

    “어···.”

    김춘배가 축 늘어진 어깨로 걸음을 옮겼다. 김춘배를 알고 난 이후로 이렇게 힘없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강우와 김춘배가 민박집에 돌아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대번에 다가왔다.

    “학생들, 찾았나?”

    강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손에 들린 가방을 들어 올렸다. 아주머니가 탄식을 뱉어냈다.

    “하이고 마. 돈만 다 털어갔나?”

    “네···.”

    아주머니가 손을 마주치며 안타까워했다.

    “일을 우짜노? 학생들 가진 돈 그게 전부가?”

    강우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란에 신원주와 남재식도 나타났다. 혹시나 해 주변을 찾아보고 오는 길인가 보다.

    “어?! 찾았어?”

    역시나 아주머니와 같은 반응이었다. 강우가 또 가방을 들어 보였다. 신원주와 남재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하지만 김춘배가 미안해할까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강우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걱정할 거 없어. 부모님께 연락하면 되지.”

    강우가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덜컥 연결됐다.

    -여보세요?-

    강용이의 목소리였다.

    “강용아, 형아야. 엄마는?”

    -형아! 부산 좋나? 맞나?-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대번에 사투리 흉내를 내는 강용이었다. 강용이의 재롱에 이 와중에도 강우가 피식 웃었다.

    “어, 억수로 좋다. 그보다 엄마는?”

    -엄마? 밖에 나갔는데?-

    “그럼 집에 누구 없어?”

    -할아버지랑 아빠.-

    강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아빠 좀 바꿔줘.”

    -응! 아빠! 형아야.-

    강용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냐? 그래 여행 가서 전화도 하고 착하구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자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 저희 여행경비를 잃어버렸어요.”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들 아주 사고를 제대로 쳤구나? 그래서 지금 어디야?-

    “첫날 묵었던 민박집이에요.”

    -음···. 큰일이구나. 지금 은행들도 다 닫았을 테고···. CD기라도 가서 송금을 해줘야 할까?-

    강우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은행 출금 카드 가지고 온 사람 있어?”

    친구들이 고개를 저었다. 강우가 슬쩍 지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만 원짜리 몇 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 아무래도 송금을 받을 수도 없을 거 같아요.”

    -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민박집 주소 좀 불러줘라.-

    강우가 주소를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강우를 안심시켰다.

    -일단 가지고 있는 돈으로 밥 사 먹고 있어. 아빠가 금세 갈게.-

    “네.”

    전화가 끊어졌다. 강우가 친구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아버지가 오신단다.”

    김춘배와 신원주 그리고 남재식이 짧게 탄성을 뱉어냈다. 안도감을 느꼈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얘들아 진짜 미안해.”

    김춘배가 다시 한번 미안함을 표현했다.

    “됐다. 그만 미안해해.”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미안해하지 마.”

    신원주도 남재식도 김춘배를 위로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주인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맞다. 친구들끼리는 그래야 하는 거다. 학생들 참말로 착하다.”

    아주머니가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이 데리러 올 때까지. 여기 있어도 된다. 아지메가 밥도 차려줄 테니까. 그만 걱정들하고 어깨 펴라. 사내놈이 그래 풀이 죽어서야 되겠노?”

    아주머니의 위로에 김춘배가 감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강우와 친구들은 민박집의 마당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

    “......”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자 아주머니가 밥을 차려주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연신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부우웅.

    민박집 밖으로 차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강우와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대문으로 향했다.

    끼이익.

    민박집의 문이 열리고 김춘배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춘배가 울컥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춘배야!”

    춘배 아버지가 김춘배에게 다가와 여기저기를 살폈다.

    “많이 놀랐어? 괜찮은 거야?”

    “네, 아빠.”

    이윽고 신원주의 아버지가 들어섰다. 신원주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어? 아빠?”

    “원주야.”

    원주 아버지도 신원주가 걱정된 듯 이리저리 살폈다. 이윽고 강우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들.”

