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402)
  • 그냥 군고구마거든?

    타닥. 타다닥.

    드럼통 안에서 불길이 넘실거렸다. 위쪽으로 나 있는 연통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르륵.

    일렁거리는 불길 너머로 강우와 친구들이 있었다. 드럼통 앞쪽의 건물 난간에 조르륵 앉아있었다.

    “고구마 아직 멀었냐?”

    김춘배가 드럼통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물었다. 얼굴에 숯검정을 묻힌 박광웅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기다려봐.”

    박광웅이 고구마가 담긴 드럼통에서 기다란 통을 쭈욱 잡아뺐다. 나무가 타는 특유의 냄새에 강우와 친구들이 코를 킁킁거렸다.

    “와~냄새 봐라.”

    신원주와 남재식이 감탄을 터트렸다. 박광웅이 힐끗 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김춘배가 군고구마를 가지고 다가왔다.

    “아뜨뜨, 야야, 빨리 받아.”

    친구들이 군고구마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뜨거운 고구마에 친구들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강우가 고구마의 껍질을 벗겼다. 껍질 안에 있던 고구마가 노란 속살을 드러냈다.

    “후우~”

    강우가 고구마를 훅 하고 불었다. 뜨거운 연기가 허공으로 스르륵 흩어졌다. 친구들도 열심히 고구마를 후우 불며 식혔다. 이윽고 강우와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하~ 맛있네.”

    강우가 감탄하며 입안에 들어온 고구마를 오물거렸다. 신원주와 남재식은 너무 뜨거웠는지 고구마를 뱉어냈다.

    “강우처럼 충분히 식혀서 먹어야지.”

    김춘배의 타박에 박광웅이 피식 웃었다. 강우와 친구들의 시선이 박광웅에게 쏟아졌다. 박광웅이 민망한지 훌쩍거리는 코를 장갑을 낀 손으로 스윽 닦았다. 박광웅의 얼굴에 기다란 숯검정 자국이 생겼다. 강우와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빨리 먹고 가라. 자꾸 장사 방해하지 말고.”

    박광웅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강우와 친구들은 떠날 마음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럴 수 없었나 보다.

    김춘배가 고구마를 손에 쥔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중국집 아르바이트한다며? 이건 또 뭐냐?”

    “......”

    박광웅이 강우를 힐끗 보았다. 강우가 슬쩍 웃었다.

    “하···. 그걸 또 그새 말했냐?”

    “우리밖에 몰라. 다른 애들한테는 말 안 했거든.”

    “그러냐?”

    박광웅이 강우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다시 드럼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중국집 배달 끝나고 밤에만 장사하는 거야. 아는 형들이 고구마 장사한다고 준비했다가 금세 포기하고 나 줬거든.”

    박광웅의 말에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힘드냐? 밤낮으로 일만 하고.”

    “어쩔 수 없지. 먹고살라면.”

    박광웅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강우가 슬쩍 일어나 드럼통에 다가갔다.

    “고구마 맛있네. 호박고구마냐?”

    “.....”

    박광웅이 무슨 이런 놈이 있느냐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김춘배가 스윽 드럼통 옆을 바라보았다.

    “밤고구마네.”

    박광웅이 자신도 모르게 픽하고 웃었다.

    “그냥 군고구마거든?”

    강우가 슬쩍 드럼통 옆에 있는 고구마 박스를 바라보았다. 상자의 숫자가 제법 되어 보였다.

    “그런데 고구마를 이렇게 잔뜩 샀데? 팔만큼만 사고 또 사고 그러면 될 텐데.”

    “작년에는 엄청나게 팔았다고 하더라. 올해는 뭐···.”

    박광웅이 말끝을 흐렸다. IMF로 거리마저 썰렁해진 상황이었다. 하다못해 군고구마 장사에도 영향이 갈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강우와 김춘배가 건물의 난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열심히 고구마를 먹었다.

    그 순간이었다.

    “오빠!”

    낭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와 친구들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갔다. 이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지혜야, 여기 왜 왔어?”

    박광웅이 살짝 당황하며 여자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지혜라 불린 여자아이는 박광웅의 친동생인 박지혜였다. 박지혜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더니 입을 열었다.

