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402)
  • 개시를 잘해야 장사가 대박 나는 거라고.

    아지트가 되어버린 남재식의 좁은 방에 강우와 친구들이 있었다. 둘러앉은 강우와 친구들의 앞쪽으로는 찹쌀떡이 포장된 팩이 잔뜩 쌓여있었다.

    “하···. 그러니까. 지금 이거를 팔자 이거지?”

    강우의 한숨에 김춘배가 멋쩍게 웃었다.

    “어, 이거 팔아서 우리 여행도 가고 나중에 술도 먹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팔자는 건데?”

    신원주의 근본적인 의문에 김춘배가 씨익 웃었다.

    “잘 생각해봐. 목동에 아파트 단지가 몇 개냐?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있으니까 엄청 많지?”

    강우와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배가 말을 이어갔다.

    “그 아파트 단지를 전부 다 도는 거지. 거기다가 수능 만점에 전국 수석이 파는 찹쌀떡! 어때? 잘 팔릴 거 같지 않냐?”

    “아···. 그러니까 지금 날 팔아서 장사하시겠다?”

    강우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교복을 입고 오라길래 뭔 소리인가 싶었다.

    “그래, 이럴 때 써먹지 또 언제 써먹냐? 생각해봐라. 학부모들은 무조건 산다니까?”

    “음···.”

    그럴싸한 방문판매 계획에 강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신원주와 남재식은 찹쌀떡 포장지에 열심히 메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수능 만점. 전국 수석이 파는 행운의 찹쌀떡.-

    메모의 내용도 김춘배가 낸 아이디어였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후···. 일단 해보자. 대신 모이는 돈은 공용으로 쓰는 거다.”

    김춘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와 친구들이 열심히 메모지를 붙이고 포장을 했다. 방의 한쪽으로 찹쌀떡이 잔뜩 쌓여갔다.

    “으아! 다했다.”

    잠시 후, 찹쌀떡의 포장이 끝났다. 강우와 친구들이 가방에 찹쌀떡을 나눠 넣기 시작했다.

    “원주랑 재식이는 가방을 메고. 나랑 강우는 판매를 담당할게.”

    신원주와 남재식이 찹쌀떡을 담은 가방을 나눠 멨다. 강우와 친구들이 근처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버스를 타고 목동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우와 친구들이 온 곳은 목동 1~3단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신원주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일단 1단지부터 한 바퀴 도는 거지?”

    강우가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강우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야···. 설마? 아니지?”

    신원주가 실소를 흘렸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원래 개시를 잘해야 장사가 대박 나는 거라고.”

    강우가 거침없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김춘배와 남재식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따랐다. 신원주가 한숨을 푹 쉬며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에 탔다.

    딩동.

    강우가 벨을 눌렀다.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어머니, 저 강우에요.”

    “어머? 강우니?”

    문이 벌컥 열리고 원주 어머니가 나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들도 왔구나? 그런데 원주 너희 만나러 나간다고 했는데?”

    “네, 지금 같이 있어요.”

    강우가 슬쩍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뒤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신원주가 한숨을 푹 쉬더니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찹쌀떡을 꺼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어머니, 저희가 찹쌀떡 장사를 하는데요. 개시로 이것 좀 사주세요.”

    “응?”

    원주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신원주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현관이 소란스러워지자 원주 아버지가 나왔다.

    “강우야, 이 밤에···. 어? 아들?”

    “하하···. 아빠.”

    신원주가 실소를 흘렸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아버지, 저희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 좀 사주세요.”

    그리고는 찹쌀떡이 담긴 팩을 슬쩍 내밀었다. 원주 아버지가 찹쌀떡을 보더니,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친구들끼리 장사를 한다고 하더니 찹쌀떡을 파는 거였어? 그런데 장사방식이 특이하구나.”

    보통의 찹쌀떡 장사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방식이 있었다. 구성진 목소리로 찹쌀떡과 메밀묵을 외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네, 방문판매를 하려고요.”