    “아빠,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말이야. 사실 아빠가 할아버지랑 술을 좀 먹은 상태였거든. 운전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철민 형님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글쎄 형님도 약속이 있어서 술을 한잔하셨다더라고.”

    “아···.”

    강우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춘배네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글쎄 춘배 아버지도 술을 한잔하셨더라고.”

    “네? 그럼 누가 운전을 한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 대문으로 남재식의 아버지가 들어섰다. 손에는 자동차 키가 들려있었다.

    “재식아.”

    “아빠!”

    재식 아버지가 남재식에게 다가와 또 여기저기를 살폈다. 강우가 이제는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흘렸다. 그러자 아버지도 피식 웃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재식이 아버지한테 연락했더니 마침 술을 안 드셨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된 거군요.”

    재식 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체질이라 다행이지 않았겠습니까?”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술을 못 마시는 남재식의 체질은 역시나 유전이었나 보다. 민박집의 마당이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

    “하이고 마. 이래 아부지들이 다 왔습니까?”

    소란을 느낀 주인아주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들을 번갈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마 어디 가서 남이라고는 못 하겠구마.”

    똑 닮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모습이었다. 마당 안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이거 힘들게 부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아버지가 친구들의 아버지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세 명의 아버지들이 눈을 반짝이며 상기되기 시작했다. 원주 아버지가 아버지의 말을 지원 사격했다.

    “흠흠···.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애들도 놀랐을 테니 하룻밤 머물다 가는 게 어떨까요?”

    춘배 아버지와 재식 아버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좋은 생각입니다.”

    “야간 운전이 위험하긴 하죠.”

    네 명의 가장이 순식간에 일치단결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멀리 갈 거 있습니까? 여서 하룻밤 묵고들 가이소.”

    그렇게 순식간에 숙소가 정해졌다. 주인아주머니는 곧 커다란 방을 두 개 내주었다. 하나는 아버지들의 하나는 강우와 친구들의 몫이었다. 의기투합한 아버지들은 곧장 민박집을 벗어났다. 강우와 친구들도 허겁지겁 따라나섰다.

    “해운대로 갑시다.”

    총 여덟 명의 남자가 재식 아버지의 봉고차를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그리고 근처의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버지들은 포장마차에 있는 안주를 잔뜩 시켰다. 아버지들은 술도 시켰다. 오늘, 날을 제대로 잡으신 모양이다.

    ‘마침 핑곗거리도 완벽하긴 하지.’

    아들을 구하러 간 아버지에게는 그 어떠한 일탈도 사함을 받을 면죄부가 발급된 상태였다. 아버지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 뭉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자주들 만납시다. 건배!”

    원주 아버지가 건배를 제안했다. 허공에서 잔이 부딪쳤다. 안주도 술도 빠르게 비워져 갔다. 이윽고 남자들의 통과의례인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나이순은 원주 아버지, 춘배 아버지, 재식 아버지 그리고 강우 아버지의 순이었다. 아버지는 순식간에 막내가 됐다며 좋아했다.

    “형님들, 앞으로 자주 만나시죠.”

    “좋지. 가족 모임도 하고 그러자고.”

    밤새 술자리가 이어지며 아버지들은 점점 의기투합해 갔다. 금세 호형호제하며 친해졌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자 아버지들은 아들들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물론 재식 아버지와 남재식은 콜라로 대신했다.

    “그러니까 강우가 말이야.”

    춘배 아버지는 연신 강우를 칭찬했다. 그리고는 김춘배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강우의 반만 닮아보라며 말이다. 김춘배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빠, 그건 불가능해 쟤는 괴물이라니까?”

    김춘배의 말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김춘배를 바라보았다. 김춘배가 민망한 듯 웃었다.

    ‘좋네.’

    가방을 잃어버린 것은 위기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버지들의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강우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의 순간을 눈에 담았다.

    ‘이런 게 전화위복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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