    “오빠, 춥지? 많이 팔았어?”

    “어? 아니···. 아직.”

    박지혜가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보온병에서 따듯한 음료가 따라졌다.

    “오빠, 일단 이거 마셔. 내가 유자차 타왔어.”

    “어어···.”

    박광웅이 동생이 내민 유자차를 후루룩 마셨다. 뜨거운 유자차가 몸에 들어가자 박광웅의 코에서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박지혜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박광웅의 코를 쓱쓱 닦았다.

    “이거 봐. 열도 나고. 감기 걸렸는데 오늘은 좀 쉬라니까.”

    “지···. 지혜야.”

    박광웅이 크게 당황했다. 드럼통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강우와 친구들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상황이 벌거벗겨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마. 새벽부터 신문 배달에 중국집 배달에 밤에까지 이러면 어떡해?”

    “지혜야···.”

    “왜??”

    박지혜가 박광웅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지혜가 강우와 친구들 보더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어? 오빠 학교 교복이네?”

    강우와 친구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슬쩍 들었다. 그러자 박광웅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오빠 학교 친구들이야.”

    “친구들?”

    박지혜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강우와 친구들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박광웅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아니, 그 친구들 말고. 그냥 착한 친구들.”

    “그래?”

    박지혜가 영 못 믿겠다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강우와 친구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광웅이 오빠 동생 박지혜예요.”

    강우와 친구들이 인사를 받아주며 자기소개했다. 박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고구마 장사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

    김춘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 왜?”

    강우가 김춘배의 옆구리를 퍽하고 쳤다. 그리고는 멋쩍게 웃었다.

    “어, 광웅이가 혼자 고생한다길래 한번 와 봤지.”

    “그래도 다행이네요. 우리 오빠 친구들이라고 해도 맨날 이상한 오빠들만 있어서 걱정했어요.”

    박광웅이 미간을 찌푸리며 발끈했다.

    “지혜야!”

    “뭐?! 사실이잖아.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오고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모여서 담배나 피우고 장사하는 데 와서 고구마나 얻어먹고 가고.”

    박지혜의 일침에 박광웅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박지혜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가봐. 엄마 기다리시겠다.”

    “응, 알았어. 오빠도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쉬어.”

    “어? 어···. 알겠어.”

    박지혜가 박광우의 얼굴에 묻은 숯검정을 손수건으로 쓱쓱 닦아주었다. 하지만 깨끗이 닦이지는 않고 더 크게 번질 뿐이었다.

    “이걸로는 안 되겠네. 오빠 있다가 집에 오기 전에 근처 화장실 가서 꼭 얼굴 닦고 와. 이게 뭐야 얼굴이.”

    “어···.”

    강우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던 박광웅과 지금의 모습은 괴리감이 심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보여준 박광웅의 모습도 미래의 기억 속과 달랐다.

    ‘그러고 보니 나하고 싸운 이후로 박광웅이 애들 괴롭히고 그랬다는 건 잘 들어보지 못했네.’

    그때, 박지혜가 강우와 친구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오빠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강우와 친구들이 다시 손을 흔들었다. 박지혜가 바로 근처에 있는 건널목으로 다가갔다. 신호등이 바뀌고 박지혜가 어디로인가 달려갔다.

    “......”

    “......”

    순식간에 휩쓸고 간 여동생의 위력에 친구들이 멍해 있었다. 강우와 친구 중 여동생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박광웅이 코를 훌쩍하더니 입을 열었다.

    “다 먹었으면 그만 가라.”

    생각을 정리한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광웅을 향해 다가갔다.

    “좀 도와줄까?”

    “됐어.”

    박광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강우의 말이 마치 자신의 상황을 꿰뚫은 것 같다고 느꼈다. 박광웅의 거친 반응에 강우가 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다. 강우가 고구마 박스를 가리켰다.

    “저거 파는 거 도와준다고.”

    “......”

    박광웅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다. 어차피 사람 많다고 빨리 파는 것도 아니고 다 먹었으면 그만 가라.”

    “그래도 같이하면 금세 팔 거야. 도와줄게.”