    강우의 말에 원주 아버지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 학생들이기에 가능한 기발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개시를 제대로 해줘야겠지.”

    원주 아버지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한 장 꺼냈다. 강우가 빠르게 찹쌀떡 세 팩을 내밀었다. 원주 아버지가 그중 한 개를 가져갔다.

    “한 개면 충분하다. 그럼 장사 잘되길 바란다.”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만 원짜리 지폐를 친구들에게 척 내밀었다. 신원주를 제외한 김춘배와 남재식이 작게 환호했다. 강우가 신원주의 부모님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또 놀러 오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강우야 수능 만점 축하한다. 이제 곧 강의실에서 보겠구나.”

    원주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원주 어머니도 말을 보탰다.

    “그래, 강우야 축하해. 그리고 집에 자주 좀 놀러 오고.”

    “네, 어머니.”

    강우와 친구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신원주가 뒤를 돌아보니 창문으로 부모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들, 오늘 좋은 경험 하겠네.”

    “네, 엄마.”

    신원주가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앞서가고 있는 강우와 친구들을 향해 달려갔다. 강우와 친구들은 바로 다음 목표로 향했다. 원주네 집의 바로 옆 라인이었다. 이번에는 강우와 김춘배가 계단을 올라갔다.

    딩동.

    “누구세요?”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리자 김춘배가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번에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입니다. 저희가 찹쌀떡을 팔고 있는데요. 하나만 사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강우가 역시 안 되나 싶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순간 문이 덜컥 열리고 푸근한 인상의 아줌마가 나왔다. 그리고는 교복을 힐끗 보더니 스르륵 웃었다.

    “그래 학생들 뭘 팔고 있다고요?”

    “찹쌀떡입니다. 수능 전국 1등이 직접 만들···.”

    강우가 김춘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김춘배가 움찔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직접 포장한 찹쌀떡이요.”

    “어머? 그래요?”

    아줌마가 찹쌀떡을 받아들더니 메모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뉴스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이름이···.”

    “박강우입니다.”

    강우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아줌마가 손뼉을 ‘탁’ 치며 생각난 듯했다.

    “아 맞다! 박강우. 정말 박강우 학생이에요?”

    “네.”

    강우가 교복에 달린 명찰을 힐끗 내밀었다. 명찰을 확인한 아줌마가 환하게 웃었다.

    “수민아! 이리 좀 나와봐!”

    그리고는 집 안을 향해 소리쳤다. 이윽고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 한 명이 현관으로 나왔다. 힐끗 보아하니 강우와 친구들의 또래쯤인 거 같았다. 아줌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수민아, 이 오빠가 이번에 수능 만점 받은 오빠래. 네가 이 떡 받아.”

    “네?”

    여학생이 크게 당황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강우를 보고는 폭 고개를 떨궜다. 아줌마가 딸의 손을 잡아 찹쌀떡을 잡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딸이 이제 고3이 되는데 아주 좋은 기운 받겠네. 얼마에요 학생들?”

    “사천 원입니다!”

    김춘배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봐요. 수민아, 가서 지갑 좀 가지고 와라.”

    “네···.”

    여학생이 집안으로 가더니 지갑을 가지고 왔다. 아줌마가 대번에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그럼 많이들 팔아요. 학생들.”

    강우와 김춘배가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문이 탁하고 닫혔다. 김춘배가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먹힌다고 했지?”

    “그러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래의 기억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웃 간의 정은 물론이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니까 말이다.

    ‘아직은 정이라는 게 남아있었다고 해야 할까···.’

    IMF라는 위기를 극복한 국민의 힘도 어쩌면 이런 정이 밑바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 시간 없어. 늦기 전에 다 팔고 가야지!”

    “어어···.”

    김춘배의 재촉에 강우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강우와 친구들은 아파트 단지를 누볐다. 장사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신원주와 남재식의 가방에 가득 채운 찹쌀떡 팩이 순식간에 동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문전박대도 당했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우와···. 벌써 다 팔았네.”

