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402)

우리 할아버지 짱이다.

수능점수가 정식으로 발표된 다음 날. 오성맨션의 앞쪽이 여러 방송사와 언론사의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보! 아직 멀었어? 기자들이 줄을 섰네.”

집 밖을 힐끗 바라본 아버지가 크게 소리쳤다.

“여보, 잠깐만요. 아직 화장이 덜 끝났어요.”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며 현관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아버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 이것 참 떨리네.”

아버지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넘겼다. 머리 정돈을 끝낸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방문을 노크했다.

“아버지, 준비 끝나셨습니까?”

“그래, 다 됐다.”

아버지가 슬쩍 문을 열었다. 단정히 차려입은 할아버지의 옆쪽으로는 강용이가 있었다.

“기자들이 잔뜩 와서요. 이제 곧 문을 열어줘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내가 강용이를 데리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들 말고 인터뷰하거라.”

“네, 아버지.”

강용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베란다로 달려갔다. 창밖을 확인한 강용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아빠, 저 아저씨들 봐요. 전부다, 우리 형아 때문에 온 거죠?”

“그래, 맞아.”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용이가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우리 형아, 이제 연예인 되는 건가?”

“하하! 그건 아니야.”

아버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아, 이리에 와서 할아비랑 있자.”

“네!”

강용이가 할아버지의 방으로 조르르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한번 보더니, 방문을 닫았다. 이윽고 강우의 방문이 열렸다. 학교 측의 간절한 부탁으로 교복을 입은 강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우야, 준비됐지?”

“네.”

“그래, 긴장하지 말고. 응? 잘할 수 있지?”

아버지의 잔뜩 긴장한 모습에 강우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흐트러진 아버지의 넥타이를 정돈했다.

“긴장은 아버지가 더 하신 거 같은데요?”

“내가? 흠흠···. 조금 떨리긴 하네.”

아버지가 멋쩍게 웃었다. 그때, 안방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차분한 정장 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오늘따라 아름다웠다. 평소 안 하던 화장까지 하니 그야말로 연예인 저리 가라였다.

“와? 우리 와이프 오늘 엄청 이쁜데?”

“당신도 오늘 멋지네요.”

어머니가 다가와 아버지의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그럼 준비들 되셨죠?”

강우가 문으로 다가가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아들, 잠깐!”

강우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인터뷰 대상자인 강우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제 됐어.”

고개를 끄덕인 강우가 덜컥 현관문을 열었다.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지고 카메라 조명이 강우의 얼굴로 쏟아졌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들어들 오세요.”

곧 방송사에서 나온 카메라와 장비가 곳곳에 배치됐다. 그리 넓지 않은 집이 금세 차버렸다. 강우와 부모님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강우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앉았다.

“여기 좀 봐주세요!”

“수능 만점의 비결이 뭡니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잔뜩 경직된 표정이 되었다. 어느새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손수건을 꺼내 슬쩍 건네주었다. 강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수능 만점의 비결은 하나도 안 틀렸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강우의 태연한 대답에 기자들이 숙연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박강우 학생! 좋아하는 걸그룹은 없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기자들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답했다.

“걸그룹 좋아합니다. 밀키라는 걸그룹을 특히요.”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또래의 남자라는 듯한 표정들을 지었다.

“수능 최초의 만점자가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강우가 질문이 던져진 방송사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강우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자들의 표정에 궁금함이 가득 차올랐다. 강우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능 최초의 만점자가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실하시고 올바른 모습이 저를 이렇게 키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독립운동가이신 제 친할아버지의 명예에 제가 누를 끼치지 않은 것 같아 기쁩니다.”

기자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리고는 곧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강우 군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란 말입니까?”

“할아버지의 존함이 어떻게 됩니까?”

“할아버지는 살아 계십니까?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고 기자들의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수능 만점자만으로도 충분한 화젯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야기가 생겨버렸다. 독립유공자의 손자가 수능 만점자라니. 엄청난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네, 제 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가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집에서 저와 함께 살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기자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손이 한집에 있다 하니 직접 만나보지 않고 배길 수가 없을 것이다. 강우의 인터뷰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너무나도 대범하고 당당히 인터뷰하는 강우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들의 뒷모습에 감회가 새로웠다.

“할아버님을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지금 집에 계십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방에 노크했다.

“할아버지, 강우예요.”

“그···. 그래···.”

방 안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강우의 인터뷰를 전부 듣고 계셨나 보다. 강우가 문을 살짝 열었다. 강우의 등 뒤로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할아버지, 방송사에서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괜찮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우리 장손이랑 같은 화면에 잡히면 좋지.”

