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402)
  •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거다.

    덜컹. 덜컹.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강우와 친구들은 의자를 돌려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누가 역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를 했다. 결과는 강우와 신원주의 승리였다.

    “아···. 가위바위보마저 지다니.”

    김춘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반 정도 가면 바꿔줄게.”

    “오케이.”

    김춘배와 남재식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강우와 친구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새롭기만 했다. 비싼 돈을 들여 탄 새마을호는 쾌적함 그 자체였다. 널찍한 좌석끼리의 공간과 푹신한 의자에 강우와 친구들은 만족스러웠다.

    “원래대로라면 통일호 타고 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김춘배의 얼굴 가득 만족함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강우와 친구들의 세뱃돈 투어는 대성공이었다. 불어난 여행경비에 새마을호까지 타게 됐으니 말이다. 김춘배가 허리에 매고 있는 가방을 툭툭 건드렸다.

    “여행자금도 충분하고 아주 좋아.”

    김춘배의 허리에 메여 있는 가방은 터질 듯 두툼했다. 넉넉한 자금에 강우와 친구들이 푸근한 표정이 되었다.

    “새마을호 진짜 좋다. 자리도 널찍하고.”

    신원주도 만족감을 토해냈다. 강우가 김춘배의 허리춤을 힐끗 바라봤다.

    “그런데 그렇게 다 현금으로 가지고 다녀도 될까? 좀 불안한데.”

    “괜찮아. 언제 돈 찾으러 은행 들르고 그래?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번 여행의 총무를 맡은 김춘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총무는 너니까 잘 부탁한다.”

    강우의 말에 김춘배가 씨익 웃었다. 이번 여행은 총 2박 3일이었다. 그중 1박은 민박집에서 머물고 나머지 1박은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김춘배가 가지고 온 텐트는 네 명이 자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덜컹. 덜컹.

    기차가 달리는 특유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부산까지는 긴 거리였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강우와 친구들이 하나둘씩 잠들어갔다. 여행의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을뿐더러 새벽같이 집을 나선 피곤함 때문이었다.

    드르륵.

    그때, 기차 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우와 친구들의 눈이 본능적으로 번쩍 떠졌다.

    “왔다!”

    신원주가 눈을 빛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깔끔한 제복을 입은 직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양손으로 밀고 있는 작은 손수레에는 먹을 것이 가득 담겨있었다.

    “난 삶은 계란 먹는다.”

    김춘배가 선언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수레를 보니 출출함이 밀려든 강우가 눈을 빛냈다.

    “나는 김밥이랑 사이다.”

    남재식은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멍한 얼굴로 손수레를 바라보았다. 신원주는 심사숙고 끝에 메뉴를 정했다.

    “나는 오징어.”

    김춘배가 메뉴를 모두 접수했다. 손수레는 천천히 다가왔다. 친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행여나 음식들이 부족하면 어쩌나 싶었나 보다.

    “오징어 한 마리랑 삶은 계란 다섯 개 사이다 두 병 그리고 김밥 네 줄 주세요.”

    마지막으로 김춘배가 남재식을 바라보았다. 고심 끝에 남재식이 메뉴를 골랐다.

    “난 귤.”

    김춘배가 귤도 넉넉히 추가 주문했다. 손수레를 밀던 직원의 손이 바빠졌다. 강우와 친구들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힐끗 이곳을 바라보았다. 강우와 친구들이 많이 시키기는 했나 보다.

    “여기 있습니다.”

    김춘배가 허리춤의 가방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치렀다. 직원이 잔돈을 건네주고는 다시 손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받침대를 꺼냈다. 그 위로 하나둘씩 음식들이 놓였다.

    “다 준비해서 나눠 먹자.”

    강우가 김밥을 뜯어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김춘배는 삶은 계란을 까느라 집중상태였다. 남재식도 귤을 하나씩 까서 먹기 좋게 올려놓았다. 기차 안이 금세 만찬장으로 변해 버렸다.

    “배고프다. 빨리 먹자.”

    강우와 친구들의 먹방이 시작됐다. 한창 먹을 나이인 스무 살 네 명이 모였다. 수레가 사라지기 무섭게 받침대 위가 썰렁해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강우와 친구들의 먹방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 목 메. 사이다 좀.”

    삶은 계란을 먹던 김춘배가 가슴을 턱턱 치며 괴로워했다. 옆에 앉은 남재식이 사이다를 황급히 내밀었다. 사이다를 벌컥 마신 김춘배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하지 마라···.”

    강우가 경고를 보내자 김춘배가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작게 트림했다.

    “꺽···.”

    순식간에 묘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야!”

    “아! 김춘배!”

    친구들이 기겁하며 코를 부여잡았다. 김춘배의 바로 맞은편에 앉은 강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김춘배가 민망한 듯 웃었다.

    “미안.”

    삶은 계란과 사이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묘한 냄새가 사라졌다. 친구들이 다시 음식을 마구 먹기 시작했다.

    “아···. 좀 모자란 거 같은데. 조금 더 시킬 걸 그랬나.”

    친구들이 배가 차지 않는 듯 아쉬워했다. 강우가 씨익 웃더니 가방을 열었다.

    찌이익.

    자크 열리는 소리에 친구들의 시선이 한방 에 쏠렸다. 얼굴에는 기대감들이 가득했다.

    “설마? 어머니가?”

    “오오!”

    강우 어머니의 음식솜씨야 말할 것도 없지 않던가. 혹시 간식이라도 싸주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들었다.

    “그럴 줄 알고 우리 엄마가 샌드위치 싸줬지.”