    신원주와 남재식이 텅 빈 가방을 툭툭 털며 싱글벙글했다. 강우가 힐끗 옆을 보자 김춘배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헉헉···. 아니 강우 너는 힘들지도 않냐?”

    목동 1, 2, 3단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들이 많았다. 그곳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우는 멀쩡했다.

    “운동 되고 좋았는데? 땀은 좀 나더라.”

    “괴물 같은 놈.”

    김춘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경악했다. 강우가 친구들을 살펴보았다. 추운 겨울 밖을 누비느라 모두의 얼굴이 벌겠다. 다들 코를 훌쩍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상당히 추워 보였다.

    “편의점 가서 컵라면이나 하나씩 먹고 갈까?”

    친구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우와 친구들이 목동 사거리로 향했다. 이윽고 언덕을 넘어 목동 사거리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있지만,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듯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탄성을 뱉어냈다.

    “아···. 좀 살겠네.”

    강우가 매대로 가서 컵라면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강우가 돌아오자 친구들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찌이익.

    뚜껑을 따는 친구들의 동작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했다. 다급히 스프를 따고 부은 뒤 바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받아서는 자리로 돌아왔다. 얼어붙은 손을 녹이기 위해 컵라면 용기를 감싸 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좋다.”

    조르륵 앉은 강우와 친구들의 표정이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우가 먼저 뚜껑을 열고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벌써 먹냐?”

    신원주의 질문에 강우가 라면을 휘휘 저었다.

    “난 불은 면은 질색이라.”

    후루룩. 후루룩.

    강우가 단숨에 라면을 흡입했다. 그 모습을 보던 친구들이 못 참겠다는 듯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강우와 같이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김춘배가 뜨거운 수증기를 마시고는 헛기침을 했다. 친구들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하여간 은근히 약골이라니까.”

    이윽고 컵라면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몸의 안팎이 온기로 데워진 강우와 친구들이 잠시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편의점 창밖으로는 다니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얼마나 벌었어?”

    강우가 김춘배를 향해 물었다. 김춘배의 허리에 메여 있는 작은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는 안쪽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현금이 두둑이 들어있었다. 현금을 세어본 김춘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12만 원인데 내가 찹쌀떡 사느라 3만 원 썼으니까. 그거 제외하면 9만 원 정도네.”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친구들도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하루 저녁에 9만 원이라면 학생들에게는 큰돈이었다.

    “우리 찹쌀떡 팔아서 부자 되는 거 아닐까?”

    남재식의 말에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를 시작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완판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오늘 정도만 팔려도 대박인 거지.”

    “역시 개시를 잘해서 그런 거지.”

    신원주가 씨익 웃으며 공치사를 했다. 강우가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내일은 물량을 좀 늘려 볼까?”

    친구들이 화들짝 놀랐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녹초가 된 상태였다. 강철 체력인 강우를 따라다니느라 혼이 난 상태였다. 특히 김춘배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 계단 오르다가 천국 갈 뻔했다고.”

    “그게 힘드냐? 사내자식들이.”

    강우의 핀잔에 친구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 괴물 같은 놈!”

    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었으면 가자.”

    딸랑.

    편의점을 나서자 다시 차가운 공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강우와 친구들이 두꺼운 잠바의 지퍼를 올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때, 김춘배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군고구마 냄새 아니냐?”

    강우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어디서인가 구수한 고구마 익는 냄새가 났다. 강우와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진미 중의 진미가 아니던가.

    “콜?”

    “오케이.”

    친구들이 끌리듯 냄새를 따라갔다. 이윽고 친구들의 눈앞에 커다란 드럼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강우와 친구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드럼통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일제히 얼어버렸다.

    “어??”

    강우의 눈앞으로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얼굴에 숯검정을 묻힌 상대방도 당황한 듯했다. 강우를 발견한 상대방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박강우, 너 왜 자꾸 날 따라다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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