할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강우가 빠르게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옆에 있던 강용이도 도왔다. 강용이는 밖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평온한 안색이 되었다.

“어르신, 이쪽으로 앉아 주세요.”

“가족이 전부 나오면 좋겠습니다.”

방송사가 구도를 요청했다. 강우와 가족들이 소파에 모여 앉았다. 그 중심에는 강우가 앉아있었다.

“평소 강우 군의 모습이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아버지가 답했다.

“강우는 평소에도 성실한 아이였습니다. 항상 가족을 중요시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나 또 무엇을 하던 결과를 내는데 성실함은 기본 덕목이 아니던가.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수능 만점을 받은 아들의 교육방식에 특별한 점이 있으셨을까요?”

어머니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저희는 특별히 한 건 없어요. 강우는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참고서 위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기자들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과외나 학원을 다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인터뷰는 계속됐다. 강우는 자신의 방을 공개하기도 했다. 집안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담겼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님께 묻고 싶습니다. 요새 IMF로 나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신 독립투사로서 국민에게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기자들의 눈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하던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나보다 더 큰 일을 한 독립운동가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먼저 곳곳에서 어려운 하루를 보내는 그분들에게 나 역시 미안함과 존경을 담아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이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눈이 형형히 빛나기 시작했다. 강우가 잔뜩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의 입술을 주시했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한 건 백성들이었소. 그 수많은 사람이 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겠소?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형제자매와 친우를 구하기 위해 싸운 것이었소. 그게 애국심이고 항일투쟁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요.”

할아버지가 잠시 숨을 골랐다. 집 안의 분위기는 금세라도 터져나갈 듯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눈에도 카메라를 들고 조명을 든 스텝들의 눈에도 존경의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우가 할아버지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주름이 져 노쇠한 할아버지의 모습 위로 젊을 적 모습이 겹쳐 올랐다. 소금 지게를 지고 모진 고문을 견디며 항일투쟁을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강우에게 할아버지는 거인 그 자체였다.

숨을 고른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라를 구하는 것은 곧 내 가족과 내 형제자매들 그리고 내 주변의 친우들을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의지들이 모여 대의를 이루는 겁니다. 지금 비록 나라가 어렵다고 하나 우리는 늘 역경을 이겨냈소. 모든 국민이 힘을 합친다면 이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긴말을 끝낸 할아버지가 크게 심호흡을 하셨다. 그리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짝짝짝. 짝짝짝.

침묵이 흐르던 거실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박수 소리가 들불처럼 번져 집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가 가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우와···. 우리 할아버지 짱이다.”

강용이의 감탄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용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 * *

늦은 밤.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강우 가족의 시선은 온통 뉴스를 향해 있었다. 오전 일찍 끝난 인터뷰가 곧 뉴스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온다! 여보 시작했어!”

“네! 가요.”

어머니가 과일이 담긴 쟁반을 들고 거실로 왔다. 이윽고 뉴스가 시작됐다. 첫 뉴스는 얼마 전 있던 대통령 선거의 당선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로는 경제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소식입니다. 수능 시험이 생긴 이래로 최초의 만점자가 나왔습니다. 서울 양서고에 다니는 박강우 군입니다. 박강우 군은 독립유공자의 손자로 밝혀져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우와 가족들의 눈이 화면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강우의 담담한 인터뷰 장면이 흘러나왔다. 가족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범의 눈동자 같은 빛을 내며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

“.....”

강우도 가족들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봐도 할아버지의 말은 가슴을 울렸다. 이윽고 화면이 변하고 앵커의 마지막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뉴스가 끝이 났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에 누구지?”

수화기를 들은 어머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되었다.

“아···. 아주버니. 네네. 강우가 만점이에요.”

큰아버지의 전화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울리기를 계속 반복했다. 그야말로 강우네 집 전화번호를 아는 모든 곳에서 축하 전화가 쏟아졌다. 받다 받다 지친 어머니가 아버지와 교대를 할 정도였다.

“강우야.”

할아버지가 강우를 불렀다. 강우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네.”

“할아비 말을 꼭 명심하거라. 앞으로 우리 장손은 점점 더, 큰사람이 될 거야. 이 할아비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그래서 가문도 일으키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염원도 제 손으로 풀게요.”

“그래. 그래야지 내 손자지. 그리고 강우야, 앞으로 네가 도울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강우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리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장하다. 우리 장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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