    박광웅이 침묵했다. 강우의 호의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강우가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나랑 춘배는 광웅이 좀 도와주고 갈 테니까. 원주랑 재식이는 먼저 집에 가든지 해.”

    김춘배가 나는 왜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춘배, 너는 호객 담당해야지.”

    “호객을?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왜 못 해?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연기는 어떻게 해 그럼? 연습한다 생각하고 손님들 끌어와.”

    김춘배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드럼통 앞에 섰다. 그리고는 박광웅을 슬쩍 밀어냈다.

    “넌 편의점 가서 뭐라도 좀 먹고 쉬다 와라. 그동안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

    박광웅이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신원주와 남재식이 박광웅을 양쪽에서 포위했다.

    “우리랑 가서 좀 쉬다 와.”

    “어어···.”

    박광웅이 신원주와 남재식에게 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윽고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됐다.

    “춘배야, 최대한 절박한 표정으로. 알겠지?”

    김춘배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고구마 사세요! 맛있습니다.”

    김춘배가 열심히 호객했다. 최대한 절박한 표정을 지으라는 강우의 말을 찰떡같이 수행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호객을 하자 군고구마가 팔리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장사하는 강우와 김춘배의 모습 때문일지도 몰랐다.

    “3개에 천오백 원입니다.”

    사람들이 조금씩 몰리기 시작했다. 강우의 호감이 가는 장사멘트에 손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손님이 손님을 낳는다고 하던가? 드럼통 주변이 북적이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군고구마가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와···.”

    이윽고 편의점에서 신원주와 남재식 그리고 박광웅이 돌아왔다. 드럼통 앞에 모여있는 손님들을 보며 박광웅이 실소를 흘렸다.

    “될 놈은 된다더니···.”

    박광웅이 강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강우는 얼굴에 숯검정을 묻히고 정신없이 장사하고 있었다.

    “......”

    박광웅이 말없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사실 강우를 이렇게 보고 있자니 미안할 뿐이었다. 1학년 때 자신이 강우를 괴롭혔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발을 딛는 지금 순간에 와서는 더욱더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강우야.”

    박광웅이 살짝 갈라진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없이 고구마를 팔던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 왔냐? 몸은 좀 어떠냐?”

    “강우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괴롭혔던 거.”

    박광웅이 용기를 내 말 했다. 강우가 물끄러미 박광웅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이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너랑 나랑 한판 붙던 날에 악감정은 다 털었다. 그러니까 너도 잊어.”

    “정말 미안했어. 이제 알겠어. 그게 얼마나 나쁜 짓이었는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때로는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건 힘든 일이야. 난 네가 용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

    박광웅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강우가 박광웅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광웅의 사과에 강우도 용기가 난 것이다.

    “요즘 많이 힘드냐?”

    박광웅의 코끝이 붉어졌다. IMF가 오고 아버지는 실직했다. 그나마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식당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철부지 같았던 박광웅이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이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응, 힘들어. 많이.”

    박광웅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부모님의 울타리에만 있던 철부지라는 것을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을 얼마나 무의미하게 보냈는지 말이다. 그 이후 박광웅은 조금씩 변해갔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울려 다니던 질 나쁜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과거는 언제나 족쇄처럼 박광웅을 옭아맸다.

    “걱정하지 마라.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상황은 조금씩 나아질 거야.”

    강우는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고,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아직 어리잖아. 앞으로 남은 날이 더 많아. 포기하지 말고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해.”

    “......”

    박광웅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어울리던 친구 중 그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강우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다.

    “고마워.”

    “고맙긴 뭐···. 얼른 팔고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라.”

    “어······.”

    박광웅이 눈시울을 붉혔다. 대가 없는 친구들의 호의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강우가 다시 장사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의 행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다 못 팔았네···.”

    남아있는 고구마 박스를 보며 강우가 입맛을 다셨다. 박광웅이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 이건 또 나중에 팔면 되지.”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강우의 핸드폰이 울음을 토해냈다. 강우가 박광웅을 보며 씨익 웃었다.

    “기다려봐. 남은 고구마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어?”

    박광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재원이 형, 어디에요? 아···. 회사요? 직원들 간식 안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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