    강우가 은박지로 쌓인 샌드위치를 꺼냈다. 역시나 강우 어머니였다. 친구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지더니 아우성을 쳤다.

    “빨리 줘봐.”

    “역시 어머니가 최고야.”

    강우가 샌드위치를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다시 먹방이 시작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반대편에서 중년의 남성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참 복스럽게 들도 먹는군. 대학생들인가?”

    강우의 시선이 중년남성을 향했다. 양복을 입고 있는 중년남성은 아버지의 또래 정도로 보였다.

    “이번에 수능을 봤습니다. 아직 졸업은 전이죠.”

    “오···. 그렇군요. 그럼 친구들끼리 어디 가나 봐요? 지방에 원서접수라도 가는 건가?”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부산에 여행갑니다. 친구들끼리 우정 여행이죠.”

    “아···. 부럽구먼.”

    중년남성이 탄성을 뱉으며 추억에 잠겼다. 자신의 젊었을 적을 떠올리며 이제는 연락도 뜸해진 친구들을 떠올리나 보다.

    “나도 학생들처럼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이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했는데 말이에요. 좋을 때니까 친구들이랑 많이 놀러 다니고 추억도 많이 쌓아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사는 게 바빠서 연락들도 뜸해지니까.”

    “감사합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중년남성의 말을 미래의 기억으로 경험해본 강우였다. 강우가 친구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언젠가 자리를 잡고 가정이 생기면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의 역할을 하겠지. 그리고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이런 추억은 꿈도 못 꿀 테고.’

    강우가 묘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 사이 친구들은 멋쩍게 웃으며 중년남성을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부드럽게 웃던 중년남성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리고 저기 앞쪽으로 가면 식당칸도 있어요. 배들 고프면 거기에 가서 밥을 사 먹어요.”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이 눈을 빛내며 김춘배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김춘배가 씨익 웃으며 허리에 메인 가방을 툭툭 쳤다.

    “내가 말했지. 이번 여행의 목적은 먹고 죽자라고. 먹고 싶으면 가자.”

    “오케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거다.”

    강우가 맞장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우와 친구들이 좁은 객실의 통로를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렇게 강우와 친구들은 한참을 먹고 또 먹었다.

    “아···. 이제 정말 못 움직이겠어.”

    자리로 돌아온 강우와 친구들이 헉헉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어찌나 먹었는지 배가 볼록 튀어나왔을 정도였다.

    “얼마나 남았지?”

    강우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신원주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3시간은 더 가야 할 거 같은데?”

    “얼마 안 남았네.”

    남재식의 말에 강우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미래의 기억 속 고속열차라면 2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강우는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강우가 힐끗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부산에 가면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며 웃음꽃이 가실지를 몰랐다.

    ‘뭐···. 때로는 느린 것이 좋을 때도 있네.’

    오늘만큼은 이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다. 친구들을 바라보는 강우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

    “......”

    그렇게 한참 동안 수다를 떤 강우와 친구들의 고개가 한 명씩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우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덜컹. 덜컹.

    그리고 지나치는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 * *

    -이번 내리실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부산. 부산역입니다.-

    끝도 모를 먹방 끝에 잠들었던 강우와 친구들이 번쩍 눈을 떴다.

    “다 왔나 봐.”

    “빨리 짐 챙겨.”

    친구들이 입가에 묻은 침을 스윽 닦으며 흥분했다.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해간다는 흥분감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강우와 친구들이 허겁지겁 가방을 챙겼다. 강우는 친구들이 먹고 나온 쓰레기들을 깨끗이 정리했다.

    “어? 너 얼굴 뭐냐?”

    “사돈 남 말 하시네.”

    퉁퉁 부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강우와 친구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강우가 배낭을 들쳐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릴 준비 하자.”

    기차 안도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며 웅성거렸다. 어떤 이는 고향에 온 듯 또 누구는 강우와 친구들처럼 여행을 온 듯했다. 기차의 객실 안이 묘한 설렘으로 가득 차올랐다. 강우가 힐끗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중년남성이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들 그럼 좋은 여행들 해요.”

    “네, 안녕히 가세요.”

    꾸벅 인사를 한 강우가 기차의 출구가 있는 중간통로로 이동했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신원주가 놓고 간 것이 없는지 자리를 점검하더니 뒤를 따랐다.

    치이이익.

    이윽고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했다. 출입문이 열리고 생각보다 따듯한 부산의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강우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부산역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강우였다.

    “역시 서울보다는 따듯하네.”

    강우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부산역이었다. 코끝으로 옅은 바닷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강우가 부산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려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것이 강우를 더욱 설레게 했다. 이윽고 뒤를 이어 기차에서 내린 친구들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부산이다.”

    “드디어 도착!”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린 길고 긴 기차여행이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겨울이지만 춥지 않은 공기와 햇살에 친구들의 얼굴이 푸근해졌다.

    치이익.

    친구들이 부산의 공기를 만끽하는 사이 기차가 출발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먼 길을 달린 기차였다. 기차 정비를 위해 어디로인가 가는 것이다. 멀어져 가는 기차를 강우와 친구들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자 다음 계획은 뭐야?”

    강우가 이번 여행의 책임자 김춘배를 향해 물었다. 김춘배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일단 밥부터 먹고 그다음에 숙소 들려서 짐 풀자.”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먹고도 배가 고픈가 보다. 하지만 강우도 내심 배가 고팠다. 강우와 친구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산역사 안에 들어온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역사 내부의 모습은 정답기까지 했다.

    “메뉴는?”

    신원주가 근본적인 화두를 꺼내 들었다. 김춘배가 잠시 고민하더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부산에 왔으면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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